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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마음껏 심심할 수 있는 곳”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 엄유정

  • 등록일2016.06.07
  • 조회 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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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본 아이슬란드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기가 지구 맞나 싶을 만큼 독특한 풍경이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지자 말을 잃고 입만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아름다움은, 압도적이었다.
언젠가는 아이슬란드에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는 항공편도 여의치 않고 물가 비싸기로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말로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인 것이다.  
 
그림 작가 엄유정의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는 저자가 아이슬란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머물렀던 한 달 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실 이 책,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혹은 아이슬란드에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책을 통해  대리만족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적당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엄유정 작가가 머문 곳은 아이슬란드 북부 끝자락, ‘올라프스피외르뒤르'라는 작은 어촌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는커녕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그...... 그곳에서 뭔가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저 매일 눈 덮인 산 쳐다보고 그림 그리고, 꼼지락꼼지락하는 일상 생활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 아이슬란드 이야기를 읽다보면, ‘, 여기 엄청 심심하겠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면, 여기 정말 아무 것도 없네'라는 말을 저절로 중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어졌다고 하면 말이 될까? 아이슬란드에 가서 더욱더 격렬하게 심심해지고 싶은 이 마음은 대체 뭔가 싶다.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예전부터 아이슬란드의 풍경들을 사진이나 웹으로 보면서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슬란드 출신의 밴드, 뮤지션들이 나오는 음악 다큐멘터리도 보고요. 그런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약간 충격이었을 정도였죠.
 
아이슬란드 북쪽 시골 마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머물렀는데요. 그곳에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경비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저는 일단 여행을 가면 최대한 버틸 수 있는데까지 오래 버티는 스타일인데 물가 비싼 아이슬란드에서는 굶어 죽을 것 같았어요(웃음). 그래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다가 그곳을 발견해서 지원을 했죠. 공간도 크고 작가들에게 주는 혜택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정 기간 특정 장소에 거주하면서 작업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런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전세계에 수 천 개가 있는데 아이슬란드에도 생각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아이슬란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상상했던 그대로였나요?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조용해서 좀 이상했어요(웃음).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크게 많지 않았어요. 물가 비싼 거랑 날씨가 좀 험해서 고생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요. 하지만 풍경 자체가 너무 좋으니까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실재하니까 그게 충격이었죠(웃음).
 
  
책에서는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요. 그림만 봐도...아이슬란드가 느껴져요. 그 심심함이랄까요(웃음) 그런 것들도요.
제가 아이슬란드에서 받았던 임팩트들을 가능하면 그림에 담고 싶어서 애를 썼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실제 공간은 그림보다 훨씬, 훨씬 좋아요. 최대한 담아보려고 했지만 그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정말 작구나라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림들을 보면, 색감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색상들을 아이슬란드에서는 많이 발견했나봐요.
정말 달라요. 그게 제일 좋았고요. 길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색상들을 볼 수 없어요. 한국에서 들판은 풀 때문에 초록색인데 아이슬란드에서는 거의가 이끼라서 느낌도 다르고 초록색 풀에 보라색이나 연분홍색이 섞여 있어요. 우리가 알던  풀색이 아닌 거죠. 그렇게 자꾸 색에 대한 감각을 전복시켜주니까 시각적으로 해방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특히 파란색이 정말 달라요. 뭐랄까….네온싸인에서 볼 수 있는 형광 파란색이에요. 아름답다기보다는 기이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요. 그 영향 때문인지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뒤로 파란색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에서는 눈 덮인 산을 많이 그렸는데요. 처음부터 설산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간 것이었나요?
전혀요(웃음). 레지던시가 있는 곳이 어촌이라고 해서, 가면 어부들을 그려야겠다 생각하고 왔는데, 마을에 사람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이제 뭘 그려야 하나 굉장히 낙담했어요. 제가 있던 마을에서는 외부로 나가기도 힘들고 교통비도 비싸고 해서 반 고립 상태에 있다보니 어쨌든 마을 안에서 그릴 것을 찾아야 했죠. 그때 산들이 보였어요. 산들이 너무 아름답고 빛을 받을 때마다 하루하루 달라지길래 그래, 산을 그려야겠다 생각했죠. 저는 원래 인물 드로잉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서 산을 그린다는 것은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고 저도 상상도 안 했던 일이거든요.
 
아이슬란드의 산은,  산에 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이 산만 덩그러니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쩌면 저도 모르게 사람들 자체에 지쳐있었나 봐요.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사람이 없는 풍경을 그리니까 그게 스스로에게 환기가 되더라고요. 마음이 굉장히 담백해지고 깨끗이 청소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  게다가 눈으로 덮인 산이니까, 하얀 눈으로 산을 덮는 행위 자체가 주는 개운함도 있고요.
산을 그리기 전에는 그냥 똑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을 그리자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볼거리가 많아지더라고요. 눈이 계속 녹으니까 산의 모습도 계속 달라지고요. 하늘색도 한 시간 마다 바뀌고요. 그릴 것이 온 천지에 널려있는 거에요(웃음).
 
 
외딴 마을에서 거의 혼자 그림만 그리면서 있다보면 외롭거나 답답하진 않았나요?
그곳에서 평생 살라고 하면 굉장히 괴로웠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떠나는 날을 알고 있으니까, 이 생활 자체가 유한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거죠. 물론 가끔은 너무 외로워질 때가 있긴 하죠. 너무 말을 안 하고 사니까(웃음). 제가 있던 곳이 변두리다 보니 어르신들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세요. 아이슬란드 말은 또 너무 낯설잖아요. 그럴 때는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그러죠.
 
그곳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무뚝뚝한데 또 따뜻하기도 해서 묘한 매력이 있던데요.  
마을 분들은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가장 부러웠어요. 제가 한 달 정도 여행자로 살았기 때문에 그 공간을 미화해서 보는 걸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그래요. 여유롭고 느린 시간을 살고 있는 느낌.
그곳에는 뭐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마을 사람들끼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요. 모여서 수영도 하고 진지하게 차려입고 저녁 식사도 하고 또 음악회도 열고요. 너무 할 게 없거든요. 그리고 자연 환경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니까 사람들이 겸손하고 욕심이 없어 보였어요. 대신 추워서 그런지 다들 초콜릿을 많이 드시고,  그래서 풍채가 크세요(웃음). 아무튼 거의 아무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 최대한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가면서 알차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을 그린 드로잉을 보면, 표정들이 무뚝뚝한데 어딘가 귀여워요.
제가 원래 그런 걸 좋아해요(웃음). 무서운데 웃긴, 남자도 아닌데 여자도 아닌 것 같은 그런 거요. 인물들도 너무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제가 받았던 인상 중에서 좋았던 것을 함축적으로 그려내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서 그리고 싶어하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작업을 하는 정서랑 공간이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림 안에서도 많은 이미지를 넣기보다는 최대한 걷어내고 비워내서 최소한의 것만 담고 싶어하거든요. 그래서 평소 제 작업을 알던 친구들은너가 좋아할 만한 곳에 갔다'고 애기하기도 했고요. 사실 아이슬란드가 모두에게 좋은 공간은 아닐거예요. 제가 아는 동료 작가도 너무 외로워서 매일매일 엉엉 울다가 왔다는 분도 계세요. 사람마다 다른 거죠.
 
레지던시에 같이 머물렀던 호주의 사운드 아티스트 케이트 칼과 공동으로 작업한 애니메이션터널'을 웹사이트에서 봤어요.  아이슬란드의 바람 소리가 너무 인상적이던데요.  개인적으로아이슬란드의 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떤 소리인가요?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리는 소리가 없다는 거였어요. 보통 한국에서, 특히 도시에서는 기본적으로 여러 소음들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옆집 애가 운다거나 개가 짖는다거나 자동차 소리 그런 것들에 늘상 노출되어 있죠.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는, 특히 밤에 밖에 나가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사람도 없고 동물도 너무 추우니까 길에 돌아다니지 않거든요. 바람도 없고.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멈춘 듯한 그 느낌이 살짝 무섭기도 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새벽에 혼자 마을을 산책하는 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워낙 사람이 없는 공간이다 보니까 곧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서운 거라고는 추위뿐이죠. 너무 추워서 동상 같은 게 걸릴까 봐  좀 걱정했는데 그나마 4월이라서 한겨울에 비하면 덜 추운 편이었어요. 여름에는 눈이 녹아서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된다고 하는데, 책 많이 팔아서 여름의 아이슬란드도 가보고 싶어요(웃음).
 
레지던시에서의 마지막 날, 그곳에서 그린 설산 그림을 전시했잖아요. 마을 사람들에게는 평생 매일 보고 살았던 산을 그려서 보여준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을텐데요.
사실 전시회에 사람들이 올 거라는 기대를 안 했어요. 마을에 있는 동안 워낙 사람을 못 봤으니까요. 사람이 와야 반응이 어떨까 생각을 하죠(웃음). 그냥 그 동안 내가 그린 것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면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많이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림들을 굉장히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마을 분들은 그 산들을 평생 보고 살았지만 그걸 그림으로 본 적은 없었던 거죠. 제가 산을 단순하게 라인만 그리기도 하고 생략해서 그린 것도 있는데, 마을 분들은 그림 속 산이 어딘지 다 아시더라고요. 그것도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아이슬란드 다른 곳도 여행을 하셨는데요. 저는 비크(Vik)의 검은 바다가 인상적이었요.
그건 화산재 때문에 바다의 모래가 전부 까맣게  된 거에요. 그곳에 간 날, 마침 비가 왔어요. 바닷가에 서 있으니까 먹먹하기도 하고, 지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익히 알고 있던 바다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거든요. 바다도 어두운 검은색, 모래도 검은색이니까 공간 자체가 흑백의 공간이었어요. 제가 무채색의 회화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죠.
원래는 선으로 그림을 많이 그리는 편이었어요. 인물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 그런데 아이슬란드에 가니까 선보다 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풍경들이 굉장히 평면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도시에는 길이며 전선줄, 간판의 텍스트, 그런 시각적인 자극들이 굉장히 많지만 아이슬란드는 그런 것들을 다 걷어낸 평평하고 넙적한 풍경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면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생경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에 갔던 것이, 결국은 한국에서 잘 살기 위해서였거든요. 이곳에서 정서적으로 다 털린 상황에서 다시 힘을 얻어보려고, 이곳에서 씩씩하게 살기 위해서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 간 거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마냥 아쉽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서울에 오니까 황사비가 내리고 있더라고요. 하늘도 흙빛, 온통 탁한 황토색이고요. 아이슬란드에서는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고 눈에 보이는 것도 또렷했는데, 여기서는 뭔가 레이어가 하나 덮여있는 느낌이고 공기도 너무 안 좋게 느껴지고요. 서울의 어린이들은 아이슬란드 같은 그런 자연을 모르겠구나 생각이 들면 좀 슬픈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에서 그린 그림들을 한국에서 전시했는데요.
문래동 철공소 골목 사이에 아티스트 레지던시 같은 곳이 있는데, 2014년에 그곳에서 전시를 했어요. 한여름이었는데, 철가루 날리고 아저씨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뜨거운 공간 사이에서 아이슬란드 그림을 걸고 에어컨을 열심히 틀었어요. 사람들이 그림 보러 와서는 갑자기아이, 차가워!’하는 느낌을 들게 하려고요. 나름 동네 친구들도 많이 오고, 아이슬란드의 느낌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물가가 좀 비싸긴 하지만 방법을 찾으면 충분히 저렴하게 있을 수 있어요. 다만, 단체 관광이나 볼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이슬란드 말고 다른 곳에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는, 마음껏 심심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심심해도 죄책감이 안 들고요. 그렇게 심심하고 적적한 느낌, 사실 여기에서는 못 느끼잖아요.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에 불안해지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햇살이 변하는 걸 바라보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고요.  아마 제가 여행자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요.
한번쯤은 가보면 좋은 곳이에요. 지구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이슬란드에  너무 가고 싶어지네요(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아트북스
 
 
나의 <!HS>드로잉<!HE> 아이슬란드 [예술/대중문화]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
엄유정 | 아트북스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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