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영역

목록보기

『철학 콘서트 3』황광우, 마지막 공연은 더 화려하게!

  • 등록일2012.08.22
  • 조회 4259
트위터 페이스북
 
철학 멘토 황광우의 베스트셀러 『철학 콘서트』가 3권으로 완간 됐다. 구상부터 3권 출간까지 걸린 시간이 꼭 10. 시대를 거스르기는커녕, 트렌드의 중심이 된 고전 바람을 타고 『철학 콘서트』1, 2권은 최근에 더 많은 독자와 만났다. 저자 황광우는 지난 2007년 산속 암자에서 쓰러져 헬리콥터에 묶여 하늘을 날았고, 팔다리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새 목숨을 얻었다. 그 힘으로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지난 2년여 집필에 매달려 『철학 콘서트』3권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1, 2권과 마찬가지로 3권 역시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 10인의 철학 대향연을 펼친다.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속뜻엔 무심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부터 삶과 죽음을 다룬 가장 심오한 철학이라 할 붓다의 『금강경』까지, 소크라테스는 왜 욕을 먹어가면서 제자이자 희대의 미소년 알키비아데스에게 집착했는지, 정신분석학의 대가 융은 왜 『주역』을 읽으며 고뇌했는지 등 교양과 삶의 지혜가 이 책에 주렁주렁 열렸다.
 
 
 
『철학 콘서트 3』으로 시리즈가 완간 됐다. 긴 여정을 끝낸 소감이 어떤가.
이루고 싶은 일을 다 이뤘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있다. 예컨대 아이를 출산했을 때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행복감처럼, 작가에게 주는 자연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싶다.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한 느낌이 있다.
 
『철학 콘서트』3권은 내 대표작이라고 표현했던데.
내가 80년대부터 해마다 평균적으로 2권씩 책을 썼다. 한 권은 집필, 한 권은 번역서로.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전에 썼던 모든 책들이 한 순간에 같이 무너지더라. 현실에서 내가 쓴 책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가는 걸 보면서 굉장한 상실감을 맛봤다. 그래서 이후론 시류를 타지 않는, 세월의 풍상을 견딜 수 있는 수명이 긴 책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10년은 견딜 책을 쓰고 싶다, 그게 당시 내 소원이었다.
 
『철학 콘서트』 1권을 6년 전에 냈고, 2권을 3년 전에 냈는데 오히려 작년과 올해 더 많이 나갔다. 책이란 게 세월이 가면서 죽어가게 마련인데 오히려 갈수록 용돈이 더 많이 생겨서 기분 좋더라. 어쨌든 『철학 콘서트』는 내가 원했던 10년의 수명을 돌파해내서 뿌듯하다. 3권도 10년은 견뎌내야 할 텐데.
 
1, 2권은 하룻밤에 돌파할 수 있지만, 3권 돌파는 열흘은 걸릴 거라고 했다. 집필과정이 그만큼 어려웠으니 읽기 어려울 거라는 뜻인가?
세 권 다 준비과정은 3년씩 걸렸다. 3권은 특히 칸트와 니체 편을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다. 비전문, 철학 비전공자들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소화해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칸트와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나이 50에 대학원을 들어갔고, 전문가들로부터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하고 쓴 글이다. 원텍스트가 무겁고 난해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쓴다고 해도 그 무게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3권의 각 꼭지들은 여러 밤 진중하게 읽고, 고민하고, 사색의 여유를 누리면서 읽어야 할 거다.
 
내가 잠이 안 올 때 인터넷으로 독자 리뷰를 찾아본다. 작가보다 더 작가의 속을 꿰뚫는 독자들이 많아서 번번이 놀란다. 좋은 리뷰를 보면 창작의 열정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철학콘서트』 3권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서평을 써줬던 한 200여 분의 힘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다. 공통적인 의견이 쉽고 재미있다는 거다.
 
근데 한국사회에서 쉽고 재미있다는 건 내용이 없다는 얘기거든.(웃음) 가볍다는 거니까.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도 읽는데. 얼마나 내용이 없길래 그런가 싶어서 3권은 우스갯소리로 성인용으로 쓰고자 했다. 너무 쉽고 재미있으면 철학이 희화화되는 면이 있다. 철학이 진지하고 무거운 건데 내가 쉽게 전달하려는 과정 속에서 철학을 너무 만만하게 바라보게 되면 그것도 또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삶과 죽음이라는 불멸의 미스터리
 
삶과 죽음의 문제가 오랜 숙제였는데, 이번에야 다뤘다고?
이 문제만큼 풀기 힘든 난제는 없다. 스무살 때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역사적 상황 자체가 설정적 범위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철학자연하면서 시대로부터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당시 역사적 상황에 충실했고, 그러다 보니 쉰이 됐다. 어느덧 죽을 날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고, 다시 스무 살 때 고민했던 죽음에 관한 문제를 추켜든 거다.
 
공부를 해 봤더니 동양에선 죽음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안 했다. 근데 서양은 신과 연관돼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근대로 넘어와서 신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지성인들이 사상의 혼돈을 겪게 되고, 그 연장선에서 니체가 신은 죽었다면서 실존주의가 등장했다. 니체로부터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계보가 1950, 6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내가 6, 70년대에 사춘기를 보내면서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름 아닌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 그래서 내 고민의 철학적 위치를 찾았지.
 
6, 7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이른바 지식인들이 갖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고민은 니체와 사르트르가 철학사 속에서 제기했던 신이 없는 조건 위에서 인간의 존재의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실존주의의 문제였던 거다. 그 지점이 명쾌하게 풀리면서,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지점에서 자유로워진 측면이 있다. 그런데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사유 틀에는 불교적 틀도, 유교적 틀도 있다. 죽음에 관한 선현들의 사유를 검토하면서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얻었다고나 할까?
 
10명의 사상가들과 그들의 사유가 이 책에 소개됐다. 선정 기준은?
기본적으로 세 권 모두 서양 6, 동양 4, 그 중에 1명은 한국 사상가를 다뤘다.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정신적 정체성,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 1명씩 꼭 넣었다. 1권에선 퇴계, 2권에선 세종대왕을 다뤘고, 3권에선 다산 정약용을 다뤘다. 원래 원효를 다루려고 했다. 근데 너무 어렵더라고. 원효를 다루려면 불교 1200년을 다 정리해야 한다. 400미터 계주로 치면 석가가 1, 원효가 마지막 주자거든. 도저히 내 역량으론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다산은 본인 말로 공자의 <주역>을 업그레이드한 사람이다. 다산 자신이 공자의 주역관을 뒤집어엎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나는 다산의 주역관,그 옆에도 다가서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2,500년 주역의 역사를 다시 공부할 수도 없고.
 
3권에서 죽음과 신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어쨌든 서양의 인문학은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두 사람이 세운 거니까 당연히 들어가고. 소크라테스 전통 위에 칸트가 있고, 호메로스의 전통 위에 니체가 있다. 키케로가 들어간 것은 로마를 한번 다뤄줘야 하니까. 러시아를 한 명 넣어야 하니까 도스토예프스키를 넣었다. 『악령』은 죽음과 신에 관해서 적나라하게 논쟁 되는 책이니까. 그리고 동양에선 죽음에 대한 철학이라면 당연히 석가를 안 다룰 수 없고, 공자나 장자도. 특히 이번에 <주역>을 다뤄서 50대들이 많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기로 50대들이 몰래 혼자 <주역> 많이 읽거든. 사는 게 너무나 힘든데 그걸 어떻게 헤쳐나갈 지 모르니까  
 
3권을 내기 위해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주역, 칸트, 그리고 호메로스 부분. 호메로스의 경우, 언뜻 보면 쉽다. 『오디세이아』는 중학교 1학년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글로 된 읽을 만한 해설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런데 아마존에 들어가서 쳐 보면 3만 권쯤 나온다. 내가 『오디세이아』영어 비평서를 한 100권 주문해서 거의 다 읽었다. 해석을 읽어보니까, 비기너의 차원에서 그냥 읽을 때하고 완전히 다른 거다.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를 만나서, 이 거지 할아버지가 자기 남편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침대 이야길 꺼내는 장면이 있다. 그 침대 이야기만 가지고 한 권의 비평서를 썼더라. 깜짝 놀랐다. 침대의 상징을 분석을 하는데, 우리는 침대 문화가 아니지 않나. 그들에겐 침대가 섹스의 자리, 생명의 자리, 죽음의 자리다. 해석해야 할 어마어마한 문학적 소품들, 철학적 장치들이 가득한 책이다. 전문가들이 이 책을 보면 공부 좀 하고 썼구나를 알 거다.(웃음) 칸트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정리도 힘들고, 여전히 어렵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 세 꼭지는 놔두고 다른 꼭지부터 읽고, 마지막에 읽는 게 더 나을 거다.
 
 
고전을 읽어야 밤새 대화가 돼  
 
요즘 고전 읽기가 트렌드처럼 된 면이 있다. 고전을 직접 읽지 않고,『철학 콘서트』 같은 해설서만 읽는 젊은이가 많은데.
좋은 거지.(웃음) 모든 고전을 다 읽으라고 하는 게 문제다. 그냥 고전 아무데나 펴라, 그리고 한 페이지만 읽고 덮어라. 그리고 그 책 읽었다고 해라. 왜냐하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쓰는데 평생 걸렸다. 50년 걸려서 쓴 책을, 어느 청소년이 금새 읽고 이해할 수 있겠나. 고전 한 권 속에 1,000년의 세월이 들어 있다. 농축된 글이기 때문에 한달음에 읽어낼 수 없다. 청소년들은 고전과의 인연만 맺어도 좋다. 『철학콘서트』 세 권에 소개된 고전이 모두 30권이다. 30권을 서른 전에 다 읽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 중에 자기 스타일에 맞는 책 5권 정도를 책장에 꽂아두고 틈틈이 읽는다면 어떨까.
 
고전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뭐라고 보나.
우선 언어구사에 차이가 있다. 예전에 노동운동을 할 때, 고전을 읽은 내 후배들하고는 밤새 얘길 할 수 있었다. 유머를 유머로 넘기는 대화 구석구석에 다 고전이 인용된다. 근데 고전을 안 읽은 분들은 그런 향연에 끼기가 힘들지. 그리고 고전을 안 읽은 분들은, 지난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과정 속에서 마르크시즘 내지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젊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는데, 딱 그거 밖에 모른다. 마르크스 보다 더 위대한 소크라테스가, 예수가, 석가가 있고, 그 연장선 위에서 뛰어난 사상가 마르크스를 봐야 하는데. 그들에겐 오직 마르크스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가 소련이 무너지니까 다들 마르크스를 죽은 개 취급했지.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가 부정하는, 그런 정신의 가벼움들이 팽배했다.
 
80년 광주 민중항쟁 이후 세대들은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떨쳐 나서는 책을 읽었거든. 인문학에 관한 기본 독서가 전무한 상태에서 바로 과격한 투사가 됐다. 나중에 보니까 굉장히 정신이 공허해 지더라. 그런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지난 90년대에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이란 책을 썼다. 거기에 석가, 공자, 마르크스, 예수,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등등 다 넣었지. 이후로 여러 사람을 만나도, 인문학적 토대가 튼튼하신 분들은 사고가 유연한데 그게 없이 사회과학적 이념만 주입 받은 사람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이른바 교조주의적이다.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언어의 꽃인 시를 암송하게 하고, 역사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런 연장선에서 고전을 권하고.
 
먹고 살기 힘든 요즘 청춘들, 고전은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현재 대한민국의 멘탈리티가 취업을 둘러싼 블랙홀이다. 설령 시류에 따라서 부화뇌동하여 살더라도 한번쯤은 나의 삶을 어디에 바칠 것인지, 나의 존재 이유를 확인해주는 일, 내 영혼이 들뜨고 신나하는 즐거운 그런 일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기회를 꼭 가졌으면 좋겠어다. 한번 살다 가는 소중한 삶이고, 청춘인데. 그러지 못하면 50줄 넘어서 돌아오지 않는 청춘, 잃어버린 시간을 한탄하게 돼 있다. 내 자식이나 제자들도 그렇고,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서 청춘을 100% 바치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이더라고.
 
앞으로 계획은?
대학원에서 공부 할 때는 마르크시즘을 업그레이드하는 목표가 있었다. 원래 박사 학위 논문을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으로 하려고 했는데, 철학과에서 마르크스나 역사를 다루면 논문 통과가 안 될 것 같아.(웃음) 그래서 박사 학위 논문은 비교적 덜 어렵게 통과할 수 있는 주제로 쓰고, 그 후에 역사 유물론을 재검토하려고 한다. 예컨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마르크스와 다른 시각에서 세계 역사를 일괄하는 작업을 했듯이, 20세기가 갖는 독특한 세계사적 특징을 짚는 거다. 내가 20세기 후반을 온 몸을 바쳐 보냈으니 어떻게든 인류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유럽사와 한국사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역사철학을 꼭 정립하고 싶다. 논문을 쓰고 나면, 영국과 조선 500년 역사를 시대별로 비교하는 대중서를 쓸거다. 재미있을 거다. 우리는 학교에서 영국은 대단히 선진 문명사회이고, 조선은 뒤쳐졌던 것처럼 배우는데 실제론 아니었거든. 내가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경제학의 원전들은 다 영국에 관한 문헌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18, 19세기 영국을 다룬 책이잖나.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이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인 사회였다.  내 머리 속에 영국이 많이 들어와 있고, 틈틈이 공부해 둔 조선 역사를 분석해서 책을 쓰고 싶다. 이게 60살까지의 목표다.
 
l 글, 사진_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jygetz@kyobobook.co.kr /  Twitter@jygetz
 
 
 
 
[인문] 철학 콘서트. 3
황광우 | 웅진지식하우스
2012.07.04
[인문] 철학콘서트. 2
황광우 | 웅진지식하우스
2009.02.02
[인문] 철학 콘서트
황광우 | 웅진지식하우스
2006.06.28
 
  • 퍼가기 인쇄 트위터 페이스북

최신기사 보기

작가와의 만남 목록보기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댓글등록

현재 0 / 4000 bytes (최대 한글 2000자, 영문 4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