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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권혁란 “칭찬받는 아들들처럼 딸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 2021.12.01
  • 조회 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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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잘 자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조금만 잘해도 잘한다, 훌륭하다 칭찬을 받는 아들들처럼 딸들의 성품과 바르고 따뜻한 성장을 무조건 올려쳐 주고 싶었어요.
국내 최초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이자 『트래블 테라피』,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를 펴낸 권혁란 작가의 신작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가 출간되었다. 결혼, 출산, 육아, 시댁, 제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내추럴 본 페미니스트가 된 엄마와 여성혐오, 취업전쟁에 부대끼며 비혼주의자를 자처하는 90년대생 두 딸이 서로를 어떻게 지지하고 응원하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지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영원한 화두입니다. 이 원고도 무려 1,800매를 쓰셨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거나 아니면 고민이 많았던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좋은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라는 것도 모른 채 기필코 내 엄마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거든요. 물론 낳기 전에. 낳아두고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각오는 다졌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엄마라는 자리인지라.
사실 아무리 되짚어 봐도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았어요. 딸들이 가장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고 부자 엄마가 아니어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 적도 없었고요.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살뜰히 보살펴준 것도 아니어서 멋진 여자로서의 롤 모델이 되어준 것도 아니니까요. 뭔가 역할이 거꾸로 된 것처럼 살았어요. 엄마인 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면 괴로움을 다 토로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서슴없이 달려나가 여기저기 여행을 하며 집을 떠났거든요. 오죽하면 첫 번째 책 제목이 『트래블 테라피』였는데, 마음공부 삼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었는데 사람들은 ‘트러블 테라피’라고 놀리기도 했으니까요. 사춘기 딸들도 안 하는 방황을 엄마인 내가 하는 동안 딸들은 꿋꿋이 집을 지키면서 제 할 공부와 제 할 일을 했으니. 종종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준 딸들 앞에 부끄럽기도 했어요.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을까요? 훌륭한 엄마가 되는 건 여러 모습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은 엄마를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것 같은데요.
 
『믿는 만큼 크는 아이들』을 쓴 박혜란 선배처럼 아이들을 충분히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마침내 성공한 자식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고3일 때도 도시락을 안 싸줬다, 내 공부하느라 바빴다는 그분의 글처럼 따라 하려고 한 건 아니어도 저도 그랬으니까요. 단 한 번도 일부러 깨워 학교에 보낸 적 없고 공부하라고 독려한 적도 없어요. 물론 여느 엄마 못지않게 정성을 쏟아 키운 것은 확실해요. 수입의 90%를 좋은 옷 사 입히고 잘 먹이는 데 쓰면서 십 몇 년을 키웠으니까요. 결론적으로 그분처럼 세칭 성공한 아들을 셋이나 둔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딸들이 잘 자란 이야기는 하고 싶었어요. 조금만 잘해도 잘한다, 훌륭하다 칭찬을 받는 아들들처럼 딸들의 성품과 바르고 따뜻한 성장을 무조건 올려쳐주고 싶기도 했어요. 이런 엄마여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 이런 엄마여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마음과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응원하고 지지하겠다는 다짐과 깊은 사랑을 담아.
 
 
집필을 위해 따로 방을 얻은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집을 나가신 셈인데 왜 곁에서 글을 쓰지 않았나요?
 
딸들에게는 가장 치열하고 힘겨운 고3이거나 취업준비생이었을 때 떨어져 있었어요.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사실 딸과의 관계가 소원하고 멀멀해진 것은 확실해요. 원래 자주 만나는 사람과 더 할 말이 많고 다정하잖아요. 세세한 마음의 결을 펼치기에는 좀 시간이 걸렸어요. 더더군다나 전 여전히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엄마였어요. 그런 엄마를 딸들은 속 깊게 배려했어요. 새로 다시 살게 된 첫해부터 내 엄마 병원을 따라다니다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한두 달씩 집필한 공간을 찾아다녔어요.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고 혼자 있을 공간이 절실했으니 여기저기로 여행 삼아 혼자 처박혔지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글을 쓰면서 우울과 상실의 정조에 빠져 있을 때 딸들은 도리어 엄마처럼 어깨를 두드려주고 방문을 닫아주고 챙겨주었어요.
 
혼자가 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어서, 글 쓸 공간을 못 얻으면 도서관에, 카페를 찾아가거나, 그래도 밤이 되면 새벽까지 집에서 글을 쓸 수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딸 이야기라서 그런가, 뭔가 쫄리고 미안해서 그런가, 딸들 얼굴을 보고는 글이 한 글자도 안 써지는 거였어요. 내 컴퓨터를 슬쩍 보는 것도, 뭐해, 뭐 써? 물으며 다가올 때도 도무지 민망하고 미안하고 그랬어요.
마음속 깊숙이 딸에 대한 미안함이나 떳떳하지 못함이 있었던 것 같고, 엄마의 삶이 이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일종의 죄의식이 깊었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따로 방을 구했어요. 그것도 딸이 적극적으로 구해줘서 나갔어요. 눈이 펑펑 내리는 옥탑방에서 기이한 미안함과 회한이 휘몰아쳐 울며 썼어요. , 왜 그러나 모르겠어요. 안 쓰면 그만일 텐데 치통으로 혼절할 만큼 아팠는데도 내내 무슨 고해성사하듯 썼어요. 자랑하려는 것도 아닌데 자랑으로 보일까 봐 걱정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데 미워하는 걸로 보이려나, 두려워하면서. 그 작은 방으로 둘째 딸이 까눌레와 초콜릿을 배달해주고 큰딸이 바리바리 맛있는 음식을 사 와서 힘내요, 기운내요, 연발하는데, 참 이상한 날들이었어요.
딸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뒤통수가 당기는 초조한 기분으로 남의 집 5층 좁은 공간에서 책상이 없어 화장대를 받쳐놓고 글을 쓰는데, 거꾸로 바뀐 우리들의 삶을, 내 가출생활을 쓰는데, 이야기는 줄줄 풀려나왔어요.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를 읽고 나서 한결 깊어진 딸들의 이해의 지평을 확인한 것도 있어서였나, 한참을 몰두해서 글을 쓰다 보면 밤이 새고 날이 저물었는데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어요. 무려 1800매나 되었어요. 그리고 편집될 거란 것도 알았어요.
 
 
 
지울 걸 알면서도, 불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밤새워 쓰는 마음은 뭘까요? 어떤 이야기들이었어요?
 
모두 엄마를 다룬 영화나 소설들이었어요. 못된 엄마, 이상한 엄마, 엄마이기를 포기한 엄마, 집착하는 엄마, 괴로워하는 엄마, 속 깊은 딸, 용기 있는 딸, 자랑스런 딸들이 나오는 영화와 책과 노래 이야기를 쓰고 또 썼어요. 영화를 책을 다 다시 보고 대사를 적고 엄마와 딸들을 표정들을 유념해서 봤어요. 나는 그 수많은 영화 중에서 나와 비슷한 엄마, 거꾸로 된 엄마처럼 사는 엄마 모습을 그렇게나 찾았어요. 그러면서도 가장 현명한 엄마, 자기 자신의 삶의 궤적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그럼에도 제 길을 가는 엄마, 죽을 때도 잘 죽을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특히 영화 <콘택트>의 언어학자 엄마 루이스, <겨울왕국>의 엄마왕비 이두나 같은 여자를 무슨 훌륭한 엄마의 교본처럼 좋아했어요. 미래에 딸을 잃을 것을 다 알면서도 다시 딸을 낳겠다고 선택하는 루이스의 단호한 모습을,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마법에 걸린 딸에게 숨겨진 비범한 운명을 알게 해주려는 여행을 떠나는 이두나의 다정한 얼굴을 아주 사랑했어요. 물론 엘사와 안나, 두 딸의 자매애와 삶의 선택을 환호하며 좋아하기도 했어요.
 
 
작가님은 결혼, 출산, 육아, 시댁, 제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내추럴 본 페미니스트가 된 반면, 딸들은 여성혐오, 취업전쟁에 부대끼며 비혼주의자를 자처하게 되었습니다. 딸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엄마인가요?
 
저는 페미니스트 저널에서 일했지만 여성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전공하지 못한 페미니스트예요. 그때도 그랬어요. 가만히 여자로, 살기만 해도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이제는 페미니스트란 말을 꼴페미로 메갈리아로 더 비하하고 혐오하는 이 세상에서 딸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해요. 미소지니를 일삼는 남자들에게 메갈, 메갈충 쿵쾅쿵쾅 소리도 못 들어보면 어떻게 사는 사람이겠냐는 거죠. 여자로 태어나 인간이란 이름을 달고 그저 열심히 잘, 제대로 살아갈 때만 메갈 소리를 들먹이는 이즈음, 메갈도 안 된다면 그게 무슨 제대로 된 여자의 삶이겠냐고 쓰게 웃기도 하거든요. 차라리 명쾌해진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나 메갈 소리를 들어야만 사람으로, 여자로 똑바로 말하면서 살아가는 셈이 되었으니.
60년대에 여자로 태어나 세상에서 말하는 여자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며 살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고 90년대 여아살해의 세상에서 우연히 여자로 태어나 성인 여자가 되어 당연한 말만 해도 당연하게 꼴페미로 찍어버리는 세상이니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겠지요. 딸들이야말로 모두 그 나이 또래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순리처럼 따라가며 자랐고 취업했고 어른이 되었어요. 엄마인 우리 때의 순리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엄마가 되고 살림을 하고 일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고 죽는 거겠지만 딸들이 사는 세상엔 저런 비연애 비혼 비출산의 선택이 순리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살아온 인생경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될 수도 있겠지요. 저 길이 딸이 선택한 길인가보다 생각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중입니다.
 
 
내심 딸들이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지요?
 
딸의 친구들은 거의 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더라고요. 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것까지가 비슷한 경로를 걸어온 90년대생 딸의 또래들의 길은 딱 연애와 결혼에서 달라지더라고요. 딸이 언젠가부터 종종 친구의 청첩장을 보여주고, 축의금을 준비해서 결혼식장을 다녀오고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나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엄마가 되는 단짝 친구들의 인생의 통과의례를 기록하고 축하하고 응원하고 다녀오는 것을 보노라면 종종 물어보기도 해요. 보기 좋았어? 괜찮았어? 그리고 생각해보긴 해요. 내 딸들이 애인을 데려오고 청첩장을 찍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까, 한 번은 경험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때의 내 엄마 역할은 어디쯤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나지 않을 일일 수 있으니.
아무튼 나 떠난 후에도 사랑하고 다정한 사람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매일 합니다. 결혼이 아니라도, 낳은 아이가 아니라도 사람 평생에 그런 좋은 사람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나는 가져나 봤을까, 혹시 마음의 의지가 되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애정 깊은 어떤 인간의 존재는 유니콘처럼 환상이나 전설 속 존재가 아닐까, 과연 있을까 걱정은 합니다만.
딸들은 아닐지 몰라도 나는 딸들이 있어 그나마 행복하니까요. 남편이나 애인이 없어 외로울까 걱정은 안 되지만 나 죽은 후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낼 남은 인생이 조금은 걱정이 되어요. 나는 엄마 죽고 너희들이 있었지만, 너희는 딸도 없이 어떻게 사니? 그런 맘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진정한 독립, 함께 살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작가님과 두 딸,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것처럼요. 그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딸들의 한 달 월급으로는 혼자 독립해서 살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대신 은퇴한 아빠나 전업주부인 제가 독립하는 것도 요원해 보입니다. 아마도 물리적으로 확연한 누군가의 독립은 불가능할 테니 말뿐이더라도 한 집에서 진정한 독립을 가능하도록 하는 게 빨라요.
일종의 플랫 메이트처럼, 하우스쉐어처럼 각자의 방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둔다. 청소하든, 빨래하든, 불을 켜고 자든 개인의 공간은 건드리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공동의 욕실, 화장실, 거실은 서로의 동선과 이용시간을 적절히 안배하여 사용하고 청결과 위생은 공히 책임진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 구입이나 냉장고를 채울 음식 등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적절히 체크하여 비용을 지불한다. 각자의 욕망과 취향을 존중한다. 등산을 가든, 친구 집에 가서 자든, 몇 박 며칠 여행을 떠나든, 몇 시에 집에 오고 나가던 안전과 행운과 무사귀환을 염원할 뿐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모 혹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간섭하지 않는다.
결론은 남처럼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되, 서로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고 모여 앉을 때 함께 할 때는 최대한 다정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돌볼 것. 이 정도는 현재 독립을 못 하고 같이 살면서 이룬 동거의 모습입니다. 사실 독립을 해서 타인과 살더라도 부딪칠 사항이니까, 이 정도도 독립이랄 수 있을지도요.
 
 
| 기사 및 사진 제공_그래도봄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시/에세이]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권혁란 | 그래도봄
2021.11.25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시/에세이]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 | 한겨레출판사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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