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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전문 작가 백영옥이 말하는 ‘사랑의 시차‘

  • 등록일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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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꿈꾸는 포르노그래피 사진작가 성주 그리고 그의 노련한 접근에 어느새 흔들리는 마리, 그리고 그 남자가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 수영. 성주를 짝사랑하여 그의 집에 숨어 들지만 오히려 성주의 연인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또 다른 여자 정인. 자칫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를 연상하는 관계의 연속이지만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사랑은 저마다 진실되고 또 각자의 방식으로 뜨겁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이후 4년 만에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펴낸 백영옥. 자칭 실연 이야기 전문 작가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가슴을 묵직하게 만드는 '실연'을 들려준다. 흔히 기대하는 실연 이후의 따뜻하고 달콤한 사랑 역시 찾아 보기 힘들다. 지저분한 이별과 실연 후의 차가운 현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원한 사랑은커녕 둘이 동시에 사랑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는 사랑의 시차를 호소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안타깝고 복잡한 것이라고.  
백영옥 특유의 담담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이번 소설은 그래서인지 실연의 쓸쓸함이 더욱 핍진하게 다가온다.
 

오랜만에 소설을 출간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나요?
 
하도 오랫동안 소설을 안 썼더니 사람들이 제가 소설가인걸 모르더라고요. 기사나 칼럼을 많이 썼더니 기자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고요. 작가적인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인간적인 과도기.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도 많았고.
제가 지금껏 안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 선택, 사랑, 그리움, 집착, 미련 이런 명사나 동사들에 대한 정의가 바뀌어 버렸어요. 그래서 글을 못쓰겠더라고요. 작가들이 한번씩 그런 과정을 겪는데요. 그래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제가 너무 많이 떠들어서 사람들 말을 못 듣고 있더라고요. 귀 기울여서 듣는 능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소설 자체가 사실은 사랑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예요. 기쁨이 없어요. 다 슬퍼요. 하나도 이뤄지지 않아요. 다 헤어지고 잘 안되고. 고통은 기쁨으로 잊어지지 않아요. 그만큼 강렬한 거예요. 세상에 대해 느끼는 통증 같은 것을 소설 안에 녹여낸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 때문에 소설이 좀 더 어두워진 것 같아요.
 
일종의 사춘기를 거치신 건가요?
 
심리적 사춘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리가 잘 안 되는 시기. 그렇다고 지금 정리가 된 건 아니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이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전혀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그런 게 없으니까. 어떤 일에 있어도 확언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가 않아요. 그래서 모호한 글을 쓸 수 밖에 없어요. 이 책에 보면 '거의' 라는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발뺌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깨달음의 한 종류예요. 그 말 안에 제가 겹겹이 느끼고 있는 것들이 들어 있어요. 사랑이나 괴로움은 단문으로 써지지가 않아요. 틀린 문장 같아요. 그래서 '거의', '간신이' 이런 수식어를 붙이고, 그러면 문장이 누덕누덕 해지죠. 단문을 쓰고 싶은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뭔가 힘든 시간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제가 과거를 바꾸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과거는 바꿀 수 없잖아요. 그런데 과거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가 겪었다고 생각하는 경험 조차도 바뀌거든요. 너무 안 좋았던 일도 훗날 돌이켜보면 큰 약이 되거나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돌이켜보면 우리는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의미가 뭐지? 꼭 의미를 찾아야 할까? 의미 강박증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소설을 못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의미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만드는 거구나. 의미는 없구나. 그 때 그 때 그 순간을 잘 살면 되는 구나. 인간은 어떻게든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서사화 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그 서사화라는 게 자기 한계를 규정 짓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의 배경이 뉴욕입니다. 이유가 있다면?
 
제가 뉴욕에 머무는 2주 동안 뉴욕 최악의 허리케인 '샌디'가 왔어요. 그래서 2주 가량 갇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스, 지하철, 전기 다 끊겼었어요. 마트에는 물건이 없고. 재난을 본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갇혀 있는 동안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고. 그 때의 기억이 강렬히 남아서 소설을 쓰게 된 거죠.
 
복잡한 관계가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신 이유는?
 
2012 12월에 ' Hello stranger' 라고 제가 문장 웹진에 단편을 발표한 게 있는데 그 단편이 이 소설의 일부예요. 그 때 제가 그 단편을 낭독했었는데, 그 단편을 인상적으로 보고 들으신 분들이 있었나 봐요. 그 다음 얘기가 궁금하다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그 작품과 이어지는 단편을 계간지에 발표를 했었고 그렇게 2부까지 나왔으니 그냥 3부까지 쓰자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웃음) 사람들이 궁금해하기도 했고 저도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사실 저는 비관적인 이야기, 상처나 고통, 실연, 실패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왜 울지 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고. 그런 점에서 이번 소설은 일종의 상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성주 라는 남자를 통해 서로가 얽혀 있죠.
 
유난히 고통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열쇠를 잃어버려서 막 찾고 있어요. 가로등이 있는 주변에서. 그래서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물으니까, 어두운 곳에서 잃어버렸다고 해요. 열쇠를 찾으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런데 쉽게 그 어둠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빛을 찾아가요. 이 소설은 어둠 속에서 어둠을 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 인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 오래 있으면 천천히 뭔가 보이잖아요. 그러한 역설이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혼이란 것에 대한 고민과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결혼은 어떤 사람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 주는 거 라고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는데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라는 말이 갖는 함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반전 매력이라는 것을 자주 말하잖아요. 그런데 결혼해서 반전 매력은 쥐약이에요. 반전 매력은 있으면 안돼요. 결혼은 별개의 세계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예상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을 자유를 속박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부간에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저절로 익숙해지는 게 아닌가요?
 
누군가를 믿어주면 그 믿음에 대한 신의를 깨지 않기 위한 자발적 노력을 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관계인 거죠. 규칙은 없지만 규칙 같은 게 존재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걸 억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 노력과 안간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결혼 뿐 아니라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갑과 을은 없어요. 그런 것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면 사랑은 너무나 경박해져요. 다양한 관계, 인간의 감정 역시 간단하게 도식화 할 수 없어요. 젊었을 때는 저 스스로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 사실 타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없으면 내가 없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리액션의 총합인 거예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의 총합이 정체성인 거죠.
소설 속에서 마리가 피해자고 성주가 가해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사랑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사랑이 변한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변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이 관계는 끝났어 라고 했을 때 얘는 맞고 쟤는 틀리다고 말할 수 없어요. 이 소설은 사랑의 시차에 대한 얘기에요. 좋아했던 속도가 달랐던 거예요. 성주는 마리를 좀 더 빨리 많이 좋아했던 거고. 마리는 천천히, 나중에는 더 많이 좋아하게 되는 거죠. 시차가 어긋난 거죠.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시차가 어긋나서 생기는 많은 갈등이 있거든요. 사랑은 굉장히 복잡한 거예요.
 

책을 쓰면서 기억에 남는 과정이 있었다면?
 
이 책을 쓰면서 좌골신경통이 왔어요.(웃음) 석 달을 앉아서만 썼더니 어느 날 다리에 전기가 지리릭 오더라고요. 그래서 서서 쓸 수 있는 테이블을 미친 듯이 알아봤어요.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서서 밥 먹고, 서서 책도 읽고 했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더니,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지 말라라 하더라고요. 그나마 발레를 하면서 근력이 생겨 오랫동안 서있을 순 있겠더라고요.
 
욕망과 사랑은 다른 말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대와 20대 시절의 남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자고 싶다는 걸 사랑하는 감정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고도 많이 치고, 일찍 애 아빠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혼동의 감정이죠. 근데 여기서 말하는 마리의 경우는 그런 걸 혼동할 나이는 아닌 거고, 오히려 그런 거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갖는 편견 중 하나가 여자는 사랑해야만 몸을 허락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종의 편견이에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자의 사랑도 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주인공 마리가 어느날 성주의 성적 매력에 빠지고 대책 없이 빠지게 되죠. 이 여자는 성주에 비하면 잃을 게 훨씬 많고 그래서 굉장히 조심하고, 경계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완전히 붕괴되는 경험을 한 거죠.
 
역시 답은 없겠지만, 작가님이 생각하는 순수한 사랑이란?
 
순수한 사랑이 가능하려면 짧게 사랑하고 길게 헤어져야 해요. 그리고 만나지 말아야 해요. (웃음) 그러면 순수 할 수 있어. 벼락같이 만나서 한달 간 연애 하고 한 삼십 년 헤어져있으면 순수해져요. 무지하게 순수해서 박물관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순수하다는 건 변태적인 거에요. 건강하지 못한 거죠. 그 순수한 마음이 그렇게 오래 된다는 건 미련이나 집착이 있는 병적인 상태에요. 우리는 그걸 굉장히 아름답고 아련하게 보지만요.
쿨한 척하느냐고 얼어 죽느니, 그냥 활활 타올라서 연소되는 사랑이 더 건강해요. 건강한 사랑은 있는 힘껏 사랑하다가 부서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다음 사랑에 자양분처럼 쓰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있는 힘껏 사랑하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 해줘야 할 말을 해주는 것. 지금 있는 사랑을 다 주는 것. 미루지 말고, 완전 쏟아 붓는 거죠. 어차피 우린 헤어질 거니까. 끝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끝이 없는 게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사와 밤에 꺼내 읽는 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에요. 이런 행위들이 자꾸 화석처럼 느껴져요. 마치 과거에 이런 아름다운 행위들을 인간들이 했었는데. 예전에 공중전화가 있을 때엔 좋아하는 남자한테 전화를 하려고 주머니 가득 동전을 넣어가지고 가 그사람이랑 통화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공중전화가 사라졌잖아요. 어느 순간 책을 읽는 행위가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운동도 칼로리 소비하듯 하고, 외국어도 어느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보단 스펙 쌓으려고 하고. 내 행위 하나하나를 나의 계발을 위해 쓰겠다는 강박관념이 진저리나요. 사람을 각박하게 만들어요. 멍 때린다거나 아무도 안 읽는 소설을 쓴다든가 지저분한 벽을 계속 사진으로 찍는다든가, 맥주 뚜껑을 계속 모은다든가 그런 행위들 있잖아요. 그런 행위들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어요.(웃음)
우리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 사나요? 승진을 하기 위해서?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보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것, 그런 걸 위해 자기 시간을 쓰고 있는 사람들, 무용하고 쓸데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자기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애인의 <!HS>애인에게<!HE>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 예담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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