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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바다는 앞으로도 깊고 푸르게 출렁거려야 할 장소”

  • 등록일2014.10.20
  • 조회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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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헤어졌을 때, 좌절하고 실패했을 때, 우리는 바다를 보고 싶어한다. 바닷가 허름한 횟집에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싶어진다. 바다는 술을 부른다. 술이 바다를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섬과 바다의 작가 한창훈이 바다의 먹거리를 한 상 가득 차려냈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두 번째 책에서 술상을 들이민 것은 순리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특히 바닷가에서는 더욱. “어찌 함께 안 마시고 배길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데.” 한창훈 작가의 말이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가을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시는 거문도의 바다는 지금 평온한가요? 최근의 근황 먼저 여쭐게요.
9 27일 오후 1시 현재입니다. 어제는 샛바람(동풍)이 강하게 불어서 파도가 제법 높았는데 오늘은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햇살이 적당히 비추고 있어서 빨래를 해 널었습니다. 이곳도 아침저녁으로는 약간 쌀쌀합니다. 어제 밤에 장어 낚시를 나갔는데 제법 춥기까지 해서 일찍 돌아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등대로 산책을 갔다 왔고요. 책 관련 행사와 인터뷰들을 하고 나서 요즘은 약간의 휴식기간을 갖고 있습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읽다가 횟집으로 달려가고 싶더니,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책 읽다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 꺼내오게 되는 책이네요.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이후에 술상을 다시 차리게 된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밥상』을 냈을 때 사람들이 책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할 것으로 저는 기대했는데 다들 동네 횟집으로 달려갔다고 하더군요. 횟집 영업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밥상』이 가족끼리 바다에서 풍성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쓴 것이라면 『술상』은 바다를 맞대면한 한 개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거니와 바다는 ‘재미’와 ‘낭만’ 외에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혼자란 쓸쓸하기 마련이라 술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가 주는 풍성함을 알게 했다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의 고독, 그리고 두려움을 알게 합니다. 육지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바다의 낭만적인 모습만 보기 쉬운데 말이죠. 바다는, 언제 가장 두려움을 주나요?
두려움을 생각해보면 먼저 짙은 안개나 풍랑, 태풍 같은 자연현상이 떠오르죠. 실재로 태풍을 한번 만나면 어느 누구라도 입이 떡 벌어지며 기가 죽습니다. 책 속에도 사라호 태풍을 맞대면한 팔경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섬에서는 전설이 되어있는 배이죠.
하지만 보편적인 면에서 보면 고독이 가장 강렬합니다. 바다는 어떤 흔적도 지워버리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독자’ ‘고아’로 만들어버립니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장소이죠. 절대고독 속에서는 낯선 자기 자신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죠. 그래서 수평선을 십분 이상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낚시꾼들은 바다 안 봅니다. 찌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주는 곳이기 때문에 고독의 시간을 통과한 만큼 마음의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 반대로 산()은 풀린 것을 맺게 해주죠. 그래서 공부하려는 사람은 산으로 가고 상처 입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바다로 옵니다.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등산가는 사람 보셨나요?    
 
 
회와 해산물이 차려진 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술이 생각나지만,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의 술상에는 의외로 안주가 소박합니다. 멸치 하나에 소주 한 잔, 쥐포 하나 우물거리며 소주 한 병. 바다에 사는 분들에게는 화려한 안주가 필요없나 싶기도 하네요. 어떠신가요? 평소 술상에는 어떤 안주가 자주 올라가나요?
그때 그때 바다에서 잡은 게 올라옵니다. 이를테면 생미역을 딴 날은 그것 데쳐서 안주로 합니다. 농어를 잡은 날은 농어를 먹죠. 어제는 전갱이를 낚았기에 지져 먹었습니다(장어는 한 마리밖에 못 잡았기에 물칸에 살려두었죠). 하지만 생선회만큼 혼자서 먹으면 맛없는 음식도 없을 거에요. 커다란 도미를 낚아 손질해 놓은 다음 라면 끓여 먹은 적이 여러 번 있으니까요. 그러니 혼자서 마시면 술상은 초라함에 가까울 정도로 소박해집니다. 물론 동료들과 거하게 차려놓고 먹는 술상도 있습니다.
특히 배 위에서 혼자 낚시 하다보면 바다와 풍경이 저절로 안주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러고 있는 저를 보며 안주로 삼겠죠.    
 
바다 사람들에게 술이란 없어선 안 될 존재인가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에서 술이 더 그리운 이유가 있을까요?
거칠고 외로운 환경 때문이죠. 술 말고는 적당한 것을 찾으래도 없으니까요. 제가 살고 있는 섬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노랫말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술과 담배는 내 속을 알아주는데 왜 당신은 내 속을 몰라주나’ 이렇듯 당장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물건이 술 아니겠어요? 흐흐. 그래서 저에게도 바다와 술이 가장 가까운 액체입니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에는 좀 더 먼 바다, 인도양과 북극해 항해가 실려 있는데요. 먼 바다, 큰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배를 탄다는 것이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긴 시간을 배 안에서 보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나요?
먼 바다 항해는 매력이 있지만 그만큼 고단함도 생깁니다. 특히 저는 친근한 사람들과 짬뽕이 떠오를 때마다 괴로웠습니다. 평생 항해를 하다가 은퇴한 어느 노선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내고 보니 선원이란 시간을 돈과 바꾸는 직업이야.”
컨테이너선이나 쇄빙연구선에서는 사실 별로 할 게 없습니다. 밥 때 밥 먹고 원고 작업과 독서를 좀 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전부였습니다. , 북극해 항해 마지막 3주는 극지연구소 연구팀에 들어가 일을 도우기는 했습니다. 그리고는 배와 함께 흘러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파도에 흔들리며 가는 것 말입니다. 더군다나 인도양, 대서양 같은 큰 바다라면 그렇게 건너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해를 항해하셨던데요. 북극해에는 어떤 이유로 가게 되신 건가요?
전에 가본 적이 없으니 그곳에 무슨 물건을 두고 온 게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먼저 가서 놀러오라고 편지를 보낸 것도 아니고 제 돈을 떼먹은 사람이 그곳으로 도망갔다는 정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럴싸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이죠. 남은 이유는 단 하나. 궁금한 거죠. 단지 보고 싶은 것. 제가 왜 그곳엘 가고 싶었는지는 가보면 알 것 같았습니다.  
 
북극해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세상 끝의 풍경이었죠. 끝은 시작과 같으니까 저를 포함해 모든 것의 시작점을 보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얼음 빼고는 제가 살고 있는 섬마을과 비슷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곳은 세상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래를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각수 고래를 보고 싶었었는데(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빙하지역 까지는 올라가지 않아서 못 봤습니다. 다른 고래만 몇 번 먼발치에서 봤습니다. 오로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북극해 항해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면요?
(이야기 했듯이) 항해 자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발, 일본을 관통해 캄차카반도 따라 올라간 다음 베링해 지나 북극해까지 가는 그 행위였죠. 그리고 알래스카에 내려 아누이트들을 만났습니다. 야성이 제거된 채 독한 보드카에 취해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들이었던 그들이 백인들의 욕심과 과잉에 의해 사그라져가는 모습이 가슴 아팠습니다. 인류의 실패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몇 번 만난 북극곰도 인상적이었고 오로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백야 기간이라 보기 어려웠는데 작년엔 태양풍이 강렬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밤하늘에서 춤추는 빛무리가 마치 죽은 물고기들의 영혼이 헤엄치는 것 같았습니다.  
 
 
책 속에서 보여지는 바다는 마냥 아름답고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외롭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도 하던데요. 그런데도 바다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들 이렇게 묻습니다. 바다에서 육지로 나간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안 하더리니까요. 마치 서울에서 지방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지만 서울 올라간 이에게는 안 묻는 것처럼요, 대답해보자면 섬에서 태어나 바다에 둘러싸인 채 살아왔던 습성, 이를테면 몸 속의 DNA때문이겠죠. 달리 표현하자면 이곳의 기억과 아름다움이 저를 불러들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별스러운 사람이면 산속에 박혀 살고 있는 사람도, 대대로 물려받은 집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별스러운 존재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께요.
세월호 참사 이후 바다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폭우로 사태가 났을 때 우리는 하늘에 대해 공포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단지 예방대책이 부실했던 실수를 바로잡게 됩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깊고 푸르렀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이런 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의 무책임과 무능을 눈감아주는 행위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바다도 훼손당했습니다. 바다에 대해 오해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바다는 앞으로도 깊고 푸르게 출렁거려야 할 장소입니다. 제 책이 여러분에게 바다에 대한 이해와 친밀을 높여주기를 희망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문학동네
  
[시/에세이]  술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 문학동네
2014.08.14
[시/에세이]  밥상 위의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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