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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거칠게 저항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 등록일2017.02.27
  • 조회 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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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격동의 시절을 관통하며 살아온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대가 만든 비극, 국가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잘못의 희생자들에 대한 고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인물들에게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소설 속 이들의 억울함이 못내 안쓰러웠지만 그 시대를 살았다는 게 잘못일 뿐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이어 작가에게 물었다.국가가 지워준 삶의 고통, 세대를 이어가는 아픔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대답은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시대의 희생자일 뿐이고 다가올 미래는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대답 밖에는.
 
작가는 원래 다섯 권 분량의 소설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한 권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소설에는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공터가 많아 보인다. 어쩌면 그 공터 사이에 담지 못한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인물들 간의 보다 깊은 관계, 흥미로운 과거의 사연들, 마지막 장 그 후의 이야기들이 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라진 이야기가 아쉬웠지만 늘어난 공백으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의 아쉬움이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조금이나 해소되길 바라며 인터뷰를 전한다. 더구나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작가의 각오도 들을 수 있으니, 아쉬움은 다음 작품으로 해소하자.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 대해서는 별 소감이 없고. 책을 너무 오랜만에 내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단편소설도 에세이도 쓰곤 했지만 장편소설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몸이 안 좋아서 허덕허덕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몸이 좋아졌으니까 앞으로는 많은 글을 쓸 생각입니다.
 
단편소설 <고향의 그림자>가 이 소설의 밑그림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의 소설인가요?
 
고향의 그림자는 '귀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썼는데 피폐해진 고향으로 돌아오는 강력계 형사의 얘기였습니다. 그것이 이 <공터>에서 나오는 큰아들 마장세의 귀환하고 맞물려 있는 겁니다. 어머니 이도순이 나중에 치매가 걸려 고생하는데 그 대목, 그 장면이 그 단편에 잠깐 나왔었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크게 확대시킨 겁니다. 이야기의 시간과 구조를 1920년대로 돌아가서.
 
이야기의 배경을 1920년과 70년 사이로 잡은 이유가 있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1910년생이거든요. 제가 1948년생이고요. 그 두 세대를 어림잡아 보니까 1920년에서 1970년까지 되더라고요. 우리가 일제를 통과하고 6.25를 겪고 군사독재가 시작하는 그 무렵이죠.
 
 
작가의 말을 보면, 마음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고 적으셨습니다. 1920년부터 70년까지의 시절을 그리셨는데, 당시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시나요?
 
저도 1920년대, 30년대 얘기는 어른들한테 들은 것입니다. 내가 3살 때 전쟁이 났거든요. 1.4후퇴 때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갔어요. 그 때 우리 아버지는 어디로 가셔서 없었고, 우리 삼남매를 어머니 혼자서 데리고 부산까지 가셨어요. 그 때는 어머니가 젊었었죠. 어떻게 갔는지는 몰라요. 다행히 하나도 안 죽었어요. 가다가 기차도 타고 걸어도 가고. 그 때 내가 두 살 때였어요. 그런 얘기를 들어왔고 또 지나서 사진들로 봤습니다. 전쟁 때 사진, 대동강 철교가 끊어져 피난민들이 건너오는 사진, 흥남부두 폭격하는 사진들을.
또 우리 어렸을 때 아버지들이 행패부리고 바람 피는 것도 다 봤어요. 당시 우리들은 친구 아버지들이 바람피고 다니는 걸 다 봤어요. 서로서로 다 알았는데 왜냐하면 학교가면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요즘 어떻게 하고 다닌다고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또 그런 건 별거 아니라고.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더 쌘 줄 아냐고 자랑을 했죠. 그런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은 쓰기가 쉬웠어요. 그런 얘기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서 쓰면 되니까.
 
이런 글도 쓰셨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인상들이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고. 소설로 기억을 쏟아내고 이제는 과거를 잊고 싶다는 뜻인가요?
 
그게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어쨌든 한번 써서 털어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 기억들이 평생 들러붙어 있어서 글을 써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고생하신 그런 과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이 있어요. 고통.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걸 떨쳐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글을 썼는데 떨쳐버리지를 못했어요.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런 기억이 많으셨나 봅니다. 처음에는 5권 분량으로 쓸 계획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다섯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며 몸이 안 좋아져서 실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 줄여버렸습니다. 어떤 구조로 쓰겠다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다 해놓고 글을 썼었는데 쓸 수가 없어 다 드러낸 거죠. 그래서 장과 장 사이에 공터가 많습니다. 원고를 걷어낸 자리예요. 그런데 줄이길 잘한 거 같습니다. 줄이지 않았으면 붙잡고 쩔쩔매다 못 쓸 뻔했죠.
 
건강이 나아지셨는데 다시 나머지 분량을 집필해볼 생각은 없으신지?
 
이제 다른 거 써야죠. 난 한 작품을 마무리 지으면 그 작품은 다시는 안 보려고 합니다. 지겨워서 못 보겠어요. 난 책이 나오면 지겨워서 열어보질 않아요. 아주 지긋지긋해서. 열어보면 자꾸 자괴감이 생겨요. 내가 왜 이렇게밖에 못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서. 싹 때려치우고 다시는 안 쓰겠다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또 쓰게 되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소설은 지난 시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대의 굴곡을 견딘 아버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왜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그토록 외로웠을까요?
 
여러 계층의 아버지들이 있겠지만 제가 본 주변의 아버지들은 시대의 중압감에 시달려 살아온 완전한 피해자입니다. 늙은 말이 짐을 실으면 일어서질 못하잖아. 찌부러지잖아요. 지난 시대의 아버지들을 보면서 짐을 싣고 일어서지 못하는 늙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성이 마씨입니다. 비루한 말. 전쟁에 나가는 말이 아니라 시골에서 똥구르마를 끄는 그런 말이에요. 늙어서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말들. 책의 표지에도 말이 그려져 있고.
시대의 피해자. 그 시대의 아버지, 그 사람들 자체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이 시대의 피해자 아니면 추방된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도망친 사람들. 시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러한 아버지들이죠. 그런 아버지들은 지금도 많아요.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 세 인물의 이름도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자 이름의 뜻은?
 
장세는 큰 아들이고 차세는 둘째 아들이고. 독자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거예요. 읽기는 편하잖아.
마동수는 동녘 ''자에 지킬 ''자를 쓴 건데.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과장된 이미지를 갖고 태어난 거지. 동수의 아버지가 과장된 허세를 넣어 이름을 지은 거지.
 
실제로도 소설 속 세 남자는 늙은 말을 연상시켰습니다. 힘없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말. 하지만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이죠. 그것은 어떻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총체적인 비극. 거기에서 그런 하중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장세 같은 놈들입니다.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죠. 다시 쇠고랑 차서 끌려 오잖아요. 벗어나지 못하고 남산경찰서로, 자기 큰아버지 남수가 매맞던 곳으로. 바로 그 자리에 돌아와 실패하죠. 반면 차세는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인간입니다. 적응하면서.
 
힘겨운 시대를 지나 이제는 조금 여유로운 시대가 되었지만, 요즘의 아버지들 역시 여전히 외로운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요즘의 아버지들 역시 그 때와 비슷하겠죠. 가혹한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옛날에 있던 가부장의 권위가 없어져버렸잖아요. 우리 아버지의 시대가 가난하고 억압되고 짓밟힌 시대였지만 가부장의 권위는 시퍼렇게 살아있었습니다. 우린 그 앞에서 꼼짝을 못했어요. 아버지의 권위 앞에서. 지금은 그런 가부장의 권위가 없어졌습니다. 무력하고 의지가 되지 않는 아버지가 되어버린 거죠. 대다수의 아버지가. 집에 와봐야 아버지의 권위가 없고, 사회에 나가면 또 사회에서도 그 아버지 같은 권위는 없어요. 탈권위의 시대로 가는 거죠. 살기는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재벌이 있고 대기업이 있고 하청업체가 있고 재하청업체가 있고 생산자가 있고 유통업체가 있고 1차 유통이 있고 2차 유통이 있고 이런 먹이의 구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적대관계입니다. 단계마다 관계가 다 적대적이에요. 내가 많이 먹으려면 저 놈이 덜 먹어야 하는 겁니다. 가장 치열한 먹이 사슬의 관계가, 내 생에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먹이사슬 속에서 가부장의 존재는 점점 초라해지고 기댈 곳 없이 되어가는 거죠.
 
어떤 면에선 더욱 가혹한 세상이 된 것이네요.
 
그 때보다 가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 구조는 같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죠. 제가 어렸을 때는 국민소득이 80달러였어요. 내가 중고등학교 때. 그건 밥을 못 먹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소말리아나 이디오피아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 3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80달러에서 3만 달러가 될 때까지 살아온 거지. 오래 산 거지. 그런데 그 때의 가난은 보편적인 절대빈곤입니다. 생산자체가 안되고 기술 축적이 없고 자본의 축적이 없기 때문에 다 가난한 거지. 몇 놈만 잘 살고. 보편적인 절대 가난. 하지만 지금의 가난은 부의 편중에 따른 계급적 가난입니다. 경제의 구조가 만든 가난. 80달러에서 시작해 발전을 했지만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난이 존재하는 방식만 바뀐 거지. 이 구조적이고 계층적인 가난이 토착화 되고 일상화 돼버린 겁니다. 가난의 형태가 달라졌지만 이래 가난하나 저래 가난하나 마찬가지잖아. 본질은 마찬가지지.
하지만 난 가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물적인 토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분배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거지. 할 수가 없어. 돈이 없어서 해결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그런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마장세, 마차세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무척 오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과 증오가 겹쳐 있는 거겠지. 마장세는 사랑도 아니고 증오도 아니고 그저 벗어나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마차세는 자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인간의 중층적인 심리. 사랑과 미움이 같이 있는 것. 그립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만나고 싶기도 한 그런 감정을 소설에 그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게 잘 된 것 같지가 않습니다. 때때로 그것이 너무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지고. 내 뜻대로는 안된 것 같지만 할만큼은 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어요.
 
마동수, 이도순은 왜 두 아들에게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야 했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효도, 그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님이 자꾸만 효도를 하라고 강조를 하잖아요. 그게 효도라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자꾸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거지. 그런데 새들을 보면 그런 게 없어요. 효도가 없어. 훨훨 날아다니고. 짐승도 숫놈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고. 암놈도 몇 달 기르다가 가버리고. 저놈들은 사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인간을 옭아매는 속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우리가 거역하면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 운명을 잘 성찰할 필요가 있겠지.
난 새들을 보면 부러워요. 철새들을 보면. 우린 집 짓고 살지만 새들은 아무렇게나 날아다니면서 살잖아. 고향이고 타향이고 없어. 고향, 타향은 인간에게만 있는 거지.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이라고 하신 걸 봤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하는 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입니다. 작가님의 솔직한 생각은?
 
갑질은 우리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선생한테 돈을 가져다 준 놈들은 겨울에 난롯가에 앉아요. 우리같이 못 가져다 주는 애들은 천막 구석진 곳, 찢어져 찬바람 들어오는 곳에 앉아 있는 겁니다. 선생은 자리를 바꿔주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다 알았어. 저들은 왜 난롯가에 앉는지를. 그것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이 나라의 현실이라고. 세상은 이렇게 썩고 부패하고 갑질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정유라 같은 아이들이 그걸 완성한 거지.
패배의식이 너무 오래, 뿌리깊게 장기화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체념, 일종의 허무감. 피로감. 그런 것에 빠져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일신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갑질의 구조를 변화시키려고 수십 년 노력해왔지만 최근 벌어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 이건 엄청난 국가 권력을 이용한 갑질의 시스템이 다 드러난 겁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개인의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지금은 권력의 정상부터 갑질의 시스템이 작동을 한 거죠. 이런 갑질에 대한 분노가 분노로 끝나지 않고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겁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희망으로 연결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희망으로 연결되려면 정치지도자들이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굉장히 중요한 선거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시대를 거쳐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주로 다뤄오셨는데 공터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할 젊은이들을 위해 보다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주실 생각은 없는지?
 
글쎄 젊은이들은, 더 거칠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들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도덕적으로 반성을 하고, 젊은이들을 포용하며,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은 어리석은 거예요. 절대 반성하지 않아요. 내가 70년을 살아봐도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거칠게 저항하고 따지고 덤벼들고 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득권들은 절대 자기 것을 내려놓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지금 젊은이들은 너무 양순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짓밟아놔서 그런지 모여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개혁을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70~80년대 젊은이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젊은 에너지의 폭발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젊은이들을 선동하는 게 아니에요. 기성 기득권 세력을 개혁하려면 그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더욱 정치적으로 변해야 해요.
 
너무 짓밟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이 너무 무서우니까. 거기서 흩어져버리는 거지. 개인이 되어버리는 거지.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공고화되면 공고화될수록 더 흩어질 수밖에 없는 건가요?  
 
젊은이들이 정치적인 연대를 통해 발언을 계속해야 해요. 시정과 개혁을 요구하지 않으면 기득권 세력의 반성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전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요. 인간의 도덕적인 각성에 의해서 시대를 바꾼다는 것은 환상적이고 너무나 낭만적인, 안일한 생각 같습니다.
 
친구분들은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자고 하고 조카들은 촛불집회에 참석하자고 한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참석하지 않고 관찰자 시점으로 서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관찰도 일종의 참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사태는 반드시 관찰자가 필요합니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관찰자들이 있어야만 이런 사태가 건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일들을 글로 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에세이와 같은.
 
글을 쓰는 것 외에 조금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계획은 없으신가?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책을 선택한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책을 통해서 그 희망을 조금밖에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존재하지 않는 헛된 희망을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희망의 작은 싹, 그런 것들을 눈여겨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작은 희망이 큰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연애하는 젊은이들이 길에서 끌어 안고 가잖아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의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들이 우리의 희망이지 정치 슬로건 이런 게 희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생들을 보면 또 희망을 느끼죠. 생명력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희망이고 미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생명, 그것만이 희망입니다.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사진, 영상_김수진
sujin2017@kyobobook.co.kr
 
공터에서 [소설]  공터에서
김훈 | 해냄출판사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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