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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편집이다”『에디톨로지』김정운

  • 등록일2014.12.02
  • 조회 1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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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인문학자 김정운이 돌아왔다. 방송과 강연으로 한창 잘 나가던 때에 돌연 ‘교수’를 때려치더니  일본으로 가 미술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3년 만에 ‘창조는 편집'이라는 내용을 담은 신작 『에디톨로지』를 출간했다.
 
중년 남자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홀아비 생활을 하는 것만큼 처량한 게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유명인이지만 일본에서는 나이 어린 학생들 틈에 끼여 앉은 그냥 ‘아저씨'. 그 설움과 외로움을 책과 연구에 쏟아 넣은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킥킥 웃게 되는 유머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나 『남자의 물건』같은 전작들에 비해서 이번 책 『에디톨로지』는 그야말로 ‘본격적'이네요.
약간 작정하고 썼어요.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웃음). 내 독자들이 기존의 가벼운 내용을 기대했다면 약간 당황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내용이 좀 많아서 나눠서 책으로 낼까도 생각해봤는데 그러면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연속극도 진행 속도가 느려지면 재미 없어지잖아요. 많은 내용들의 엑기스를 뽑아야 읽는 속도고 나고 나도 나태해지지 않고. 내가 재미 없으면 읽는 사람도 재미없다는 게 내 확신이라.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주장을 하셨어요. 우리가 보통 일상에서 편집이라는 말은 다듬거나 여러 가지를 섞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창조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편집은 2차적인 작업, 형식적인 작업이라고 많이들 생각해요. 그래서 중요하긴 하지만 없어도 되는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거야말로 본질적인 작업이란 거죠. 옛날에는 많은 지식을 외운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한 행위들을 이제는 외부의 시스템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거죠.  
 
‘에디톨로지 Editology'라는 말을 처음 만드셨는데요. 에디톨로지가 ‘editiong’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건가요?
‘편집'은 단순히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방법론으로서 학문 체계를 갖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어 보았어요. 편집이라는 것이 인간의 모든 문화와 삶 속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자는 거죠. 그래서 남들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점 찍은 거에요. 지금까지 사회학이니 심리학이니 이런 학문들은 다 서구 사람들이 먼저 점 찍고 그게 설득력이 있으니까 여러 사람들이 연구를 하면서 학문이 된 거잖아요. ‘에디톨로지'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나름 자신도 있고 경쟁력도 있고.
 
편집이 중요하다고 할 때, 흔히 우리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쏙 쏙 뽑아서 보기 좋게, 먹기 좋게 만들어주는 걸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그런 ‘완벽한’ 편집 보다는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편집에 더 끌린다는 사실이 흥미롭던데요.
인상파가 왜 위대하냐면, 그 이전의 그림들은 모두 외부 세계의 재현이었어요. 화가가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인상파 그림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을 해석할 수 있게 하거든요. 상호작용적이라는 얘기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졸업 연설을 비교해봐도 그래요. 빌 게이츠의 연설은 분명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계몽을 하니까 재미가 없어요. 그에 비해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정서적이고 모순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청중들과 상호작용을 하니까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모든 문화적 행위는 상호작용적이어야 하고 주체적 행위의 가능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해요. degree of freedom, 자유의 정도라고 하는데,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유도가 높아져요. 그래서 다들 성공하고 싶어하는 거에요.  그렇지만 너무 자유로운 것도 문제에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똑같거든요.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당황스러우니까. 편집이라는 것은 그런 자유도의 조절에 있어요.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극대화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거죠. 굉장히 세심한 작업이 에요.
 
 
‘천재’도 사회적 필요에 의해 편집된 개념이라고 하셨는데요.
사람들은 천재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회적 요구와 맞물려야 비로소 ‘천재'가 되는 거에요. 바흐의 ‘푸가’ 같은 다양한 대위법 형식을 지금 우리는 위대하다고 얘기하는데, 제가 보기엔 수공업자로서의 음악가가 곡을 계속 만들어야 하니까 작곡을 좀 쉽게 하려고 만들어낸  꼼수 같다는 거죠.  사회적 맥락이 바뀌지 않았다면 바흐의 음악이 오늘날 이처럼 각광을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발명이나 창조라는 말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개념이지만, 사실 편집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엮어서, 혹은 조금 바꿔서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창조' 개념이 허세라는 거에요. 한쪽으로는 창조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한쪽으로는 누구나 창조적이 될 수 있는게 아니라 일부 천재들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꾸 얘기하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이유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마우스를 사용했다는 건데, 사실 마우스는 이미 10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발명한 거에요. 그런데 당시의 시대적 맥락이 마우스의 창조적 측면을 못 살린 거죠. 물론 마우스의 가능성을 알아차린 것은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이지만 말이죠.
 
책 속에서, 이어령 교수에게 이례적으로(?) 극찬을 하셨던데요(웃음).
내가 워낙 사람이 건방진데(웃음) 이어령 선생님 같은 존재가 있으니까 결정적인 상황에서 상당히 겸허해진다고. 정신이 번쩍 들고,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그런 생각도 하고요. 한국 사회에서 이어령 선생의 지적 작업들이 좀 폄하되었다는 느낌도 있어요. 아무튼 그 연세에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얘기들을 너무 많이 하니까 내가 놀라죠.
 
자아나 기억 또한 편집의 산물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나'라는 존재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인간 존재 자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되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 50여 년을 사는 동안 매 시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 중에서 필요한 것만 뽑아서 얘기하는 거죠. 교수들을 만났을 때는 공부하느라 고생한 얘기, 연구로 히트친 얘기 이런 것만 하고, 동네 양아치를 만났을 때는 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놀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데 어느 게 ‘나'에요? 현재의 맥락에서 항상 재구성되는 ‘나'가 나에요. 그렇다고 팩트가 없는 건 아니죠. 다 팩트에요.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팩트 중에서 지금 필요한 것만 모아서 재구성한다는 거죠.  그래서 나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자기 성찰이 더 많이 이루어지는 거에요.
내가 ‘삶의 맥락을 바꿔라' 이런 얘길 하는 이유가, 맥락을 바꿔 나를 재구성하면 창조적이 될 수 있어서예요. 한국에서야 나를 많이 알아보니까 나를 설명할 이유가 없는데, 일본에서는 나를 설명해야 하는데 진짜 황당한 거에요. 한국에서 뭐 했고 뭐 했고 이러면 처음에는 폼 나는 것 같은데 상대방 표정을 보면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이에요. 일본에서 매력적이고 훌륭하게 보일 수 있는 ‘나'는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거죠.
 
자아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낄 필요는 없겠네요.
그럼요.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은 심리학이 만든 굉장히 못된 개념이에요. 뭔가 하나로 정해진 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어딨어요. 심리학이 만들어낸 근대의 인간형이죠.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구성해내는지 주저함이 없어야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어요. 내가 교수를 그만 둔 이유가, 은퇴한 전 교수가 제일 불쌍하거든. 다른 직업은 대개 50대 중후반에 은퇴를 하는데 교수는 65세에 은퇴를 해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와야 자아 재구성이 쉬운데 60대 중반에 나오면 새로운 자아 구성이 안 되요. 그러니까 현실에 적응을 못한다고. 너무 늦게 나오면 새롭게 뭘 시작해볼 수가 없어요.
 
제일 마지막 장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인데요. 정말 그런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려고 하면 안된다는 거에요. 책이 재밌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요. 재미 없는 책이라면 나한테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으면 된단 거죠. 한국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건, 책이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사려고 하면 ‘아, 집에 안 읽는 책이 이렇게 많은데. 사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안 사는 거죠. 그런데 책은 그런 게 아니거든.
책의 목차라도 보고 있으면 그게 내 머리에 들어가서 언젠가는 쓸모있게 된다고요. 책을 다 읽었다고 버려도 안되요. 언젠가 필요할 때 다시 읽어야 하고 그때를 대비해서 갖고 있어야지. 그리고 나의 맥락이 바뀌면 읽었던 책도 또 다르게 읽혀요. 그러니까 책은 많을 수록 좋은 거예요.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언제든지 재편집될 가능성이 생기니까.
 
 
독일 유학 시절 얘기 중에 한국 학생들은 노트 필기를 하지만 독일 학생들은 카드를 활용해 정보를 관리한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사실 한국의 교육과정은 암기는 중요시하지만 편집 능력을 키워주는데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윷놀이, 한복, 친척, 떡국, 이 하나 하나는 개별적인 사물들이지만 이 네 가지를 엮으면 ‘설날'이라는 메타적인 개념이 나와요. 이렇게 카드에 제목을 붙이고 태그를 붙이면서 세상을 분류하고 편집하는 훈련을 했던 거죠. 개개의 카드, 개개의 데이터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데이터들을 모았다고 내가 그걸 다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과정에서, 이 데이터를 메타 언어로 엮어내면서 사고의 훈련이 일어나는 거죠. 그것처럼 좋은 공부가 없어요. 그게 편집이고요.
한국에서는 그 동안 서구에서 강요하고 주입한 근대 지식을 받아들여 왔어요. 거기에 내가 저항을 할 수가 없었죠. 그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내 스스로 편집할 기회를 주지 않는 지식이었어요. 이제 나이 오십이 되니까 그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그런 지식의 권위에 억눌려서 자기의 창조적 사고의 가능성을 제한당하는 그런 억울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창조적인 편집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문화적 경험이 다양해야 해요. 새로운 맥락에 나를 던져 놓으세요. 책을 읽는 것도 그렇고요. 내가 평소 관심있던 분야 아닌 책들도 읽어보면서 관심의 촉수를 드리워 놓으세요. 그러다 사고의 맥락이 바뀌고 사고의 재편집이 일어나는 겁니다.
 
요즘 읽고 있으신 책 중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 한 권  추천해주세요.
최근에 『1913년 세기의 여름』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역사라는 게 시간순으로 흘러가는데, 이 책은 1913년을 횡단하면서 그 해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보여줘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엉뚱한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그런 책입니다.

 
| _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21세기북스


[인문]  에디톨로지
김정운 | 21세기북스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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