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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수업』한동일 “인간을 넘어서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아요”

  • 등록일2019.11.28
  • 조회 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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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하면 왠지 삭막하고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지만 사실 '' 만큼 인간적인 것이 없다. 인간만이 법을 만들고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법이 만들어진 배경, 그 법이 담고 있는 고민들, 그 법이 적용되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인간'이 보인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로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한동일의 『로마법 수업』은 인류법의 기원이 되는 로마법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물권법, 민권법 그런 까다로운 법조 용어가 아닌 결혼과 비혼, 돈과 계급, 여성문제, 낙태와 성매매 등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키워드들을 통해서 로마법을 설명하고 또 로마법을 통해서 현재를, 그리고 인간을 다시 환기시키는, 『로마법 수업』의 저자 한동일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로마법이라고 하면 과거 로마 시대의 법이잖아요? 수천 년 전 로마의 법을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로마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로마법은 지금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민사소송법의 핵심적인 부분은 로마법에서, 그리고 로마가 패망한 후 로마를 계승한 그리스도교의 교회법에서 온 것이죠.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로마법을 쓰고 있는 셈인 거예요.  
 
우리는 조선 시대 『경국대전』이라고 하는 훌륭한 법전을 가진, 유구한 법 문화를 가진 나라에요. 하지만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점되면서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유럽의 법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의 법체계도 로마법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고요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로마법은 정말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이긴 하겠네요
 
유럽의 법학도들에게 로마법은 교양필수 과목을 넘어서 꼭 알아야 하는 기본이에요. 로마법을 모르면 법학을 공부할 수 없어요. 1년 동안 로마법사를 배우고, 다시 1년 동안 로마법제를 배워야 하죠. 그걸 공부하지 않으면 민법을 비롯해서 제반 법학 과목을 이해할 수 없거든요
 
 
『로마법 수업』이지만 로마법에 대해서 항목별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읽으면서는 ''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법학전문대학원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모든 것이 실무 법학 중심이 되다 보니 기초 학문이 설 자리가 없어요. 서울대학교도 최병조 교수님 은퇴 이후에는 로마법 교수를 뽑지 않아요. 로마법이 실무 법학에서 바로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제가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로마법 강의를 하게 되었어요. 법무대학원 학생들은 전업 학생들이 아니에요.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는 분들이죠. 그 분들에게 로마 채권법은 무엇이고 민사소송법은 무엇이고 이렇게 설명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몸이 피곤한 분들이 실무 법학과 직접적으로 연결점을 찾기 힘든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 없죠.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서 강의록을 다시 만들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관심 가질 수 있는 주제를 뽑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요
 
 
로마법이 지금 우리의 법체계의 기반이 될 정도로 중요하고 또 탄탄한 기반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텐데요.  
 
로마법은 분명히 엄청난 장점들, 강점들이 있어요.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도 있죠. 로마 사회는 기본적으로 남성을 중시하는 가부장 중심 사회였거든요. 그것이 그리스도교까지 영향을 미쳤고요. 그래서 예전 그리스어에서는 신을 가리키는 단어에 남성형도 있었고 여성형도 있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을 가리키는 여성명사가 사라져요. 남성신만 남게 된 것이죠. 그렇게 남은 남성신을 대문자로 전환시켜서 유일신으로 만들었고요. 그렇게 여성의 족적을 하나 둘씩 지워버린 것은 로마의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죠.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은, 로마법의 강점보다는 약점이었어요. 그 약점을 통해서 우리의 어떤 현실을 보고자 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여성, 이혼, 낙태 이런 이야기들을 다루게 된 것이고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로마법의 한계라면, 방금 말씀하신 가부장적 사회라는 것과 함께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일 텐데요. 책의 첫 장은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주제를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저의 주 관심은 인간이에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요
저는 굉장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에도 가난했고요.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이 무시했을 때보다 가난한 사람이 비슷한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힘들게 할 때 더 아프더라고요. 어린 마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죠. 같은 을끼리 서로를 도와줘도 부족한데 왜 서로 비슷한 사람을 무시하고 핍박하는지요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인간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봤어요. 로마 시대의 인간은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되지만 오늘날에는 '노예'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죠. 하지만, 정말 노예는 없는 걸까요? 노예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지만 노예라는 개념, 인간 아래에 있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바뀌었을까 바뀌지 않았을까? 그런 방향에서 접근해 봤죠
 
 
 
로마 시대에는 노골적으로 자유인과 노예를 분리하고 차별했다면, 명목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도 한꺼풀만 벗기면 그 작동원리는 로마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절대적인 평등은 존재하기 어렵죠. 그걸 바라지도 않고요. 하지만 다음 세기를 이끌어가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를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는 사회가 다음 세기를 이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가 상당히 불평등하다고 말을 하잖아요. 유럽사회가 우리보다 뛰어날 수 있고 미국 사회가 우리보다 좋을 수 있어요. 우리 사회가 취약한 면이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그 취약함에 대해서 접근해서 준비를 한다면, 다음 세기에 성공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죠. 저는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제안을 하는 것이고요
 
 
이혼이나 간음, 간통, 낙태와 같은 이슈들은 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들이, 지금은 처벌 대상이 아닌 것이 된 경우도 있고(간통죄) 반대로, 법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들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무엇이 죄고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정해져 있다기 보다 그 시대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유연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고대 사회의 많은 윤리적 계명들은 의학적, 과학적 지식의 한계 때문에 생긴 것들이에요. 과거 월경하는 여성들에 대한 터부는 의학적 지식의 부족에서 온 것이거든요. 하지만 지금도 그런 터부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그건 넌센스가 되는 거죠
인간을 넘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아요. 유한한 인간의 사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죠.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요. 우리는 우리가 보잘 것 없다는 것,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약한 존재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타인을 바라봐야 해요. 그래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걸 바탕으로 법이라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가 되기 쉬워요. 그 신념이라는 것이 가치있고 의미있을 수도 있지만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는 엄청난 부작용을 겪을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역사 속에서도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신념과 가치관에 대해서 물어야 해요. 한 번 정한 신념과 가치관이 무조건 옳고 결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를 옥죄는 올가미가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글쓰기란 테크닉이 아니에요. 글을 쓰면서 나를 직면하고 나와 이야기할 수 있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거든요. 생각과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요. 지금 대두되는 문제들이 많지만, 사실 모든 문제들은 한 가지에요 우리가 서로 대화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저 자기 주장만 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지금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에 있어요. 전에는 문제 푸는 테크닉을 익혀서 문제를 빨리, 많이 풀게 했다면,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이제껏 풀어왔던 문제에서 벗어나서 풀어본 적 없는 유형의 문제들에 대해서요
 
 
로마법과 그 적용된 사례들을 하나씩 보다 보니, 로마 시대 사람들, 굉장히 냉정하고 어떨 때는 잔인하기도 한데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죠. 그런 엄격함이 없었다면 제국이 유지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우리가 어쩌면 더 잔인하지 않나 생각될 때도 있어요
저는 아무리 오래된 관계라도 상대에게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면이 발견되면 냉정하게 인간관계를 끊는 면이 있는데, 어느 날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들의 잘못이 인간 관계를 끊을 만큼 그렇게 대단한 잘못일까? 자비를 얘기하면서 자비가 없고 용서를 이야기하면서 용서하지 않았구나 하고요
 
지금 우리 사회는 한 번 아웃 되면 끝나는 사회고, 용서가 없는 사회에요. 로마 시대에는 잘못에 대해서 형벌을 받으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현대 사회는 형벌 받는 걸로 끝나지 않아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괴롭힘 당하고 다 지난 일도 다시 소환되어서 또 고통 받고요. 그런 점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잔인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죠
 
 
책의 뒷부분에는 '로마사와 라틴어 깊이 읽기'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을 특별히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본문 안에 있던 내용인데, 본문 안에 넣으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 뺐던 것이에요. 하지만 한 발자국 깊이 들어가 읽기를 원하는 독자분들이 따로 더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고민에서 나온 거죠
 
저는 방학 때면 꼭 해외에 있는 학교에서 한 두 달 수업을 들어요. 강의를 하는 사람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으로 바뀌는 건데, 아침에 버스 타고 수업 들으러 가고, 20대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 듣고, 점심에 샌드위치 하나 먹고 공부하다 다시 버스 타고 돌아 오죠. 그게 저에게는 큰 자극이 돼요. 다른 선생님들은 강의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도 보고, 강의를 듣는 사람일 때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설명을 들었을 때 더 잘 이해가 되나 그런 것들을 보는 거죠.
 
제가 아직 능력이 부족하고 공부가 부족해서 잘 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되고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글,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거든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예전에는 독자가 책을 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늘날은 달라요. 오히려 저자가 독자의 해석과 반응을 알아가려고 하는 시대죠. 리뷰나 SNS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독자들의 반응에 저도 더 자극을 받고요. 그래서 어떤 형식이든 어떤 방향이든 독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면 좋겠어요
,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의 해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방식의 해석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에는 ''도 포함되어 있고요. 내가 읽고 해석하는 것이, 나와 타인을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물어보게 돼요. 나는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 있을까? 나의 책은 사람을 살리는 책일까 죽이는 책일까결국, 읽는다는 것은 독자와 저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거든요. 독자가 책을 읽으며 풍부하게 살아감을 느낀다면 저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니까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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