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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청년 다산, 인간 다산『파란』정민

  • 등록일2019.11.08
  • 조회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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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8세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대학자이자 수원성을 설계한 천재, 그리고 긴 유배생활로 고통 받은, 시대와 불화한 비운의 지식인. 그 동안 다산은 위대한 학자이자 고귀한 정신을 가진 인간, 흠결 하나 없는, 모두가 길잡이 삼아 따라가야 할 북극성 같은 존재로 조명되어왔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다산이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저술을 남긴 유배기에는 그렇다고 쳐도, 그 전부터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산은 완전무결한 인간이었던 것일까? 그럴 리는 없지 않나.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어떤 선택들이 쌓여 다산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과정들에 대해서는 거의 부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전학자 정민(한양대 국문학과)의 『파란』 1, 2권은, 유배지로 떠나기 전까지 다산의 청년기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인간' 정약용을, '자료'를 통해서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적 상상력을 더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료에 근거한 실제 이야기라는 것이 포인트다
 
이렇게 자료들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다산의 이런 모습은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다산이 철저하게 자기검열과 위장을 해야 했던 시대의 복잡한 상황이 있었고, 다산의 일면만을 보고싶은 후대의 어떤 경향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체를 다 들여다봐야 한다. 뾰족해서 불편할 수도 있는 다산의 성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다산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적 내면과 인간적 고뇌, 그리고 때로는 '부족함' 마저도 말이다
 
『파란』 속 다산의 젊은 날은, 다이나믹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지루할 틈이 없어 두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 깨닫게 된다. 아직 우리는 다산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아니, 이제야 비소로 편견 없이 다산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제가 다산이 대해서 알고 있는게 뭔가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수원성을 설계하고 『목민심서』를 쓰고,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사실 알고 있는 게 없더라고요. 특히 『파란』 1, 2권에서 담고 있는 강진 유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없어서 제가 더 놀랐어요.
 
저도 다산에 대해서 책을 많이 썼지만 주로 강진 유배 시절의 자료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만 해왔어요. 그러다 다산의 40대 이전의 삶을 들여다보니, 자료가 무슨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더라고요.  
 
그 동안 젊은 날의 다산에 대해서 들춰지지 않은 부분을 제가 들춰낸 셈이 된 것인데, 이게 약간 충격일 수는 있지만 이 부분을 빼놓고는 다산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특히 천주교와의 관계요. 다산이 천주교 신자였는가 아닌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다산의 젊은 날은 천주교와 관련된 담론들이 이렇게나 무성했고, 그를 이해하는데 천주교라는 변수가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면 일단 전략적으로 성공한 셈이죠
 
 
책에서 보면 천주교는 다산의 젊은 날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던데, 지금까지 다산과 천주교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천주교 쪽에서 보면 다산은 그저 배교자일 뿐이에요. 다산 말고도 더 연구하고 신경 써야 할 순교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교회사 연구자들은 다산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자신이 직접 배교를 했다는 사람에게 교회가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거든요. 다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국학 쪽에서는 다산은 절대로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입장이고요. 다산이 신자였다가 배교한 후 유학자로 돌아왔다는 입장에서 그의 학문을 연구하고요. 그런 양쪽 입장의 사각 지대에 젊은 날의 다산이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죠
 
 
천주교 신자로서의 다산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것은, 다산 스스로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의 글을 철저하게 검열을 해서 관련한 기록을 삭제하고 누락하고, 교묘하게 감춰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던데요
 
아주 교묘하게 자기 검열을 했죠. 다산은 자신이 직접 썼던 글들에서 천주교 관련 내용을 철저하게 삭제했어요. 하지만 조선 천주교 쪽에는 검열하지 않은 상태의 글들이 남아있어요. 천주교 쪽에 남아있는 기록은 다산이 만년에죽기 직전에 남겼던 기록이에요. 그런데 다산이 쓴 원본이 남아있지는 않고, 다산의 기록에 근거해서 프랑스 신부가 쓴 『조선천주교회사』가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산이 이전에 썼던 글과, 천주교 쪽에 전해진 다산의 기록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도 서로 모순이 있어요. 그런데 국학 쪽에서는 다산이 직접 쓴 글을 믿어야지 왜 프랑스 신부가 인용했다는 다산의 글을 믿어야 하냐는 논리거든요. 하지만 앞뒤 정황이나 다른 자료들과의 겹쳐 놓고 보면, 다산이 스스로 검열해서 지운 부분이 딱 보이는 걸요. 저는 그 부분을 밝힌 것이고요.
 
이 책은 학술 논문도 아니고 지면으로 1 25매 분량으로 연재되던 것이라 세세한 각주를 달 수는 없었지만, 소설 쓰듯 제 추측만으로 쓴 것은 아니에요. 하나하나 다 근거를 가지고 쓴 것이거든요. 그래서 각주나 근거를 본문 속에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읽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면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아요
 
* 편집자주) 임진왜란부터 신미양요까지의 조선 천주교회사를 다룬  『조선천주교회사』(1874)는 프랑스 외방선교회 달레 (Charles Dallet, 1829-1878) 신부가 쓴 책이다. 이 책은 고종 3년 순교한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Antoine Daveluy, 1818-1866)가 쓴 『조선순교자비망기』와 『조선주요순교자약전』이라는 기록에 의거해 정리한 책인데, 다블뤼 주교에 따르면 자신이 정리한 조선 천주교의 초기 기록은 모두 정약용이 만년에 저술한  『조선복음전래사』에서 가져왔다고 썼다

 
저는 너무 설득이 확 되었는데요(웃음). 초기 조선 천주교 역사 모든 주요 인물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아무리 봐도 정약용 밖에 없거든요. 정약용이 없으면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고리가 없어요
 
천주교 교계의 핵심인물 사이의 관계 정중앙에 다산이 있어요. 다산을 쏙 빼면 그들의 커넥션이 다 무너져버려요
 
강진 유배 이후에도 천주교의 흔적은 툭툭 튀어나와요. 얼마 전 다산의 편지 하나가 경매에 나왔는데, 강진에서 소실에게 얻은 딸을 자신의 서모 김씨의 소생 정약횡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정약횡이 또 천주교 신자거든요. 정약횡의 부인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요. 그렇다면 다산의 딸 역시도 천주교도로 살았을 거라 생각할 수 있죠. 또 강진 시절 쓴 『취몽재기』라는 글은 천주교 교리서인 『칠극』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요. 비록 다산이 철저하게 자기 검열을 해서 밖으로 그런 생각들이 나오는 것을 막았지만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죠. 엉뚱한 곳에서 툭툭 빛이 새어 나오거든요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이 『상재상서』라고 조정에 올린 글이 있어요. 천주교를 논리적으로 옹호하는 글인데, 이 글을 다산이 지어줬다는 얘기도 있어요. 정하상은 10대가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순교해서 진짜 힘들게 살았어요. 20대 때는 북경을 아홉 차례나 왔다갔다 하면서 보냈으니 공부를 할 기회도 없었을 테고요. 그런데 『상재상서』라는 글이 너무 좋거든요. 얼마나 잘 쓴 글이냐면, 나중에 이 글이 홍콩에서 출판되어서 중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옹호 논리의 교과서로 쓸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다산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이 부분은 명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추측일 뿐이지만요
 
국학 쪽에서는, 다산은 스스로 천주교와 손을 끊었다고 하는데 왜 자꾸 천주교와 연결시키느냐, 더 이상 다산을 모욕하지 말라고 해요. 다산이 겉으로는 천주교를 믿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믿었다면, 이후 다산의 학문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산의 학문 활동 중에는 천주교 신자인 것을 감추고 면죄부를 받기 위한 일종의 위장인 것도 있어요. 앞뒤 정황상 너무 분명하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옳죠
 
 
책을 통해서 당시 조선에서 천주교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는 것도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어요. 천주교는 단지 기층 일부에서 믿어지다 박해받은 종교가 아니라, 당시 지배계층과 권력관계 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요소였더군요
 
천주교는 피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당시 어마어마한 모멘텀을 준 세력이었고 정신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을 저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어요. 천주교가 지식인들에게 세상을 보는 어떤 변화, 어떤 대항 담론을 만들어냈으면 그것을 기존 유학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당시 사회를 끌고 가는 에너지의 한 축이 되었는지 다산과 천주교를 매개로 들여다본 셈이죠
 
 
교수님만 해도 이미 다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쓰셨고, 다산과 관련한 책들을 검색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와 있거든요. 그런데도 이렇게 다산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계속 나오고 또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말도 마요. 자료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아직도 새로운 자료들이 계속 찾아져요. 다산 시문집 속에는 다산의 강진 초당 시절에 쓴 시 중에서 10년 치가 모두 빠져 있어요. 의도적으로 빠뜨린 건지 자료가 유실된 건지 알 수는 없어요. 그런데 강진에서 나온 여러 가지 필사본들을 뒤졌더니 다산 시문집에서 빠졌던 시 200~300수를 찾아냈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라진 10년치 시들도 분명 어딘가에 돌아다니고 있을 거란 거죠. 그걸 다 찾아내고 또 그 글 한 편 한편에 대해서 논문도 써 야하는데 솔직히…. 덫에 걸린 것 같아요(웃음). 이제는 다산에서 좀 벗어나서 연암에 대해서 연구를 좀 하고 싶은데 말이죠(웃음). 
 
 
정치인으로서의 다산에 대해서도  자세한 면모를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정치인 정약용은 공정한 목민관이었다, 정도의 피상적인 면모 뿐이었는데정치인 다산은 굉장히 역동적인 캐릭터고  당시 정쟁의 한복판에 있는 인물이더라고요.  
 
우리는 다산을 『목민심서』, 청렴한 공무원, 과학기술을 중시한 실학자, 이런 모습만 기억하거든요. 그러니까 젊은 시절 몇 수 앞을 읽고 정치적으로 명민했던 다산은 사라져버리고 만년의 근엄한 스승의 모습만 기억하는 거죠
 
젊은 날의 다산은 정치적 감각이 남달랐어요. 노론 벽파를 견제하고 싶었던 정조는 채제공을 중심으로 한 남인 세력에 힘을 실어주었는데, 정약용은 그 세력의 참모이자 돌격대장이었어요. 다산은 정조에게 간이 딱 맞는 신하였어요. 가려운 데를 먼저 긁어주고, 행동하면 반드시 결과를 얻어내고, 열을 시키면  백을 해내는데, 너무너무 마음에 들 수 밖에요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굉장히 정치적이고 또 냉정한 면모도 있고요.  
 
만만치 않죠. 『정조의 비밀편지』라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정조는 막후 정치의 대가에요. 노론과 소론, 남인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비밀 편지를 보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신하들이 대신 제기하게 하고, 그럼 그걸 신하들이 청한 것을 행한다는 명목으로 실현시키는 거죠. 또 남인 편만 들어줄 것 같다가 노론의 손을 들어주고, 노론 편을 들어주는 척하다 남인의 손을 들어주는, 그런 힘의 균형을 잡는 줄타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천주교 문제에 정조 자신도 관여된 것이 분명해요. 사도세자도 『성경직해』를 읽은 적이 있고, 나중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원군 부인도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으니 당시 천주교가 궁중 안에서도 상당히 깊숙이 들어가 있던 것은 사실일 거에요.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기록이 안 남아있으니 더 이상은 추측할 수 없지만요
 
 
18세기 정치의 모습이 지금의 정치와 너무 닮아 있더라고요. 자신의 세를 모으기 위해 여론전, 언론전을 하고, 앞에서는 웃으며 악수하면서 뒤로는 상대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모습들이 지금 정치의 모습과 똑같아요. 기시감이 들어서 놀랐어요.
  
지금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남인 신서파가 천주교와의 연관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늘 수세에 몰려있던 것도 아니에요. 정조와 영의정 채제공을 등에 업고 득의양양 할 때는 오히려 반대파에서 주춤할 정도로 공세적이었거든요. 그러다 상대편에서 정미반회사나 진산 사건 같은 꼬투리를 잡으면 다 들고 일어나 전면 공격을 하고요. 이렇게 서로 갈등이 증폭되고 원한이 깊어지니 나중에는 어느 한 편이 사라져야 끝나는 것처럼 되어버리게 된 것이죠. 다산은 직접 반대파를 공격하기 보다는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만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부분도 있지만 젊은 날의 다산 역시도 굉장히 정치적이었어요.  
 
 
진산 사건과 관련해 이기경은 정약용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는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기경의 입장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도 이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이기경은 정약용의 절친한 벗이자 라이벌이었어요. 젊은 시절 호기심에 동해서 정약용, 이승훈 등에게 서학 책을 빌려서 읽기도 했고요. 천주교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다산과는 사이가 멀어졌지만요
 
그래도 진산 사건에 엮여 위기에 처한 다산에게, 이기경은 미리 자신의 정보를 넌지시 알려줘요. 내가 가능한 좋게 포장해서 진술을 했으니 너도 여기에 맞춰서 대응을 하라는 거였죠. 다산은 이기경이 준 정보를 이승훈 형제에게 알려줬는데, 이승훈 형제는 그 정보를 역이용해서 오히려 이기경을 무고죄로 몰았어요. 결국 이기경은 유배를 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요. 그러니 이기경 입장에서는 다산을 용서할 수가 없는 거죠. 다산이 직접 이기경을 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비겁한 스탠스를 취한 건 맞아요. 하지만 다산도 워낙 절체절명의 위기였기 때문에 이기경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을 수 밖에 없었겠죠
 
그동안은 다산은 위대한 분이니까 이기경은 완전히 나쁜 놈이 되어야 했지만. 그건 아니죠. 세상에 완전히 선하고 완전히 악한 일이 어디 있어요.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갈리는 거죠. 선악을 따지자면 50 50일 수도 있고 70 30일 수도 있지만 100 0은 있을 수 없어요
 
* 편집자 주) 진산 사건 : 충청도 진산에서 천주교도인 윤지충이 모친이 돌아가시자 제사를 모시지 않고 신주를 불태운 것이 문제가 되어 처형을 당하는 진산 사건윤지충은 정약용의 사촌으로, 노론에서는 진산 사건을 빌미로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들을 공격하려 하였다
 
 
천주교도라는 의심은 다산의 행보에 큰 제약이 되는데요. 강진으로 유배를 간 이후에도 그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닙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간 후 7년이 될 때까지 거의 한 달에 열 번씩 다산을 잡아 올리라는 상소가 올라가요.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집요했죠. 그러니 다산은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숨 죽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해배 명령이 떨어진 후에도 7년 동안 집행 명령서가 안 내려와서 유배살이를 더 하게 되요. 석방시키라는 법무부 결정이 나왔는데도 명령서가 교도소장에게 전달이 안돼서 계속 감옥에 있는 상황인 거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나중에는 다산도 크게 상심해서, 가족들 다 내려오게 해서 강진에서 살겠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집안이 다 뒤집어졌죠
 
 
정약용에게는 천주교와 정조 뿐만 아니라 집안의 기대라는 것도 얹혀져 있었군요
 
가장 촉망받던 집안의 희망이었죠. 그런데 그 희망이 꺾여버린 것이고, 자식들도 폐족이 되어 장래가 막혀버린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 대한 자기 책임감 같은 것도 있었을 거에요. 사실 다산이 강진에서 그렇게 공부만 했던 것도,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미쳐버릴 것 같아서였을 거에요. 그때 다산이 쓴 시들을 보면 정말 마음 아픈 것들이 많아요.
 
다산이 그때 쓴 시 중에, 달이 떠서 강 위를 건너가는 것을 밤새 보고 있는 걸 그린 시가 있어요. 달이 강을 다 건너지 못하고 날이 샐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시로 읊었는데 ,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달이 건너가는 걸 꼬박 보고 있었을 다산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워요그 당시 쓴 시들을 보면 다산 내부의 갈등이 부글부글 끓어요. 그걸 학문에 몰입해서 풀어낸 것인데, 그 학문에 대한 생각이 너무 스마트하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기적적인 것이죠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니 저는 오히려 다산이 더 가깝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다산과 부인의 관계나, 강진 시절 제자들과의 인연 같은 것도, 자꾸 미화시키고 미담만 남기려고 하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너무 좋은 점만 말하면 사람 같지가 않잖아요. 다산에게도 인간적인 부족함이나 사람들과 부딪힌 아픈 이야기도 많아요. 그걸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원래 그렇잖아요
 
서문에도 썼지만, 한 다산 학술 행사에서 다산이 강진에서 두었던 소실과 그녀 사이에서 난 딸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어요. 다산이 풍을 맞아 마비가 와서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얘기였는데,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누가 와서는 "뭔 좋은 소리라고 그런 말을 합니까?"하며 정색을 하며 싫은 소리를 하고 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다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제 위인전 쓰기 공부는 그만해야 해요. 다산에 대해서 너무 교과서적인 모습만 남다 보니 저도 다산이 재미 없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다산 일대기를 쓰면서 자료들을 쭉 찾고 연재를 하면서, 다산이라는 인간도 새롭게 보이고,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뭔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나? 그 시대를 바로 본다는 것은 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산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좀 더 입체적이고 좀 더 역동적인 시공간으로요
 
다산 뿐만 아니라 채제공 같은 인물도 이번 기회에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니까 여러가지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채제공이라고 하면 정조의 개혁을 완수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알려졌지만 성격을 보면 속이 좁고 한 번 원수가 되면 절대 마음을 안 푸는 성깔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산하고도 끝에 가서는 안 좋게 끝났고요
다산도, 정객이니 때문에 어떤 때는 좀 치사한 짓도 하고 면목 없는 짓도 하면서 정국을 돌파하거든요. 언제나 정의만 부르짖으면서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때로는 타협도 하도 때로는 권모술수도 있고요. 자기 성질대로 들이받고 싶어도 정조 때문에 타협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시대의 입체성에 종교라는 돌발변수, 정치라는 돌발변수가 끼어들 때 상황이 왜곡되잖아요. 우리가 결과만 가지고 다산이 배교를 했네 안 했네 말하는데, 그가 배교를 하게 된 상황이나 배경이 있거든요. 우리가 한 시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그런 것까지도 고려한 것이 되어야 하고요
그 동안의 논리를 보면 남인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남인들을 너무 피해자로 봐서 노론의 폭력성만 부각시키고, 노론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남인을 평가절하해요. 하지만 사실 남인과 노론 사이에 벌어진 긴장과 대립, 갈등 관계만 보여지고 주된 모멘텀이 되는 부분이 싹 사라져버리면 이쪽이냐 저쪽이냐, 남인이냐 노론이냐, 국학이냐 천주교냐 이런 양자택일의 논리 밖에 남지 않아요. 우리 편은 선하고 저쪽은 그냥 나쁜 놈들이 되어버리는 거죠
 
 
다산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한 사람, 한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좀 더 입체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죠. 저는 다산의 어떤 글을 보면 그 속이 보여요. 시를 읽어도 그 시가 쓰여진 상황을 알고 읽으면 그 속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고요. 다산의 시 중에는 그냥 읽으면 풍경을 노래한 시지만 그 행간을 알고 나면 참 짠한 글들이 많아요. 그런 다산의 시들도 다 읽으면 좋은데 책에서 다 싣지 못해서 아쉬운 것이 있죠
 
 
이번에 두 권의 책으로 다산의 젊은 시절을 쓰셨는데, 강진 유배 시절과 해배 후의 만년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쓰실 계획이시라고요
 
처음에는 일 년이면 다산의 일대기를 다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더라고요. 전체가 세 권이 될 지 다섯 권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다산의 강진 유배 전까지 책으로 묶었고, 이제 강진 시절을 써야 하는데, 좀 맥이 빠졌어요(웃음). 강진 유배 전에는 그야말로 한 파도가 가면 또 한 파도가 오는 일촉즉발의 다이나믹한 상황들의 연속인데, 강진 시절은 유배지에서 머물러 있으니까요. 아무튼, 강진 유배 이후의 다산은 그 전까지의 다산과는 전혀 다른 다산일 겁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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