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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세대』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대담집

  • 등록일2020.06.19
  • 조회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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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사회학자)
 
2017년 세상을 떠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집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을 기록한 『사회학의 쓸모』가 이미 2015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기에 대담집이라는 책의 형식 그 자체는 익숙하다. 선배 사회학자로서 후배 사회학자와 사회학의 현재적 의미와 한계에 대해 다각도로 나눈 대담으로 구성된 『사회학의 쓸모』를 읽어보면 바우만의 인간적인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세계적인 사회학자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후배 사회학자와 대화를 나눌 때 거들먹거리지도 자신을 신화화 하지도 않는다. 비록 지그문트 바우만은 거장이고 그의 대화 파트너 후배 사회학자는 바우만에 필적하는 명성을 얻지 못한 학자이지만, 바우만은 그들 사이의 이런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학자라는 공통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계적 명성을 얻었든 얻지 못했든 상관없이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현재 처한 위기는 모든 사회학자의 공동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사람이다.
 
『액체 세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대담집』의 표지에 적혀 있는 그와 함께 대담을 나눈 인물의 이름은 눈에 익지 않다. 이력을 보니 낯선 이유가 있었다. 바우만의 대화 파트너 토마스 레온치니는 1985년에 태어난 작가이다. 1985년에! 지그문트 바우만은 무려 1925년생에 태어난 사회학자다. 그들 사이에 6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있다. 과연 아직 청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1985년생 작가와 1925년에 태어난 사회학자가 대화를 온전하게 나눌 수 있을까? 이들 사이에 동시대인으로서의 공동의 관심 사항은 대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혹 그들은 대담을 나누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세대간의 이해란 불가능하다, 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살짝 불안하다.
 
책을 펼쳤는데 목차부터 수상하다. 이 책은 이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에 따라 목차가 나뉘어져있다. 첫번째 주제, 피부의 변형이다. 문신, 성형 그리고 힙스터를 다룬다. 두번째 주제, 집단 따돌림을 다룬다. 세번째 주제, 섹스와 사랑의 변화이다. 이 목차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물론 지그문트 바우만이 『리퀴드 러브』 등을 통해 노인답지 않게 당대의 문제에 대해 대단히 관심 있고 깊게 사유하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과연 60년 차이가 나는 청년과 노인이 문신과 성형과 힙스터의 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그 의구심만큼이나 이렇게 강렬한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 이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대화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두껍지 않은 책이기에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읽어냈다.
 
읽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점점 나는 청년과 노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카페에 초대받은 중년남자가 되었다. 청년과 노인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청년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인은 이미 이전 세대에 속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당대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지 않는 연령집단이다. 당대에 대한 논의는 생애주기의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중장년 층이 독점한다. 과잉대표 되어 있는 중장년 층에 속한 나는 경청해야 하는 독자이고, 좀처럼 발언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청년과 노인은 회피할 수 없는 당대의 긴박한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토마스 레온치니는 한국판 서문에서 “양쪽 모두 서로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젊은이는 노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특히 심리학자 레이먼드 커텔이 노인이 되면 더 정형화되기 때문에 유체라고 부른 젊은이의 순수성과 지성에서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들의 대화는 레온치니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준다. 노인은 무조건 옳지 않다. 노인은 경험이 많지만, 노인의 뇌는 경화되어 있다. 뇌가 굳은 사람은 새로운 현상을 열린 눈으로 있는 그대로 보려하지 않고 과거의 안경으로 혹은 습관으로 바라본다,
 
레온치니는 혹시라도 경화된 뇌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바우만에게 새로운 팩트를 펼쳐 놓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문신은 최근의 유행 현상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아주 어린 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여론 조사 기관 해리스폴이 실시한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문신이 미국 젊은이에게는 말하자면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밀레니얼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퍼센트, 엑스 세대의 3분의 1이 넘는 36퍼센트가 문신을 적어도 하나 이상 했다는 것이죠. 밀레니얼은 와이 세대라고도 부르는데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오늘날 액체 새대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엑스 세대는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일상에서 목격할 수 없었던 변화이다. 바우만이 미처 알아채고 있지 못한 당대의 문화적 변동의 단면을 1985년생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레온치니는 끝없이 펼쳐 보이며 그에게 묻는다. 때로 레온치니가 당신은 이런 것 몰랐지요?라고 충격을 주려는 듯한 이야기를 펼쳐 놓아도 바우만은 놀라지 않는다. 왓츠앱, 텔레그램, 스냅챗 그리고 각종 SNS의 메신저를 통해 원나잇 스탠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별반 해괴한 예외적인 일탈 사례에 속하지 않는 변화된 섹스와 사랑의 풍경 앞에서도 바우만은 타락이라든가 가치관의 붕괴와 같은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바우만은 매우 독특한, 그래서 닮고 싶은 대화의 기술을 선보인다. 바우만은 어떤 경우에도 가치의 심판관이려 하지 않는다. 그 악명 높은 “나 때는 말이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는 동시대인의 입장을 줄곧 견지한다. 비록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혹은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회변화가 발생해도 그는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당대에 속한 또 한 명의 동시대인이라고 자신을 간주하며 상대방이 젊든 아니든 개의치 않고 그를 또 한 명의 동시대인으로 대접하고 함께 숙려한다. 이 둘 사이의 6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는 바우만의 무조건적으로 동시대인이려 하는 태도에 의해 사라진다.
 
레온치니는 바우만 식 대화의 기법을 이렇게 짤막하지만 결정적인 문장으로 요약했다. 레온치니에 따르면 바우만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거만한 태도가 아니라, 독자들이 어떤 문을 어떤 열쇠로 열어야 할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 결국 바우만보다 60년 늦게 태어난 레온치니는 “이런 주제들로 지그문트 바우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중장년 세대보다는 청년 세대와 더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바우만의 새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동시대인 이었다. 그와 한 때 동시대인이었음은 우리 모두의 축복이다.
 
* 기사제공 : 이유출판
 
 
 
액체 <!HS>세대<!HE> [인문]  액체 세대
지그문트 바우만 | 이유출판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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