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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조성준 “확실한 건, 예술로부터 우리는 위안을 얻습니다”

  • 2021.10.01
  • 조회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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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예술가 자체보다 그들이 만든 작품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술가의 일』을 읽으면서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술가는 어쩌면, 필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변화시켰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좀 더 세상에 오래 남기는 방법으로 말이다.
예술가는 그들의 남긴 작품으로, 그리고 그들이 살아간 삶 자체를 통해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데이비드 보위, 구스타프 말러, 장국영, 마르크 샤갈, 안토디 가우디 등 예술가 33인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가의 일』을 쓴 매일경제 조성준 기자와 서면으로 나눈, 예술가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
 

 
『예술가의 일』은 '죽은 예술가들의 사회'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칼럼들을 모은 책인데요.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들은 '죽은 예술가들의 사회'라는 제목처럼,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인데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들이 아닌,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죽음은 거창한 주제죠. 하지만 죽은 예술가라는 주제로 칼럼을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진 않습니다. 좋아하는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면 언론들이 그 사람에 대한 부고를 어떻게 썼는지 찾아보는 편입니다. 2018년 미국인 소설가 필립 로스의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 책을 읽는 도중 필립 로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어요. 지금 내가 읽는 중인 이 글을 쓴 사람이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아득한 기분이 들었어요.
필립 로스가 떠난 직후 국내 언론이 이 소설가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서 부고 기사를 찾아봤어요. 하지만 필립 로스의 삶과 그의 작품에 대해 깊게 다룬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단신 기사로 이 작가의 죽음을 간략하게 기록했죠.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필립 로스 부고 기사를 쓰기로 한 겁니다. 『예술가의 일』 단행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연재한 시리즈 중 첫 번째 인물이 바로 필립 로스입니다. 그 이후로 제게 영감을 준 예술가를 조사하며 부고 기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삶을 공부하고 기록했죠. 그 결과 이렇게 한 권이 책이 나온 겁니다.
 
 
사람마다 예술가의 삶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작가님에게 예술가의 삶이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가의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험난하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든 예술가들이 맞닥뜨리는 최초의 난관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고 하면 일단 뜯어말리죠. 그만큼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건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시밭을 굳이 뚜벅뚜벅 걸으면서 매서운 풍파를 견뎌내고 결국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사람들이 있죠. 이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남긴 작품 이상으로 치열합니다. 전력투구에 가까운 예술가의 삶 속에서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 역시 배워야 할 점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책으로 엮으면서 제목은 예술가의 ''로 바뀌었어요. 예술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는 좀 다른, 어쩌면 '노동'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쉬워요. 예술가의 ''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노동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이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난관을 마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퇴근하고, 주말에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견고한 리듬이 우리를 무기력과 허무에 빠지지 않게 해주죠.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가에게는 그림 그리는 것이, 가수에게는 노래를 부른 것이 그들에겐 일이죠. 그들은 제각각의 일을 하며 자기 삶을 구원하고, 우리는 그들의 일에서 어떤 영감을 얻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예술가들의 면면이 흥미로웠어요. 그리 멀지 않은 과거 혹은 동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이 많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고 사랑받은 아들도 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이단자나 문제적 인물로 여겨지는 사람들도 많고요. 책에서 담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선정하게 되었나요?
 
아무래도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 선정에는 사심이 많이 반영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예술가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죠. 예컨대, 프랑스 화가 수잔 발라동이 그렇습니다. 시궁창 같은 뒷골목에서 태어나 남성 화가들의 모델로 근근하게 살아갔던 그는 결국 벨에포크 시대를 상징하는 화가로 우뚝 섰죠.
또한 다 쓰러져가는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도당신은 봄을 믿어야 해요라고 읊조리던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의 삶을 생각하면 아득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평생을 이방인처럼 떠돌았지만, 마지막까지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샤갈의 삶 역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죠.
 
 
책에서 다룬 예술가 중에서, 좀 더 깊이 다루고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예술가가 있나요?
 
이타미 준입니다. 제주도에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이 있죠. 대표적인 곳이 방주교회입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제주 관광지로 이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방주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이타미 준이 재일교포였고, 그의 본명이 유동룡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관광객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던 이타미 준. 그는 일본에서 조센징으로 불리며 은근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역시 그에게 따뜻하진 않았어요. 한국 건축계는 그를이방인취급하며 텃세를 부렸습니다.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며 어디에도 완벽하게 섞이지 못했죠. 그럼에도 그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습니다. 한국이지만 가장 한국 같지 않은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그곳이 자신의 흔적을 남긴 거죠. 아마도 그는 제주와 자기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예술가들에 대해 읽으면서 감정이 복잡해지더라고요. 데이비드 보위나 커트 코베인, 장국영 같은 이름들이요. 작가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데이비드 보위가 제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건 당연히 개인적인 경험 때문입니다. 저는 스무 살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면서 재수를 했어요. 서울 생활도, 비좁은 자취방도, 노량진 독서실도 모두 낯설었습니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보위의 음악을 들었어요. 좁은 방에서 잠을 자고, 닭장과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는데, 보위라는 가수는 무려 우주에 대해서 노래를 하더군요. 저는 1평 남짓한 자취방에 누워서 광활한 세계에 대해 노래하는 보위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위로를 받았어요.
여전히 보위의 음악을 들으면 저는 마법처럼 스무 살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요? 누군가는 장국영의 영화를 보며 자신의 지나간 청춘을 되돌아볼 것이고, 누군가는 너바나의 음악을 들으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시절에 대해 회상하겠죠.
 
 
책에서 만난 여성 예술가들의 삶에는 부와 명예, 대중의 사랑보다는 차별과 고통, 그리고 내내 이어지는 지난한 싸움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읽으면서는 안타까움이나 좌절보다는 당당함과 치열함이 느껴졌어요. 독자와 대중들이 여성 예술가들에게서 보았으면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예술가 이름 일부를 나열해보겠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천경자, 박남옥, 자하 하디드, 수잔 발라동. 모두여성 예술가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꿋꿋하게 예술가의 길을 걸은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이 길은 잔혹합니다. 세상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 여성들을 할큅니다. 그 공격 때문에 상처받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일어나죠. 치열하게 싸우고, 당당하게 맞섭니다.
아주 더딜지라도 저는 인간의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발전하는 건 편견, 차별과 싸운 용감한 사람들 덕분이죠. 저는 여성 예술가들로부터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들 특유의 강인함을 봤습니다.  
 
 
예술가에 대해서 '괴짜', '천재'라는 인상도 있잖아요. 하지만 남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조용히, 천천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가들도 많아요. 일생 동안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한 가쓰시카 호쿠사이나, 피카소처럼 떠들썩한 일화도 없고 활동 기간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지만 작품 하나하나마다 깊게 마음을 울리는 자코메티처럼요. 이런 '조용한'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특별히 신경을 쓴 점이 있다면요?
  
이런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니까요.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벽에 조깅을 하고, 오전에 글을 쓰고, 저녁에 재즈를 듣는 일상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반대로, 굴곡이 많은 예술가는 오히려 일화가 너무 많아서 어떤 사건을 다뤄야 할지 난감할 정도입니다. 이런 예술가는 기구한 삶이 그들의 작품보다 더 먼저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용한 삶을 살다 떠난 예술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벨기에 화가 마그리트가 그렇습니다. 이 화가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됩니다. 이 부류의 화가들은 삶 자체를 예술로 여기며 기행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대표적이죠. 반면 마그리트는 조용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은둔자에 가까운 삶을 살며 오직 그림만 그렸죠. 하지만 그의 작품은 평온한 일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마그리트는 관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기묘한 이미지가 가득하죠.
자코메티 역시 수도승에 가까운 삶을 산 조각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역시 만만치 않죠. ‘실존이라는 어려운 철학 개념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자코메티 조각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 정돈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에 대해 글을 쓸 땐 저는 마음 놓고 그들의 작품에 담긴 분위기에만 푹 빠져봤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느낀 감정들을 그러모아 구체적인 단어로 잡아내려 애썼죠.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을 기반으로 구성한 다른 챕터와 다르게 마그리트, 자코메티를 다룬 글엔 다소 관념적인 정서가 짙습니다.
 

 
『예술가들의 일』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예술가가 있다면 이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보는 것도 이 책을 잘 읽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관련해서 더 읽어보면 좋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더 있다면요?
 
보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보위라는 인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였으니까요. 영화 《벨벳골드마인》은 보위가 개척한 글램록 장르가 무엇인지 이미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보위가 내뿜었던 마력은 일종의 주술처럼 사람들을 홀리죠. 《벨벳골드마인》을 본 후 보위의 노래를 들으면 이 예술가의 음악이 조금 더 풍성하게 들릴 겁니다.
또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예술가의 일』에 담긴 33인의 예술가 모두 만만치 않지만,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을 뽑으라면 당연히 굴드입니다. 세상은 굴드를 괴짜, 기인으로 기억해요. 실제로 그의 기행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기행이 아니라 고독입니다. 그는 고독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고독 그 자체였죠. 미셸 슈나이더가 쓴 글렌 굴드 전기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이 고독한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가 아닙니다. 작가는 굴드라는 고독한 인간을 연구하며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이 책의 제목에는 두 개의 명사가 존재합니다. ‘예술가그리고 ’.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저는 계속 예술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럼 이젠 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 같습니다. 저는 전업 작가가 아닙니다. 제 본업은 신문을 만드는 편집기자입니다. 취재기자가 쓴 기사를 읽고, 이 기사의 제목을 어떻게 달지, 인포그래픽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지 매일매일 고민하는 게 제 일입니다. ‘예술가의 일집필은 일종의 부업이었습니다.
당연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밥을 먹고 올라와서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20~30분 동안 글을 썼습니다. 또한 잠들기 직전 스탠드 불빛 아래서 11인치 노트북과 씨름하며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때론 마감을 어기지 않으려 여행지에서 원고를 마무리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이렇게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서면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저녁 8시부터 쉬지 않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써내려 왔는데 벌써 새벽 두 시가 넘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을 슬슬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예술가의 일』을 읽는 독자분들께서도 저처럼 제각각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일이라는 건 우리를 구원하지만, 동시에 지치게도 합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그래서 우린 자주 피곤하죠. 바로 이럴 때 예술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영감을 주는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에 잠시나마 시선을 주는 거죠. 예술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줄까요? 저는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술로부터 우리는 위안을 얻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작가정신
 
 
 
예술가의 <!HS>일<!HE> [예술/대중문화]  예술가의
조성준 | 작가정신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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