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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책과 우연들』 김초엽

  • 2022.10.05
  • 조회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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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다보니 쓰고 싶어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피어나고 그 마음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글로 쓰여지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놀란다. 당연하게 보아 넘겼던 사소한 조각들, 그 우연들이 서로 엮이면서 지금의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주로 SF장르로 분류되는 소설을 쓰는 사람김초엽의 세계를 만들어간 이라는 우연들에 대한 책, 『책과 우연들』을 펴낸 김초엽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첫 산문집 『책과 우연들』을 펴냈습니다. 첫 산문집을 펴낸 소감, 어떤가요?
 
즐겁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올 한 해는 여유 있게 보내면서 소설을 많이 쓰기보다는 다시 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에세이 작업이 저에게는 그렇게 채우는일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 독서 경험들을 되돌아보고 각각의 책들이 어떻게 소설로 이어졌는지 짚어보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소설을 쓰는 것만큼 시간을 많이 들이긴 했지만, 좀 더 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이 에세이가 독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계속 고민이 되긴 했어요. 그냥 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뭔가 남는 것이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여러 고민과 고쳐쓰기 끝에 나온 책이라 각별한 마음이 큽니다.
 
 
'읽기'에서 '쓰기'로 가는 과정이란 것이, ', 그렇지. 많이 읽다보면 쓰고 싶어지는게 당연한 것 아니야?'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읽고 싶다' '쓰고 싶다' 사이에 정말 다양한 길이 있고, 둘 사이가 꼭 이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쓰고 싶은 글'에도 정말 여러가지가 있고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소설을 써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작가님은 '소설을 써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처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주 어렸을 때였어요. 초등학생 때 『해리포터』와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당시 유행하던 웹 연재 판타지 소설을 열심히 따라 읽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몇 번 시도해보고는 나에게 소설을 쓰는 재능은 없는가보다, 하고 쉽게 단념해버렸죠. 그 나이에 재능이 없다고 단념한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재미있긴 하지만, 다른 종류의 글쓰기는 제법 잘해서 성과가 있었는데 소설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를 못하니 그게 답답했나봐요.
십 대, 이십 대를 지나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사이에 새로운 작품들을 많이 접한 게 주된 이유였을 것 같아요. 소설이라는 게 꼭 이런 형식, 이런 장르만 있는 건 아니구나. 어릴 때 접했던 소설들은 소설 세계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구나.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설은 다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이 바뀐 이후에 소설 작법서를 접했고, 그때부터는 왠지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어요.


저는 막연하게, 작가님이 과학을 전공해서, 과학에 관심을 가져서, 그래서 SF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책과 우연들』을 읽어보니, ' SF 소설을 쓰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래도! 질문을 드리자면, 어떻게 SF소설을 쓰게 되었나요?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을 전공하다보니 SF가 익숙했고, 이건 약간 운이 따라준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도 SF를 쓸 계기가 많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 학교에서 교내 SF 공모전이 여러 번 열렸거든요. 이공계 학과만 있는 대학이다보니 그냥 소설 공모전이 아니라 SF 공모전인 게 특이했죠. 교내 SF 공모전을 준비하다가 쓴 작품으로 웹진 투고 기회도 얻었고요. 그리고 제가 소설 습작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이 열렸어요. 첫 회에는 아직 데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는데,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SF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어서 공모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조급함도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 해를 목표로 얼른 작품을 준비했어요. SF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약 공모전이나 지면이 없었다면 다른 장르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독자의 읽기와 '쓰는 사람의 읽기'는 분명히 달라요. 쓰는 사람이 되면 읽기에서 순수한 즐거움과 재미를 만나기는 좀 어려워지는 건 맞고요(웃음). 그렇지만 또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알게 되는 새로운 읽기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 새로운 읽기의 경험도 소중하고요. 작가님은 '쓰는 사람'이 된 후에 읽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였어요. 저는 원래 과학책, 그리고 일부 장르소설만 읽는 굉장히 편협한 독자였거든요. 그러다 소설가가 되니 저의 한정된 관심사로는 더 많은 글을, 오랫동안 써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가장 많이 읽는 책은 과학책과 장르소설이지만 그 밖의 책들도 기꺼이 펼쳐 들어요. 아무래도 독자로서의 취향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어서 그런지 실패 확률은 높지만, 그래도 예전이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분야의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는 기쁨도 커요.
그리고 좀 더 분석적으로 읽게 된 것이 있죠. 좋은 책을 만나면 순수하게 감탄하지 못하고, 혼자 경쟁심을 불태우기도 하는 것 같아요. “,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나도 이런 걸 써야 하는데.” 사실 그래서 다른 글 쓰는 분들의 리뷰에서 비슷한 말을 발견하면 특히 뿌듯해요. ‘이런 걸 만들고 싶다생각하게 하는 글이 정말 좋은 글 같거든요.
 
 
창작이라는 것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 말고 다른 창작의 방법과 준비가 필요한 것 같네요. 작가님도 밑천이 바닥났다고 느껴져서 괴로웠다고 했는데, 그때 작가님이 찾아낸 새로운 창작의 방법은 어떤 것이었나요?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일과, 내 안에 무언가를 어떻게든 쌓는 일이 병행되어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한 사람의 경험과 감정은 어차피 너무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누가 봐도 놀라운 인생사를 경험한 분들이 다 소설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작가의 내면에서 오는 것들이 그 작가만의 고유한 관점을 형성한다면, 그 관점으로 성실히 관찰한 바깥 세계가 바로 소설의 재료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 사람 사이의 갈등이 그 재료가 된다면 저에게는 자연과 우주, 혹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주된 재료였어요. 결국 무작정 읽기가 제 관점을 다듬고, 재료를 모아 다음 창작을 가능하게 해줬던 것 같아요.
 
 
창작자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필드, 장의 역사와 맥락을 아는 것은 어느 분야, 어느 영역이나 다 중요해요. SF소설들의 고전부터 동시대 작품들, 그리고 이론서와 비평서, SF작가들의 에세이들도 열심히 읽으셨던데, 그런 SF와 관련한 독서들을 통해서 찾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엄청 많은 질문이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좋은 SF를 쓸 수 있을까, 내 소설이 꼭 SF라는 장르에 속해야 할까, 또는 SF를 잘 알수록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 걸까……. SF의 세계를 열심히 탐험하다보니 조금씩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갈 수 있었어요. 이번 에세이 작업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과정이었고요. 작가마다 다른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저는 SF 장르를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은 소설을 쓰는 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논픽션 쓰기의 경험을 쓴 『얼렁뚱땅 논픽션 쓰기』에서, 참고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저작물의 공적 의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나의 글이 언제나 나의 것인 동시에 공동으로 쓰이는 글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논픽션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지만, 소설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 같아요. 나의 글 혹은 창작물이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무언가가 아니라, 타인의 글과 생각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연결망 위의 하나의 점 혹은 쌓아 올린 장벽 위의 벽돌 하나와도 같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과학을 전공했던 터라 그런 생각이 좀 더 강한데, 천재라고 불리는 위대한 과학자들도 오직 홀로 놀라운 일을 해낸 것은 아니거든요. 현대 과학으로 올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요. 가끔 창작계에서는 이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거나 뒤집어 엎는 듯한 탁월한 작품들이 나타나지만, 사실은 그 작품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작품들 없이는 탄생하기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결국 나 혼자 한 건 아니라는 거죠. 논픽션 집필 경험이 좀 더 그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 것 같아요.
 
 
서평과 비평 읽기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서평의 진가는 책을맥락화하는 것에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책을 맥락화한 서평이란 어떤 것인가요?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 혹은 어떤 글이 아무런 흐름이나 계보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도대체 어떤 흐름 위에 탄생한 것일까, 그것을 짚어주는 서평을 좋아해요. 꼭 직접적으로 짚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 분야를 잘 아는 서평가일수록 서평에 아주 자연스럽게 이 책이 어떤 맥락을 따라 나온 책인지를 서술하더라고요.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책의 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지나친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게 되고요.
 

 
책과 우연들, 서점 직원인 저도 잊고 있던 '우연히 만난 책'이 주는 기쁨과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글이었어요. 큐레이션이다 알고리즘이다 해서 비슷한, 연결되는 컨텐츠를 모아서 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우연한 발견, 그리고 이것저것 마구 섞여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의 반응 같은 것들을 잊고 있었거든요.
'
우연'한 책들이 가져온 기분 좋은 경험 중에 몇 가지 이야기해준다면요?  
 
과학책 서평을 연재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국내 출간된 거의 모든 과학책을 살피다보니, 서평을 쓰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보석 같은 책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한편으로는 편집자님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며 선물로 보내주시는 책들도 재미있어요. 어떤 편집자님들은 마치 자기소개처럼 책을 선물로 주시곤 해요. 꼭 본인이 편집한 책이 아니어도, 그 출판사에서 나온 여러 책 중 제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고르셨다고 하는데 읽어보면 취향에 꼭 맞아서 신기할 때가 있어요. 저에게 추천사 제안이 들어오는 책들도 어떻게 보면 그런 책들인데, 마감 일정 때문에 추천사를 못 쓸 때가 많지만 출간이 되면 가급적 직접 읽어보는 편이에요. 어떤 작가가 이 책을 좋아할까, 깊게 고민하고 추천사를 의뢰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생각지 못했던 분야의 의미 있는 책이 많아요.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발견하는 책들도 무척 좋아해요. 최근 제가 그렇게 발견한 책은 『태국 문방구』라는 책인데요. 서점을 둘러보다가 제목을 보자마자 집어 들었어요. 조만간 태국에 다시 갈 생각도 있고 저도 문구류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다음 여행에는 꼭 남들이 가보지 않는 소박한 곳으로 가봐야겠다, 다짐하게 만든 책이었어요.
 
 
혹시 쓰는 사람이 아닌, 그저 읽는 사람으로서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던 책이 있었을까요?
 
작년에 읽은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신작인데, SF이지만 제가 쓰려는 소설의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르다보니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푹 빠져서 읽었어요. 꼭 스포일러 없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완벽한 작업실, 궁극의 도구를 찾아 헤맨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결국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는 것과 글을 쓰는 것과는 꼭 맞아떨어지는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웃음) 그래도 아직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이런 곳에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면요?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아직 있어요. 마침 코로나19로 봉쇄되어 있던 국경이 열리기 시작해서, 이번 겨울에도 치앙마이로 가서 소설을 쓸 생각이고요. 북적북적한 관광지보다는 좀 여유가 느껴지는 도시에 머물며 글을 쓰는 게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부다페스트에도 가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이번 에세이 작업을 하면서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많이 생각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시 저에게는 글을 기다리고 또 읽어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아요. 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 제공_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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