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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이재경 “사물이 구르면서 끈끈이처럼 생각들을 모으는 이야기”

  • 2022.05.16
  • 조회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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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사물에 매혹될 때가 있다. 사물의 물성 그 자체에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물을 둘러싼 것을, 사물에 담겨진 감성들 때문일 때도 많다.
『설레는 오브제』는 번역가로 언어를 옮기던 저자가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텍스트로 옮겨낸 책이다. 사물이 인간과 맺어온 특별한 관계, 그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맺은 저자와의 관계들 속에서 사물은 세계를 바라보는 프리즘이 되어준다.
 『설레는 오브제』의 저자 이재경과의 서면 인터뷰.
 

 
번역가로 오래 활동해오셨지만, 책을 직접 쓰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설레는 오브제』의 저자로서 독자님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월급쟁이의 삶을 전전하다 지금은 10년 넘게 전업 번역가로 일하는 이재경입니다. 텍스트가 좋고, 책이 좋고, 언어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짜릿함이 있었기에 이 일에 들어섰습니다. 번역으로 부자가 되거나 문명(文名)을 떨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고, 실제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들어오는 대로 꾸준히 번역하는 수많은 생계형 번역가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번역가들의 전형과 평균을 점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이 그렇듯 번역에도 ‘전공불문’의 룰이 먹힌다는 것을 증명하며 삽니다.
 
 
『설레는 오브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요?
 
사물이 주인공인 오브제 로맨스 30편을 담았습니다. 로맨스(romance)가 원래 모험담이란 뜻입니다. 사물이 좌충우돌 구르면서 끈끈이처럼 생각들을 모으는 이야기입니다. 사물이 연상의 시작점이 되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문학, 언어, 역사, 심리, 미술 등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소소하게 소환됩니다. 너무 거창했나요?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물에 대한 감상에 기대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 시대에 대한 제 생각을 들먹여보고 싶었습니다.
 
 
책에서는 30개의 사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스콘처럼 일반적으로 오브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법한 것들도 있습니다. 책에 담은 오브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도 받은 질문인데 늘 어려운 질문입니다. 30개의 오브제 중에는 제게 실제로 연이 닿았던 것도 있고, 텍스트나 미디어로만 접했던 것도 있고,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것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사연이 있을 법한 것들이었고, 실제로 파봤을 때 사연이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런 사물이 세상에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 제 사적인 연상으로 제 나름의 해석을 해낼 수 있었던 것들만 글이 됐습니다. 사물 하나와 인문학적 주제 하나를 연결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사물의 이름에 문학사적, 언어학적 배경이 있으면 더욱 좋고요. 하루아침에 모인 사물들도 아니고, 범주화하기 어려운 사물들입니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수집이 되었습니다.
 
 
『설레는 오브제』에서 다룬 사물 가운데 이건 꼭 소장해보고 싶다, 생각하신 오브제가 있으신가요?
 
요즘 미니멀리즘에 전도당해서 물욕이 많이 없어진 상태이긴 합니다만, 제 물질적인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를 고르라면 무지개 파라솔을 갖고 싶습니다. 어느 동네서점 앞에 서 있는 파라솔이 너무 예뻐서 한참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파라솔은 자리를 만들잖아요. 파라솔의 원색이 인간이 해맑게 꽂아둔 문명의 표시 같기도 하고요. 작게 영토를 만들어주는 느낌도 나고요. 인간 문명이 딱 거기까지였으면 어땠을까요? 마당 없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는 꿈으로만 그칠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에세이 곳곳에서 번역가의 일상과 고민이 드러나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숙련된 번역가로서의 면모를 엿보다 보니 문뜩 궁금해진 것이 있는데요. 번역가로서의 글쓰기와 저자로서의 글쓰기가 다른 부분이 있을까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번역과 숙련이란 말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일이란 게 오래 하면 익숙해져서 시간과 노력을 덜 쓰고도 같은 양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즉 투입량 대비 이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번역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책이 매번 달라져서 그런 걸까요? 실제로 다른 번역가들도 갈수록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물론 체력 저하의 문제도 있겠지만요.
번역은 독자에게 번역가가 느껴지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번역이 제대로 됐나, 가독성 있게 썼나, 이왕이면 원문 분위기가 살았나, 이런 걸 고민해요. 냉소적인 글인데 번역문은 웅변적이면 난감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책을 쓸 때는 원문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대신 미지의 독자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읽는 사람이 내 생각을 이해해줄까, 나와 공감해줄까,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들은 이런 민망한 자의식을 어떻게 이겨낼까 싶었어요. 자의식이 글길을 막히는 주요 원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번역하는 책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작가는 독자를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상상해야 한다.” 약간 위안받았습니다.
 
 
『설레는 오브제』를 집필하시면서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오브제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었고, 오브제에 달아줄 연상의 고리들을 찾는 게 힘들었어요. 오브제를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키워나가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오브제는 조개에 들어온 모래알 같은 것이고, 그게 진주가 되어줄지 그냥 깔깔하게 굴러다니다가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었어요. 속에서 굴리다가 그냥 놓아준 오브제도 있어요. 번역하면서도 느꼈지만 글을 쓰면서 내 경험과 앎이 정말 얕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텀벙대는 답답함이 힘들었어요. 오브제가 글감이 아니라 제 자신이 글감인데 글감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마음에 모래알 같은 자극은 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설레는 오브제』라는 예쁜 진주로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니까요.
 
 
책장을 덮고 나니, 작가님께서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쓰실지 무척 기대됩니다. 혹시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쓰실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이건 제가 쓰고 싶다기보다 관심 있는 분야인데요, 요즘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제가 번역한 책 중에 과학 공식들을 수필처럼 풀어낸 책이 있어요. 그 책으로 대학시험을 볼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대중 교양서였어요. 그런 책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가령 외국어 문법 설명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을 쓸 때 ‘자유 주제’만큼 어려운 주제도 없어요. 늘 누군가 내게 시제(詩題)를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설레는 오브제』도 옛날 문방사우 시조처럼 사물을 하나씩 걸어놓고 시 같은 에세이, 에세이 같은 시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 안에서 서정적인 글이 선뜻 나와주지 않더라고요. 다음에는 사물이 아닌 다른 시제들로 좀 더 생활에 밀착한 따뜻하고 정다운(^^)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제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시제가 딸려요. 시제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옷을 입고 찾아와줄지 저도 기다립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이 책이 독자의 마음에 ‘나도 내 생각과 경험을 글로 나누고 싶다’는 욕구를 잔잔하게나마, 잔잔하게라도, 일으키는 책이었으면 해요. 이 책을 통해서 어딘가에 저 같은 미래의 독자가 그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다른 분들은 설렘의 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실지 궁금해요.
 
 

 
| 기사 및 사진 제공_갈매나무
 
 
 
설레는 <!HS>오브제<!HE> [시/에세이]  설레는 오브제
이재경 | 갈매나무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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