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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대접하는 요리가 필요한 시대" 배우 김수미의『수미네 반찬』

  • 등록일2018.11.12
  • 조회 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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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방 홍수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서 소소한 반찬으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tvN 요리 예능 <수미네 반찬>이 그것. 이 프로그램은 다른 쿡방에서 보여지는 과도한 먹방이나 경쟁 구도 혹은 자극적인 스토리 라인이 없다. 타이틀 전면에 내세운 ‘반찬’ 처럼 수수하다. 소박한 반찬이 주는 엄마의 손맛이, 외로운 1인 가구 시대에 제대로 통한 것이다.
그런 인기 예능 <수미네 반찬>의 주인공 김수미가 활자로 우리를 찾아왔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우 김수미 씨는 이미 몇 권의 요리책과 에세이집으로 작가라는 호칭도 익숙한 사람이다. 그녀가 이번에 준비한 책은 방송에서 소개한 레시피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레시피만 묶은 건 아니고 담백한 에세이 한 두 편을 함께 준비했다.
당신에게 요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정성이죠”라는 답을 꺼내는 사람. 요리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마음을 채우는 것임을 외치는, 배우 김수미와의 인터뷰.


 
 
책에 앞서 방송으로 <수미네 반찬>을 시작하셨잖아요.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방송국에서 문태주 PD의 연락이 왔어요. 반찬으로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식탁에서 점점 반찬이 없어진다는 얘기와 함께 제가 먼저 떠올랐다고 했어요. 아마 그 부분이 통했던 것 같아요. 저 역시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해주시던 옛 반찬들이 없어지는 게 참 많이 아쉬웠거든요. 그 코드가 맞아 떨어져서 진행이 쉬웠죠. 런칭까지 한 달 남짓 걸렸던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진행된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또 하나 제 마음을 움직였던 건, 한국의 음식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어느 나라를 가도 일본 음식점은 쉽게 볼 수 있어요. 스시는 그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메뉴고요. 이건 중국음식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음식은 예외예요. 우리나라가 경제 순위에서 뒤쳐지는 나라도 아닌데, 음식에 대한 인지도는 무척 낮아요. 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제작발표회 때부터 품고 있었어요. 요즘 그부분에 대한 갈증도 제법 채워지는 것 같아, 신나게 녹화를 하고 있어요.

이번 프로그램은 선생님 외에도 셰프 분들이 함께 출연하시잖아요.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부담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해요. 특히, 미카엘 셰프와 함께하는 건 앞서 제가 말한 한식의 세계화와 어느 정도 닿아있는 부분이거든요. 미카엘 셰프는 요즘 불가리아 음식에 한식 재료를 넣는다고 해요. 꼭 외국인 셰프가 아니더라도 양식을 전문으로 하는 셰프가 자신의 요리에 김치 한 쪽이라도 넣을 수 있게 만드는 게 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셰프들이 제 한식을 따라하기도 하니까요. 이번 회차 촬영분 중 오리 요리도 비슷한 케이스죠. 오리에 묵은지를 까는 조리법 역시 점점 한식이 다양한 곳에 스며드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방송에선 셰프들과 협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계량법과 관련해서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셰프들의 정확한 계량법 대신 는둥만둥(넣은둥 만둥), 쪼꼼만, 노골노골, 자박자박 같은 표현을 쓰시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제가 그렇게 봐왔고 또 배웠거든요. 어디서 읽은 얘긴데, 한식은 원래 계량이 없다고 해요. 옛날 궁중 요리도 말이죠. 한약재의 경우에만 정확한 계량을 하고 왕실의 음식을 준비할 때에도 별 다른 계량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엔 다 간을 보고 최종적인 요리가 완성됐다고 해요. 이건 꼭 조선시대의 왕실 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도 그랬고 할머니도 그러셨죠.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계량과는 먼 조리법을 익히게 됐어요. 지금도 계량으로 조리를 하라고 하면 저는 못해요. 이만큼, 저만큼, 자글자글, 는둥만둥, 쪼린다, 바짝한다, 이런 단어들이 오히려 더 와닿는 말들이거든요. 우리 엄마들이 쓰던 단어 말이에요. 근데 재밌는 건, 처음엔 이런 제 표현에 당황하던 셰프들이 이젠 모두 익숙해져서 다 잘 알아듣는다는 거예요. 셰프분들 말고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예요. 20회 정도 방송이 나가니까 시청자들도 감을 잡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감이란 건 아마도 엄마의 손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미네 반찬>을 하면서 보람찬 순간이 있나요?
많죠. 가장 큰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에요. 예를 들면 한 번도 김치를 안 담아본 분들로부터 “막상 김치를 담아보니까 사먹는 것 보다 더 맛있더라”라는 얘기를 들을 때 무척 뿌듯해요. 김치 외에 다른 반찬을 소개할 때에도 “내가 만든 반찬을 가족에게 대접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 “반찬을 나누는 기쁨을 배웠다”라는 반응들은 저를 더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만들죠. 그러다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젖혀두고 여기다 총력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욕심이 나서 그런가봐요. 이 프로그램 덕에 자꾸 음식을 직접 해본다는 이야기를 건너 듣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라질뻔한 반찬들이 다시금 생명을 얻는 것 같아서요. 우리나라 고유 반찬의 수명을 늘리는 기쁨이랄까요. (웃음)
또 하나 저를 뿌듯하게 하는 건, 외국에 있는 시청자들의 반응이에요. 특히 교포분들이요. 그분들은 이 프로그램을 울면서 본다고 하더라고요. 방송을 보다보면 할머니, 외할머니, 엄마가 해줬던 반찬이 생각난다고 해요. 저희가 다루는 반찬들이 ‘한동안 잊고있었지만, 너무나 좋아했던 바로 그 반찬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박대나 풀치 같은 것 말이죠. 그런 분들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음식을 만드는 제 모습에서 죽은줄만 알았던 친척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도 하셨어요. 그런 반응 하나 하나가 제게는 감사한 일입니다.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의 요리를 강조하시는데, 정작 어머니께 직접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기억만으로 반찬을 살려내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특히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 그랬어요. 사실 제가 요리에 흥미를 느낀 건 결혼한 이후였어요. 아이를 갖고 나니까 친정엄마가 많이 그립더라고요. 그때 엄마와 함께 떠오른 게 바로 엄마의 음식이었어요. 임신 후에 입덧을 할 땐 엄마가 조물조물 무쳐줬던 겉절이와 풀치조림이 자주 생각났고요. 한 입만, 딱 한 입만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을 것 같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때 괴로웠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그 마음이 출산 이후로도 꽤 오래 이어졌던 것 같아요. 문득 내가 직접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군산에서 풀치를 주문해서 직접 무치기 시작했지만, 여태 먹기만 했지 제가 만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자꾸 실패하더라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 형태와 맛이 조금씩 어릴 적 기억 속 그것과 닮아간다는 사실이에요. 조물조물하다보니 ‘맞아, 그때 고추도 들어갔지’ 하는 식으로 조금씩 보완이 되는 거죠. 그렇게 완성된 풀치조림을 먹었더니 추억 속 그 맛이 나더라고요. 곧장 애들에게 나눠줬는데, 아이들 반응도 무척 좋았어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또 해볼까, 또 해볼까, 이렇게 몇 십년을 하다보니 이제 손에 익은 건 물론이고 제 나름대로 응용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땐 어머니가 넣지 않았던 재료들을 넣어보는 식으로요. 그럼 또 새로운 요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에 바로 완성된 게 아니에요. 혀로, 기억 속 그 맛을 찾아가는 단계를 거친 결과예요. 그리고 그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 이를테면 아 이거였어, 바로 이 맛이었어, 할 때의 그 기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상당히 커요.

그럼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 중에서 가장 자신있는 것과 아직도 성공하지 못한 요리가 있나요?
딱히 실패한 요리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엄마의 손맛을 닮은 것 같은데, 재료들을 보면 눈동자가 살아난달까요. 그렇게 만든 음식 중에 가장 자신있는 건 풀치하고 아귀찜이에요. 그리고 김치도요. 과장을 조금 보태서, 김치 거리만 보면 김치를 담고 싶을 정도예요.(웃음) 가득 담아 지인들에게 나누고 싶어서요.

음식은 그 당시의 추억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에서 소개해주신 음식 중에 추억이 떠오르는 메뉴 하나를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요리도 요리지만 저는 재료를 보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많아요. 그 중 하나가 호박이에요. 요즘도 저는 시골에서 늙은 호박을 볼 때마다 엄마가 생각납니다. 당시 제가 살던 시골에서는 호박이 지천에 널렸었거든요. 그런 호박을 보면 엄마가 제게 “막내야 호박 하나 따와라” 하고 부르던 목소리가 생생히 떠올라요. 그럼 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작은 호박을 하나 따가죠. 엄마는 그 호박을 그냥 툭툭툭 썰어서 새우젓을 넣은 뒤 금방 볶아주셨는데, 별다른 조리법이 아니지만 참 맛있었어요.
재료 말고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평상이에요. 제가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감독님께 부탁드린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세트 지을 때 평상을 만들어 달란 거 였죠. 아마도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 그 무렵인 것 같아요. 평상에 다섯 식구가 둘러 앉아 오손도손 식사를 하던 순간 말이죠. 그 와중에도 엄마는 자주 평상에서 일어나 부엌을 들락날락 하셨어요. 정작 본인은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한 채로 자식 입에 반찬 하나라도 더 먹일려고요. 그걸 떠올리면 또 마음이 아파요. 어쨌거나 그 시절, 그렇게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집 주변에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던 유년시절. 그리운 시절이에요. 그래서 세트를 이렇게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저게 우리 집인 거예요.
 

 
이제 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선생님에게 요리란 무엇인가요? 요리 철학 같은 게 있나요?
제게 요리란 ‘정성’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사먹는 도시락이나 식당의 음식들은, 물론 그 자체로 귀하고 소중하지만 엄마가 직접 무쳐준 콩나물엔 그 이상의 정성이 담겨있잖아요. 저는 가족이 만든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있고 그 정성은 사랑에서 기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손을 통해 음식에 기를 불어넣는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손맛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랑이 담긴 손으로 재료를 조물조물할 때, 요리에 정성이 담기는 거죠. 그래서 특별한 재료가 아니라도 집밥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예요. 마치 사람의 체온처럼요. 집에서 평범한 두부 한 모를 썰고 콩나물 하나를 무쳐도, 엄마의 마음이 한 없이 버무려지는 거니까요.

추가적으로 책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
아마 요리책이 또 한 번 나올 가능성이 있고요. 그 외에 마지막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컨셉은 ‘안녕히 계세요’라는 형태의 유언장으로 고민 중인데요. 한 1년 후쯤 기대하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요즘 1인 가구 시대가 대세잖아요. 그래서 요리와 멀어지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나 혼자서, 내 입에 넣자고 음식 하는 것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런 분들이 이 책을 통해 누구를 먹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요리를 시작해보셨으면 해요. 거기서부터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삶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내가 나를 위해 음식을 했을 때, 처음했음에도 그 맛이 꽤 괜찮았을 때, 밀려드는 감동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환경상 분가해서 사는 분, 지방에서 올라온 1인 가구,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분들 모두 지금 보다 따뜻한 집밥, 그리고 반찬을 만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1인 음식 문화가 바뀌길 바라면서 인사 드릴게요.

책에서 소개해주신 반찬만큼이나 소박한데 깊게 다가오는 인사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 이주현 (교보문고 북뉴스)
zoozoophant@kyobobook.co.kr
┃사진_김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수미네 <!HS>반찬<!HE> [요리]  수미네 반찬
김수미 | 성안당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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