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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고선규 “떠나보내면서도 나의 삶과 주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애도의 선물”

  • 2021.12.06
  • 조회 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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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큰 충격과 고통을 겪게 된다. 끊임없이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결코 답은 찾을 수 없고, 혹시나 그 죽음에 나의 탓은 없었는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불안과 고통, 공포를 다른 누군가에게 쉽게 터놓을 수가 없다는 것, 고인에 대한 기억과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와 고통이 되어 남아있는 이들을 오랫동안 짓누른다.
 
여섯 밤의 애도』은 자살 사별 애도상담 전문가 고선규 임상심리학박사와 자살 사별자 다섯 명이 함께 만든 애도 안내서. 자살 사별자들이 여섯 밤을 지나는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털어놓은 생생한 감정의 증언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온전한 애도로 안내하는 전문가의 도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책을 통해, 상실에 아파하고 애도의 방법을 몰라 혼란스러웠던 이들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여섯 밤의 애도』의 고선규 박사와의 서면 인터뷰.

 
 
누군가의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대개 '유가족'이라고 하는데 '자살 유가족' 아니라 '자살 사별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가족이 아닌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었거나 실제로 고인과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고인을 좋아하고 흠모했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인의 자살 사망으로 어떤 형태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가족도 아닌데 이렇게 영향을 받는 것이 정상인가요?”라는 말인데요. 제가 자살 사별자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도 애도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특정 자격이라는 건 없고, 그 자격이라는 게 꼭 가족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자살 사별자들의 애도 상담과 관련한 활동들을 시작하게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자살 관련 분야가 저의 연구분야는 아니었습니다.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학교에 잠시 연구교수로 지낼 때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시작하는 심리부검 사업에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심리부검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분야가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게 덥석 일을 시작한 게 자살 사별자를 만나게 된 계기였죠. 일을 하는 동안 전국의 자살 사별자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 면담을 했습니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자살 사별자의 사별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어요. 어떤 분들은 도저히 그 시간을 혼자서 견디기 힘들어 보이는 분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분들이 전문적인 애도상담을 받을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임상심리전문가로 심리치료에 대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기도 해서, 마땅히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현실에 이분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마음이 내내 무겁고 참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심리부검과 관련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살 사별자를 위한 전문 애도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밤의 애도 자살 사별 당사자 리더가 이끄는 자조모임 마인드피크닉 참여자들과의 모임과 과정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낸 것인데요. 자조모임이 아직 낯선 분들도 있고, 전문가 상담과 자조 모임이 다른 점은 어떤 것인지도 설명 부탁드려요. 
 
먼저 자조모임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요, 자조모임은 자살 사별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한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정보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조모임은 다양한 집단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제가 운영하는 자조모임 외에도 지역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자조모임이 운영되고 있는데 보통 한 달에 한 번 모임이 열립니다.
제가 2년 넘게 자조모임을 운영하면서, 이 모임이 참가자들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자리에 오면 어떤 평가나 편견 없이 고인의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도 안전하다라는 것 같아요. 그리고 2인 이상의 집단이다 보니, 고인과 다양한 관계의 사별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인의 죽음에 대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이 모임의 이점입니다.
전문가 상담과 자조모임의 차이점이라면, 각각의 이점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전문가와의 개인상담은 각 사별자 개인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른 고유한 애도 과정을 깊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이롭고, 자조모임은 내 경험과 생각, 감정만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어떤 이해공감,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이롭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깊은 슬픔과 혼란을 느끼겠지만 자살 사별과 다른 사별은 차이가 있을텐데요. 
 
자살 사별은 자살 사별이 아닌 사별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어요. 먼저 고인의 의지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다르고,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다는 게 다르죠. 재난, 각종 사고나 병으로 사별하신 분들이 ?” 죽었을까를 질문하진 않죠. 물론 애도 과정에서 왜 그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하시지만, 자살 사별자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갖는 ?’라는 질문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자살 사별자들은 고인이 자살한 이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동기에 대해 알려고 해도, 결코 알 수 없다는 무력감과 답답함,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어쩔 수 없이 그 진실을 알고 싶어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시곤 합니다. 그 생각들을 하다 보면 왜 막지 못했을까’ ‘고인의 죽음에 내가 뭔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에 빠지죠. 자살 사별과 자살 사별이 아닌 사별의 다른 점 하나를 뽑자면, 아마도 죄책감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책에 담긴 여섯 번의 모임 모임에서는 자살을 알게 된 그날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에게는 떠올리고 싶은 않은 날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자꾸 떠오르는 기억일 수도 있는데요.  시작은 그날의 이야기로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별자는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해야 해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말이죠. 고인의 죽음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고인의 죽음이 있는 그 당시 과거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계속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 그날에서부터 시작해요. 물론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죠. 하지만 사별자가 있는 현재에서 고인의 죽음을 재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고인의 죽음을 너머 고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인의 죽음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아마도 죽음에 이르는 길에 고인이 겪었던 어떤 삶의 경험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애도를 위해 허용되는 시간과 방식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지는 같아요. 일주일, 장례 일정이 끝나면 다시 복귀해서 예전과 똑같은 일상을 이어가기를 바라고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충격과 혼란이 일주일 지나면  정리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책을 읽으면서, 모든 사별 경험은 고유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 안에서도 동생을 잃은 형제와 자식을 잃은 엄마, 아빠 모두 사별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기간은 다를 있다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가족 안에서도 사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서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상처가 생기기도 하던데요. 모든 사별 경험이 고유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남겨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상실에 대처할 수는 없어요. 물론 애도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어떤 애도 과업이라는 것은 있지만, 그 과업에 도달해서 무언가를 애쓰기까지 그 속도와 방법은 모두 다를 수 있어요. 사별자의 성격이나 문제해결 방식도 영향을 미치겠고, 더 중요한 것은 사별자에게 고인이 어떤 존재였는가이겠죠. 애도는 그 사람에 대해 평생 가지고 갈 어떤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해요. 그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와 나만 아는 어떤 이야기들도 담길 수 있어요. 만약에 제가 죽는다면 제 남편이 저에 대해 만드는 이야기와 제 형제가 만드는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를 거예요. 그게 모두 라는 사람이겠죠. 이런 모든 것들이 사별자의 사별 경험을 각각의 고유한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자살 사별의 경우 장례식장에서부터 죽음의 원인을 사고나 지병 등으로 감추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후에도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름이나 관련된 추억들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자살자들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별자들에게는 억압이 되는 것 같고요.
 
보통 언급을 하지 않으려는 주체는 자살 사별 당사자들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 주변 사람들이 억지로 고인에 대해 질문하면서 고인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어요. 사별자의 특성에 따라 혹은 애도 시기와 과정에 따라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신뢰하는 가까운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만약 여러분 주변에 자살 사별자가 있고 고인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사별 당사자를 위로하고 싶다면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좋아요. “네가 고인의 죽음이나 그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늘 곁에 있을게이 정도의 말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자살 사별 이후 많은 사람들은 세상과 사람과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려요. 누군가에게 자기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나누고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면 영원히 회복불능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으신 분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애도 과정이 진행되면 언젠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순간이 올 겁니다. 사별자 주변분들은 그분들이 쉽게 입을 떼기 힘들 수밖에 없는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어요.  
 
 
애도는 결국 고인을 온전하게 기억하고 만나는 일인 같아요. 너무 미화된 존재도, 원망만을 남기는 존재도, 그리고 마지막의 죽음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요. 고인의 전체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고인의 자리는 오로지 그 사람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결국 고인이 거기 있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고인이 거기 있다는 것은 남겨진 자의 기억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인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떠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해요. 고통이 가혹해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 시간을 버티고 끊임없이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롤랑 바르트가 말한 vita nova의 상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가 불러일으킨 완전히 새로운 삶. 더 이상 슬픔의 주체가 아닌 비통한 슬픔의 순간에 다시 태어난 연민의 주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를 연민하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사별자 당사자가 살아 있는 한 기억하는 것, 그것이 사별자를 향한 위로이자 치유가 아닐까 합니다.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인 마인드피크닉을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에게 있었던 변화라면 어떤 것인가요?
 
여섯 번의 만남만으로 이분들의 애도 과정에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아요. 다만, 어쩌면 외로울 수 있는 각자의 애도 여정에서 길동무를 만나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자신의 애도 여정을 이전보다는 좀 더 기운 있게 떠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길동무와 나눈 이야기들이 이분들이 각자 가는 길을 지치지 않게 지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가 더 많은 자살 사별자들의 길동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구나 그런 것을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살 사별을 겪은 , 사별이 없던 이전의 ,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이전의 일상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수는 없을 같아요. 그런 점에서 애도하는 것은 '회복'이나 '치유'보다는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애도를 통해 자살 사별자들이 가졌으면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변화와 성장이라고 말씀드리면 어떤 사별자들은왜 나는 이런 아픔을 겪고도 변화하고 성장하지 못하는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실제 그런 분을 몇 분 뵙기도 했고요. 저는 애도를 통해 사별자들은 상실을 안고도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인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도 살아가는 법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상실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가를 한 번도 배우지 못했어요. 늘 성장하고 무언가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만 배웠죠. 그래서 사별 이후 한동안 낯선 감정 휩싸여 혼란스럽죠. 온전한 애도의 경험은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상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생각해요. 떠나보내면서도 나의 삶과 주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애도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자살 사별이 아니더라도 여러분 인생에서 무언가를 떠나보냈거나 잃었던 경험을 한번 떠올려 보셨으면 해요. 그때 나는 어떻게 그 상실을 견뎠는가 생각해보세요. 그때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느끼지 못했는지, 온전히 슬퍼하는 것을 막았던 것은 무엇인지. 애도에는 때가 없습니다. 내가 여전히 슬퍼한다면 지금이 바로 애도할 때가 아닐까 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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