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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우울은 다시 발견되어야 한다『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 2021.11.25
  • 조회 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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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에는 우울증과 정신질환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많아졌다. 정신질환에 대해서 진단을 받고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지면서 환자 당사자들은 좀 더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고 나아질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우울증을 한 개인의 경험, 의학적 치료의 영역으로만 한정해서 보면 놓치는 부분들이 있다. 최근 정신질환을 진단받는 이삼십대 여성이 많아지고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그저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 개인적으로 치료와 회복을 하면 되는 문제일까?
 
『미쳐있고 괴상하고 오만하며 똑똑한 여자들』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의 경험이자 사회적 공론화의 대상으로 접근한다.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전공했고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했으며 그 자신이 ‘제2형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진단받은 당사자인 하미나 작가는 이삼십대 우울증 당사자 31명과의 인터뷰, 자신의 경험, 논문을 쓰며 공부했던 정신의학 지식들을 모아 책을 썼다. 다음은 하미나 작가와의 인터뷰.
 
 
요즘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아졌어요. 초기에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많다가 요즘은 진단받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많아졌고요. 하지만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우울증을 다루는 기존의 책들과는 좀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첫 번째 문제의식은 제가 환자로서 가진 문제의식이었어요. 나의 우울은 분명히 맥락이 있는 우울이었는데 진료실에서 치료를 받다보면 그 맥락들이 다 삭제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환자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은데, 이름 붙일 수 없던 고통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해방적인 것도 있지만 동시에 그 질병명에 묶이기도 해요. 내가 약한 사람만은 아닌데 환자, 피해자로서만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편했어요. 우울증 환자, 조울증 환자라는 것으로만 나의 모든 삶과 특성들이 설명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들의 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제는 그 이야기들이 개인적인 자기 질병의 서사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면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어떤 집단의 경험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은 우울증 당사자 31명과의 인터뷰가 중심이 되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에 대해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방식은 정말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개인의 사례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고요
작가님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만 쓰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만의 이야기였다면 쓸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집단의 경험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개인의 이야기가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나와 비슷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책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환자 개개인마다 질병에 대처하는 자세가 굉장히 달라요. 저는 가능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어요. 다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쓰잖아요. 약도 쓰고 하다하다 무속 신앙까지 가고요. 그것에 대해서 저는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다양한 사례가 있다는 걸 전달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해도 모두에게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에게는 어쨌든 글이라는 도구가 주어졌으니까 이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있었고요.  
 
 
인터뷰 대상자들을 찾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처음에는 주변에서 인터뷰 대상을 찾기 시작했어요. 친한 친구보다는 건너건너 알기만 했던 사람들이었죠. 아픈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알아봐요. 그렇게 제 눈에 밟히는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기획을 설명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에서 시작을 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필요를 느꼈어요.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 이외 지역에 사는 여자들, 코로나 이후 정규직이 아닌 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 그리고 다양한 학력의 여자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겨레21』에 기사를 쓰면서, 인터뷰 대상을 찾고 있으니까 연락 달라고 썼는데, 이메일이 엄청 쏟아져왔어요. 그것도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가 아니고, 자신의 병 이야기를 정말 많이 담은 이메일들이었어요. 그만큼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하나씩 메일을 열어보면서 그 동안 내가 만나보지 않았던 사람들, 다른 서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락해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저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해준 것이라서 책임감이 무거웠지만 그 책임감이 글을 쓰는 동력이 되기도 했죠.  
 
 
우울증 진단을 받고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는 분들도 있거든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보다는 원인을 알 수 있는 고통이 나은 부분도 있고, '내가 아프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던데요. 사실 우울증과 정신질환에서 당사자가 겪는 고통도 힘들지만 그 고통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요.
 
한국 사회 전반이 고통을 말하는 것도,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애도하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 고통에 대해 말하면, 그냥 빨리 다 잊어버리라고 말하거나, 네가 뭐가 힘들어 더 힘든 사람 많아, 이런 식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경험 속에서 자라왔으니까요
 
특히 여성들은 가족 안에서 그 고통을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고통을 잘 믿지 못하죠. 그런데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것은 의사의 권위를 빌려서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또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뭔가 관심을 받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고 보는 거죠. 이건 결국 발화하는 사람의 판단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인 거에요
 
 
요즘은 우울증에 대한 경험과 설명이 전보다 많이 이야기되면서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우울증에 대해서, 뇌의 화학적 균형이 깨진 거라는 설명은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많이 거둬준 것도 맞지만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아픈 사람에게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다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다양한 해결책이 있어요. 약도 있고 상담도 있고 인지 행동 치료 같은 것도 있고 정신분석 상담도 있고요.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게 뭐가 되든지 다 오케이에요. 어떤 치료가 맞고 틀린지는 저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치료에 어떤 명암이 있는지는 책에서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는 약물 치료가 주가 되었기 때문에 그 약의 역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약은 도움이 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릴 수 없는 것도 맞아요. 약의 도움으로 기분이 나아지지만 그것은 결국 ''를 바꾸는 것이고요. 사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 요인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게 더 쉽죠.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더 쉽고요. 하지만 우리가 우울을 한 개인의 질병으로만 치부하면 우울의 원인이 되는 어떤 요소를 놓치기 쉬워요. 바깥을 바꾸는 건 나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싸워야 하니까 괴로운 일일 수 있죠. 그러니까,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 책은 여성 우울증, 그 중에서도 이삼십대 여성 우울증에 대해서 특정해서 파고들고 있습니다
 
여성과 광기라는 주제는 정신병의 역사에서 굉장히 오래된 문제에요. 정신의학 교과서를 보면서 그걸 더 많이 느꼈어요. 지식의 역사 안에서 여성들을 특히 더 가혹하게 대했고, 여성들의 고통을 믿지 않고 엄살이라고 생각했더라고요. 짜증스럽고 주변 사람을 괴롭게 하는 동시에 굉장히 섹슈얼한 존재로 그려지고요. 히스테리컬한 미친 여자, 너무 스테레오 타입이죠.  
 
왜 이삼십대냐는 이야기도 많은데, 그건 저의 한계에요. 우울증이라는 것은 너무 광대하게 넓은 주제이기 때문에 좁힐 수밖에 없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그 중에서 이삼십대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 모든 사람과 모든 케이스를 다 포함하는 보편적인 고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글쓰기나 모든 지식은 결국 다 부분적이에요. 그것이 부분적임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더 큰 문제고요. '이삼십대 여성 우울증'이라고 하니까 엄청 일부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책은 고통 전반에 대한 이야기에요. 단지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 글이 특수한게 아니라, 기존의 우울증이나 고통에 대한 책들이 특수한 이야기인데 특수하게 보지 않았던 거죠. 우울증에 대한 고전처럼 자리잡은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도 중산층 백인 남성의 특수성을 가진 것인데, 그 위치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인터뷰 내용들을 읽어보면, 우울증 당사자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잘 알고 있더라고요. '자기 자신의 상태나 고통의 원인을 잘 모르는 환자가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통념과는 다른 이야기던데요
 
그런 주체적인 모습을 너무 담고 싶었어요. 당사자들 본인도 잘 인식을 못하는데, 학력과 상관없이 그냥, 진짜 똑똑해요. 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이기도 하고,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도 되는데 사회에서 자리가 없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요.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배움에 대한 어떤 편견이 굉장히 많이 깨졌어요. 그건 제도권 교육과는 굉장히 다른 문제에요. 지금 당장 어떤 정치적 올바름의 영역에 서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 낯선 사람과 낯선 세계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가, 그것이 타당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똑똑한 이 여자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책에서는 우울에 대해서 개인이 아닌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요즘 어디 갈 때마다 이야기하는 게, 상담 비용을 보험 처리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건데요. 상담을 받으면 비용이 정말 많이 들어가거든요. 이건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에요. 우리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자조 모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거죠. 상담을 보험처리 해달라든지,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 같은 공공 돌봄 공간이 더 필요하다든지 이런 일들은 돈이 필요하고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에요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그러잖아요. 중요한 문제여서 책이 쓰인게 아니라 책으로 쓰였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된 거라고요. 저도 그걸 진짜 많이 느꼈어요. 말 그대로 세상을 움직이려면 이야기가 모이고, 그것이 공론화되고, 나아가서 권위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가 책으로 쓰이면 중요한 문제가 되거든요
나조차도 가볍게 어겼던 어떤 폭력의 경험들을 성문화함으로써 변화의 씨앗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변화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은 결국은 아파본 사람들이고요. 아프고 늙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그들이 직접 결정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다 조금씩 살 만해질 것 같다는 원대한 꿈이죠
 
이게 굉장히 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제가 활동가를 해보니까, 변하는 것이 보이는 거에요.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듣는 사람이 생기고, 언론 기사도 나오고, 기사로 나오니까 안건이 되고 논의가 되는구나.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진짜 개미 같은 시도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는 거죠. 저에게는 책을 쓰는게 그 방법이었고요
 
 
이삼십대 여성의 우울증이 크게 늘어난 원인에는 분명히 개인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도 관련되어 있어요. 책에서도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삼십대 여성 우울증을 바라보는데요경제적인 문제도 우울에서 중요한 요인이고요
 
제가 언젠가 글로 썼지만, 이 여자들에게 한 달에 100만원 씩, 300만원과 석 달의 기간만 주어져도 자살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한 달은 회복하고, 한 달은 구직하고, 나머지 한 달은 일하면서 월급 들어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하는 돈이죠. 당장 한 달만 쉴 수 있어도 나아질 수 있는데 쉴 수가 없고, 당장 5천원이 없어서 나가서 사람을 못 만나 고립되는 것이 문제거든요.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문제가 정말 커요. 저도 돈 없고 집 없을 때 제일 죽고 싶었고요.
 
제가 요즘 느끼는 건, 사회가 이삼십대 여성들의 고통에 정말 관심이 없다는 거에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항상 '이삼십대 여성이 많이 죽는다'에서 끝나요. 그래서 뭘 하자,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정책을 만들어야겠다, 까지 가지 않는 거에요. '그래, 너 힘들었지' 이야기하는 걸 넘어서, 어떻게 해야 덜 고통스러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짜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요즘 진짜 많이 하고 있어요

 

 
흔히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가족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새로운 가족(=연인)을 통해 치유받는, 일대일 로맨틱 연애 서사는 굉장히 보편적이고요. 하지만 이런 일대일 로맨틱 연애 서사가 또 다른 함정이 될 수도 있던데요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 이야기만 너무 재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그러면 상대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게 돼요. 성적으로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지적으로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나를 돌봐주기를 바라는데, 사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인간들이잖아요
 
그리고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 너무 많기 때문에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감추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꼭 해야된다고 느꼈어요
너무 많은 여자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가족 안에서도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아요. 그것에 대한 어떤 돌파구가 자꾸 연애가 되는 거죠. 연애 관계에서는 왠지 내가 중요한 인물이 된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연애를 하면서 온전한 내가 되기 어렵다고 많이 느꼈어요. 뭔가 나를 계속 포기해야 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원했던 관계는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관계인데, 성적 대상 너머의 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좀 더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서로 동의하지만 거기에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죠. 그에 비해 기존의 여성, 남성이라는 성 역할은 당장 수행하기 너무 편안하잖아요. 그런 성 역할을 잘 수행하면 또 매력적이라고 말해주니까, 자꾸 관성대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그게 남녀 모두에게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사회에서 부여받았던 역할들이 있는데 그게 특히 여성에게는 너무 강력해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애인으로서만 존재하게 만들어요
연애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에서도 그래요.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에 붙이는 이름들이 있잖아요. 엄마, 아빠, 오빠, 동생, 남자친구, 여자친구. 그 역할을 지우고 그냥 인간으로서 그 관계를 봤을 때, 이 관계가 정말로 좋은 관계인지 아니면 폭력적이거나 착취적인 것은 아닌지가 드러내게 되는 것 같아요애인이라고, 엄마라고 이런 말을 해도 된다, 그런 건 없는 거죠.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가족, 연인처럼 일대일의 확정된 관계에서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관계로 확장한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는 '돌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다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돌봄이 아니라 함께,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것 같고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정상 가족'의 모습이 아닌 어떤 돌봄의 공동체를 믿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대부분의 돌봄 공동체는 사실 가족이나 연인처럼 배타적인 관계가 많았잖아요
 
저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 관계는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만들어낸 네트워크에요, 그 안에서 안정감을 많이 느끼고 있고, 외롭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안 하고와 관계없이 이어지는 단단한 관계죠
 
그렇다고 안 싸운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이렇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싸우고, 마음 아파하고, 상처도 받으면서 만든 관계고요. 좋은 돌봄이란 약간의 선넘기이기도 하거든요. 너무 개인적으로 살아서는 안되고 호혜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거죠. 때로는 친구의 못난 면도 보고 상처받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쟤가 뭐 힘든 일이 있나보지' 하면서 넘어가 주기도 해요. 가족이나 부부관계가 그렇잖아요. 상대가 시행착오를 거듭해도 계속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잖아요. 왜냐하면, 사랑하니까. 그걸 혈연관계, 부부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관계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 곳에서 엉키는 문제를 다른 곳에서 풀 수도 있어요. 내가 친구에게 심한 말을 하고 미안해지면 다른 친구가 나한테 심한 말 해도 '나도 그랬는데 쟤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넘어가줄 수 있는 것처럼요. 어쩌면 이런 관계가 더 안정적일 수 있어요
 
이런 관계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는 저에게 앞으로도 계속 과제에요. 만약 돈 문제가 얽히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아파서 옆에서 계속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굉장히 다른 문제니까요. 그럴 때 독박 돌봄이 되지 않고 어떻게 돌봄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가 저에게 질문이고 고민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걸 해내고 싶고, 그게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미 혈연이나 부부 같은 배타적인 관계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잖아요. 새로운 돌봄 공동체의 필요성은 다들 갖고 있을 것이고, 이제는 방법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거죠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 쓰기도, 인터뷰이들에게 묻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만큼 조심스러운 주제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쉬쉬할 수 만은 없죠
 
책을 쓸 때 거의 모든 챕터를 힘들게 썼지만 자살 파트는 진짜 더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자살에 대한 어떤 낙인이나 터부가 저에게도 있었거든요. 자살은 하면 안된다, 자살은 나쁜 것이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하지만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뭔가 윤리적인 목적을 가지기 보다는 진실된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선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면 독자가 바로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이들 역시 고통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헛된 위로를 하지 않고요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애도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잃어버린 타인을 어떻게 애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요. 그 사람을 잊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그를 마음에 간직한 채로 다른 삶을 사는 거죠자살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아예 안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사람을 자살자로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떠올리면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어떤 기억들을 잘 추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미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굉장히 복잡한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 젠더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바꾸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요. 하지만 그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더 좌절하고 또 다른 고통을 받기도 해요.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가의 일을 잠깐만 했는데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는 활동가분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했으면 해요. 그 몫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보상일 수도 있지만 어떤 크레딧일 수도 있고 휴식일 수도 있어요. 특히나 휴식이나 자신의 어떤 편안함에 대해서 주장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모든 이슈에 대응할 필요 없어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에 좀 더 관대하셔도 된다는 얘기를 너무 하고 싶어요
 
저도 저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거에요. 우리가 어떤 순간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왜 저 사람은 지금 당장 반응하지 않지? 왜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 거야? 나와 의견이 다른 걸까? 그런 순간들마다 너무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지금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갔으면 좋겠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박수진)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정치/사회]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 동아시아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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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s7910
  • 여자들의 고통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책 남자들한테 추천!
  • 2022/01/12 12:55
  • th**l93
  • 멋있어요 작가님!
  • 2022/01/04 11:1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