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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석좌교수, “나의 처녀작이자 백조의 노래”

  • 등록일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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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비판적인 무신론자로 살아온 지성인이 어느 날 영성과 종교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신도 나이가 드니 마음이 약해진 것 아닌가요?”라는 은근한 비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되었을까?”라는 말초적인 호기심, “, 이제 예전의 예리한 지성은 더 이상 볼 수 없겠군이라는 근거 없는 실망.
 
 2007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후 이어령 석좌교수를 따라다닌 시선들에 담긴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어령 교수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 없는 집필과 강연, 다양한 지적 활동을 이어갈 뿐이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세간의 호기심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오랜만의 답변이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기독교인과 무신론자 모두의 기대를 어느 정도는 벗어난, 지극히 이어령스러운것이었다.
 

2007년에 세례를 받으신 후에 근 3년 만에 관련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셨습니다. 이유가 있으신가요?
책을 쓸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외부의 요청에 의해서 쓰게 되는 책이 있고, 자기가 꼭 책으로 써야겠다고 해서 쓰는 책이 있죠. 지금까지 편저까지 하면 100여 권의 책을 썼는데, 사실 그 중 대부분은 원고 청탁을 받거나 신문 칼럼을 연재하기 위해,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쓰는 것처럼, 타의에 의해서 쓴 책이 많았습니다.

사실 사람 사는 게 그렇죠. 자기가 한 일이지만 대부분 바깥의 요인이 자기와 마주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성냥개비만으로는 절대 불이 켜지지 않아요. 어떤 것과 마찰을 해야 성냥이 불이 붙는 것처럼, 글 쓰는 사람은 항상 바깥과의 접점에 의해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안에서 불타는 것이지 바깥과의 접점이 없어요. 내 전공 분야도 아니고 순전히 우리 가족 이야기고, 내 개인 이야기기 때문이죠.
 
처음에 세례를 받고 화제가 되니까 사방에서 출판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 말을 듣고 싶어서, 또 내 내면의 고민이라든가 한 인간이 살아오면서 큰 건널목을 지나는 과정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화제성을 쫓아서 책을 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3년 동안 전혀 책을 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지금 냈느냐, 이제는 화제성이 다 사라졌고 또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우리가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내 소원을 요만큼 들어줬으니까 믿고 안 들어주면 또 삐쳐서 안 믿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내 딸의 실명 위기와 암, 또 외손자의 ADHD(행동과잉증)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완전히 치유되었다, 그러니까 이 아무개라는 소위 평생 무신론자로 살아온 지성인이 그런 현장을 보고 감동을 해서 자기도 믿었다, 이렇게 알려져 있거든요. 아무려면 평생 글을 써오고 독자들과 함께 생활해오고 한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닌 자기 딸이나 외손주의 일에 의해서 신을 믿게 되었겠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고 일종의, 흔히 말하는 미신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 이전부터였겠네요. 책에서는 딸과의 사연 못지 않게 교토에서의 생활이 큰 비중을 갖고 쓰여져 있습니다만.
딸과의 관계 이전에, 한 일년 가까이 교토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한국을, 가족을, 내 직업을, 심지어 글 쓰는 것까지 다 끊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고 살았던 일이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그것은 화제가 되지 않지만 말이죠.
 
교토에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었죠. 여태까지 쓴 글이 나의 지적인 탐색에 대한 것이었다면, 교토에서 일년 동안 책 읽고 좌선하다시피 철저하게 나 혼자 살아보면서 다시 인간의 관계, 신과의 관계, 시간과 죽음의 관계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죠.
 
교토 생활 이전에도 어린 시절의 메멘토 모리경험에 대해 책에서 쓰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는 절대 죽지 않고 늙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젊은이들의 최대 실수에요. 조금 있으면 누구나 늙어요. 그런데 그 때는 너무 늦은 거에요. 사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어렸을 때, 젊었을 때부터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정말 기가 막힌 삶을 살 수가 있어요. 내가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막 쓰고, 내일이 또 오겠지, 내일 모레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이런 사람은 착실하게 못 살아요.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일 아침에 당신은 없어, 오늘 죽어라고 선고 받는 순간, 아 내가 내 삶을 몰랐었구나, 이 주변에 이렇게 빛나는 것들이 있는 것을 몰랐구나,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몰랐구나,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죠.
 
그러니까 죽음이 뭔지 아는 사람만이 생명이 뭔지 알 수가 있고, 순간순간 모든 삶의 열정과 감성, 지적인 모든 것을 응결시키는, 하나하나가 결정체가 되는 그런 정말 놀라운 삶을 살 수가 있어요.
 
딸이 실명 위기와 암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기쁨도 있었던 반면, 외손자를 잃는 아픔도 겪으셨습니다.
딸의 글은 책 나온 후에 처음 봤어요. 거기 보니까 외손자의 죽음도 나오더라구요. 난 우리 딸에 대한 슬픔의 이야기기 때문에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본인이 스스로 말한다면, 나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개정판에서는 그 이야기를 썼어요.
 
처음에는 성서 덮고 기도도 안 하고, 너무 하지 않냐, 죄 지은 사람들도 이렇게 많고 인생을 다 지내서 이제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빛나는 아이가, 이제 막 대학을 나와 앞길이 촉망되는, 정말 올바르게 살아온 아이가, ,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합니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무슨 죄가 있어서 돌아가신 건가요?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이기주의인 것이죠.
 
많은 사람이 자식을 잃고, 또 정말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지만,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외손자를 잃었기 때문에 나는 안 믿는다, 나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믿고 나에게 슬픔을 주기 때문에 안 믿는다는 것은 시장의 원리지요. 돈 준 것만큼 받는 거래지 어떻게 그게 신앙이겠어요. 결국 그 마지막 시험을 넘기면서 이 책이 나온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얘긴 끝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이 이야기를 쓴 것은 사람들이 내가 겪었던 것을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그들 삶의 슬픈 일, 즐거운 일, 또는 억울한 일들이 자기 혼자 겪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는 번듯하고 고생 한 번 안 하고 산 것 같지만 누구나 속으로 내출혈을 일으키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수돗물 틀어놓고 우는 그런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위안을 얻고 극복하고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책 제목을 『지성에서 영성으로』로 지으셨는데요, 지성을 넘어서 영성으로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간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숫자의 계산대로 되지 않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요. 깊은 곳은 혼돈의 세계, 어둠의 세계일 수도 있고, 어렴풋한 황혼의 세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깃불처럼 밝은 지성에 의존하고, 확실한 것에 의존하고, 컴퓨터로 계산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기계의 삶이지 인간의 삶이 아니에요. 컴퓨터가 못하는 것, 과학이 들려주지 못하는 이야기, 그것을 나는 영성이라고 한 것이고, 그 영성은 믿음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계산이나 합리성에 의해서는 도달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감각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많아요. 자외선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인간은 소리도 몇 데시벨 이상을 못 듣죠. 존재하는데 우리 몸의 한계 때문에, 지성의 한계 때문에, 생각의 한계 때문에 못 보고 못 듣는 것들, 그 너머의 것들을 알고 싶지 않나요? 그리고 지성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인 것이죠. 그것을 풀지 못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작년에 『저항의 문학』출간 5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50년 글쓰기 인생의 한 시점을 마무리하고 처음 출간하신 책이 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인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을 쓴 후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화두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50년이라는 내 생애의 글과, 앞으로 써나갈 글의 경계선에서 쓴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처녀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동시에 스완송, 백조가 죽기 직전에 부른다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일 수도 있죠.
 
이전에는 『디지로그』 같은 책을 통해서, 아날로그적인 것과 디지털적인 것이 서로 보완하면서 상승관계을 만들어야 21세기가 온다고 말을 했었지요.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내고, 아직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잘은 모르지만 신앙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생명자본주의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의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주로 물질, 혹은 돈을 산업기술, 과학기술 프로세스를 거쳐서 제품,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죠.
 
생명자본주의는 생명을 영적인 프로세스에 넣어서 감동이라든가 행복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하는 영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우리는 시장에서 상품을 거래했지만 생명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기쁨이나 감동 같은 것들을 서로 소통하는 세계에요. 모든 자연 시스템과 인간의 시스템의 어긋난 것들이 서로 합쳐져야 해요. 요즘은 이런 생명자본주의에 대해서 강연도 많이 하고 있고 곧 책으로 쓸 예정입니다.
 
남들은 내가 기독교 믿게 되면서 계속 하나님 얘기 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죠. 신앙생활을 문명 속으로, 현재의 우리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면 뭐가 될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자본과 물질 위주의 인풋-아웃풋 프로세스를 생명 시스템으로 바꿔버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을 보고서 기독교인이 쓴 글이구나하고 알아차릴 수는 없겠지만 그 배경을 보면 신앙생활이 글쓰는 생활로 꿰맨 자국 없이 넘어오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관계 없이도 종교적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글들을 많이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엄격한 의미에서 종교서적이 아니고, 간증집도 아닙니다 한 작가가 자신이 살아온 생을 고백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죠. 사실 나는 절대 자서전을 안 쓰려고 해요.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나의 사적인 것을 알려주려고 글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나의 개인적인 것들이 드러나지 않는 비인격화된 글을 써왔지요. 하지만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나의 인격화, 나라는 한 개인의 삶을 보여준 최초의 책이에요. 그것에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죠.
 
이 책을 읽고 가장 힘을 얻을 사람은 아마 종교를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아닌, 믿다가 안 믿다가 하는 회색 공간에 있는 사람들일 거에요. 이 책이 그런 사람들에게 , 난 그러니까 믿는다또는 그래 난 믿지 않아라는 구체적인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_박수진, 사진_윤태진(교보문고 북뉴스)
 
[종교]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 열림원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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