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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가가 복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닌 가치”『시간을 복원하는 남자』김겸

  • 등록일2018.08.24
  • 조회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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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진열장 안에서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바스라져 가던 타이거 운동화 한 짝. 밑창은 100여 조각으로 갈라진데다 손만 대면 산산이 가루가 되어버릴 지경으로 변해가던 그 운동화는,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던 현장의 말없는 증언자다. 그리고 그 운동화를 복원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그리고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한열의 운동화를 복원한 보존복원 전문가 김겸의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복원가의 일뿐만 아니라 복원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과 역사,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물에 조용히 쌓여가는 시간 한 겹 한 겹의 가치를 조금 더 예민하게 바라보게 되는,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과의 인터뷰.
 

보존복원가의 일이 아직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는데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어요.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보존복원'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건 잡지나 기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죠. 그러다 삼성문화재단 보존실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막연한 기대로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다 IMF 사태로 구조조정이 있어서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과 영국으로 가서 보존복원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사회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고 하지만, 보존복원 만큼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도 그대로 현장에서 쓰이게 됩니다. 저도 논문을 쓰면서 현지의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실무도 함께 익히게 되었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김숨 작가의 소설 『L의 운동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이었어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는 10년이 넘어가면서 밑창이 점점 바스러져서 자꾸 떨어지고 부서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서 2014년 경에 여러 미술관, 박물관 보존실 전문가분들께 복원과 관련해 문의를 했다고 해요. 그 중 몇 곳에서 저를 추천해 주셔서 2015년 경에 제가 맡아서 복원 진행을 하게 되었죠.
제 전공이 Object Conservation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형 미술 작품 보존에 관해서 논문을 썼어요. 사실 운동화를 전시장에 갖다 놓으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작품이나 운동화나 저에게는 다르지 않았죠.  
 
바스러진 운동화가 전하는 이야기도 분명 있지만, 복원된 운동화는 87 6월 그 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보여주고 있어서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이래서 복원이 필요했던 것이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없거든요. 흔히 하는 얘기가, 봐야 믿는다고 하잖아요. 본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렬한 경험이 되니까요.
 
 
 
사실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는 오래된 유물도 아니고 예술품도 아니라서 보존복원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외국에는 생활박물관이 참 많아요.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가면 영국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 다 모여있어요. '플라스틱 컬렉션' 섹션에는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던 진공청소기부터 바비 인형까지 온갖 것들이 다 전시되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다 복원가들의 손을 거쳐서 전시가 되는 것이죠.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보존복원이라고 하면 오래된 유물, 발굴된 것,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학과도 그 분야가 중심이에요. 몇 백 년 된 오래된 유물들도 중요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기록물들도 지금부터 우리가 살피지 않으면 안돼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도 30년도 안 되었는데 바스러져서 사라져버릴 뻔 했잖아요.
 
보존복원의 여러 분야 중에서 미술품 복원이 전문이신데요. 미술품과 다른 유물 복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궁극적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것은 가치에요. 물건 그 자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물신숭배죠. 어떤 물건이 중요하게 되는 이유는,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복원가가 궁극적으로 복원시켜야 하는 것도 그 물건이 가지는 가치죠.
 
칼로 자르듯 나뉘지는 않지만 유물 복원과 미술품 복원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유물은 물질 자체가 가지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큰 가치를 가집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이 이 물건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다루었고 또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가, 그것은 그 물질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죠. 그래서 연구자들이 부스러진 조각을 연구하거나 분석기로 돌리기도 하는 것이죠.  
그걸 감쪽같이 붙이거나 없어진 부분을 눈에 안 띄게 만들어버리면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우리가 찾아내질 못하거든요. 박물관에 가면 복원된 유물들도 낡아 보이고 바스러진 것은 바스러진 채로, 붙인 자국은 붙인 자국 그대로 보이게 두는 것이 그런 이유죠.
 
하지만 미술품의 가치는 작가가 처음 제작했던 모습 그대로의 완전한 외형에 있습니다. 그림에 구멍이 나 있거나 색이 떨어져 나갔거나 혹은 종이가 접혀 있으면 감상자가 온전히 작품을 감상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미술품 복원가는 감쪽같이 복원을 합니다. 작가가 처음 제작했던 당시의 완전무결한 형태로요. 의사에 비유하자면, 유물 복원을 하시는 분들이 내과나 외과 의사에 가깝다면 미술품 복원가는 성형외과 의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미술품 복원은 작품 복원을 넘어서 작가의 의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예를 들어서, 작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가거나 녹거나 바스러지도록 의도한 작품을, 제가 감쪽같이 처음과 똑같이 만들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죠. 그리고 파손되거나 손상된 작품에 대해서, 파손되기 전의 이미지가 아주 정확하게 남겨져 있다면 복원 목표가 확실하지만, 그게 불확실한 경우에는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작가의 의식을 따라가야 합니다. 없어진 부분을 재현할 때도 최대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해야 하는 거죠.
 
TV모니터 1003대로 쌓아 올린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다다익선』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어요. 백남준이 사용한 브라운관 모니터가 전 세계적으로 제조가 중단되었는데, 노후화되어서 하나 둘 꺼지는 모니터를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LCD 모니터로 교체할 것이냐에 대해서 의견들이 엇갈리던데요.
예를 들어 볼께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신 가방이 있어요. 오래 되어서 많이 낡고 단추도 하나 떨어져 나갔어요. 그래서 수리점에 가져가서 고쳐달라고 했는데, 너무 깨끗해져서 새 가방처럼 되어 돌아오면 기분이 어떨까요? 깨끗해지긴 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 떨어져나간 단추와 똑같은 걸 이제는 구할 수가 없으니 비슷한 다른 단추를 달자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단추들도 다 새 단추로 교체하자고 하면 어떨까요? 흔쾌히 그러자고 할 수 있을까요?
 
보존복원을 둘러싼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보존하고자 하는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의문과 논란들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걸출한 예술가가 우리에게 남겨 준 좋은 물건입니다. 그리고 그 물건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브라운관 모니터가 나갔으니까 LCD로 바꾸면 되겠네'라고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을 거에요. 결국 보존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니까요.
 
미술품 보존복원을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따라가는 이론적인 기초도 필요하지만 특히나 '화학'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작품 연구를 한다든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다든지 하는 인문학적인 이론 분야도 필요하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다루는 것은 '물질'이니까요. 작업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약품과 재료들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생화학을 배우지 않은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긴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섭죠? 복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에 묻은 지저분한 것을 닦을 때 솔벤트를 사용하는데, 이때 잘못 닦아내면 그림 위의 때만 닦아내는 게 아니라 물감 자체도 같이 닦아내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건 재앙이죠. 작품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다른 약품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보존복원을 위한 가장 근거가 되는 기초는 바로 화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들도 중요할 것 같아요.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 선생님들은 같은 감기 환자가 오더라도 다르게 대응을 합니다. 기침에 다른 소리가 들리는데, 다른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거나 하죠. 보존복원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경험이 부족하니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작업을 하겠죠.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같은 재료라도 작가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고 보관되어 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변화의 정도나 형태가 다 다르거든요. 그런 것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경험이 쌓여야 하죠.  
 
1311년에 완공된 영국 링컨 대성당 복원 사례에서, 수백년 동안의 비바람에 짙게 변한 돌벽과 새로 깎아 집어넣은 새하얀 돌을 나란히 놓아두는 것이 신기했어요. 새 돌을 주변 돌과 색맞춤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지금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서 나중에는 비슷하게 될 거라는 얘기도 놀라웠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그 상태로 공개했다만 '공사를 하다 말았다'고 엄청 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영국이 정답이고 우리가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기 보다는, 이런 보존복원에 대해서 가능하면 더 많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쓴 글입니다. 남대문 복원과 관련해서도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논의들이 있었는가 당시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논의가 많지 않았어요. 모두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버렸죠.  보존복원과 관련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흔히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잖아요. 미래를 잘 살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을 하게 하는 지혜는 과거의 기억에서, 조상들의 경험에서 배워올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앞으로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소한 기억이라도 흘려버리거나 잊지 않도록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하죠.
 
사물들은 과거의 수많은 인간들이 해왔던 행동들이 남겨져 있는, 역사의 씨앗이에요. 복원가는 그 씨앗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과거의 유물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때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더 옳은 태도를 취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시간을 <!HS>복원하는<!HE> 남자 [시/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 문학동네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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