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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편혜영 “미스터리는 삶이 작동되는 방식과 가장 유사한 장르”

  • 2021.03.22
  • 조회 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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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단정한 문장 위로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이 이야기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은 삶의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불안을 담은 8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어두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재미있게읽힌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소설을 읽게 만드는 이것은 분명 재미. 하지만 그저 재미있다고만 하면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삶이 간직한 비밀, 그 어둠과 애틋함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 또 아쉽다. 어둡지만 따스한 순간이 존재하고, 불길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에 대해 편혜영 작가와 나눈 이야기들.
 

 
2019년에 출간된 『소년 이로』 이후에 거의 2년 만에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했던 지난 2020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도 궁금해요. 
 
다른 분들도 모두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최소한의 공간에서 비슷한 일상을 잘 유지하려 애쓰며 보냈어요. 동네 지형지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가까운 곳을 많이 걷게 되었고요. 나날의 시간은 고요하고 평안했는데,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공간의 변화가 없어서인지 뚜렷이 떠올릴 만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 점이 오히려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스무 번』에 수록된 작품들은 2015년부터 2020년 사이 쓰여진 작품들인데, 쓰여진 시기가 다른 데도 한 권의 책으로 묶였을 때 비슷한 톤을 유지하더라고요
 
첫 소설집인 『아오이 가든』을 묶을 때부터 그랬는데요. 발표된 시기대로 작품을 일괄적으로 모아서 책을 내기보다 색채가 비슷한 단편이 쌓이면 연작 느낌으로 골라 책으로 묶는 게 좋아요. 그러다 보니 한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들이 발표한 시기에 다소 시차가 있는 것도 있지만 결이 맞는 작품들은 가져오는 편이에요. 이번 소설집에서는 낯선 곳으로 이동한 인물이나 경제적 파산으로 삶의 위기를 가진 인물들 이야기가 많습니다
 
 
소설집으로서의 완결성도 좋았지만 또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도 굉장히 단단하게 완성된 느낌이더라고요. 초고를 쓰면서도 그런 작품의 구조에 대해서 설계를 많이 하고 시작하는 편인가요
 
초고를 쓸 때는 이야기 전체를 구상하기 보다 어떤 한 장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걸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야기라는 것은 장면이나 이미지만으로 완성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덧붙여 쓰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하는 행동의 동기 같은 것을 끝까지 생각해서 쓰려고 해요
쓰는 당시에는 저도 이 소설이 어떤 구성으로 어떤 의미로 쓰여질 모르는 채로 일단 완성을 하고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는데, 그때 시간이 걸려요. 시간이 지나면 부유물이 떠오르듯이 뒤늦게 의미가 보일 때도 있고, 그러면 그걸 다시 수정하고 수정하는 식으로 완성했어요
 
 
표제작이기도 한 「어쩌면 스무 번」은 미스터리나 호러 장르소설 같은 느낌도 있으면서 그게 비현실, 비일상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딱 현실의 끄트머리에 멈추는 아슬아슬함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을 굳이 장르로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작가님 작품의 이런 서스펜스나 블랙유머 같은 것을 즐기는 독자들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독자분들이 서스펜스나 블랙유머를 많이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는 삶이 작동되는 방식과 가장 유사한 장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의 삶이 명확한 인과가 없고 곳곳에 비밀이 있는 것처럼 미스터리 장르도 그러니까요. 물론 현실의 삶에는 훨씬 더 웃음이 많고 위로가 되는 부분도 많지만, 불안과, 긴장, 두려움, 모호함 같은 것이 현실을 이끄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독자분들이 겪고 싶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삶의 어두운 측면을 비추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많이 경험한 독자분들이라야 현실에서의 빛도 잘 찾아내고 불안이나 두려움에도 훨씬 건강하게 적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범죄와 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 더 무서워지는 게 많던데요. 알고 보니 평범한 일상이 서스펜스가 넘쳐나는 살얼음판 같은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요. 눈에 띄는 사건은 해결할 수 있지만, 이 일상의 긴장감과 불안이란 건 쉽게 인식할 수도 없고 또 해소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더 섬뜩한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이런 숨겨진 서스펜스를 담을 때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나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와 내심 다른 지점을 가진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느낌으로 썼어요. 이야기의 긴장감은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조절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소설 쓸 때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야기를 감출지, 혹은 어떤 장면을 먼저 보여줄지를 생각합니다
 
 
수록된 작품들이 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뒤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전혀 짐작을 못하겠더라고요.  
 
처음 읽을 때는 ', 이런 이야기겠구나' 짐작하지만 읽어가면서 다르게 전개되거나 다른 진실을 보여주거나 하는 이야기를 제가 좋아해요.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와 나중에 곱씹어 봤을 때 인물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지고, 이런 사건일 줄 알았는데 뭔가 다른 진실이라든지 맥락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남들이 몰라주는 내면이 있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과 자기가 가지고 있다 믿는 것은 좀 다르잖아요. 소설 속 인물들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이 처음 읽을 때와 다 읽고 나서 보게 되는 것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표제작인 「어쩌면 스무 번」의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 제목은 몇 해 전 열렸던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회에서 봤던 문구였어요. 전시회 벽에 붙어있던 소설의 인용구(* 폴 볼스의 소설 『더 쉘터링 스카이』)였는데, '어쩌면 스무 번'이라는 것은 삶의 유한성, 계속될 것 같지만 사실은 일순간에 불과하다는 걸 뜻하는 횟수였어요. 그래서 그 구절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리고 '어쩌면'이라는 단어 자체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확실한 진실이 아닐 때 쓰는 부사인데요. 제가 소설에서 굉장히 자주 써오던 부사더라고요. 정확히 해결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인과관계가 제가 쓰는 소설하고도 맞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어쩌면 스무 번'이라는 그 횟수를 떠올리는 순간은 서정적인 느낌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다 부조리하고 기괴해 보이잖아요. 실제로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위협적이고, 아내도 지나치게 냉랭한데다 장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요. ''라는 인물도 불안증세로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느끼는 슬픔이 있을 것 같았어요. 삶의 조건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고, 그저 옥수수밭에 웅크리고 숨어 있을 뿐이고, 하지만 이것도 곧 끝나겠거니 하는 체념 같은 그런 느낌이 풍겼으면 좋겠어서 그 이미지를 가지고 제목을 만들어봤어요


「호텔 창문」을 비롯해서 「리코더」나 여러 작품들에서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죄가 아닌데 주변에서 죄의식을 가지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이요. 단지 다행히 살아남았을 뿐인데 '왜 너는 살았느냐'라고 끊임없이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회가 약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방식인 것 같았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리코더」라는 소설에는무영이 사고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데 깁스를 해서 아픈 시늉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회에서 피해자다움이라는 것을 요구해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면에수오는 오히려 이런 생각에 저항해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에게 죄의식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더 소름 돋는데요. 무신경하고 무감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정의'를 강요하는 모습을, 현실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더 암울하고 피로가 느껴지더라고요
 
무의식 중에 제게도 그런 피로감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정의로운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이지만 정의만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회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요. 무엇보다 정의라는 것이 모호하고요. 한 사람에게 정의로운 것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도 아니고요. 옳은 것이나 그른 것, 선과 악은 선명하게 구별할 수도 없어요
 
「리코더」나 「호텔 창문」에서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저는 그 사람들이 생존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단순히 누군가 덕분에 살게 된 사람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요구하는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 느끼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그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니까요
 
 
'누구 덕분에 내가 살았다'는 그 부담과 시선에 계속 맞서 싸우는 그 삶이, 그렇지만 절망적인 느낌은 아니었어요. 애쓰며 살고 있는 그 자체가 더 눈에 들어왔거든요.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짊어지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인 것 같아요. 「호텔 창문」에서물에 빠진 내가 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형이 나를 구하고 죽을 죽은 당연히 몰랐을 거고요. 그렇게 뚜렷한 인과 없이누군가의 장난처럼 자신에게 남겨진 운명 같은 것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인물들이죠
살아났지만 살아난 것에 안도하기 보다는 왜 살았을까? 라고 질문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 그런 아이러니한 인물에게 좀 더 끌리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물들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하기보다는 좀 떨어져서 지켜보는 방식으로 그리시는데요. 인물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작가들도 있지만 작가님은 굉장히 냉정하고 어쩌면 가차없는 시선으로 인물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쓰면서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하지는 않으신가요?
 
아닙니다. 감정이입하며 씁니다. (웃음) 그런데 제 소설 속 인물들은 아무래도 조금 어려운 일을 겪는 인물들일 때가 많아서요. 지나치게 거기에 몰입하면 뻔하고 전형적인 일을 겪고 한탄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인물이나 사정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살피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고 작법상으로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독자분들도 1인칭 소설이었으면 읽으면서 굉장히 힘들었을 수도 있어요(웃음). 이런 사람의 사연이 있구나, 라는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냉정한 시선으로 캐릭터를 바라봐서인지, 이 인물들이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가장 하찮은 부품으로 사용되다 쓸모가 다해서 내던져진 느낌도 있어요. 거기에 이 인물들이 가진 무비판적 무성찰적인 성향이 합쳐져서, 별 생각없이 따라가며 살다가 쓸모가 다해 버려진 폐기물이 된 그런 황량함이 있더라고요.
 
『저녁의 구애』 같은 소설집은 확실히 시스템의 그런 측면을 부각한 면이 있는 소설들이었어요.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복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쓸모를 다해 교체당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소설집이었죠. 이번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효용이나 쓸모를 잃었다기 보다는 삶의 질서에서 튕겨나간 생존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황량하고 안쓰럽기는 하지만, 삶의 근거와 거처를 잃은 후에 다 포기하고 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는 인물 같아요
 
 
남성 화자가 많은 것도 눈에 띄더라고요. 최근에는 여성 작가가 여성 화자를 내세워서 쓴 이야기가 많은데, 여성 화자가 아닌 남성 화자를 많은 쓰는 이유가 있나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가 소설을 쓸 때 아무래도 작중인물과 거리를 두고 쓰려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을 바라보려면 아무래도 작가인 저와 조금 다른 인물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여성 화자보다 남자 화자를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젠더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작법적인 측면으로 그렇습니다
 
 
지방 소도시가 배경인 경우도 많은데요.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설정하는 이유가 있나요
 
서울이 아닌 소도시가 작가인 저한테도 낯설어서 이야기 속으로 자꾸 끌어오는 것 같아요. 낯선 공간에서 경계심이나 공포, 이질감 같은 게 더 촉발될 때가 많으니까 인물들을 자꾸 그리로 보냈어요. 소도시가 그런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그런 효과가 발생할 때가 있어요
이번 소설집에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이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어쩌면 스무 번」의 화자나 「좋은 날이 되었네」의 엄마도 그렇고 「플리즈 콜 미」의 엄마도 소도시는 아니지만 미국의 딸 집에 머물죠. 그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느끼는 긴장감,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배타성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죠.  
 
 
「좋은 날이 되었네」는 저에게 가장 아픈 이야기였어요.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낯선 소도시에서 미용실을 하면서 혼자 아들을 키워 대학을 보내고, 알뜰하게 돈을 모아 투자해 작은 건물도 하나 갖게 되는데요.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아들은 따뜻하고 평온한 기억들만 갖고 있어요. '어머니는 괜찮겠지' 생각하던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뜻밖의 소식을 듣지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아마 끝까지 알 수 없을 것 같아 더 슬펐어요
 
이 소설 속 어머니는 배타적이고 낯선 공간에서 살아가려 애쓰다 실패한 인물인 것 같아요. 어머니의 서사는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어머니의 서사가 이 소설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원래 살던 곳에서 미혼모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드니 아마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로 이주를 했을 거에요. 하지만 보수적인 소도시에서 어머니는 더 많은 소문과 추문에 휩쓸렸을 것이고, 그렇게 배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을 거에요. 아들은 너무 순진했거나 아니면 무관심했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저 잘 살겠거니 생각했고, 그 와중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돌이킬 수 없게 된 그런 이야기죠.
그냥, 그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애틋해서, 그곳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끝」은 보험 아줌마에 대한 기억을 오랜만에 끄집어내 줬어요(웃음). 보험 아줌마 라는 직업을 소설에서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어릴 때 집에 드나드는 중요한 손님 중 한 분이 보험 아줌마셨어요. 당시에는 인터넷 뱅킹이나 지로 이런 게 없어서 보험 아줌마들이 직접 보험금을 수령하러 다니셨는데, 그분들의 태도가 어린 저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봐요. 단정한 옷차림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사정과 사연을 전부 아는 분일 때가 많았어요. 사람들 형편을 가까이서 살피게 되니까 통찰력도 있으시고, 언제나 미래를 얘기하니까 예지력과 결단력도 있으셨죠. 제가 좋아한 분이어서, 소설 속에서 멋있고 우아한 분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미숙한 어린아이에게 노골적인 잔소리를 하거나 대놓고 깨우침을 주는게 아니라, 그냥 잠시 삶에 동행시키면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그런 어른으로요
 
 
아이의 미래인 보험을 해약하면서 미래는 ''나지만 그 '미래'라는 말이 남기는 여운 때문인지 마냥 어둡지만은 않아요
 
아이가 어떤 성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으니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단편을 늘리는 방식으로 장편 작업을 하신 적도 있는데,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좀 더 긴 이야기, 다른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은 그런 작품이 있을까요?
 
「식물애호」라는 단편을 『홀』이라는 장편소설로 확장해서 쓴 적 있어요. 단편에서 썼던 이야기가 남아서 그걸 좀 길게 써보자 생각했던 건데, 이번 책에 수록된 단편 중에도 계속 끌리는 인물이 있어서, 어쩌면 분량이 긴 소설을 쓸 때 다시 호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인물이 있기는 해요. 「리코더」에 나오는수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은 지금의 삶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한 사람이에요. 죽는 것으로 현재의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잠깐 지금의 삶을 떠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이요. 이런 사람은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이후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계획뿐이에요. 써 봐야 알아요(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정신적 피로감을 겪고 계신데요힘이 되는 즐거운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디 건강하시라는 안부를 전해요. 요즘은 건강을 묻는 안부가, 진심이거든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장소 제공: 뉴오리진 마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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