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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의 시대 우리집』 최예선 “집에 남겨진 흔적들이 우리가 살아온 삶”

  • 2022.05.09
  • 조회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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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을 버리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 많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었다.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완벽하게 새로운 공간에서 현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양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공간과 장소에 쌓여있는 시간과 삶의 흔적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레트로 유행'이라는 일시적인 현상처럼 취급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깊숙이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근대 건축을 답사하고 탐구해온 저자 최예선의 『모던의 시대 우리집』은 이 '레트로'의 기원은 어디인지, 그리고 '레트로'의 어떤 것이 지금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인지를 오래된 집들과 공간 속에서 찾아나가는 책이다. 탐구의 출발점은 전통문화에 모던 중국, 모던 유럽 그리고 모던 일본이 뒤섞이고 절충되고 변용되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활보하던 시대다. 뜻밖에 발견되는 너무나 현대적인 삶의 모습, 급변하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법을 모색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우리 집'의 이야기를 최예선 작가에게 들어보았다.  
 

 
한국 사회가 근대 건축에 관심을 갖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그나마 근대 건축에 대한 관심도 주로 공공건축물 중심이었고요. 『모던의 시대 우리집』은 근대 건축이지만 '건축'이나 '건물'이 아닌 ''에 초점을 맞추는 책입니다.  
 
프랑스에서 미술사 공부를 할 때 제가 살던 집이 진짜로 100년 된 집이었어요.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던데다, 거기서는 100년 된 건물도 굉장히 젊은 건물이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단 '100년 전'이라는 것이 가늠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오래된 집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어요
남편이 건축가이기도 해서 옛날 건물들을 둘러보러 많이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집의 풍경들에 좀 더 관심이 갔어요. 살림집 같은 경우에는 기록이 많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더 궁금하고,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 보이고요. 그래서 비밀을 하나하나 캐나가는 기분으로 오래된 집들을 들춰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증폭되었잖아요. '나의 공간'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아졌고요. 그래서 저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집, 혹은 우리가 살아왔던 집은 어떠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많아졌죠.  
 
 
한국은 워낙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도시든 집이든 오래된 것들이 제대로 남아있기 어려운데요. 책 쓰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자료라면 어떤 것이 있었나요
 
일단 저는 그냥 많이 다녔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문헌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아니거든요. 예전에 잡지 기자였고, 그래서 저널리스트의 자세로 현장을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죠. 직접 가서 보니까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더라고요. 시대적으로는 19세기에 지어진 진짜 오래된 민가도 남아 있었고 형태적으로도 굉장히 다양했어요. 정말 서양식 가옥도 있었고, 한국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집, 적산가옥하면 떠오르는 일본식 집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이런 집들이 옛 모습 그대로 있지 않아요. 세월이 지나면서 뜯어고치기도 하고 확장도 하고 하면서 시대의 변화들이 접목되거든요. 지금 제가 사는 후암동은 서울역과 가깝다보니 예전에 일본인이 많이 살던 곳이었어요. 그리고 후암동 근처의 해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사람들이나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지역인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집이 부족하니 기존 집을 쪼개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면서 변형을 시켰어요. 그리고 그렇게 이리저리 고친 집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요
 
건축사적으로 접근을 한다면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의 처음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이 건물의 원형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런 방향으로 접근을 하겠죠. 그러다보면 이 건물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 붙어있고 변형된 여러 요소들을 제거하게 되고요. 그런데 저는 건물에 남겨진 흔적들이 우리가 살아온 삶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서양 건축사에서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처럼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건축물이 떠오르지만 우리에게 '모던의 시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에 모던 중국, 모던 유럽, 모던 일본이 뒤섞인, '혼종'이라고 할까요
 
한국에도 완전히 비슷한 시기는 아니지만 20세기 전후로 르 코르뷔지에 스타일의 모더니즘 건축도 지어지고, 좀 더 유러피언 양식의 건물들도 지어져요. 하지만 이 시기 근대 건축들을 규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어떤 절충적인 형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인 것 같았어요. 그 절충적 형태라는 것은 미학적 측면일 수도 있고 혹은 실생활에서의 기능적 의미일 수도 있고요. 책에서는 그 시기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이런 혼종성이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뒤섞여 있는 것들을 걷어내고 원형의 우리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그 자체가 그 시대를 규정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거죠
 
 
책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집에서 살았던 이태준, 이효석 같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집에 대해서 쓴 글들도 인용하는데요. 확실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집을 들여다보면 그 집에 살던 사람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도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1930년대 활동하던 예술가, 문인들도 특성이 굉장히 다양할 거에요. 이태준이나 김용준 같은 사람들은 우리 옛것과 전통을 좋아하는 좀 더 문인다운 삶을 살았고, 또 누군가는 일본 문화에 경도되었을 수도 있고, 또 이효석처럼 서양 취미에 깊이 빠진 사람도 있었고요. 저도 책 쓰면서 이효석에 대한 자료와 그가 썼던 글들을 찾아보니까, 이 사람이 즐겼던 취미가 너무 대단했던거죠. 『낙엽을 태우며』라는 글 자체도 굉장히 도회적인 감성이잖아요. 『메밀꽃 필 무렵』하고는 너무 다르게요. 굉장히 댄디하고, 자기 취향을 끝까지 벼릴 줄 알고, 비싸더라도 무언가를 취해야 하는 그런 감각 같은 것이 너무 새롭게 느껴졌어요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공간인데요. 그런데 사실 한옥마을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공간이고, 1930년대에 정세권의 '건양사'라는 주택개발회사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에도요
 
북촌 한옥마을이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민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지역은 1930년대에 형성된 도시형 한옥이에요. 당시 경성(서울)이 도시화되면서 도시 규모도 커지고 인구도 크게 늘어났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집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1920년대부터 지금 아파트 단지 개발하듯 큰 필지에 주택단지를 개발해서 분양하는 개발업이 굉장히 성행하게 돼요. 그렇게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지어진 집들이, 한옥의 특성을 조금 유지하면서 도시화된 삶을 반영한 도시형 한옥이고요
 
 
1930년대에 등장한 '도시형 한옥'은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전통 한옥과 비교하면 크기도 작고 많이 변형된 형태거든요. 그런데 사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옥의 모습은 민속촌에 있는 대감집 한옥 저택이 아니라 북촌 한옥마을의 작고 아담한 도시형 한옥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한옥의 미감이란 무엇일까를 저도 질문하고 싶었어요. ㄷ자형 구조에 툇마루에 앉아서 네모난 마당을 바라보고, 집집마다 벽돌로 쌓은 담은 그 모양이 제각각 다르고, 담 밖의 불빛이 담에 비치는, 이런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의 정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정서의 근원이 1930년대 도시형 한옥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도시형 한옥은 규모는 작지만 도시화된 시스템에 잘 맞았고, 또 이 형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60년대, 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퍼졌겠죠. 그러니까 도시형 한옥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한옥집의 인상하고 가장 가깝고, 또 우리가 넌지시 경험했던 한옥인 거에요
 
책에서는 화가 김환기가 사랑한 한옥의 매력에 대해서 인용을 했어요. 대문을 삐그덕 열고 들어가면 댓돌이 보이고, 대청이 보이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보이고, 문을 닫으면 닫힌 공간이지만 문을 하나하나 열면 공간이 점점 넓어지면서 시각적인 레이어가 생기는, 그게 한옥의 매력인 것 같아요. 요즘 한옥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런 켜들을 완전히 없애고 공간을 넓게 트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 켜들을 살려야 한옥의 미감이 살아있는 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목재와 기와라는 재료나 보와 기둥 같은 구조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긴 해요.
 
온돌, 목재, 기와 이런 구조나 재료적인 측면만 가지고는 한옥을 설명할 수 없어요. 전통적인 방식의 한옥을 짓기엔 도시에서 집을 지을 공간은 작아졌고 한옥의 건축 비용은 너무 비싸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조금 저렴한 재료를 쓰면서도 한옥의 미감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거죠네모난 마당과 누마루 느낌이 나는 장소를 만들고 켜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활짝 열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든가, 비싼 부재가 아니지만 지붕 서까래 느낌이 나게 한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다양하게 한옥의 요소를 넣는 거죠.  
한옥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한옥의 미감과 감수성을 더 연구하고 규명하고 발전시켜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의 미'라고 하면 고졸하고 담백하고 은은한 멋만을 생각하지만 자개장이나 '조선단스' 같은 것들은 실제로 엄청나게 화려하더라고요.  
 
전통과 현재 사이에 등장한 근대 가구들을 찾아보면 굉장히 기능적이고 다양한 버전이 있어요. 그런데도 항상 달항아리 같은 절제미만 강조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 것은 아닐까 싶어요. 다양하고 화려한 것도 우리 전통 안에 분명히 있거든요
1919년에 한국에 온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묘사한 한국의 집을 보면, 굉장히 혼종적이에요. 남편이 서재로 쓰는 사랑방은 상고주의에 입각한 심플한 조선 목가구들이 들어가 있지만, 아내의 공간인 안방은 주인의 욕망을 투영해서 엄청나게 화려한 가구들이 들어가 있어요. '나 좀 괜찮게 살아'라는 걸 보여주는 용도로 번쩍번쩍한 장식들이 가득한 '조선단스'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단스'라는 말은 일본어지만 그 가구가 일본 가구인 것은 아니에요. 우리 옛 삼층장이나 장롱, 아니면 반닫이가 현대화된 거죠. 일제강점기에 가구 산업이 융성하면서 이름은 '단스'라는 일본어를 썼지만요. 한국인의 생활은 일본인과 다르고, 한국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집과 가구를 보면 알 수 있는 거죠
 
 
근대 건축물의 대표적인 재료 중 하나가 붉은 벽돌인데요. 근대에 만들어진 벽돌 건축의 걸작인 명당 성당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명동 성당의 건축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저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양한 국적과 계층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만들어낸 결과가 명당 성당이라는 걸 알게되니 성당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명동 성당에 대해서 재미난 자료들이 많아서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명동 성당은 건물이 크기도 하고 100년도 더 된, 우리나라 벽돌 건물 중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해요. 당시 벽돌 건물이나 양관 (서양식 건축물)에 대한 기술적인 베이스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지어졌다는 것도 너무 대단하고요
명동 성당에는 정말 많은 벽돌이 들어간데다가 벽돌의 형태와 색깔도 다양하게 사용되었어요. 넓은 면을 이루는 벽채는 붉은 벽돌로, 선을 그리며 장식하는 테두리는 검은 벽돌을 썼어요.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죠
 
저는 명동 성당을 볼 때면 건물에서 어떤 영성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들이 느껴져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업무를 분담해서 같이 이루어낸 것인데, 그렇게 건물에 들어간 노력과 마음, 엄청나게 많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그 자체가 영성인 것 같거든요. 벽돌들이 착착 쌓여 올라가는 장면이라든지 건물 자체가 주는 상승감과 확장감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고요
 
 
집 짓다 쫄딱 망한 조선 귀족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해요. 그 중에서도 순종 황후 윤씨의 숙부인 윤덕영이 옥인동에 지었던 거대한 프랑스식 궁전인 '벽수산장' 이야기는 너무 드라마틱해요. 윤덕영이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돈은 돈대로 날리고 시간은 시간대로 보냈지만 끝내 완공을 보지 못했던 건물은 1960년대까지 남아있다 화재로 다 무너지고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다고요
 
벽수산장에 대해서는 심윤경 작가님이 『영원한 유산』이라는 소설의 배경으로 쓰기도 했어요. 벽수산장은 조선 귀족 중에 최고로 돈도 많고 빚도 많았다는, 최악의 친일파이기도 한 윤덕영이 지었는데요. 벽수산장이 지금은 사라진 건물이잖아요. 건물의 외관은 사진이 남아있지만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는 너무 궁금했거든요. 어찌어찌 찾아보니 이베이에서 벽수산장의 도면을 발견해서 - 물론 이 도면이 진본인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지만요 - 도면을 통해서 내부를 한 번 상상해봤어요. 실제로 없는 건물이지만 그 내부와, 건물 위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같은 것도 독자분들이 상상해볼 수 있도록 글로 묘사를 해보고 싶었고요
어쨌든 지금 벽수산장은 없어졌고 도시 괴담으로만 남은 셈이죠. 정확한 것은 없고 '그랬다더라'라는 풍문만이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떠도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윤덕영뿐만 아니라 일부 조선 귀족들이 당시 서울에서 소유하고 있던 토지가 어마어마했던데요지금은 수많은 한옥들이 들어선 가회동 31번지가 경성 최고 갑부 민영휘의 개인 별장이었을 정도니까요
 
일제는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우리나라의 땅을 수탈해가요. 국가가 소유했던 땅, 왕실이 보유한 궁터 이런 곳도 1930년대가 되면 불하가 되면서 서울 한복판에 큰 필지가 나오게 되는데, 그런 곳에 총독부 관사라든지 관공서의 관사촌 등이 들어서죠. 귀족들도 일제에 부역한 공로로 땅을 받아갔고요
그 땅들이 지금은 여러 필지로 나뉘어서 팔리고 소유주도 많이 바뀌면서 우리의 일상 공간이 되었지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분통이 터지고 뼈져리게 아픈 부분들도 있는 거죠
그리고 영화를 누리던 친일파, 귀족의 후손들이 비밀리에 여전히 그 땅과 집을 소유하면서 부를 이어가고 있을 수 있고요. 익선동 166번지의 주인이었던 이해승의 후손이 소송을 해서 국가에게 땅을 돌려받은 사례도 있고, 민영휘의 후손들도 최종 패소하기는 했지만 국가에 귀속된 토지를 돌려달라고 소송도 많이 했고요. 이완용의 숨겨진 땅이 용인 어딘가에 수천평이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이거야 말로 기담이기도 하고 괴담이기도 하고 팩트이기도 하죠. 친일파와 귀족들의 땅과 집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유령처럼 떠돌고 있고 이어지고 있는 거죠.  
 
 
작가님이 살고 계신 용산의 후암동과 동자동도 흥미로운 곳인데요. 일제 시대에 일본 군영과 철도 정거장이라는 주요한 거점 시설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 기지가 들어왔다는 과거 역사가 이 동네를 특별하게 만드네요.  
 
용산에 관심을 가진 건 10년 정도 되었어요. 10년쯤 전에 처음 후암동을 돌아보고는, 옛날 집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어요. 소위 말하는 적산가옥, 일본식 가옥들이요. 지금은 다 낡았지만 자세히 보면 옛날 느낌도 나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재발견하는 시간이었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이 지역 자체가 원래는 그냥 별거 없는 야산이었어요. 그러다 일본 군영이 들어서니까 그 주변으로 배후 도시가 생긴거죠.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일본인 세력가들이 이 지역을 개발해서 이권도 챙기고, 문화주택이라고 당시 기준으로는 고급 주택들 지어서 한국으로 온 일본인 엘리트들에게 거점을 제공하는 거죠. 철도도 들어오고 일찍부터 길도 닦이고 수도도 깔리고 도시가스도 들어오는 굉장히 살기 좋은 동네였어요. 그러다 미군 기지가 들어오고, 월남민들이 해방촌에 자리잡고, 그러다 지금은 용산 공원화로 들썩거리고요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아직 감춰진 것이 많은 느낌이에요. 미군 기지가 떠나고 공원이 조성될 계획이지만 그 전에 거쳐야 할 과정들이 아직 많다고요
 
작업실을 함께 쓰는 분 중에 용산 관련한 프로젝트를 하는 건축가분이 계세요. 한국측 입장에서 용산 기지에 관한 자료 조사를 하고 계신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하시더라고요. 미군 기지가 아직 완전히 우리에게 반환된 것이 아니라서 조사를 위해 한 번씩 들어가서 보고 오는데, 그걸로는 충분치 않은 거죠
용산 기지 안에는 굉장히 많은 건물들이 있다고 해요. 일본 군영 흔적도 있고, 미군과 그 가족들이 살기 위해 형성된 타운도 있고요. 저도 용산 기지를 한 번 둘러봤었는데, 마치 미국의 작은 소도시가 하나 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문제는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없앨거냐는 거죠. 일제시대 건물은 근대 건축물이니까 남기고 미군이 지은 것은 허물어야 할까? 그렇다면 이곳의 역사에서 미군 기지가 있던 시간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여기에 대한 합의도 이루지 못했고, 무엇보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도 충분치가 않아요. 환경 오염 대책과 토지 정화 작업들도 필요한데 이 작업들도 10년 이상 걸리는 오래된 작업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용산은 100년 이상 일반 시민들에게 닫혀 있던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낯설고, 시민들의 머릿 속에서는 거의 없다시피한 이 공간을 인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할까, 그런 섬세한 고민들이 필요해요. 단순히 공원화를 해서 개방을 하자, 이런 것이 아니고요.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하게 봐야 하고, 우리에게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정말 많은 생각할거리를 주죠
 
 
모던시대의 집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한 번 방문하고 경험하면 좋을 곳이 있다면요?
 
제가 전에 쓴 책들이 근대 문화 유산이란 무엇인지, 그런 장소들은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이번 책은 장소에서 '문화유산'이라는 관점을 뺐을 때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떤 미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선호하는 장소들도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곳들, 더 복잡하고 남루한 장소들이에요.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개별 장소, 스팟 하나하나를 가보는 것도 좋지만 그 동네를 쭉 걸으면서 보시면 좋겠어요. 북촌 한옥마을이라면, 골목을 걸으면서 이 마을은 어떤 식으로 형성이 되어 있고, 어떻게 주변과 연결이 되는지, 이 장소만의 고유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조금 넓게 보세요. 한옥 마을에는 사람도 살고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행사가 열려서 한옥을 개방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안에 들어가서 도시 한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한번 들여다보시면 좋고요
 
용산도 이태원, 신용산 쪽 말고 후암동, 남산의 남쪽 사면인 동자동, 이런 지역을 한 번 거닐어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같은 서울이지만 서울은 지역마다 정말 특색이 다르거든요. 어떤 곳은 과거에서 멈춘 것 같고 또 어떤 곳은 굉장히 빨리 발전하고요. 그런 서로 다른 시간들이 산재되어 있는 이 풍경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도시가 똑같은 모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은 이 속도로, 저 지역은 저 속도로 그렇게 각자의 속도대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다녀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지금껏 사는 분들은 진짜 너무 부러운 분들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집을 떠난 사람들이고, 그 기억의 집 자체가 남아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에요
모던시대 옛 집들을 둘러보면 집 떠난 마음의 쓸쓸함이 조금은 상쇄되요. 내가 이 집을 떠나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집에 살면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에서 서로 감정이 연결되는 것 같고, 집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과 이어지는 느낌도 들고요
오래된 집들을 일부러 찾아가서 들여다보든 아니면 여유있게 산책삼아 다니던 간에 다양한 삶을 간직한 오래된 집들을 눈여겨 봐 주시고 거기서 느껴지는 것들을 통해 내 삶과 내 집을 사유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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