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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최태성 “역사를 왜 배워야 하냐고요?”

  • 등록일2019.07.03
  • 조회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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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씩 거쳐가는 질문이다. 그런데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이것을 묻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역사를 왜 배워야할까?"라는 질문 말이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할까?" 시험에 나오니까? 혹은 그냥 재미있으니까?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당황한 이들에게 『역사의 쓸모』를 권한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내 삶과 밀착해서 이해하게 하는 실용적인 쓸모와 함께 역사와 삶의 본질에 관한 진중한 생각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쉽고 재미있게 쓰여지기까지 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하며 역사의 쓸모를 지금 나의 삶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하는 책, 『역사의 쓸모』의 저자 최태성과의 만남
 
보통 '역사책'이라고 하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책으로 생각하게 되는데요『역사의 쓸모』는 역사 지식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녹아들어 있더라고요
 
역사적 사실들을 잘 정리해주고 좀 더 나가서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그것을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제안을 했는데,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대요. 그런데 그 전에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를 얘기해달라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역사를 왜 배워야 할까에 대한 책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또 진작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책이 없었다는 것도 좀 놀라웠어요. 저도 이런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민망하고 미안하기도 하더라고요. 너무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질문이라서 참 묘했어요
제가 강연을 가면 매번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얘기를 해요. 역사 공부를 통해서 과거의 사람을 만나 지금 나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은 결국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거든요. 그런 내용을 텍스트로 한 번 옮겨서 책을 써보자 생각을 했죠. 저도 책을 쓰면서 스스로 둘러보는 기회가 될 수 있었고요.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이 참 좋던데요. '쓸모'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닌 실용적인 이야기면서 동시에 본질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는 단어인 것 같아요
 
저도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웃음).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제목인데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제목,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이미지인데 아직까지 없었던 이미지를 이제서야 발견한 느낌이에요. 너무 흔한 제목 같지만 또 이제까지 없었다는 것도 놀랍고요. 이 제목으로 인해서 책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다니면서 '역사=암기과목'이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 박히게 되거든요. 역사는 무조건 외우는 것이었지 생각을 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게 우리가 경험한 역사 교육의 모습이었죠. 시험이 다가오면 책을 펼치고 형광펜, 빨간펜으로 밑줄 쫙, 동그라미 땡땡 하면서 외우고, 시험 보고 나면 일주일 후에 깨끗하게 포맷돼요. 그리고 대체 내가 왜 이따위 고생을 해야 하는지 투덜거리고요. 그런 경험을 우리가 오랫동안 몸으로 해왔기 때문에 역사는 쓸데없는 학문, 고리타분한 얘기, 나와는 전혀 관계없고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한 과목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역사는 시험을 보기 위한 암기과목이 아니거든요. 저는 역사는 과거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역사란 사람이 걸어왔던 흔적, 사람들의 수많은 경험들이 축적된  총합이에요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라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비슷한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선택과 결과까지도요. 그런 기출문제를 알고 그걸 지금 내가 처한 상황, 고민, 문제에 적용해보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죠
 
보통 '역사'라고 하면 국가나 정치, 경제 같은 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그래, 역사의 교훈을 배워서 현재의 정치나 외교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적용할 부분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주로 정치사나 제도사 중심으로 배워서 그러는데요.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죠. 그것도 과거의 시스템을. 그런데 그 시스템을 만든 건 사람이거든요.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제쳐두고 그 사람이 만든 결과물만 가지고 역사라고 착각을 하면 안돼요. 그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그 사람이 가졌던 고민이라든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을 봐야 한다는 건 이런 것이죠. 조선 시대 토지 제도가 세조 때 과전법에서 직전법으로 바뀌어요. 우리는 그냥 외우죠. 조선 초기 과전법, 세조 직전법 이런 식으로요. 과전법과 직전법은 일종의 공무원 연금이에요. 관리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것인데, 과전법은 퇴직한 후에도 국가에 토지를 반납하지 않아요. 사후에 반납하죠. 그러니까 점점 새로운 관리들에게 나눠줄 토지가 부족해져서 토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생기죠. 그래서 직전법이 나오는데, 이건 현직 관리들에게만 토지를 주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제도를 바꾸는 게 쉬울 리가 없죠. 기존에 혜택을 보던 사람들의 반발이 심했겠죠. 세조는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고 카리스마가 엄청난 사람이었어요. 그런 세조였기 때문에 토지제도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이었죠
이렇게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굉장히 흥미진진해져요. 또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떤 방향으로 어떤 스탠스를 잡고 가야겠구나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역사의 쓸모' 중 하나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길게 보는 방법을 알게된다는 것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당대의 반응, 당대의 성공/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사안을 보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고 또 역사를 인식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지금 이 사건이 언제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사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낙관성을 갖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요. 책에서 제가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의 미투 운동과 연관지어서 썼는데요. 100년 전 나혜석은 최린과의 외도로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 일로 나혜석은 엄청난 비난을 받고 거의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해요. 그런데, 불륜은 혼자만 하나요? 상대방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상대방인 최린에게는 큰 타격이 없었어요. 심지어 나혜석의 남편도 외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문제되지 않아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요. 나혜석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최린과 관계를 맺은 것은 최린이 자신을 강간했기 때문이라며 최린을 고발하고, 잡지에 장문의 『이혼고백서』를 발표해요. 오늘날로 따지면 '미투운동'의 효시인 거죠. 지금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혜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당시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철저하게 비난받아요.
 
저는 최근의 여성운동을 지지하지만, 지지하면서도 가끔은 좀 불편할 때가 있어요. 왜 나는 불편함을 느낄까. 그래서 역사를 쭉 되돌아보니까 조선 성종 시대부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스템이 견고해져요 그 이후 무려 500년 동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남성들은 그 질서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여성들도 그 질서를 학습하면서 그 속에 묶이게 된 것이죠. 100년 전 나혜석은 그 시스템에 저항하여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그 시스템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은 이후에도 계속 있었고, 최근에야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이죠. 500년 동안 견고해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잖아요. 500년 동안 내 안에 박힌 것들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지만 더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사회 문제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낙관적이 된다고 하신 말씀에 공감해요. 지금 당장은 패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어쨌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거든요
 
그렇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소 단위가 100년이거든요(웃음). 1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살고 있었어요. 1894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잖아요. 그 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90%가 상민이었어요. 저 역시 상민에 속했을 텐데 지금 이 시대에는 공부도 하고 책도 쓰고 있잖아요. 그때라면 꿈도 못 꿨을 일인데 말이에요
결국 역사는 인간의 자유를 향해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고, 비록 지금 시점에서는 어제보다 후퇴한 것처럼 보여도 좀 더 떨어져서 본다면 인간의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는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낙관성을 갖게 하는 것 역시 역사의 힘이고요
 
지금 나의 행위가 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인식하는 사람과 그런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를 갖게 될 텐데요
 
역사를 보면 열심히 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열심히 사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을 때 갖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을사오적은 분명 당시에는 자신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이름은 후손들에게 부정적으로 기억되고 있고 이후에도 역사의 법정에 끊임없이 소환될 거에요. 그들은 당시 자신들이 그런 존재로 기억될거라고 인지했을까요? 지금 내가 하는 행위, 선택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인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럴 수 없었겠죠. 그건 역사의식의 빈약함이라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정약용 선생은 역사 앞에 자신을 세워놓고 철저하게 싸운 분이에요. 이분이 유배지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쓰셨는데, 왜 그토록 어마어마한 분량을 책을 썼냐 하면, 이분은 역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셨기 때문이에요. 만약 이분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그저 사헌부의 기록에 남은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되었을 거예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정약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죠
 
역사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가는 길은 그 종착점이 전혀 달라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고 해도 말이죠. 역사를 보고 공부하게 되면 우리도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역사의 흐름에 부합할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긴 안목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과 연결해서, 역사를 공부하면 시대의 흐름, 방향성에 대해서 읽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굉장히 공감했어요. 현재만 잘라서보면 지금 이 시대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어려운데, 과거와 연결해서 보면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더라고요. 
 
역사의 흐름을 공부하다 보면, 그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읽게 돼요. 개항 이후에는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현대사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 시대정신이었다면 현재 우리의 시대 정신은 개인 한 명 한 명에 대한 존중과 인권인 것 같아요
역사를 공부하면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가늠할 수 있어요.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내가 뭔가를 선택하고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 방향이 틀릴 수 있어요. 내 행위에 제대로 된 의미부여를 할 수 없고요. 역사가 단순히 사실을 암기하는 과목에 그쳐선 안되는 이유죠. 내가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 선택에 더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학습이 필요합니다
 
 
어떤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역사를 둘러싼 이런 갈등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낙관적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죠? 그래서 괜찮아요(웃음). 시간이 지나면 의견들은 정리될 거예요. 역사에는 그런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200년 전에 예송논쟁이라고 있었어요. 상복을 3년 입느냐 1년 입느냐, 1년 입느냐 9개월 입느냐는 문제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고 정말 목숨 걸고 싸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학생들에게 예송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런 반응일 거에요. 물론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만 전쟁이 끝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위정자들의 이런 논쟁은 의미가 없거든요. 그렇게 당시에는 박 터지게 싸웠지만 지금 와서는 그 논쟁 자체의 문제점이 보이는 거죠.
 
지금 현대사를 둘러싼 갈등들도 그래요. 지금은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 그걸로 싸우기 보다는 각자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차곡차곡 쌓고 연구 결과를 축적해야 하는 때에요. 아직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쓰여지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남북한의 관계가 어떻게든 매듭지어질 때 진정한 현대사의 첫 페이지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100년도 안 된 시간이잖아요. 100, 200년이 지나면 분명히 옳은 방향으로 정리될 거라는 그런 낙관,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세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우리가 흔히 역사 인물이라고 하면 유명한 분들,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들을 생각하는데, 책에서는 김육이나 이원익, 그리고 박상진, 재법한국민회처럼 이름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더라고요.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한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이런 분들을 따라가기에는 아무래도 버겁더라고요(웃음).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분들은 너무 존경스럽지만 가까이 하기엔 좀 먼 분들이라 제 삶에 적용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내 일상에 더 가깝게 들어올 수 있는 분들, 나와 비슷한 점이 있는 분들, 내가 그분들을 따라갈 수 있는 역할을 한 분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을 소개하게 되었는데,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고 기억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챕터에서 박상진 선생이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억해야할 이름을 알려주셔서 좋았어요. 특히 학생들에게는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다 변호사, 의사, 교사, CEO 이렇게 직업으로 대답을 해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꿈이 직업에 머물러야 하죠? 그러면서 박상진 선생이 생각나더라고요. 이분은 1910년에 판사시험에 합격하지만 1910 8 29일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판사직을 내던져요
만약 이분의 꿈이 '판사'라는 명사였다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판사를 그만 둘 이유가 없어요. 그냥 일본 판사로 일하면서 법정에 끌려오는 독립투사들에게 사형 선고를 하면서 잘 살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 분은 판사라는 직업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 분이 아니었어요. 이분이 밤 새워 공부해 판사가 된 이유는, 법을 몰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거든요. 결국 이분은 내가 있을 자리는 판사석이 아니라 그 앞의 피고석이라고 하면서 판사 자리를 내려놓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체포되어 결국 사형을 언도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셨죠.
명사의 꿈을 꿨던 사람과 동사의 꿈을 꿨던 사람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어요. 우리가 의도적으로라도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계속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이회영 선생이 던지는,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러 번 보이는데요. 이 말이 작가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접한 순간을 기점으로 제 삶이 나뉘는 것 같아요. 이 질문을 접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내 삶이 딱 한 번 뿐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거든요. 인생이 한 번 뿐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내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은 또 다른 일이잖아요.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진짜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그냥 먹고 자고 생존만을 위해서 사는 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인생이 한 번 뿐이라는 걸 인식하기 전에는 시간이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오지만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는 그 덩어리가 작게 쪼개지면서 쪼개진 하나하나가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오게 되죠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를 했다면 그 다음, 역사를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했잖아요. 우선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와, 멋지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지금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를 반드시 생각해 보시고요. 1단계 사람 만나기, 2단계 그 사람의 삶 둘러보기, 그리고 3단계 그 사람의 삶을 내 삶에 적용시켜보기. 이걸 계속 일상 속에서 훈련해야 해요. 이것이 진짜 역사를 쓸모있게 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이 훈련을 자꾸 하다보면 어느 순간 각각의 단계를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삶을 만나면 그 삶에서 어떤 것을 내 삶에 적용하면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거에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연대와 협력을 이루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내 삶을 둘러보면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고요. 역사를 공부하면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너무 중요하고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이 책을 썼다는 게 너무 안타까울 정도에요. 제가 쓴 책이라서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영 민망해서요(웃음). 다른 분이 쓴 책이었으면 더 열심히 홍보했을 텐데 말이에요.
이 책은 최태성이라는 사람이 글을 어떻게 썼는지 보시기 보다는 제가 책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린 역사 속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 메시지는 분명 여러분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역사의 <!HS>쓸모<!HE> [인문]  역사의 쓸모
최태성 | 다산초당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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