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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의 길 1] 전민희의 판타지, 경복궁 옆 서촌마을

  • 등록일2011.08.25
  • 조회 1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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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 23일 오후 2,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굉장한 인파가 몰렸다 교보문고 정문 밖으로 사람 줄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갈수록 사람들은 많아져서 거짓말 조금 보태 종로 한복판까지 이어질 태세였다(정말이다). '아이돌이 떴나?' 싶어 봤더니 10대 보다는 주로 20대 안팎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었다. 판타지 작가 전민희의 사인회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대개 1, 2시간이면 끝나는 사인회가 무려 4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 정도의 팬 규모라면 지방에서도 많이 올라왔을 터였다.『룬의 아이들 2 - 데모닉』 완결 이후 5년만의 신작 『전나무와 매』출간 기념으로, 역시 5년만에 열린 전민희 작가의 서울 사인회. 판타지 팬들, 아니 전민희 작가 팬들의 행동력과 열정, 인상적이었다. 전민희의 판타지에 과연 무엇이 있길래?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판타지 팬들 사이에서 전민희 작가의 존재감은 월등하다. 지난 1999, PC통신 황금기에 등장한 전민희는 4백만 회의 클릭수를 기록했던 『세월의 돌』시리즈로 데뷔 후 국내 판타지소설 역사의 한 축을 지탱했다. 『태양의 탑』,『룬의 아이들 - 윈터러』,『룬의 아이들 - 데모닉』시리즈 등 총 27권에 달하는 소설을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에 발표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특히 전민희에게 한국의 조앤 K. 롤링이라는 닉네임을 선물한 시리즈 『룬의 아이들』의 인기는 대단해서 아마존 Japan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1, 야후 Japan 선정 2006년 가장 많이 읽힌 소설 등에 오르기도 했다.
 
전민희의 신작『전나무와 매』는 아직 정식 오픈 전인 온라인 게임 '아키에이지'의 배경장소에서 2천 년 전, 벌어졌던 이야기다. 주요 인물은 전나무에 맺힌 서리처럼 강파른, 영주의 딸 키프로사와 매처럼 빼어나지만 외로운 왕자 진. 『전나무와 매』는 두 사람을 축으로 한 5편의 중, 단편이 모여 장편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소설집이다. 위대한 도서관에 모인 12명의 친구들이 세계의 수도인 델피나드로 떠나기 훨씬 전, 그들의 조상들이 만든 운명의 실타래가 공개된다. 델피나드에서 벌어질 12명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아키에이지의 몫, 때문에 『전나무와 매』는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도 된다.
 
 
 
#1.  『전나무와 매』를 탄생시킨 온라인 게임 아키에이지’?
이미지 출처 ㅣ 아키에이지 공식 홈페이지(www.archeage.com)
 
 
시작은 아키에이지였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의 히트 온라인게임 개발자 송재경 대표가 이끄는 엑스엘게임즈에서 개발 중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키에이지'(최근 몇 차례 클로즈베타 서비스를 끝낸 상태다)의 출발선에 나도 있었다. 5년간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담당하고 있다. 엑스엘게임즈에선 원작자라는 표현을 쓴다. 국내 게임회사에 나 같은 포지션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게임에서 스토리가 중요한 건 알아도 세세하게 디테일까지는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내가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게임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를 다 만들었고, 게임회사 직원들이 파생된 이야기의 살을 붙이는 방식이다. 그렇게 게임의 어떤 부분들이 만들어 져서 3D로 완성되기 전에 내가 스토리 검수를 한다. 예를 들어 지형이나 역사상 이 곳에 이런 마을이 존재할 수 없다거나, 있다면 어떤 느낌이고 어떤 분위기일 것 같은지등등. 컨텐츠의 질을 책임지는 거라서 감수는 사실 끝이 없다. 서비스가 정식 오픈 된 후에도 게임에는 업데이트란 게 있거든.(웃음)
 
 
 
#2.   『전나무와 매』에 대한 팬들의 의견이 다양한데. 기존 시리즈와 달리 중,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형태인 것에 대해서도 그렇고.
종로 통의동에 위치한 까페 '류가헌' 앞에서. 집에서 멀지 않아 전민희 작가가 자주 찾는 곳이다
 
그동안 틈이 없어서 소설로 쓰지 못했다 뿐이지, 2천년 전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아키에이지의 세계는 요약된 설정문서로 스토리가 다 작성돼 있다. 그 개요만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될만한 양이다. 『전나무와 매』는 설정문서상으로는 5 페이지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5년 전에 틀을 짠 개요에 맞춰서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더라. 5 페이지에 모든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새로운 인물과 설정으로 행간을 채워나가야 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미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니까 변경할 수가 없는 것들이 많아서 책임감이 상당히 필요했거든.
 
장편이 아니라 중, 단편들을 모아 소설집으로 낸 이유는 아키에이지가 어마어마한 세계여서다. 3, 40권 나올 분량인데 정말 그렇게까지 쓸 자신이 없었다. 10년 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할 지 알게 뭔가.(웃음) 단편이나 중편으로 밀도를 더하는 대신에 장편이라면 필요했을 연결구를 안 쓴 거지. 대신에 뒤에 나오는 단편을 보면 앞 얘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예측할 수 있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앞으로도 이 시리즈는『전나무와 매』처럼 나올 것 같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신화적 감성에 기반한 것인데, 내가 신화에 관심이 많다. 판타지라는 게 등장인물들을 비일상의 세계로 보내는 거지 않나. 독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게 바로 신화에서 말하는 원형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신화의 구도라는 건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 구조이기 때문에 전인류에게 널리 퍼져있는 면이기도 하다. 왜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고 어떤 모험을 추구하고 싶은 충동이 들고, 허무하고 답답할 때가 있지 않나. 나는 그런 감정 자체가 우리가 신화와의 연결이 끊어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한테 어떤 일들이 아노미적으로 벌어지는데, 그걸 보통은 해석 안 하고 피해간다. 그런데 가슴엔 미묘한 답답함이 남아서 말할 수 없는 불만족감으로 연결되거든. 신화가 전하는 카타르시스는 그런 것들을 해소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과거의 신화와 종교가 했던 역할을 현대에선 픽션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3.    전민희의 전반전 다니던 직장 관두고, 판타지 작가 되고

나도, 어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쓴 것 같다. 난 모험을 하러 떠나고 싶은데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엘 가야 하는 거다. 그런 심리를 이야기로 풀었다. 그 땐 판타지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까 낯선 이국의 풍경을, 아프리카, 러시아에 가보지 않았어도 그런 곳들에 대해 그냥 상상으로 썼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그런 작업을 계속 해 온거다.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의 신화를 접하게 됐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 등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신화를 좋아하고, 픽션을 쓰려고 했는지가 해석이 되더라.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긴 했는데' 한 4, 50대 돼야 괜찮은 거 써서 책을 내지 않을까, 그 전까지는 생활인으로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90년대 말, PC통신 연재를 하게 되면서 제안을 받아 우연히 『세월의 돌』 출간을 하게 됐다. 내 책 이후에 폭발적으로 판타지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세월의 돌』이 당시 10권짜리였거든. 7권까지 써 놨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머지를 쓸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다시 직업을 구하는 한이 있어도 일단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내고 글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데뷔작 『세월의 돌』이 생각보다 잘 돼서, 그만.(웃음
 
 
 
#4.    전민희의 후반전_ 이제 서막 정도 올린 걸, 목표는 100살까지
 
작가가 된지 12, 돌이켜 보면 그냥 좌충우돌한 것 같다. 마흔쯤 돼야 작가할 수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처럼, 그동안에도 당장 승부를 내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다. 『전나무와 매』 앞에도 썼지만, 100살이 돼도 제정신으로 글을 쓰고 싶다. 12년이 엄청 긴 것 같기도 한데 가끔은 삽시간에 지나간 느낌도 들고. 글 쓰는 거 이제 좀 시작해봤다, 싶다. 이것저것 건드려 봤으니까 다음부턴 잘하자, 이런 기분이랄까?(웃음) 지금까지 28권 썼으니, 독자들이 내가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지 않겠나. 근데 내 입장에서는 음악회로 치면, 전주곡만 연주했는데 벌써 연주 전체를 평가 받은 기분이다. 난, 이제 시작인데 말야.  
 
 
 
#5.     전민희의 산책길, 경복궁 옆 서촌마을, 통의동 일대 
 
경복궁 옆 서촌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다. 단독주택이라 2층 옥탑방은 작업실로 꾸몄다. 책을 둘 때가 없어서 아래층에 책들을 뒀는데, 글을 쓰려고 앉으면 필요한 책들을 하루 종일 나르게 되더라. 가령 만찬 장면이 필요하면 정작 소설에는 얼마 안 실리지만, 다양한 시대의 만찬에 대한 책들을 다 읽어보고 참고해서 쓰거든. 그래서 작업실하고 서재를 분리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구나, 했지.
 
이 동네로 집을 옮기게 된 건 내 기억과도 관련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서울의 한 5층짜리 시영아파트에서 살았다. 대형 단지여서 내 어릴 적 추억은 고스란히 그곳에서 생겼다. 익숙한 상가와 가게들, 친구들. 그런데 오래된 아파트 단지라 어느 날, 싹 밀리고 다른 곳이 돼 버렸다. 지금은 거의 과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진도 거의 못 찍었는데 이렇게 잃고 싶지 않다는 기분. 막 돌이 지난 우리 아기를 낳기 전에, 이 아이가 자라면서 추억을 잃어버리지 못할 동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서촌마을이다.
 
여긴 굉장히 오래된 동네다. 골목길이나 뭐, 새로운 것 없지만 늘 변화가 느껴지는. 그래서 이 동네가 참 좋다. 유모차를 끌고 통의동, 효자동 지역 일대를 곧잘 산책한다. 근처 북촌 같은 경우는 거주민은 별로 없고, 집처럼 생긴 까페나 갤러리 같은 시설이 많은데 비해 이 쪽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들은 판타지가 비일상적인 세계니까 일상에선 잘 못 쓰지 않을까, 생각하던데 나는 이번 책 프로필에도 있듯이 가장 정교한 스토리텔링은 규격화되지 않은 풍부한 일상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물론 여행도 가끔 가지만 생활하면서 무심코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영감을 얻는다. 난 모르는 사람한테도 말을 잘 붙이는 편이거든. 한 두 마디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 내가 알 수 없는 그 분들의 인생을 그려보는 버릇이 있다. 얼마나 즐거운데.
 
l  글, 사진_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jygetz@kyobobook.co.kr , twitter.com/jygetz
 
 
 
 
[소설] 전나무와 매
전민희 | 제우미디어
201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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