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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신화 만화『올림포스 연대기』김재훈

  • 2022.05.02
  • 조회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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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명과 학문의 근간이 되는 서사,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인문과 철학에 영향을 끼친 콘텐츠가 있을까? 변치 않는 필독서인 줄 알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시작이 어렵다. 재가공하지 않은 원전으로 독서를 시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원전은 어렵다. 주석 없이는 나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만화로 된 작품들을 찾아보니 아아, 이건 너무 어린이용 그림체다. 꺼내 읽기 민망하다.
원전의 깊이와 재미가 보장된 어른용 신화 만화, 이제 나올 때가 됐죠.” 그동안 과학과 철학 분야에서 인상 깊은 책을 펴내온 작가 김재훈이 『올림포스 연대기』로 그리스 신화의 여정에 나섰다. 목표는 하나.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입문서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는 책이 꽤 많은 편인데요. 기존의 책과 어떤 점에서 가장 차별화를 두고 싶으셨나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책이 너무 많고 신화를 보는 관점도 다양하기 때문에 신화학에 일천한 제 지식으로 또 하나의 책을 더 보태면서 차별화까지 시도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어요. 다만 그림과 글을 적절히 융합해본 경험은 적잖이 쌓여 있었죠.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어요. 익히 알고 있는 신화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서사적으로 구성하면서 이전의 어떤 책보다 쉽고 편리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기본 감성은 비극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자칫 섣부른 패러디 방식의 연출이나 기법으로 희극 요소를 추가했다가는 오히려 비장미를 느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뒀지요. 『올림포스 연대기』는 서사의 비극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적재적소에 해학을 가미하기 위해 가장 애쓴 결과물이에요.
 
 
TV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당시 미술감독을 역임하신 경험이 이번 작업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당시 그 프로젝트를 지휘하면서 함께 작업한 유능한 친구가 있었어요. ‘김준이라는 PD였는데, 그리스 신화에 관해 정말 아는 것도 많고 기억력도 좋은 친구여서 제가 미처 몰랐던 신화의 디테일을 많이 배웠습니다. <올림포스 가디언>은 밀리언셀러였던 어린이 만화책을 기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 전체의 스테레오 타입을 익힐 수 있었죠. 동시에 제가 만화로 펴내게 될 김재훈식 그리스 신화의 변주 방법을 틈틈이 생각하고 메모할 수 있었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떤 면에서 아직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교양만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누구나 들어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간과한 것이 많은 그런 콘텐츠들이에요.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독서를 하려면 다소 번거롭고 까다로운 그런 콘텐츠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봅시다. 햄릿이나 리어왕의 줄거리야 대부분 알고 있죠. 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기구한 일을 겪었는지, 얼마나 살벌한 대사를 내뱉었는지 속속들이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게 정말 많아요.
철학이나 인문의 영역도 마찬가지에요. 칸트가 쓴 『순수이성비판』은 실제 어렵기도 하지만, 어려운 책이라는 그 선입견 때문에 일상적인 독서로 시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류의 소재 중 단연 보석 같은 콘텐츠가 바로 그리스 신화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그 안에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합니다. 호기심을 가져요. 그 정도로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 되고 있죠. 시간을 들여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대양을 만나게 되고요. 그리스 신화는 바로 그런 콘텐츠입니다.
 
 
인간에게신화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신화는 우리가 무의식에 두고 온 욕망의 서사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일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제도권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신화는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기 때문에 규정적인 언어로 온전히 나타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은유적인 수사와 여러 알레고리로 상식의 이면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죠. 가장 현실적인 광경이라고 판정되는 회화로도 진짜 현실을 표현하지 못하니까 화가들이 그 내밀한 현실을 추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화를 통해 새로 깨닫게 되는 인간성은 바람직한 정언 명법 같은 윤리적 각성이 아니에요. 매우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신들의 작태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운명의 드라마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관성이 생기는데, 그 관성이 미처 사라지기 전에 시선을 나에게 돌려보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나의 진면목, 그게 신화를 읽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어떤 자료들을 많이 참고하셨나요?
 
건축의 가장 중요한 골자로 늘 곁에 두었던 원전은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입니다. 신화를 엮어서 낸 책으로는 불핀치와 구스타프 슈바브의 책을 참조했고요. 신화학자들이 친절하게 신화의 의미를 설명한 자료 중에는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를 맨 앞에 뒀지요. 그 밖에도 여러 선생님의 책을 참조했습니다.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신화를 재구성한 책으로는 로베르토 칼라소의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을 롤모델로 삼았어요. 신화의 기억을 전방위로 때로는 역순으로 가로지르며 방대한 서사를 완성한 명작입니다.
 
 
최대한 원전을 바탕에 두려고 노력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트로이>라는 영화가 있지요. 그 영화의 재미와 가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바탕이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지금도 그리스 신화를 각색한 문학과 영상물이 수없이 나오고 있죠. 그런 작품들은 독자들이 신화의 기본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 신화를 만화로 재구성한 콘텐츠를 보면 성인 독자층을 중심으로 해서 청소년까지 고려한 사례가 없었어요. 김재훈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원전의 골자와 각색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제가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만화를 그리는 태도가 다분히 보수적인 탓도 있겠네요. 새로운 창작물이 아닌 교양만화 작업은 원전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보통의 독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 원전을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신화를 다룬 책이 대부분 신화학 또는 비교인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그런 책을 먼저 접한 독자들은 그리스 신화에 대해 학문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신통기』나 『변신 이야기』 같은 원전을 처음 접할 때 다소 딱딱한 감성으로 보면서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리스 비극 같은 희곡들은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디오니소스 축전 같은 기상천외한 이벤트가 현실에서 벌어지던 시절에 소비됐던 문학입니다. 지금처럼 신화와 과학, 몽환과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는 감성으로 원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죠. 독서의 감성을 살짝 달리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신화를 더 친근하게 즐기기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마련하는 거죠. 『올림포스 연대기』의 서술 방식과 수사법이 그런 UI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분들에게 『올림포스 연대기』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그리스 신화의 에로티즘과 불순한 욕망을 온전히 풀이하려면 먼저 성인의 감성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하지만 이 만화의 비주얼이나 지문, 대사 등이 마냥 말초적이고 선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이나 『에로스의 눈물』은 에로틱의 진정한 의미를 충실하게 서술하며 충격적인 금기와 욕망의 진상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코 말초적이지 않아요. 미약하고 서툴지만 『올림포스 연대기』도 그런 사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올림포스 연대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나 컷은?
 
신화 속의 신들은 취향이 정말 각양각색이라 독자마다 선호하는 신의 이미지가 있을 거예요. 반듯한 아폴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마초적인 군신 아레스를 좋아하거나 재기발랄하고 부지런한 헤르메스를 좋아하기도 하죠.
저는 어릴 적부터 모성을 지닌 여신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한 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모성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죠. 헤르만 헤세의 소설, 아마 지와 사랑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대목에서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서사를 떠받치고 있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대한 느낌이 저에게는 남달랐어요. 또 원전을 읽으면서 가장 신다운 면모를 갖춘 건 아테나 여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 저에게 중요한 사명은 따로 있었어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자질을 만든 어머니 메티스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었죠. 그래서 메티스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과 제우스의 눈앞에서 사라지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후 시리즈에 대한 계획은?
 
저에게 가장 엄격한 비평가는 아내입니다. 아주 엄격한 편이어서 지금까지 제가 쓰고 그린 책을 보고 재미있다는 호평을 해준 적이 없어요. “편하게 읽기엔 좀 어려운 구석이 있어.” “지식 정보는 많이 담긴 것 같은데 재미는 별로야.” 항상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올림포스 연대기』의 초고를 보고 딱 한마디로 평을 해줬어요. “재밌네.” 저로서는 유례없는 칭찬을 들은 거죠. 그래서 아내가이제 재미없어졌네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그리스 신화를 붙들고 씨름해볼 생각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할 수는 없겠지만, 신화의 마지막 영웅들이 일리온(트로이의 옛 명칭)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기사 및 사진 제공_한빛비즈
 
 
 
올림포스 <!HS>연대기<!HE> [역사/문화]  올림포스 연대기
김재훈 | 한빛비즈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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