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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난 김에 살아갈 순 없는 걸까?『레몬』권여선

  • 등록일2019.05.10
  • 조회 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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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면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의 아름다운 여고생이 있다. 그런 그녀가 간밤에 머리가 깨진 채로 죽어버렸다.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비극의 유력한 용의자는 두 명. 그중 한 명을 경찰이 조사실에서 심문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추리 소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누가’ 범인인지를 찾기 위해 페이지를 빠르게 넘긴다.
그런데 이번 책은 조금 다르다. 권여선의 신간 『레몬』은 분명 미스터리(또는 추리) 소설인데, 어느 순간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누가’ 죽였는지도 중요하지만,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어느새 독자의 손끝을 더디게 만들어 버린다.
권여선의 신작 『레몬』은 그녀가 여태 써온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다. 장르적 요소를 녹여 추리 형태의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 긴박함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전의 작품들만큼 묵직하다. 그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인터뷰.


[권여선의 일상]
작년에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으셨는데요.
상을 받은 「모르는 영역」은 심심하고 담담한 작품인데요. 그래서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의외였어요. 아마 제가 쓴 것보다 더 좋게 읽어 주셨던 것 같더라고요. 상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제 작품을 겹이 있는 소설로 읽어 주셔서 작가로서 기뻤습니다.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작가의 일상은 똑같아요. 쓰는 것의 반복입니다. 사실 그저께 마감을 했어야 하는데, 계속 늦어지는 바람에 방금까지도 퇴고를 하고 왔어요. 마감이 끝나면 잠깐 숨을 돌렸다가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데요. 작품이 시작되면 거기에 빠져 지내는 탓에 일상을 영위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자꾸 미루는 것 같아요.

쉬는 동안에는 무얼 하시나요?
술을 좋아해서요. (웃음) 술도 마시고 음식도 만들면서 지내요.

[죽음 이후에 남겨지는 것들]
신간 『레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앞서 말씀해주셨듯이 이번 작품은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개작한 장편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는 중편인데요. 이 작품을 보완해서 책으로 낼 계획은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개작이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억지로 늘릴 수는 없잖아요. 작품이 허용하는 만큼만 쓰다 보니 분량은 50~60매가 늘어났고 부분 부분 부족했던 걸 채우는 정도로 끝냈습니다. 전체적인 틀은 그대로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소설은 살해당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죽음’을 주 소재로 둔 이유가 궁금한데요. 죽음 중에서도 타살을 중심에 두잖아요.
장르적 장치를 제 소설에 녹여보는 시도였어요. 미스터리한 요소를 더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게끔 써보고 싶었거든요. 물론 장르 소설을 쓰는 분들만큼 능숙하게 다루진 못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도전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복수로 이어지는 죽음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기도 했고요.

스타일의 변화가 어렵진 않던가요?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아요. (웃음) 그런데도 확실히 쓰는 재미는 있더라고요. 이전까지의 제 소설은 사건이 중심에 놓이는 게 아니라 일상이나 인물, 또는 인물 사이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요. 이번엔 사건을 먼저 던져놓고 쓰다 보니 그것들을 디테일하게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소설의 겉만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이 비단 한 개인의 몫이 아니다 싶은데요. 소설 속에 남겨진 인물들은 본인의 삶 전반이 한 인물의 죽음 아래에 장악당하잖아요.
우리의 삶에서 ‘상실’은 빼놓을 수 없다고 봐요. 그래서 평소에 이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상실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것을 각각 어떻게 이겨내는지 혹은 이겨내지 못하는지에 대해서요. 모두가 다른 형태로 그 고통을 마주하고 또 다뤄가는데, 그 이야기를 이번 소설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살해당한 소녀에 대한 것보다는 남겨진 사람들 위주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설에서 남겨진 사람들은 ‘가족의 죽음’을 두고 각기 다른 대응을 보입니다. 어머니의 경우 죽은 딸을 부정하는 듯하고, 여동생의 경우 남겨진 자신을 부정하는데요.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닥친 불행들이 있잖아요. 그건 질병이 될 수도 있고 경제력이 될 수도 있는데요. 그 불행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먼저 그것을 부정하고 봅니다. 하지만 그 부정은 결코 해답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부정을 지속하는 일 자체가 본인 스스로에게 너무 괴롭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기를 차근차근 납득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거기에 필요한 게 바로 ‘왜’ 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왜’가 중요합니다. 범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 피해를 보았는지가 밝혀지지 않으면 애도가 끝나지 않아요. 부정도 계속되고요. 『레몬』에서도 엄마나 동생이 무언가를 ‘부정’하는 이유가 바로 ‘왜’라는 것 앞에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정이 멈추려면 그 ‘왜’를 찾아야하는데, 결국 그들이 그것을 찾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일단 행동할 수 밖에 없었겠죠.


[소설 속 여러 가지 ‘소리’]
이번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참 중요한 소설 같았는데요.
이름보다는 이름을 짓는 과정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이번 소설은 처음부터 이름을 떠올리지 않고 소설을 쓰면서 이름을 만들어갔는데요. 이 경우엔 인물의 이름을 짓는 동안 입속에서 자주 소리를 굴려봅니다. 이름에 어울리는 성도 여러 가지 불러보는데, 그러한 공정이 있어 자연스레 그것에 대한 사연도 생겨나요. ‘한만우’의 별명처럼요.

듣고 보니 국어의 소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네 그래요. 덕분에 제 소설은 번역하기 힘든 지점들이 있습니다.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단어 자체를 파고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 단어의 발음과 소리,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찾은 것들을 활용해 소설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환기 시키는 걸 좋아하는데요. 이걸 다른 언어로 옮기기엔 불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소설을 읽으면서 ‘단어의 소리’나 ‘발음’이 인상 깊게 와닿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군요. 한만우의 별명 외에도 ‘유잉 육종’이란 병명에서도 읽는 소리가 강조되었고요. 태림의 시에서도 숨겨진 배치들이 보였거든요.
시의 경우 발음이 주는 물질성에 주목하잖아요. 그걸 소설 속에 배치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태림의 시가 그래요. ‘은혜은혜’나 ‘언 땅과 해’ 부분을 보면 아실 거예요. 그리고 꼭 발음의 물질성이 아니더라도 태림이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것을 독자들에게 넌지시 비춰주기 위함도 있었고요.

이번 소설 제목이 『레몬』 이잖아요. 소설 속 여러 단어들 중에 레몬을 제일 앞으로 꺼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미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제목이 있었기에 다른 이름을 떠올리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제목은 너무 거리감을 주더라고요. 선뜻 이해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른 제목을 편집자 분들과 논의하던 중에 ‘레몬’이라는 후보가 거론됐어요. 이야기 속 ‘레몬’이 나오는 부분이 마치 소설의 중심 같은 느낌을 준다면서요.
처음 그 제목을 들었을 땐 고개를 갸웃했던 게 사실인데요. 생각할수록 레몬의 색깔이 소설 전체에 퍼져있는 노란 빛깔과 무척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리고 ‘노란 레몬’이 ‘노란 리본’과 발음이 비슷하기도 했고요. 우리 모두에겐 가슴에 안타깝게 남아있는 노란 리본이 있잖아요. 그 리본을 떠올리면서 ‘레몬’이 괜찮은 제목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제목이에요.

[우리는 태어난 김에 살아갈 순 없는 걸까]
경찰서에서 어수룩하게 조사를 받던 만우와 속옷에 구애받지 않는 해언은 어쩌면 본성이 닮은 인물들인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닙니다만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아요. 해언과 만우는 모두 ‘사회화 과정’에서 결락이 일어난 인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해언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야생의 본성에 충실한 소녀이고, 만우의 경우 가족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 외에는 사람을 대할 줄도 모르고 자신을 설명하는 것조차 어설프니까요. 그 모습들로 인해 사회에서 오해를 받고 희생을 당하기도 하니까, 둘은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 웹툰 작가를 보고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이란 수식이 있는데요. 해언과 만우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요?
생각이 많은 캐릭터는 자기가 했던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떠올리고 거기에 따른 금기들을 자기도 모르게 설정하고 살아가는데요. 두 인물은 그런 게 굉장히 느슨한 사람들이죠. 이를테면 내가 ‘툭’ 튀어나오는 사람들에 가깝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측면이 강하죠. 그래서 일반인의 시선에는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이란 말속에는 조소도 있겠지만, 맑은 천성에 대한 동경도 있다고 봐요. 해언과 만우도 그렇게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작가님에게도 그런 모습이 존재하나요?
저는 과하게 사회화가 된 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졌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제가 그나마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글과 술 때문이라고 봐요. 우선 글은 다른 일 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가깝잖아요. 그리고 술의 경우엔 제 속에 있던 ‘강박’과 ‘결박’이 깨뜨리는 경우들이 있고, 그 경험을 통해 타인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과연 구원받았을까]
다언은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인물 같습니다. 언니의 죽음 이후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다시 일어서서 범인을 찾아 나섰고요. 만우와 그의 동생 선우를 만난 이후엔 또 다른 새로운 목표를 향해 애썼던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한 편으로 안타까운 건, 그 모든 게 본인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구원하는 듯한 인상이 강해서요.
다언의 경우 사건을 겪으면서 이전의 순진무구하던 자신으로 돌아갈 순 없게 되었는데요. 점점 파괴적인 아이가 되어가던 중에 만우네 집을 찾고, 그 경험이 아주 작은 회복의 시작이었다고 봐요. 아마 그 치유를 가능케 한 건, 고통받는 사람끼리의 연대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자기 고통만 바라보던 다언이, 그 가족을 보면서 슬픔에 잠기게 되잖아요. 덕분에 조금 더 보편적인 수준에서의 연민이란 감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언은 자기가 해야 할 복수를 외면할 수는 없고 결국엔 자기가 저지른 죄를 평생 참회하며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하는데요. 그게 저는 비극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다언의 윤리성에 맞는 선택지였다고 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다언은 시를 좋아하는 아이로 묘사되는데요. 다언에게 하필 ‘시’를 건넨 이유가 있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의 문예반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시험에 찌든 상태에서도 문예반에 앉아 시를 쓰던 그때의 공기는 남달랐거든요. 저는 비극이 일어나기 전의 다언에게 그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선배를 통해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시를 쓰는 마음. 그렇게만 지냈다면 다언은 계속 행복했겠죠?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한 때는 존재했던, 그 낙원을 다언이 가졌으면 했던 거예요.

다언은 끝내 구원을 받았을까요?
누군가 피를 흘리진 않았지만, 다언이 결국 죄를 지은 건 맞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이후 다언의 삶이 순탄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쓰는 당시에도 저는 상당히 고통스럽게 글을 이어나갔거든요. (독자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 묘사를 생략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를 봤을 때) 제가 다언의 입장이라면 하루하루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끝장이 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 것 같고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언의 삶이 구원을 받았을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 밖의 여러 인물]
여러 등장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독자에게 들려주는데요. 직접적인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는 이가 ‘엄마’와 ‘신정준’이에요. 그중에서도 ‘신정준’은 묘사되는 장면도 극히 짧습니다. 그에게 발언의 기회를 제한한 이유가 있나요?
소설은 제가 될 수 있는 사람만 쓸 수 있어요. 만약 신정준의 시점에서 서술이 가능하려면, 제가 신정준이라는 인물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언어를 가져야 하고 또 그 사람의 행위를 내적 합리성을 통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설사 그게 악인이더라도 말이죠. 근데 제가 그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 인물에 들어가서 그 인물의 언어로 객관화시킨다는 것이요. 그렇다고 다른 인물들이 만만하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작가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인물의 시점을 취할 수가 없었어요.

아직까지 작가님에게 남아 있는 소설 속 장면이 있다면요?
저는 의외로 상희라는 인물이 기억에 남아요. 캐릭터 자체가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고 사건을 연결해주는, 무색무취에 가까운 기능적인 인물인데요. 그 인물이 지방에서 처음 상경했을 때의 장면이 오히려 강하게 남더라고요. 그런 배경을 가진 인물이기에, 다언과의 사건을 잘 설명해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 세탁 공장에서 만우가 일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소설을 끝마친 지금]
이번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처음 중편을 쓸 때, 창작촌에 있었는데요. 글을 쓰다가 식당을 가는 길에 튤립들이 피어있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척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혹시 그 튤립이 노란 튤립이었나요?
꽃밭에 여러 튤립이 있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확실히 노란 튤립이네요.

이번 책을 한 독자에게 선물한다면, 어떤 분에게 건네고 싶으신가요?
한 독자분이 『레몬』을 읽고서는 “작가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과 만나서 되게 행복했다”라고 후기를 남겨주셨어요. 그 글을 읽자마자 너무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한 분을 꼽자면 그 독자분에게, 조금 더 범위를 넓히자면 두려움이 많은 독자,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힘든 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요. 그분들의 두려움과 제 두려움이 만나, 같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년 넘게 써오다 보니 독자층이 조금씩 바뀝니다. 제 소설의 성격이 변할 때마다 저를 떠나는 분들이 생기는 반면, 동시에 새로 찾아오는 독자분들도 있어요. (웃음) 그게 뭔가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글을 바꿔가며 쓰고 싶어요. 잘 안되더라도 그렇게 도전해보고 싶달까요. 그럼 분명, 제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계속 달라지실 텐데요. 그래서 그분들께 미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미지의 독자님들, 제가 갑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이주현 (교보문고 북뉴스)
zoozoophant@kyobobook.co.kr

레몬 [소설]  레몬
권여선 | 창비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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