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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음』 박민정, 끊임없이 되새기고 이야기하기

  •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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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문학상,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고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바비의 분위기』 등의 소설을 발표한 박민정 작가가 첫 산문집을 출간했다
『잊지 않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산문집에 수록된 글들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쓰여진 것들이다. 무엇을 잊지 않는 걸까? 객관적인 사실과 기록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설가가 잊지 않는 것은, 그때의 그 감각들이 아닐까. 어릴 때 느꼈던 그 묘한 위화감과 불안의 감각을 잊지 않는 것. 잠시 모두를 흥분에 몰아넣었던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잊지 않는 것. 그 감각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 그 시절과 그 감각, 그리고 그걸 뜯어보는 ''를 불러와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것
잊지 않았기에 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박민정 작가와 나눈 이야기들
 

 
첫 산문집입니다. 소설가들 중에는 소설쓰기와 산문쓰기는 굉장히 다르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작가님은 어떤가요?
 
잊지 않음은 산문집으로 기획해서 한 호흡으로 쭉 쓴 것은 아니고 몇 년에 걸쳐 쓴 글들을 모은 책이에요. 살다보니 산문을 쓸 일이 꽤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글들을 문예지나 매체을 통해 발표하면 '어디에 실린 그 글 봤다, 좋았다' 그런 얘기를 가끔 듣는데, 소설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 하고는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소설에 대한 평가는 직접 듣는 경우가 별로 없고 이런저런 리뷰와 비평을 통해서 보게 된다면, 산문에 대해서는 읽은 분들이 편하게 얘기를 해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수업 끝나고 학생들이 저에게 묻는 질문들이 있어요. 제가 계속 쓸 수 있을까요작가가 되면 삶이 행복할까요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쓴 글들이에요. 또 제가 공개 SNS를 안 하다 보니 제 개인적인 이야기,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보통 산문집 제목은 수록된 글 중 하나의 제목을 표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잊지 않음'이라는 제목의 글은 없던데요. 잊지 않음이라는 산문집 제목은 어떻게 붙이게 된 건가요
 
원래 출판사에서는 부제로 쓴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제목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제목이 조금 비장하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출간 한 두 달 전에, 어느 독자분이 블로그에 ''박민정 소설은 그냥 잊지 않는 소설인 것 같다" 이렇게 쓰신 걸 봤어요. 그걸 보고, '잊지 않는 소설은 뭘까?' 생각을 해보다가 잊지 않음이라는 제목이 나왔죠. 이 제목이 좀 더 가볍고, 하지만 계속 생각나게 하는 제목인 것 같았거든요.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쓴 산문집은 아니지만 다 읽고나면 그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계속 끊임없이 되새기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산문집을 관통하는 화두인 것 같아서 제목으로 괜찮을 것 같았고요
 
 
책의 시작을 박서원 시인에 대한 글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으로 시작하는데요. 이 글을 산문집의 시작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이전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책이지만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의 경우 이 산문집을 위해서 새로 쓴 글이었고 꼭 앞에 들어갔으면 했던 글이기도 해요
중학생 때 엄마가 읽던 시인의 산문집을 통해서 박서원 시인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는 '불행한 셀러브리티'로 생각을 했었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박서원 시인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분이 쓴 독한 시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들추면서, 이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썼다,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컸고요. 저 사람은 고통스러웠고 피해자였고 그런 상처가 글을 쓰게 했다는 이야기들이요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 저 사람에게는 어떤 상처와 고통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떠올리지 않는데, 여성 작가에게는 사연 같은 것이 쉽게 덧입혀지는 느낌이에요.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유독 소설인데도 어떤 부분들은 작가의 반영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또 반대로, 작가들이 그냥 평범한 성장과정을 거쳤다면 '중산층 부르주아다, 작가로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요
 
책에서도 썼는데, 저는 행복하다는 것이 작가로서 굉장한 결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도 등단한지 12년 정도 됐으니까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겠지만, 제가 등단할 때만 해도 집이 반포라는 말만 해도 별종 취급을 받았거든요. 강남 사는 작가가 어디있냐는 식으로요
 
소설쓰기가 치유가 될 수도 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삶이 불행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도 스스로를 몰아넣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나쁜 경험들은 그 자체로 없어야 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나는 작가가 될 거니까 이런 경험도 필요할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고통스러운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저는 갈수록, 소설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플롯과 테크닉을 공부해서 쓰는 건데 왜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써야하는건가 싶어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에서 '글쓰기는 실패를 예감하고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라고 했는데요.
 
문학은 원래 실패를 향해 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누군가, "문학과 결혼은 비슷하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 하는 거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진짜 와 닿았어요. 문학은 재테크처럼 미리 분석하고 리스크를 파악해서 가능성 있는 곳에 투자하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요. 영원히 할 수도 없고 열심히 하면 사랑받는다,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저는 문예창작과 다닐 때부터 '생존'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매년 새롭게 등단하는 작가가 최소 10명이지만 그렇게 등단하기도 진짜 어렵고 등단을 했다고 전부가 아니거든요. 이후에도 계속 작품을 발표하고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건 내가 뭘 더 한다고 뭘 덜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운도 따라줘야 하고요.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해도 알려지는 작가는 정말 소수에요. 좋은 작품을 쓰지만 문학 전공자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많고요
 
저에게는 베스트셀러가 되도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계속 활동할 수 있을까?’가 항상 내재된 두려움이에요. 책을 많이 팔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판매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그냥 제 목표는, '다음 작품을 쓰고 싶다'에요.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에 한 번 더 쓰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쓰는 것이 목표죠.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이 너무 많아요. 글쓰기라는 것, 책을 낸다는 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을 읽으면서는,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그 시대를 경험했기에 자기 경험에 갇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반대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경험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의미화하는 사람이 더 정확히 그 시대를 이해할 수도 있고요
 
대학교 4학년 때 87 6월을 배경으로 하는 희곡을 썼어요. 그 희곡을 보고 그 시절 운동권 출신인 교수가 "네가 1980년대를 아냐?"고 질문했는데, 사실 87년의 저는 존재하긴 하지만 의식이 없는 그저 살이었죠.
 
1945년 일왕의 옥음 방송을 직접 들은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80년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어땠을까? 그 시절을 실시간으로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서 후대가 갖는 호기심 같은 것은 있죠. 지금 스무 살 된 학생들이 2002년 월드컵 때 어땠나요? 선생님도 촛불집회 가보셨나요? 묻는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제가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그때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잘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진실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이 밝혀지기도 하고, 데이터와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거든요. '내가 거기 있었다' '내가 겪었다'는 것만으로는 내세울 만한 거리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또 소설의 방법론과도 연결이 되더라고요. 산문의 영역에서는 당사자성이 중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설은 무언가를 겪은 사람이 반드시 더 잘 쓰는 게 아니거든요. 소설은 허구의 영역이잖아요. 예전에 제가 불행함으로써 작가가 될 자양분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경험과 그로인한 진정성이라는 담론에 매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본에 대한 이야기인 「2019년 여름, 소비의 기억으로부터」를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2019년 이전과 이후에 일본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나 감정도 진짜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떤가요
 
일본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지만 저는 일본어도 못하고 일본 게임이나 만화,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일본제 브랜드나 생필품 같은 일본제 물건들을 좋아했던 것뿐이죠. 그리고 2019년 이전에는 다들 일본 여행을 많이 하던 시기였거든요. 짧은 휴가나 주말에 쉽게 떠날 수 있던 게 일본이었고 저도 그때 일본 여행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2019년에 'Np Japan' 운동이 시작되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 자체가 차단이 되니까, 처음에는 막막하더라고요. 저는 일본과 한국, 재일 조선인이라는 일본에 남겨진 한국인 난민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회 문제라든지 역사적으로 단절될 수 없는 상처들, 일본 사람, 일본 사회와 한국 사람, 한국 사회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고 있어요. 작품을 빨리 쓰지 못해서 아직 쓰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아직 쓰여지지 못한 나의 소설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핑계일 수 있지만일본 여행을 가서 느낌 딱 받고(웃음). 그 힘으로 소설도 쓰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들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다면 지금의 이 단절된 한일 관계 그 이후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구나 싶어요. 결국 내가 지금 체감하는 이야기를 쓰게 되니까요.  
 
 
지하련이 1941년 발표한 「체향초」에 대한 글도 재미있었어요. 유명한 남성 작가의 부인이기에 덧씌워진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것이 안타깝고, 지금보면 너무 분명하게 화자인 삼희가 오라버니를 비웃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당대 지식인이었던 오라버니의 고뇌를 삼희가 관찰하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고요. 뻔히 보이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요
 
정말 몰랐던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실 모를 수는 없는데 말이죠. 「체향초」는 작가가 본인의 이야기라고 밝혔고, 누가 봐도 '삼희'는 오라버니와 친구인 태일을 조롱하고 있는데 그걸 오라버니들의 '고뇌 서사'로 평가하다니 말이에요
 
이 글은 2017년쯤 「문예중앙」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일환으로 기획된 고전 다시 읽기 기획으로 쓴 글이에요. 제가 고른 것이 지하련의 작품이었죠. 저도 지하련을 임화의 부인,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찾아서 읽어보니 너무 좋은 거에요. 「체향초」 뿐만 아니라 「도정」이라는 소설도 좋은데, 지하련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너무 없었어요. 작품에 대한 평은 거의 없고 그냥 다, 내 친구 부인, 내 친구의 여자, 이런 식으로 언급한 것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게다가 월북도 했으니까 여러가지 조건상 지하련에 대해서 다루기 쉽지는 않았죠. 월북 이후에는 임화가 숙청당한 후에 미치광이처럼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얘기만 괴담처럼 떠도는데, 이것도 너무하죠. 누가 평양에 가서 그 모습을 직접 봤냐고요

 

 
3부 중에는 작가님이 작품 속 인물을 만들 때 설정을 빌려온 주변 사람들과 인터뷰한 글이 있어요. 인터뷰한 분들이, 자신의 모습이 일부 반영된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자기 자신과 소설 속 인물과는 분리해서 인식을 하더라고요
 
소설 쓰는 사람에게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들은 이야기 같은 것이 소재가 되는데. 저는 그걸 아름답게 써주는 게 아니라 좀 기괴하게 그리는 편이에요. 소설 속 인물도 현실에 있을 법한, 자기 자신과 친구들을 많이 닮았는데 그걸 한 번 비틀어서 이상한 사람들을 그리거든요
 
제가 품위있는 삶』을 쓴 정소현 소설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분이 계간지에 발표한 자전소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자전 소설'이라는 것은 자서전 소설이라는 뜻인데 소설에서는 ''는 납치되어 와서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죽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요. 처음에는 '이게 뭐가 자전이지? 작가가 이렇게 살았다고?' 이렇게 생각했는데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았죠. '자전 소설'에서 방점을 찍어야 되는 것은 '자전'이 아니라 '소설'이란 걸요. 그러니까, 내 얘기조차 소설로 쓰이고 나면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이에요.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쓴다는 것은 기사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고요
 
저는 작품 속 인물이 저처럼 보인다고 하면 화를 내기도 했어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인격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작품 속 인물이 나처럼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을 더 많이 말한다고 하잖아요. 어쩌면 제가 '나는 소설과는 별개의 존재야' '작품과 나를 분리할거야' 이런 말을 자주 한다는 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책 제목을 독자분 리뷰에서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도 했어요. 그 인터뷰를 보신 또 다른 독자분이, 작가들이 독자 리뷰를 찾아보고 그걸 피드백으로 생각해서 작품을 쓰는 걸 알았다고 하셨는데, 맞아요. 리뷰는 거의 다 찾아보고, 책에 대한 평들은 사실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게 진짜 소통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예전에 출판계가 활황일 때는, 저는 경험한 적이 없지만(웃음), 책을 출간하면 출간기념회도 크게 하고 라디오 광고도 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기회도 많았는데요. 지금은 양상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외로운 일이거든요. 책을 내고 나면 한 두 명이라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실 지인들 하고는 오히려 이런 얘기가 잘 안되요. 서로 조심할 게 많아서요(웃음). 작품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서로 잘 모르는 사람하고 잘 되기도 하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하고 채팅하면서 속 얘기를 쉽게 털어놓듯이요
 
이 산문집을 경유해서, 독자들이라면 이 작가가 이런 생각으로 소설을 썼구나, 그런 걸 생각해주면 좋겠고요. 소설에 관심이 있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 독자에게는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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