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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습니다” 『천년의 수업』 김헌 교수

  • 등록일2020.05.15
  • 조회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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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전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어서? 고전 안에 진리의 세계가 있어서? 하지만 고전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적어놓은 '해답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질문의 책'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학생들이게 그리스로마 신화와 고전을 가르치고 있는 김헌 교수의 『천년의 수업』은 신화와 고전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과,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다음은 『천년의 수업』 김헌 교수와의 인터뷰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읽고 따라야 하는 '진리'처럼 생각하기 쉽거든요. 고전 속에 정답이 있고 그걸 찾아내는 것이 공부인 것처럼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더라고요
교수님께서는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도 고전을 읽으면서 답을 찾는다는 자세를 한동안 계속 가져왔어요. 특히 초중고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얘기 많이 듣쟎아요. 좋은 책을 읽으면 인생의 길이 보인다, 이런 얘기들요. 그러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 계기라면, 대학교 2학년 때 이태수 교수님의 서양고대철학사 수업을 들으면서라 할 수 있죠.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인생의 진리, 삶의 의미, 세계의 비밀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분이 강의에서 하신 말씀은, 철학이란 질문을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었어요. 강의에서도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소개를 했고요. 공부를 하면서 생각하게 되었죠.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진짜 중요하구나.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답의 방향이 결정되거든요
 
 
철학이란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서양철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은 모두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에요. 헤시오도스가 그리스신화를 이야기로 남기면서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어요.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니까 사람들은 모두 창조주는 누구일까? 해는 누가 만들고 달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죠. 그러다 누군가 다른 질문을 던져요. 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라는 질문이죠. 그 질문으로부터 창조주에 대한 관심이 질료와 물리적 조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과학과 철학, 합리적 사고가 발전하게 되었죠.
 
데카르트는, 모두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달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요. 그러면서 우리의 앎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이것이 진리인가 아닌가, 소위 말하는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할 수 있는 것이죠. 칸트로 가면, 우리가 안다는 것은 이성의 작용인데, 이 이성의 작용을 탐구하는 것 또한 이성 아니냐, 그렇다면 이성이 이성을 제대로 탐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 순환논리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묻고요
 
우리는 어떤 질문을 받는 순간 그 질문에 매달려 답을 찾게 돼요. 질문을 바꾸고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비틀면 새로운 시각이 열리죠. ,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고, 그 답들도 과학기술이 발전하거나 인류의 사고방식이 바뀌면 구식이 되거나 폐기될 수 있어요. 하지만 답은 달라지더라도 질문은 고스란히 남아요. 답은 틀릴 수 있어도 질문을 틀리지 않는다는 건 이런 의미죠
 
 
그런데 사실 질문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특히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하는 사람이 크게 환영받지 못했고 또 질문을 해보는 경험이 많이 없기도 하고요. 학생들도 질문을 하라고 하면 당황하지 않나요
 
그렇죠. 자꾸 질문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질문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저도 막막하거든요. 그래서 책의 앞부분에서는 질문의 기본에 대해서 정리를 해봤어요. 가장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 사실인가?"라는 것이에요. 소위 말하는 팩트 체크가 필요한 것이죠. 어떤 지식이든 정보든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게 정말 맞아?"하고 되물어보는 것이 질문의 시작인 것 같아요. 그냥 "맞구나"하고 넘어가는게 아니라, 반대 사례를 찾아서 안 맞는다면 왜 안 맞는지, 왜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체크하고, 사건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씩 따져보는 거죠. 소위 말하는 6하원칙이라고 하죠? 팩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하나씩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허구가 드러나게 되거든요
 
팩트 체크가 끝났다고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정보는 맥락이 있거든요. 누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다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죠.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이 사건이 사건 바깥에서 전달하는 맥락은 무엇이지? 그런 맥락과 의도를 파악해야 실수가 덜해요.  
 
팩트체크와 맥락 파악이 끝났다면 그 다음에는 가치 판단을 해야 해요. 이것이 정확한 정보고 불순한 의도 없이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에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나에게 가치 있는가그걸 물어봐야 그 정보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가 있어요. 그 가치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책에서는 실용적 측면, 윤리적 측면, 미학적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요. 그런데 이 기준은 고대그리스인, 서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생각의 관점이예요. 그러니까 이 세 가지 기준이 정답이구나, 하면 안되고, 이 세 가지 외에 또 어떤 가치판단의 기준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세 기준이 충돌되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질문의 기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다음에, 다시 '판단을 중지하는 것', '에포케 (epoche)'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판단을 중지하는 것'은 질문을 잘 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사실을 확인하고, 맥락을 따져보고, 가치를 판단했다면 이제 그 판단에 따라 행동을 하겠죠. 이렇게 따져물어서 답을 찾아 행동하면 훨씬 자유롭고 힘있게 나갈 수 있고요. 그렇다고 내가 찾은 답에 안주해버리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어요. 세상에는 답이 없을 가능성도 너무 많고 지금은 좋은 답이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의 지금 판단이 맞는 것인지, 그때는 맞았던 답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해보는 기회를 종종 가져야 해요. 그게 '에포케'에요. 끊임없이 판단을 중지하고 다시 묻는 과정혹은 다른 질문을 해보려고 하는 태도,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기억에 남는데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았다고 해서 '해결 끝!'하고 질문 자체를 잊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흘러가다 보니까 무언가를 진득하니 붙들고 씨름하는 일이 참 흔치 않거든요.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한 번 답을 내놓고 그걸로 쭉 밀고 가버리면 고집불통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 되고, 다른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고요.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결국 중간에 '에포케' 과정이 필요해요. '에포케'를 넣었을 때 우리는 질문을 다시 던져볼 수 있기 때문이죠.   
 
질문을 다시 던지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어요.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데, 이걸 왜 또 물어야 해?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귀찮음 보다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때의 위험성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답을 갖지 못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 생각은 혹시 나에게만 유효한 것은 아닐까? 나는 되는데 저 사람은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안 된다고 했을 때, 그건 꼭 나쁜 것일까? 이렇게 중간 중간 판단을 중지하는 에포케는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죠
 
 
책에서 던지는 9가지 질문들은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한번은 꼭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에요. 9가지 질문들은 어떻게 뽑았나요?
 
출판사 편집자분하고 같이 상의를 하면서 만들었는데, 나름 굉장히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웃음). 우선 질문은 ''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맞아요. 나는 누구일까? 혹은 무엇이 나인가? 하고 바꿔서 질문할 수 있죠. 그러다 보면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문제에 부딪칠 수 밖에 없어요. 나는 인간인데,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데 나다움과 인간다움이 충돌하면 안되잖아요. 나답게 사는데 인간같지 않게 행동한다? 그건 실패죠. 나다우면서도 인간답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다보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라고 했어요. 결국 나다움에서 시작해서 인간다움, 삶의 목적, 행복의 문제로까지 가게 되는 것이죠
 
, 나만 행복하게 산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행복한데 다른 사람에게 질투나 미움을 받으면 이 행복이 언제 깨질지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 사회, 국가, 세계의 문제라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갈 수 밖에 없어요.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을 어떻게 살아야하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죠책에서 던진 질문들은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질문들은 좀 굵직한 질문들이다 보니 자칫하면 어렵고 무거울 수 있어요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단서로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해주셔서 생각보다 즐겁게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던데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기록된 것은 2800여 년 전이죠. 그렇다고 그리스신화를 호메로스가 갑자기 만들어낸 것은 아니에요. 수천년, 수만년전부터 인간은 막연히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죽음 후에 나의 혼은 어디론가 갈 것이다, 인간보다 더 힘이 센 초월자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하나 둘 만들어진 것이 신화라고 할 수 있죠
 
신화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한번쯤 건드려보고 설명하려고 했던 시도들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번개는 왜 치는 걸까? 왜 나는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왜 풍랑이 일어서 아버지가 탄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을까? 신화는 인간이 궁금해하는 여러 질문들에 대해 설명하는 세계관으로서 다듬어져 온 것이죠
 
신화란 무엇인가 물을 때, 저는 상징들을 이야기로 엮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행동, 사건, 혹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가치들을 어떤 신으로 상징화한 것이죠. 지혜, 아름다움, 용기, 이런 추상명사들만 들어서는 좀 막연하잖아요? 그런데 이 가치들을 아테나, 아프로디테, 여러 영웅들의 모습으로 형상화에서 보여주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가치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아테나와 아레스가 싸운다는 것은 지혜와 전쟁의 갈등인 셈인데, 이 두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런 것들을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신화는 이야기 자체가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신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삶의 고뇌를 볼 수도 있죠.  
 
 
그리스로마 신화, 어떻게 읽어야 재미있게 또 잘 읽을 수 있을까요?
 
신화를 읽으면서 "재미있구나!" 하고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이 신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조금 더 깊게 읽는다면 그리스신화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제우스는 절대권력의 상징이죠. 절대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렇게 물으면 어렵잖아요. 그런데 제우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바로 다 이해가 되거든요. 바람 피우고 자기 욕망만 채우는 제우스를 보면서, 권력이 인간사회에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지혜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죠
현대 사회에도 제우스가 있어요. 지금 제우스는 누구일까요? 돈이나 권력을 가졌다고 부하 직원 폭행하고 다른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취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게 지금 시대의 제우스거든요. 심지어 신도 아니고 인간인데 말이죠
그런데 제우스가 마냥 나쁜 놈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제우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지도자의 모습을 반영한 신이기도 해요. 제우스가 권력을 갖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 이해가 될 거에요. 모든 권력은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우스가 보여주죠
 
 
어렸을 때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을 때는 그냥 신기하다, 재밌다,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니 신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아니, 신이라고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아이들이 읽기엔 부도덕하고 불순한 이야기 아니야? 할 수도 있겠던데요.  
 
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고 인간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악랄할 수 있는가도 보여주어야 하고, 신화는 그런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죠.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화를 가르치지 말라고 해요. 신화를 보면 신과 영웅들이 격정에 휩싸여 문제를 만들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대립하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런 신화를 가르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질서가 안 잡힌다는 거죠. 그런데 플라톤이 재미있는 사람인 것이, 신화를 가르치지 말라면서 책에서 신화 속 이야기를 자신이 다 해요(웃음). 제우스가 이런저런 일을 하지 않았나, 이런 좋지 않은 것은 가르치면 안된다, 이런 식으로요처음에는 플라톤의 말을 액면 그래도 받아들여서, 부도덕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구나, 아름답고 이상적인 이야기만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플라톤이 신화 이야기를 다 해주면서 이런 것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것을 저는 이렇게 해석했어요.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되, 이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로요. 우리가 이상만 가지고 현실을 무시하면 공허할 수 있고, 이상을 지향하지 않고 현실에만 묻혀서도 안 되니까요
 
플라톤이 신화를 가르치면 안된다고 했다고 그 말을 도그마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왜 신화를 가르치지 말아야 하지? 그럼에도 인간은 왜 계속 신화를 이야기하는 걸까?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해요.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지네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김남두 선생님하고 고전 원서를 함께 읽었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플라톤 원전은 철학 교과서가 아니라 철학 문제집이라는 거였어요. 교과서라면 책 속에 답이 있고, 그 답을 파악해서 문제를 풀 때 써먹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집이라면 책 속에서 던지는 질문을 파악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고요.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 -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절제란 무엇인가 등 - 에 대해서 계속 탐구해 나가고, 답을 찾은 후에도 이 답이 정말 맞는 것일까? 반문하고 검증하기 위해 다시 답이 나온 과정을 거꾸로 밟아 나가는 것이 고전을 읽는 방법이라 할 수 있죠
 
시대가 지나고 세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면 답은 달라질 수 있어요. 새로운 답은 모두 이전의 답은 틀렸다 말하며 이전의 답을 거부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고전이 던졌던 질문, 예를 들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인류가 공동체를 구성하여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주제예요. 그러니까 진짜 고전이란 깊이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탐구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과정 없이 답만 제시해서는 고전이 될 수 없어요.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텐데요. '미래 교육'이라고 하면 이공계 학문이나 코딩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는데, 고전과 인문학이 미래 교육에서 필요한 이유라면 무엇일까요?
 
저도 미래교육위원회 활동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좀 놀라웠어요. 실제로 가서 보니 제가 나이도 제일 많더라고요(웃음). 구성원을 보니까 대부분이 20, 10대나 30, 40대도 조금 있고요.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이공계 관련 연구자분들도 많고요
 
앞으로 어떤 직종이 유망하고 어떤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제가 해드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고전 공부는 미래를 위한 준비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생각을 해요. 기술과 사회 제도는 바뀌어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본질적인 조건은 바뀌지 않거나 설령 바뀌더라도 아주 천천히 바뀔테니까요. 인간이 무엇이길래 이런 기술이 필요할까? 인간이 무엇이길래 이런 사회제도가 필요한 것일까? 결국 모든 질문의 주체는 인간이에요.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기술도 의미가 없어요. 어떤 제도든 기술이든 경제체제든 시스템이든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죠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해요.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삶의 목적을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고전과 인문학, 이런 것들이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다운 것은 이런 것이구나" 혹은 "사람다운 것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결국 어떤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거든요
 
좋은 질문을 담은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질문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는 그런 독서를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천년의 <!HS>수업<!HE> [인문]  천년의 수업
김헌 | 다산북스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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