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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욕망이 주는 자유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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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질문하기에는 너무 바쁘다. 바쁘게 일하고 카드 값을 내고 세금을 내고 서둘러 즐기고 다시 출근한다. 하지만 더 영리하게,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에도 ‘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지?’라는 생각에 숨이 막혀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숲속의 자본주의자』가 예상치 못한 호응과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는 이유다. 7년 전 곰과 사슴이 나오는 숲속으로 이사해 거의 안 쓰고 안 벌며 살아온 박혜윤 작가의 삶과 사유는 과연 우리의 삶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한 번쯤 고민해본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을 법하다. 『말하기의 말하기』의 김하나 작가는 이 책을 일컬어 지적 사유의 쾌감이 깊은, 시간과 돈의 관계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평했고, 『문장 수집 생활』의 이유미 작가는 올해의 책이자, 후련하고 기쁨으로 가득해지는 책이라 찬사를 보냈다. 삶의 정답을 발견했다고도, 지속 가능한 지혜를 발견했다고도 말하지 않는 그의 책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제목을 듣고 뭘 기대해야 할지 모른 채 책을 펼쳤는데, 에세이 같기도 하고 인문서 같기도 하고 독특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작가님께서 이 책을 설명하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나요?
 
생각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사생활이 궁금한 유명인도 아니고, 학문적 계보를 꿰뚫고 있는 인문학자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생각은 인간이면 다 하는 거니까. 다만 그런 생각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로 꾸준히 돌렸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걸 독자들에게 전하길 바랐어요. 독자들이 읽으면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니고, 자기 삶을 의식적으로 다르게 생각해보는 경험이 됐으면 해요. ‘내 삶을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흥미롭군’ 이렇게요.
 
 
7년간 시골에서 사슴과 곰을 이웃으로 두고 살아가셨어요. 인터넷조차 없던 세월도 길었죠. 그간 이 생활을 접고 싶은 위기라고 할 만한 순간은 없으셨나요?
 
남편이랑 싸울 때죠. 누구나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 수 있지만,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결국엔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남편과 제가 이런 삶에 대한 의견이 맞아서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면서 싸운 건 격렬하기 그지없었죠. 저희는 싸우는 걸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요. 내가 뭔가 하고 싶다고 하고 남편이 반대할 때, 싸우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다시 질문하게 되고, 처음 생각했던 거랑 달라져 있어요. 하지만 싸우는 순간엔 분노가 치밀어서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죠.
 
 
한국 사회에서,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으로 여겨져요. 작가님은 경제력을 포기하시는 것이, 혹은 현격하게 감소시키는 것이 두렵지 않았나요? 그 대신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희는 일단 빚이 없어요. 거기에서 두려움이 많이 줄어요. 서울에서 대출받아서 아파트를 샀을 때 매일의 감정은 잘 설명할 수가 없어요. 대출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 숫자들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죠.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니었어요. 돈을 벌겠다는 강력한 의지, 그리고 돈을 벌어가면서 느끼는 환희가 엄청나게 강렬했거든요. 그렇게 돈을 투자하고, 늘려가고, 더 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 정말 짜릿하고 잘만 하면 건전하기도 한, 삶의 거대한 부분이죠. 불안이나 두려움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연료가 돼요. 그러니까 돈을 무한대로 늘려갈 생각을 그만둔 건, 싫거나 나빠서가 아니에요. 물론 지금도 돈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그만 둔 게 아니라, 무한대가 아닌 거죠. 그러니까 돈을 열심히 벌고 생각할 때 두려움이 없었던 게 아닌데, 두려움의 성격이 달라진 거예요. 이전에는 ‘돈 벌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돈을 더 벌어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라는 두려움이었는데, 지금은 삶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두려움이에요. 삶은 언제고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미래를 보장하는 돈 벌기를 지금 멈추고 즐길 수 있는 걸 즐기는 거죠.
 

 
작가님의 생각 중 정말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가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욕망이 정확하게 무엇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였어요. 사회의 욕망에서 벗어나 무엇이 나의 욕망인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돈을 번다, 학교를 다닌다, 이렇게 쓸모가 명확한 일들 말고, 쓸모없는 일인데도 내가 꾸준히 뭘 하는지 나를 보는 거예요. 여기서 열린 마음이 필요해요. 이러면,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쓴다, 악기를 배운다’ 이렇게 여전히 이미 정해진 배움에 한정된 그런 일들을 생각하니까요. 이런 구분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애를 키우고 돌보는 것은 의무이고 쓸모 있는 일이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애한테 맛있는 걸 먹이고, 예쁜 옷을 입히는 거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기억하는 거에 끌려요. 밥을 하다가도, 애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신이 나서 집어 치우고 들어요. 그리고 밥은 되는 대로 먹죠. 아이를 잘 키우겠다거나 이해하겠다는 목적이 아니에요. 친구랑 수다를 떨 때,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릴 때에도 홀린 듯이 들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어려서도 그랬어요. 엄마가 잔소리하고 있는데, 정말 열심히 듣는 거예요. 경청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대사 스크립트를 만들고 있었어요. 어조, 쉬는 순간, 주제가 갑자기 바뀔 때 등. 이렇게 자신을 깊이 관찰하면서 성향, 특성, 욕망을 연결해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어렸을 때가 특히 중요하죠. 어렸을 때야 말로 쓸모랑 상관없이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 쉽게 드러나니까요.
 
 
작가님은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강조하지는 않으시지만 생활을 보면 환경의 위기나 동물권 등 현재의 핵심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하는 분 같아요. 그런데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천을 하다보면 개인의 한계에 지치거나, 이 문제의식에 같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되기 쉽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그런 특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어떤 차이 때문일까요?
 
제가 그런 실천을 하는데 있어 완벽하지 않은데 그래도 즐겁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희는 음식을 배달시켜본 적도 없고, 택배도 두어 달에 한번 꼴, 빨대가 필요한 음료나 생수도 사 먹지 않아요. 된장 등 양념류나 빵, 국수류도 집에서 만들고 가공식품도 사지 않으니까 포장 쓰레기가 정말 조금 생겨요. 신발을 빼고는 뭐든 중고가게에서 사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행위들이 쓰레기를 줄이겠다거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편하고 즐거운 게 가장 중요해요. 기념일이나 사람들과 만나서 고기를 먹거나 외식을 할 때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즐거워요. 평소 일상에서 극도로 절제하기 때문에 이런 드문 경험들이 더욱 즐겁고 특별해요. 예전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쓰레기나 1회용 컵을 매일 2-3개씩 배출하고, 이것저것 많이 사면서 살았어요. 그때에도 즐거웠어요.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지금이 더 좋고, 더 옳은 게 아니라, 그때로부터 조금씩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진짜 기쁜 걸 연구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 누구도 남들과 비교하면서 도덕적인 잣대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 대해서도 남들에 대해서도.
 

 
또 다른 인터뷰에서 숲으로 들어온 것 ‘첨단’에 서기 위해서라고 하셨어요.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농담 반 진담 반이었어요. 문과생은 기술 중심인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기술 자체를 발전시키는 데에 동참하지 못해도, 그로 인해 일상생활과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 그리고 사회 구조가 바뀌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그 변화의 ‘첨단’을 받아들이는 건 빠르게 할 수 있어요.
 
가령, 제가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하는 건,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 물러나 자연에서 한가롭게 지내라는 생각만이 아니에요. 제 딴에는 오히려 사회 변화에 ‘첨단’에 서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자랄 때에는 좋은 대학만 가면 적어도 60살까지는 인생이 보장됐어요. 지금은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그래서 이름난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몇 년 안에 그만두거나 잘릴 걱정을 해요. 어떤 시절이 좋거나 나쁜 건 없어요. 옛날에는 입시를 위해 죽도록 공부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죠. 열아홉 살까지만 고생하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급속한 기술 발달과 변화 때문에 누구든 어차피 평생 불안하게 사는 시대니까, 놀 때 잘 놀아서 불안을 견디고 조그만 기회라도 있으면 잡을 수 있는 건강한 멘탈을 갖는 게 ‘첨단’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큰 따님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가장 소중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들었는데, 아이들이 떠나면 이제 그 관계는 어떤 형태로 변모하게 될까요? 가족 외에 나의 사소한 맥락을, 내 존재감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처음 엄마가 되고 나서 정말 놀랐어요. 희생적인 모성이나, 노후대책보다 아이들 교육비를 지출하는 거나, 자기 애가 천재라고 믿게 되는 거나, 전부 이해가 가는 거예요. 저는 성향상 아이를 예뻐하는 것도 아니고 모성애가 별로 없기도 해서, 힘들어서 미칠 것 같을 땐 애를 왜 이렇게 대책 없이 낳았나 한숨 쉬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재미있고 더 의미 있는 일들 대신 아이와 관련해서 겪는 의문, 절망, 끝도 없는 불안과 비이성적인 욕심, 그리고 잠깐의 아름다움과 환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우와, 이건 정신병 수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니까 정상인 척하는 구나’ 싶었어요.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빈둥지증후군 이야기를 했는데, ‘걸리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애는 저보고 ‘쿨한 엄마’라고 하면 속으로 웃어요. 자기가 엄마가 안 돼 봐서 뭘 모르는 거죠.
 
마찬가지로 제가 집착 수준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잘 몰라요. 기본적으로 그들을 관찰하는 게 제가 집착하는 방식이라 그런 거 같아요.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최우선 대상이고 가끔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괜찮아요. 어떤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우주 전체인 것처럼. 가만히 그렇지만 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그 안에 내 자신이 있어요.
 

 
독자들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며 ‘후련하고 기쁘다’는 평을 주신 분도 있었어요.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했을까요?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면… 정말 조심스럽게… 쓰는 행위만큼이나 읽는 행위도 창조행위니까요. 하나의 글도 모두 다 다르게 읽죠. 어떻게든 행복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꿈과 열정을 가져야 하고, 매일 발전해야 한다는 정해진 ‘긍정성’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괜찮다’라는 위로를 주는 것도 아니에요. ‘이대로 괜찮기 위해서’ 이대로 수동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행복해지고 싶고, 꿈과 열정을 가지고 매일 발전해지고 싶어 해요. 그런데 그게 왜 스트레스가 될까요?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이런 욕구를 긍정하면서도, 왜 이런 욕구가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탐구한 책이에요.
 
 
책 출간 즈음에는 종종 우울감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마음에 대해서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공저 포함해서 책 출간이 겨우 4번째라 확실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글을 쓸 때 특별한 노력도 고민 없이 마구 써요. 내 생각이나 내 글이라기보다는, 받아 적는다는 느낌이죠. 읽은 책, 만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일상, TV 예능, 남들의 SNS 포스팅, 이 모든 것들이 비로 내리고, 저는 가만히 서서 비에 젖어 들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책이라는 건 갑자기 내가 비를 내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서는 거죠. 남에게 시원한 단비가 될지, 짜증나는 불편함이 될지 겁이 덜컥 나죠. 이런 기분이 들 때 소심증이 도져서 보통은 도망을 가곤 하거든요.
 
그런데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오묘해요. 내 것이 점점 공동의 것이 되는 동시에, 반대로 공동의 것이 점점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이것도 경험이 많지 않아서 확실한 건 아니지만… 구체적인 목적 없이 받아쓰기 하듯 글을 쓸 때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통해 흘러나오는 거니까 내 것이 아니면서도 어쨌든 굉장히 나만의 사적인 무엇이죠. 그런데 계약을 결정한 회사나 직접 소통하는 편집자와 책을 만들어가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돼요. 내 책이라는 책임이 생기니까 더 확실하게 내 것이지만,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 것이 되요. 그래서 도망을 못 가요. 이 과정이 공포스러우면서도 희한하게 짜릿해요. 그래서 ‘다시는 책을 안 낼 거야.’ ‘또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강렬하게 동시에 하게 되니까 울적해지는 것 같아요. 뭐가 진심인지 모르겠어요.
 
결국에는 ‘내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죠.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서도 내 것,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열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앞으로 시골에 사는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으셨어요. 가장 해보고 싶으신 건 무엇일까요?
 
앞으로 뭘 할까 이야기는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꼭 하고 싶다는 건 사실 없어요. ‘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고, 안 해도 그만인 거죠. 그런 것 중에는 한국 시골에 집 짓고 상담 책방 하기. 물가 싼 나라(그리스, 멕시코, 포르투갈, 대만 등) 옮겨 다니며 3개월씩 살기. 서울이나 미국 대도시에서 차 없이 살기.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기. 알아보면서, 준비하면서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따르게 되면 어딘가로 가고 있겠죠.
 

 
| 기사 및 사진제공_다산북스
 
 
 
숲속의 <!HS>자본주의자<!HE> [인문]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 다산초당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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