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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좋은 사람’이 좋은 연주가다

  • 등록일2010.06.21
  • 조회 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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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복의 미소를 선사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들으며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설거지며 빨래 같은 집안일을 참 좋아하지만, 연주를 위해 세계를 누비는 ‘떠돌이’로 살아간다. 지향과 실재는 조금 어긋나도 그의 삶은 넘치도록 충만하다. 들려줄 음악과 공감해줄 사람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에겐 천국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그는 매일 꿈을 꾼다.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연주가가 되기를….
 
함께일 때 즐거운, 물러설 때 행복한
  

이런 ‘알람’ 처음이다. 그립지만 잊고 살았던 것들이나 가슴 아파 그냥 묻어둔 것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잠자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깨어나 마음을 흔든다. 눈물이라도 그렁거린다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비올라의 따뜻한 음색이 ‘연고’처럼 가슴에 스며, 그리움도 슬픔도 마음의 새살로 다시 돋아난다.
 
“올 초 발매한 5집 앨범 <슬픈 노래>는 아주 특별한 앨범이에요. 슬픔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2 <눈물>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친밀하고 한결 개인적이죠. 진심이 담긴 음악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만족스럽지만, 세계적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한국계 독일인)과 작업한 것도 참 행복했어요. 좋은 연주가와의 작업처럼 멋진 일은 세상에 없어요.
 
솔로앨범을 소개하면서도, 타인과의 조화에 방점을 찍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솔리스트일 때보다 협연자일 때 더 행복하다. 6명의 남성 클래식음악가로 구성된 국내 앙상블 ‘디토’의 리더로, 세계 최고의 실내악단이라 불리는 ‘링컨센터 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의 정식 단원으로,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체임버그룹인 ‘카메라타 파시피카’의 수석 비올리스트로. 여러 실내악단의 멤버로 활발히 활동해온 그는 혼자 하는 연주보다, 팀의 일원이 되어 다른 음악가들과 ‘대화하듯’ 연주하는 앙상블연주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그를 살아있게 한다. 2000년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그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모스크바 체임버오케스트라 같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다. 세계 최고들과의 작업은 그에게, 누군가와 함께 빛나는 것이 혼자 빛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는 걸 톡톡히 가르쳐줬다.
 
  
 
“중간음색인 비올라는 협연에서 빛나는 악기예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묻혀 존재감이 떨어지는 존재로 인식돼왔지만, 실은 높고 화려한 음색의 바이올린과 낮고 묵직한 음색의 첼로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맞춰주는 아주 중요한 악기죠. 앞에서 빛나는 악기가 아니라 옆에서 빛내주는 악기라는 게 참 마음에 듭니다. 그 물러섬을, 그 겸손함을 배우고 싶어요.
 
실은 이미 배운 것 같다. 세상이 그를 ‘최고 비올리스트’라 부른 지 이미 오래인데도 그는 좀처럼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천재라고 믿은 적도 없고,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겸손하게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영락없는 비올라다.
 
어제는 한국에서, 오늘은 뉴욕에서, 내일은 독일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는 1년의 절반을 호텔에서 묵는 ‘유목민’의 삶을 살면서도 단 하루도 연습을 건너뛴 적이 없다. 건너뛰지 않는 건 연주연습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도 적어도 일주일에 네 번, 50km 정도를 달리며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
 
“연주라는 게 아주 작은 변화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예민한 작업이에요. 엄청난 긴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마라톤이 큰 도움을 주죠.
 
벌써 두 번의 완주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올 봄 미국 LA마라톤에서 간절히 소망해온 완주의 꿈을 그는 마침내 이뤄냈다. 온종일 음악과 함께하는 그도 달릴 때만큼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바람소리와 자신의 숨소리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그 순간만큼은 그게 음악이다.
 
가족은 나의 힘, 비올라는 내 운명
 


모든 것은 ‘노란 집’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워싱턴 주의 작은 도시 세큄. 그곳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음악을 향한 그의 꿈은 잉태됐다. 집 앞은 온통 들판이었다. 어린 날 그의 꿈은 트랙터를 멋지게 모는 농부였지만, 그때 이미 음악가의 꿈이 싹트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분이었다. 빈 집에 홀로 있어도 그분의 LP판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그를 음악의 바다로 안내한 분이라면, 외할머니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봐준 분이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손자의 레슨을 위해 머나먼 길까지 기꺼이 운전을 맡아준 분. 돌아가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외할머니의 그 때 그 사랑은 아직도 그를 지켜주는 힘이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두 분에게 입양된 전쟁고아였다.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지적장애인이 된 그의 어머니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길러냈다. 어머니의 행복은 그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가난했지만, 그의 집엔 늘 음악이 흐르고 사랑이 넘쳤다. 그 따뜻함 속에서 그의 꿈은 자라났다.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그가 비올라를 만난 건 열세 살 때였다. 지역축제인 올림픽페스티벌에 바이올린 오디션을 치르러 가던 날, 무슨 이유에선지 지각을 하고 말았다. 오디션 장소에 허겁지겁 들어가니 바이올린 주자를 이미 다 뽑은 상태. 낙담한 그에게 선생님들이 말했다. 비올라주자는 아직 남아있는데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처음 비올라를 얹었는데, 어깨가 편안했어요. 바이올린보다 낮은 음역을 지녔지만, 소리가 깊고 부드러웠죠. 어머니의 목소리를 닮았다고 느꼈어요. 아이를 어르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정겹더라고요. 그날부터 바이올리니스트에서 비올리스트로 꿈이 바뀌었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난 건 열 다섯 살 때였다. 음악가의 꿈을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지만, 흔들림 없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남가주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비올리스트 최초로 줄리아드음악원 아티스트 디플로마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이후 그의 음악적 행보는 착실하게 성공가도였다.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미국 클래식의 가장 권위 있는 상) 수상,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솔리스트부문 노미네이트…. 눈부시게 화려한 이력을 하나 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행복한 기억들이 참 많아요. 그 가운데 오케스트라와 처음 협연하던 날 가족들이 찾아와 기쁘게 연주를 감상하시던 일과 디토 콘서트가 끝나고 모든 관객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 계시던 일을 잊을 수 없어요.” 자신의 연주가 누군가를 기쁘게 할 때. 그 순간에 그는 ‘천국’에 있다. 


아이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는 꿈 

 
꿈을 이루는 과정에는 ‘경쟁’의 순간이 흔히 온다. 특히 연주자는 각종 대회를 통해 우열을 가리는 일이 흔한 직업. 그도 경쟁을 한다. 하지만 그의 경쟁은 좀 다르다. 그로 말하자면 어제보단 오늘, 오늘보단 내일 더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이다. 매일 꿈을 이뤄도 매일 다시 꿈이 태어나는 그에게, 경쟁은 타인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하는 것이다.
 
“음악은 여전히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이에요. 꿈과 재능이 있어도 가난을 이유로 포기하는 아이들이 참 많죠. 그런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요. 물질적 후원도 해주고 싶고, 우리 할머니가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그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습니다. 
 
 
지난해 여름 보령 낙동초등학교 아이들과 나눈 음악수업을 그는 잊지 못한다. 전교생이 49명뿐인,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간이무대에도 서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여름 내내 음악을 가르치고, 제법 큰 무대에 함께 서던 추억이 아직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 아이들 중에 자신을 보며 꿈을 키우는 아이가 있기를 그는 소망한다. 시골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자신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듯, 그 아이들도 당당하게 꿈을 키워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는 꿈. 공부방 아이들을 초청해 연주행사를 하기도 하고,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찾아가 일일 바이올린교사를 하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 꿈 때문이다. 

 2007년부터 UCLA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요. 그 학생들을 좋은 연주자로 길러내는 것도 제가 이루고픈 꿈입니다. 가장 좋은 레슨은 성공한 연주가가 자신의 연주경험을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연주가가 되는 것이 좋은 스승이 되는 길이죠.

 
좋은 연주가가 되는 것이 좋은 스승이 되는 길인 것처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연주가가 되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마음을 내줄 줄 아는 사람에겐 아름다움이 그만큼 더 많이 손짓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많이 손짓해오니 음악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연주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게 끝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 ‘좋은 음악을 통해 세상 모든 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까지가 그의 꿈인지도 모른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깨끗하게 만드는 음악. 그 정도의 꿈 없이 그런 연주를 해낼 리가 없다. 그 추측이 맞는다면, 그가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그와 우리는 벌써 ‘한 배’를 탔다.
 
| 박미경(자유기고가)
리처드 용재 오닐의 꿈을 키우는 책
 
[문학/만화] Prayer for Owen Meany : A Novel
Irving, John | Ballantine
1990.04.01
 

사람과 책 2011년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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