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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유정,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되잖아?”

  • 등록일2013.07.01
  • 조회 1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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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박력 가득한 한국소설을 본 적이 있던가? 정유정의 범죄서스펜스물 『7년의 밤』은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파헤치는 압도적인 서사에 기가 눌렸고, 기꺼이 또 눌리고 싶어서 신작을 기다렸다. 갓 도착한 정유정표재난스릴러 『28』은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다. ‘불볕을 뜻하는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전대미문의 빨간 눈 괴질이 돈다. 다섯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 모두 6개의 시선이 착착 맞물리며 공격적으로 전개되는 플롯들은 생생한 지옥도를 토해낸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주인공이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8. 책을 펴고 서슬 퍼런 도입부를 지나면, 읽을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생존과 구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마지막까지 정신 없이 달릴 수 밖에 없다. 정유정이 돌아왔다 (인터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년의 밤』 인터뷰 때 앞으론 나도 기어이 1년 만에 책 한 권씩 내는 작가가 되겠다고 하셨는데, 결국 2년 넘게 걸렸네요.(웃음)
2 3개월이나요.(웃음) 슬럼프가 있었어요. 재작년에 전남 증도에 들어가서 초고를 썼어요. 2500매 쓰고 나와서, 디테일을 넣어서 수정하면 되겠다 싶어서 기분이 좋았죠. 추가 취재를 하고 다시 쓰려는데, 한 자도 안 써지는 거예요. 고민을 하다가 안승환(영화감독이자 정유정의 친구)한테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글을 남기길, “철학을 하고 싶으면 공부를 더해서 철학서를 쓰시고, 의학 논문을 쓰고 싶으면 의대를 가시고, 언어로 예술을 하고 싶으면 시를 쓰세요.” 우와, 펀치 세 개를 두들겨 맞고, 짐 싸서 지리산에 올라갔죠.
 
고민을 많이 했죠. 제가 원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인데 7년의 밤』나오고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성 가지고 비판이 많았잖아요. 게다가 의학 관련해서 취재한 것들도 몽땅 집어 넣어서 이야기가 재미 없는 게 당연하더라고요. 그게 어느 틈에 저한테 상처가 됐던가 봐요. 그러니까 소위 문학을 하겠다고 쓴 초고더라고요. 그래서 통째로 버렸어요. 프롤로그랑 기본 뼈대만 살리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넉 달 동안, 새로 써서 5번 고치고 내려왔어요. 7년의 밤』 8번 고쳤는데 좀 아쉽죠. 그래도 5번 만에 안승환이 내 취향에는 만점. 남의 취향에는 모르겠지만이라고 해서, “고마워하고 하산했죠.(웃음)
 
구제역 파동 때 TV로 돼지 생매장 동영상을 보고 인수공통전염병이란 소재를 떠올리셨다면서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전염이 될 수 있는 병인데, 구제역 말고 롤모델이 된 전염병이 있나요?
소설에서처럼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옮기는 유의 전염병은 아직 안 나타난 것 같아요.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겠죠. ‘빨간 눈 괴질의 롤모델은 에볼라 바이러스예요. 에볼라의 치사율은 90% 이상, 열흘이면 사망에 이르러요. ‘빨간 눈 괴질은 사나흘이면 사망하니까 훨씬 강력하게 설정한 거죠. 에볼라가 아프리카 정글에서 나타나서 그렇지, 만약 소설에서처럼 대한민국에 떨어졌다면 세계는 아마 바로 우리나라를 봉쇄시킬 걸요. 28』에서 화양이 봉쇄되듯이.
 
빨간눈 괴질이란 소재를 설정하시면서 가장 주목했던 건 어떤 거예요?
만약 이런 괴질이 번지면 나라에서 어떤 대응을 할까,. 분명히 재난 매뉴얼이 있거든요. 민방위 훈련도 재난 대비 훈련이에요. 예를 들어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도 도시 하나를 봉쇄시키는 건데, 그런 판타지 보다는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가지고 쓰고 싶었어요. 며칠 만에 주인공들이 이 괴질을 막아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는.
 
주인공이 28일만에 사망에 이르는데요. <28일 후>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28이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어요?
원제는 <화양 28> 이었어요. 화양이라는 단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빼기로 했어요.(웃음) ‘28’은 독자들한테 성질 나면 한번씩 이 제목을 읽어 보라는 배려라고 할까.(웃음) 그리고 2하고 8을 더하면 0이에요.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상태. 화양이라는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제로상황이 되는 걸 보여준다, 숫자적인 풀이는 그래요. 의학적으로도 28일은 뭘 할 수가 없는 기간이에요.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원인균을 밝혀내는 데에도 오래 걸려요. 그걸 밝혀야 백신이니 진단키트가 나오는데.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를 밝히는 데에도 4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28일은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기간이에요. 개와 인간이 살기 위해서 투쟁하고, 공명해 가는 시간.
 
 
링고,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늑대개  
 
5명의 사람과 링고라는 한 마리 개의 시점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빠르게 진행되는 데요. 이렇게 ‘3인칭 다중 시점으로 진행되는 국내소설은 별로 없었죠?
그래서 외국소설을 많이 참고했어요. 쓰는 건 일인칭 시점이 훨씬 쉬운데, 독자들이 여러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쉽게 하려면 이런 방식이 나을 것 같더라고요. 사건을 이끄는 수의사 서재형을 세워놓고,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니까 개의 시점도 필요해서 링고를 세우고, 이 사태를 관찰하고 기록할 신문기자 김윤주를 만들었어요. 이 세 명이 프로타고니스트(극의 중심인물)라고 하면 안타고니스트(적대자)에 해당하는 세 명이 또 필요한 거예요. 세력이 똑같아야 하니까. 그래서 광기 어린 박동해, 괴질 때문에 가족을 잃는 119 구조대원 한기준, 응급실 간호사 노수진을 사람 쪽 최전선으로 세운 거예요.
 
6개의 시점이 메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건데, 내가 너무 쉽게 보고 덤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6명의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게 장난이 아닌데다 전부 스케쥴을 엮어서 앞엔 우연성, 뒤엔 필연성을 분배하는 게 정말 괴로웠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실험적인 플롯이었죠. 다 쓰고 나니까 하나의 기술을 습득한 느낌이에요. 나 이제 한 수 익혔다, 그런 느낌. 그래도 다음 소설은 반드시 1인칭 소설을 쓸 거라니까 친한 후배가 두고 봅시다”, 하더라고요.(웃음)
 
쓰시면서 가장 사랑했던 인물은 역시 박동해 캐릭터 아니에요?
맞아요. 제가 굉장히 그런 삐딱한 악동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쓰면서 어찌나 박동해를 사랑했는지. 그런 나쁜 놈을 좋아한다고 변태 소리도 들어요.(웃음) 하지만 인간 안에는 그런 악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전 인간이 착하다고 생각 안 해요. 아주 악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박동해를 트릭으로 썼어요. 소위 여기저기에다 방아쇠를 당기고 다니는 인물로요.
 
, 독자한테 서비스도 있어요. 동해가 정신병원에 들어갔을 때 『내 심장을 쏴라』의 김용 오빠(수다쟁이 조울증 환자)가 잠깐 나와요. 인물 재활용이나 귀찮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순전히 『내 심장을 쏴라』를 읽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어요.(웃음) 그나마 이 소설에서 유머를 구사하는 인물이 동해예요. 전염병과 무관하게 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다니잖아요. 혹시 누구한테 제일 마음이 갔어요?
 
서재형이요. 알래스카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다가 커다란 트라우마를 지니고 돌아오잖아요. 그가 이 소설의 기저에 우리가 동물, 자연을 해치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껴야 하지 않냐는 물음을 던지는 역할 아니에요?
그렇죠. 프롤로그가 서재형이 알래스카에서 겪은 사건이기도 하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에요. 어차피 동물들이 화를 당하면 우리도 같이 당하게 되어 있고, 살아 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한 삶은 아니라는 거죠. 저도 서재형한테 가장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우리가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아요. 구제역 파동 때 전 정말 부끄러웠어요. 적어도 우리에게 삶을 주면서 죽은 짐승들에 대해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지는 말아야죠. 감사하는 마음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저것들을 잡아먹고 우리가 살았구나, 라는.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행동의 차이가 엄청나거든요. 만약 그걸 안다면 구제역 때처럼 수백만 마리의 살아있는 가축을 그렇게 묻어버릴 수가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포크레인으로 개들을 암매장 시키는 걸 본 늑대개 링고와 스타가 나중에 흙을 파서 개들을 구하려는 장면이 있잖아요. 직접 보는 것처럼 섬뜩하고 안타깝더라고요.
나중엔 사람들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잖아요. 그걸 이야기로 보여주는 게 작가로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그런 의미를 받아들이면 저로선 더 바랄 나위가 없고요. 그냥 재난소설로, 엔터테인먼트로 즐겨 주셔도 굉장히 감사해요.
 
여섯 개의 시점 가운데 링고라는 개의 입장에서 쓰실 때, 사람의 시점보다 더 어렵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링고를 늑대개로 설정한 거예요. 늑대와 개는 바라보는 세계가 좀 달라요. 의인화를 시키더라도 가장 동물의 습성에 가깝게 리얼리티를 줘야 하기 때문에 개와 늑대에 대한 책을 말도 못하게 많이 보고 공부했어요.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가 『동물의 역습』에 썼는데, 늑대와 개가 문을 열고 나가는 실험을 해봤대요. 사람이 손잡이를 옆으로 돌려서 문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걸 보면, 늑대는 자기 발로 똑같이 문을 열고 나가요. 그런데 개는 한번 해보지도 않고, 사람만 쳐다봐요. ‘네가 열어예요. 그러니까 개의 세계는 인간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어 내는 마법의 세계인 거죠. 늑대는 자신이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고 직접 해결을 하는 역학적인 세계고요. 링고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잖아요.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건 인간하고 똑같이 사고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야생 늑대를 데려올 순 없으니까 늑대개로, 늑대개 중에서도 애완견으로 가장 가까운 알래스칸 말라뮤트를 데려와서 짝을 만든 거예요. 링고와 스타를 연애를 시키는 걸로. 늑대는 평생을 일부종사한대요. 링고와 스타의 러브스토리는 <별들의 고향> 스타일로 즐겁게 쓸 수 있었는데, 제일 힘들었던 건 재형과 윤주의 사랑 이야기였어요. 제가 연애 얘기는 잘 안 써봐서 그런지. 두 사람의 비상계단 장면은 제가 편집자한테 큰소리를 엄청 쳤어요. 내가 베드신을 끝장나게 쓸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원고를 보냈더니 쓰다가 마셨습니까?” 하더라고요.(웃음) 끝장나게 쓰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거기서 임팩트를 줘서 둘의 사랑을 짠하게 그렸어야 하는데 더더군다나 장소가 비상계단이잖아요. 뭔가 쫓기고, 의미도 있는 계단인데 어쩌자고 거기서 그렇게 끝냈는지 전 정말.(웃음)
 
윤주와 재형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굉장히 역설적인데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윤주와 재형이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도 불가능하다고 봐요. 소설 초반에 윤주의 일방적인 기사 때문에 재형이의 삶이 다 망했는데.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저의 철학은 그래요. 둘의 화학작용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사랑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죠. 윤주가 나중에 그걸 깨닫잖아요. 자신과 재형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고, 비로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 됐잖아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인간은 위대하다
 
실제 간호사 출신이시니까, 감정이입이 가장 많이 되셨던 건 간호사 노수진 캐릭터였을 것 같아요.
. 제일 가슴 아팠어요. 감정소비가 많이 됐어요. 사실 제 성격은 뻔뻔한 김윤주 기자에 가깝지만, 응급실 간호사로서나 개인적으로 수진이가 겪는 일들은 거의 제 경험담에요. 엄마한테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수진이의 꿈까지도 전부 있었던 사건이에요.
 
괴질이 돌고 화양이 봉쇄되자 사람들은 시청으로 모여요. 수진은 집으로 갔다가도, 다시 봉쇄선 안 병원으로 돌아오고요. 역병이 돌면 사람 심리가 그럴까요? 숨는 대신 밖으로?
집안에 혼자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요. 동료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사람들한테 간호를 하면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덜 외롭죠. 시청에 나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제가 취재하면서 병원 의사, 간호사들한테 물어봤어요. 만약 이런 일이 났을 때 어떻게 하겠냐니까, 다들 환자를 돌보면서 자기 일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119 구조대원인 제 남편한테도 역시 119 구조대원인 한기준 캐릭터가 계속 구조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당연한 거 아니야. 안 그러면 뭐 할거야?” 하더라고요. 저는 인간의 존엄성 내지는 위대함이 그런 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악랄한 면들도 많지만 이런 존엄한 면이 있어서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높은 포식자가 된 거라고요.
 
유신 정권도 아니고 공산당 정권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수도권 도시를 봉쇄해버리는 게 가당키나 하나라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봉쇄된 화양은 5.18 광주를 떠올리게 하던데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런 식으로 한 도시를 막아놓고 공수부대를 때려 넣은 건 광주밖에 없거든요. 엄청 두꺼운 5.18 자료들을 끝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어요. 광주 분들이 감수도 많이 봐주셨고요. 하지만 5.18과는 달라요. 그때 광주는 강간, 강도 등도 일어나지 않았고, 도시가 조용했어요. 그런 이미지가 혹시 겹칠까봐 민중가요도 쓰지 않고, ‘아리랑애국가만 넣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노래를 불러야 연대가 되니까.
 
화양 내부의 시각만 보여지고, 정부의 입장은 추측 내지는 SNS를 통해서만 보여지는데요. 직접적인 정부의 입장은 일부러 제한하신 거예요?
. 정부 측 인물이 등장하면 전형적인 재난스릴러의 문법을 따르게 돼요. 그 문법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고 안쪽의 시선으로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한 거죠. 그래서 『28』은 재난스릴러이긴 하지만, 재난스릴러하고는 전혀 안 맞는 이야기가 된 거죠.
 
28 이 막 출간됐는데, 작가로서 바람이 있다면요?
제가 호불호가 있는 작가라 독자들 반응이 걱정스럽긴 해요. 이번엔 『7년의 밤』 보다는 호불호가 조금만 더 무뎌졌으면 해요. 제가 앞으로 소설을 몇 살까지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쓰는 동안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 수준에 오른 소설들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l _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_  전경민 (포토마인드 스튜디오)
 
 
 
[소설]  28
정유정 | 은행나무
2013.06.27
 

사람과 책 2013년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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