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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공부, 어디로 가야 하나?『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혜정

  • 등록일2014.11.28
  • 조회 1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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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 그들 중에서도 꿈의 학점이라는 4.0 이상을 받는 학생들은 과연 어떤 학생들일까?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교수였던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서울대에서 4.3 만점에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최우등생 46명을 포함한 서울대생 1,21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받아적고 그걸 달달 외워 시험 때 그대로 옮겨 쓰는 학생. 모든 과목에 골고루 시간과 열정을 배분해야 하기에 어떤 하나에 ‘꽂혀' 매달리는 일은 없으며, 팀프로젝트를 혼자 도맡아 해 개인 프로젝트로 만들어버리는 학생. 예습은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 학생.
 
많은 언론들이 이런 ‘현상'에 대한 개탄을 쏟아냈지만 솔직히 이건,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외친 것일 뿐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하고 있던 진실이라는 얘기다. 이런, 정말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임금님은 왜 벌거벗고 있었던 거지? 임금님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그 옷은 어떻게 만들지? , 정말 중요한 논의들은 지금부터 시작인 거다.  
 
 
결과적으로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허와 실을 드러낸 것이 되어버렸지만, 애초의 연구 목적은 이게 아니었죠?
그렇죠. 서울대라고 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오는 곳이지만, 이 안에서도 학점이 좋은 학생이 있고 안 좋은 학생이 있어요. 그런데 4.0 이상의 학점은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는 그런 점수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정말 심플하게, 최고로 잘 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면 그걸 바탕으로 다른 학생들에게도 학습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거예요. 모든 학습법 이론에서는 지식을 도식화, 구조화한 스마트한 필기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스마트하게 필기를 하는 학생들은 학점이 낮고 무식하게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문장 형태 그대로 필기를 하는 학생들의 학점이 높다는 게요. 그뿐만이 아니라 4.0 이상의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예습을 안 한데요. 80%는 예습을 전혀 안 하고 20%는 예습을 하긴 하지만 복습을 훨씬 더 많이 한다고 하고요.
이 결과를 보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학생들에게 A를 주고 있는 거지? 교육을 통해 대체 어떤 역량을 기르고 있는 거지? 어떤 학생을 놓치고, 낙오시키고 있는 거지? 대학에서는 지금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 거지? 이런 걱정이 들기 시작한 거죠.
 
책을 읽어보니, 지금까지 우리의 대학교육은 말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낸다고 하지만 실제 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창의적 사고력 보다는 수용적 사고력을 우선시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서울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요. 저 역시도 대학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강의를 듣기만 했죠.  
외국 대학을 다니다 서울대에 교환학생을 오거나 서울대 다니다 외국 대학을 다니게 된 학생들 얘기를 들으면, 서울대에서는 너무 쉬웠다는 거에요. 똑똑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교수가 얘기할 걸 흡수해서 그대로 토해내는 건 이미 잘 해요. 그 이상의 것, 자기의 생각을 만들고 꺼내는 걸 해야 하는데 그런 공부는 안 시키는 거죠.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는 공부를 한 아이들이 한국의 대학에 오면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외국에서 공부하다 온 학생들은 너무 혼란스러워 해요. 이걸 왜 외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요.
 
학생들이 교수의 말을 그대로 외우는 공부를 하는 건, 사실 그렇게 해야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가장 잘 가르치는 게 유치원 선생님이고 제일 못 가르치는 게 대학교수라고 하잖아요. 대학에서는 잘하고 못 하고를 전적으로 학생들에게 돌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공부를 못하는 건 학생 책임이고, 어차피 따라올 애들은 알아서 따라온다고 생각하고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토론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도 부정적이에요.
법대 교수들은, 법대 수업은 법전을 해석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맨날 토론 하니까 상관없다고 해요. 그렇지만 교수와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라면, 그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토론이라는 게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다듬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정해진 답을 꺼내는 것 뿐인데요. 공대나 의대에서는 또 이래요. 자꾸 창의, 창의 하시는데 실험실에서 창의적이면 사고 쳐요. 그냥 시키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한 약대 교수님은 또 이러세요. 토론이나 창의 다 좋은데요, 외워야 할 약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일단은 기본적인 것을 알아야 토론을 하든 창의적인 걸 하든 할 게 아니냐고요.
그런데 그런 공부 방식들은 예전에 테크놀로지가 없던 시절에 교수들이 했던 공부 방법들이에요. 자신들이 그렇게 공부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공부해야 한다고, 이건 기본이니까 일단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교수들을 새로운 교육으로 끌어들이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많이 들어본 얘기네요. 기본이 있어야 창의성도 생긴다는 말이요.
비판적 사고력은 지식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런 종류의 능력이 아니에요. 그것도 훈련이 필요한 능력이거든요.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은  유치원,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훈련해야 하는 거에요. 지식의 습득과 비판적 사고능력이 함께 가야 해요.
 

 
우리의 대학들은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외국의 대학들은 교육 방법에 대한 실험과 정책적인 지원들이 활발하던데요.
제가 가본 세계적인 대학들은 모두 가만히 있지 않고 모종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홍콩 중문대의 경우 교육과정 전체를 개혁하기 위해 심플하지만 강력한 동기를 만들었는데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해, 졸업한 해, 졸업 후 1년이 되는 해, 졸업 후 5년이 되는 해, 이렇게 네 번에 걸쳐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거에요. 어렵고 복잡한 측정도구를 쓰는 게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에게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셀프 리포트를 내게 한거죠.
 
어떤 분들은 자신의 역량을 자기가 직접 평가하는 게 정확하지 않다고 하시지만, 셀프 리포트는 대학생 이상의 성인 학습자에게는 굉장히 타당한 기준 중 하나에요. 그리고, 아무리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어도 나는 배운 게 없어, 라고 생각하면 정말 배운 게 없다고 봐야하는 게 맞죠. 이렇게 자기 평가를 했는데 1학년 때에 비해 4학년 때 역량이 별로 늘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줄었다고 평가를 하면, 그걸 교수들에게 증거 자료로 내미는 거에요. 4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은 별로 배운 게 없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러면서 교수들이 직접 교육에 대해 성찰하고 커리큘럼을 개혁하게 하고, 커리큘럼 개혁 정도에 따라 단과별로 예산 지원을 달리해요.
 
그러니까, 기존 교육에 대한 아집이 무너지고 ‘이걸 바꿔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요 그 다음부터 ‘그럼 어떻게 바꾸지?’ 이런 고민도 시작되고 다른 교수들은, 다른 대학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쳐다보게 되는 거에요. 이 책은, ‘바꿔야 하나?’라는 생각을 촉발시켰으면 하는 바램으로 쓴 거에요. 그냥 말하면 들어주지 않으니까 약간의 충격 요법으로 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고요.
 
교육방법의 개혁이라고 하면 우리는 테크롤로지적인 부분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파워포인트나 동영상 활용, 인터넷 게시판이나 동영상, 원격 강의 같은 것들이요.
문제는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페다고지(pedagogy, 교육학)이에요.  요즘 테크놀로지를 안 쓰는 사람이 없는데, 문제는 그 테크놀로지를 뭐 하는데 쓰느냐는 거에요. 인터넷을, 파워포인트를, 동영상을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는데 쓸 수도 있고, 수용적 학습을 효과적으로 하게 쓰일 수도 있어요. 파워포인트는 주로 수용적 학습을 더 빠르게, 밀도있게 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말이죠.
 
책에서 소개한 외국 대학들에서는 교수학습센터에서 커리큘럼 개혁이나 강의 리모델링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데요. 최근 10년 간 한국에서도 많은 대학들에 교수학습센터들이 생겨났잖아요. 한국의 교수학습센터와 비교하자면 어떤 점들이 다른가요?
교수법과 관련해서 가장 혁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 대학(UBC)을 예를 들면, 그곳에서는 ‘수업디자인 닥터'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수업디자인 닥터는 수십년 경력을 가진 박사급 인력으로, 강의 전체를 면밀히 살펴본 후 문제를 진단하고 보다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수업을 만들기 위해 강의를 전체적으로 다시 설계해줘요. 담당교수와 수사로 만나서 지속적으로 토론을 하면서요.   
일단 수업디자인 닥터의 권위가 교수와 대등하니까  수업에 대한 조언들이 인정이 되고요. 강의 리모델링 프로세스를 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교수에게 ‘내가 왜 이 교육을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거더라고요.  강의계획서를 보면 언제 퀴즈를 본다, 과제는 뭐다 이런 내용들이 죽 적혀 있잖아요. 그럼 닥터가 교수에게 질문을 하는 거에요. 퀴즈는 왜 보세요? 이 퀴즈를 다 풀면 어떤 능력이 길러져요? 이런 식으로 계속 교수가 수업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목표로 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하고 어떤 식으로 과제를 내줘야 하는지 교수 설계를 도와주는 거죠.
 
그에 비해 한국의 교수학습센터 인적 구성은 강의 리모델링을 위해 교수가 전문가로 인정하고 파트너로 받아들일 만한 대등한 포지션이 되지 못해요. 학사나 석사, 박사라도 전공이 다르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오래 하지 않은 분들인 거죠. UBC의 경우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강의 컨설팅을 하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전문성이 있고 신뢰도가 있는 거고요. 그리고 교수들도 교수법에 관해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신임 교수가 오면 워크샵 한 번 하고 그 이후론  역할이 없어요. 교수법에 대한 문의도,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팁, 게시판 개설하는 방법,  이런 것들에만 관심이 있고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요즘 UBC에서 사람을 모셔다가 ‘교수설계자'라는 새로운 직군을 만들고 그들을 트레이닝 시키는 프로그램을 짜 달라고 하는 판국인거죠. 이대로라면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뜨거움을 배제한 절제로 모든 과목에서 일정한 수준의 성취를 얻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럽더라고요.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뜨거우면 안 된다고 애기해요. 남자친구 사귀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냐고 물으니까, 지금 사귀는 친구는 보채지 않아서 괜찮다고, 그걸 너무 자랑스럽게 얘기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약간 짠한 거에요.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학원, 대기업, 고시, 이 세 개를 제외하고는 다른 꿈도 없고, 자기만의 재미있는 컨텐츠를 가진 사람도 없어요. 요즘 뭔가에 빠져 있는 것도 없고요. 뭐에 하나 빠지면 안 된데요. 더 열심히 할 능력과 시간과 흥미가 있어도 딱 A를 받을 만큼만 하고 여기서 그만. 하나에만 집중하면 다른 걸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태도가 역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것 같은 느낌은 저만의 것일까요.
 
그렇게 내 생각은 하나도 없는 공부를 계속 하다보니까 사회에서 짜 놓은 판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를 몰라요. 생각이 안 나는 거에요. 그런 생각을 해 본 경험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게 더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판에서 취업이 안되면 뭔가 다른 판을 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거죠.
 
꽤 오래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셨는데요. 이 연구가 한국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앞부분만 보시고 ‘서울대 A+ 학생들도 별 거 아니다'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아주시고요.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까지는 대학에서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누구에게 학점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느 대학 졸업생이라는 브랜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에서 어떤 능력을 길러주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교육 방법을 써야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한국은 지금까지 선진국을 빠르게 배우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약간 정체기잖아요. 여기서 또 한 번의 도약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도약이 어려울 것 같은 거죠.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능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인문]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이혜정 | 다산에듀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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