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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창으로 조선을 매섭게 탐색한『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김용남

  •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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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기별로 조선을 살피면서 같은 시기 다른 나라들의 상황, 또는 시대가 다르더라도 세계사에 등장한 유사한 성격의 역사적 사건과 경험을 수시로 소환하여 조선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근거를 제시한다.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세계사의 창을 통해 조선을 비교 고찰한다는 점에서 여타 역사서와 뚜렷이 구별된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오랫동안 가르쳤고 지구촌 80여 개 국가의 역사 문화 현장을 수시로 답사하며 세계사의 산 지식을 쌓아온 저자는 ‘자국의 역사만 아는 것은 자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조선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같은 시대 세계 여러 나라 상황과의 비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책을 보자마자 제목에서 ‘매운맛’이라는 수식어와 그에 맞춤한 빨간색 표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왜 매운맛인가요?
 
과거에 벌어진 일을 시대순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의 순한 맛이라면,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성찰하고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매운맛 조선사’라고 명명했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 위주의 책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비평한 것도 매운맛이라고 한 이유입니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화끈하게 썼습니다. 읽고 나면 얼얼하다가도 속 시원하실 겁니다.
 
 
작가 경력을 보면 역사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폭넓게 여러 분야를 섭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경력이 조선사 집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역사는 종합 학문입니다. 제가 젊어서 이과 공부를 했기에 역사를 바꾼 과학기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경제 수업도 했기에 경제사에 안목을 키웠습니다. 세계 80개국을 여행한 경험이 조선사를 세계사와 비교할 수 있게 했고요. 넓게 공부했기에 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을 쓰기에는 적합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국어 과목도 담당한 적이 있었기에 독자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제 인생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세계사의 창을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 역사서를 읽는 관점은 조선사만을 다루는 것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자국의 역사만 아는 것은 자국의 역사도 모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을 평가할 때도 수출이 세계 몇 위고, 한류 열풍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 분석하지요. 조선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야 비로소 어떤 부분이 앞서 있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명확하게 보입니다. 조선으로만 다루면 해석의 객관성을 잃을 위험성이 높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들이 ‘우리 아빠 최고’ 또는 ‘우리 아빠가 제일 싫어’ 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젊은 세대가 한동안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일컬어 ‘헬 조선’이라는 표현으로 많이 썼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조선은 지옥에 비유할 만큼 후진적인 나라였을까요?
 
15세기는 동시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헤븐 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는 ‘헬 조선’이 되고 말지요. 부패한 정치, 빈곤한 경제, 모순된 사회, 경직된 사상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죠. 무엇보다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조차 없었습니다. 다만 민중의 의식이 깨어 있고, 교육열이 높다는 것 정도가 희망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면 19세기 말과 비슷했기에 ‘헬 조선’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조선을 비판하고자 쓴 것은 아닙니다. ‘헤븐 조선’이 ‘헬 조선’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탐구해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죠.
 
 
조선은 15세기의 절정을 지난 뒤 시스템을 전환할 기회를 놓치고 점차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는데요. 이 시기 세계 다른 나라들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15세기 끝부분부터 유럽 국가들은 대항해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16세기 말에는 세계 대부분 지역이 유럽 주도의 무역망에 참여하는데요. 조선은 여기서 소외됩니다. 임진전쟁, 병자전쟁을 거치면서 17세기에 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계속 폐쇄적으로 기존 사상과 시스템만을 고집하지요. 결국 ‘고인 물은 썩는다’는 간단한 진리가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무역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국가들부터 번영을 맞이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기후 악화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근대 이전 농업 사회에서는 역사를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이 기후와 전염병이었습니다. 경제가 안정되고 문화가 융성한 시기는 기후 여건이 좋았을 때였습니다. 반면 기후가 악화되고 농업생산량이 부족해지면 위기 타개를 위해 외국을 침공하거나, 자국의 내란을 맞이하지요. 병자호란과 명나라 멸망은 당시 소빙하기로 인한 식량 부족이 큰 원인이었지요. 조선은 경술대기근 때 임진전쟁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도 당시 거듭된 흉년 또한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풍년일 때는 수탈해가도 밥을 굶지는 않지만, 흉년일 때 수탈해가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민중봉기가 발생하는 겁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출된 기술은 무엇이며 조선 역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왔을까요?
 
16세기 초에 은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인 연은분리법이 유출됩니다. 일본은 은을 생산하여 유럽인에게 조총을 구입했고, 임진전쟁을 일으키지요. 임진전쟁 때는 도자기 기술이 일본으로 갑니다. 일본은 네덜란드에 도자기를 수출하고, 서양문물을 수입합니다. 도자기 덕분에 유럽인에게는 일본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네덜란드는 무역 상대인 일본의 주장을 의식해서 조선과 직교역을 포기합니다. 18세기에는 조선의 주력 수출품이던 인삼 재배 기술마저 일본에 넘어가서 대일무역흑자가 줄어들고 조선은 더욱 폐쇄적인 국가가 되어버리지요. 결국 기술 유출이 조선-일본 간 힘의 역전을 불러왔습니다.
 
 
영조는 검소함을 강조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상공업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시기에 탄광이 개발되었고, 석탄을 이용해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데요. 영조의 이런 정책이 조선 경제에 미친 여파는 무엇일까요?
 
영조가 검소함을 강조한 것 때문에 상공업이 침체되었습니다. 일례로 비단 생산이 막혔으며, 고급 도자기 제조도 끊어졌습니다. 고려청자는 세계적 자랑거리인데, 조선의 도자기는 일본의 아리타 자기보다 주목받지 못합니다. 상공업 발전이 미약하니 농민 대부분이 좁은 농토에만 매달렸고,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이후 정조 때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농민들이 상공업 쪽이 아닌 화전민으로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결과는 숲의 황폐화를 가져오고 가뭄과 홍수 조절 기능이 떨어져 19세기 잦은 흉년의 원인이 되었지요. 흉년은 곧 민생 파탄입니다.
 
 
조선은 15세기의 절정을 이어가지 못하고, 쇠약해졌다가 20세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마는데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대부분 국가는 내부 붕괴와 외세 침탈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망하지요. 내부 붕괴는 부패한 정치, 기후 악화로 인한 농업 파탄과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상공업 붕괴,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분열 등이 주요 원인입니다. 조선도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 이유로 불행한 종말을 맞았는데요.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왜 망했느냐고 묻지 말고, 왜 그리 오래 존속할 수 있었는지를 물으라’고 했는데요. 500년이나 이어진 조선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50살에 사망한 사람은 사망 원인이 궁금하지만, 100살에 사망한 사람은 장수 비결이 더 궁금한 것과 마찬가지죠. 조선은 망한 원인도 중요하지만, 오래 존속한 원인도 탐구해야 합니다. 답은 이 책에 나와 있답니다.
 
 
갈수록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고 있는데, 조선왕조나 세계사적으로 견제와 협치의 균형을 잘 이룬 왕정(정권)이 있다면요?
 
조선은 16세기 후반부터 붕당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붕당 초기에는 견제와 협치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17세기 말부터 상대 붕당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형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조선보다 100년가량 늦게 정당정치를 시행한 영국은 의회민주주의의 틀을 잡아나갔고, 양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번영을 이끌었지요. 영국의 글래드스턴은 자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의 부당성을 의회에서 아무 두려움 없이 연설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이지만,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정치적 역량이 견제와 협치에서 나온 것은 맞습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성찰하고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역사의 매운맛’이라고 하셨는데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주신다면요?
 
조선은 잘못된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을 가로막으며 망했습니다. 오늘날 한국도 경제지표와 사회 문화 수준은 우수한데 정치가 문제입니다. 국가보다 소속 집단을 우선시하고, 특정인을 과도하게 숭배하고, 반대편을 타도대상으로만 생각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대안도 없으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낼수록 대접받으며, 책임 윤리가 없는 정치. 이것이 조선 후기의 정치이면서, 현재 한국의 정치입니다. 따라서 반대로 소속 집단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고, 특정인에 대한 무조건 숭배를 억제하고, 반대편의 의견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대안 있는 비판을 하고, 책임 윤리를 갖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인 것이죠.
 
 
보통의 역사책처럼 국왕 중심의 정치사를 서술하면서도 조선 시대를 세기별로 ‘발단절정위기전환전개하강결말’로 구분하는 독창적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구성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흔히 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파악할 때 발단-전개,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보면 이해가 쉽죠. 역사(history)도 이야기라서 이렇게 구분하면 각 세기마다 특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로 이어지는 인과 흐름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조선의 결말이 ‘새드 엔딩’이란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매천 황현의 <절명시>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못내 슬프네요.
 
 
저자 김 선생과 제자 지혜가 조선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 책을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가 일방적인 기록이어서는 안 되고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을 형식에서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지혜가 물음을 던지고, 김 선생이 설명하고, 지혜가 이해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저의 수업 모형이기도 합니다. 제가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역사 수업을 해왔기에 대화체가 익숙해서 집필하기 쉽다는 것도 숨은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과도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사 및 사진 제공_바틀비
 
 
세계사와 통하는 <!HS>매운맛<!HE> 조선사 [역사/문화]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
김용남 | 바틀비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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