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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요조 “느슨하게 최선을 다하는”

  • 2021.03.16
  • 조회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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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이자 작가이자 책방주인.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달리기와 채식을 꾸준히 하는 사람. 이렇게만 얘기하면 엄청나게 바쁘고 에너제틱하고 의지가 굳셀 것 같지만, 요조는 자신을 '묽은 사람'이라고 했다
 
허벅지가 터질만큼 페달을 밟지 않아도, 슬렁슬렁 가다 멈추다를 반복해도, 그곳에 도착할 수 있어요. 엄청난 결의와 치밀한 계획 없이 시작해도, 순간순간의 작은 기쁨으로 오래 해낼 수 있어요
 
선명하지 않아도, 단단하지 않아도, 천천히 퍼져나가 이 공간을 채우는 묽은 사람의 이야기,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출간한 요조와의 만남.  
 

 
교보문고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작가로 왔지만 뮤지션이기도 하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요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주에서 책방을 하면서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은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일이 없을 때는 주로 제주에 오래 머물면서 책방 일에 주력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책도 출간하고 노래도 발표하고 그러느라 서울에 좀 오래 머물고 있어요
 
 
얼마 전에 싱글 '모과나무' '작은 사람'을 발표했는데요. 그러고보니 음악 작업은 오랜만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사실 얼마만인지 모르고 작업을 했는데, 주변에서 4년 만이라고 알려주셔서, ', 참 오랜만이긴 하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 수록된 글들은 언제 쓰신 건가요? 책을 읽다보니 글들이 쓰여진 장소와 시간이 꽤 다양한 것 같던데요.
 
책을 위해서 따로 글을 썼던 건 아니고 그동안 제가 여기저기 기고했던 원고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에요그러다보니까 글을 쓰는데 몇 년 정도 소요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모인 글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자, 한 후에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책을 쓰는데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빠르게 책을 만든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다시 원고들을 읽어보니까, 제가 엄청 왔다갔다 하면서 글을 썼더라고요(웃음). 제주에서도 송당에서 썼다 수산에서 썼다 비행기에서 쓰기도 하고, 서울에서도 부모님 집에서 썼다, 친구네서 썼다 이런 식으로 글이 쓰여진 장소가 굉장히 다양했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어요
 
 
산문집 제목은 박연준 시인의 시 「음악에 부침」에서 왔다고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읽은 박연준 시인의 「음악에 부침」 이라는 시의 정확한 구절은, '패배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이라는 구절이었어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좋은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뭐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것 같은 그런 강력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시에서 느꼈던,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너무 적확한 어떤 직관적인 감동과 충격 같은 것을 책 제목을 본 독자분들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너무 좋았다,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피드백을 정말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아, 실패를 사랑한다는 것이 비단 뭔가를 창작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각자 실패를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하는 확신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매일 성공과 대박을 독촉받는 직장인인지라(웃음)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왠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제목을 내고 갑자기 생각난 책이 한 권 있었어요.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집인데요. 그 책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이런 얘기를 하세요. 작가님은 외국여행을 할 때 음식점에 가면 아무거나 주문하는데, 맛있으면 다행이고 맛이 없으면 글로 쓰면 된다고요.
 
저는 그 이야기가 실패를 사랑한다고 하는게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굉장히 재미있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공과 대박을 강요받는다고 하셨는데, 사실 성공과 대박을 위해서는 실패의 경험이 진짜 불가피하게 필요해요. 예술가들한테는 그 실패라는 경험이 굉장히 좋은 원료가 되어서 그걸 토대로 창작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실패의 경험이란 성공이라는 우리의 이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뭘까 생각하니까 우선 예술가, 창작자가 떠올랐어요. 예술이나 창작은 어디가 끝인지, 이게 맞는 것인지, 좋은 것인지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잖아요. 실패를 사랑하지 않고는 계속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그런 불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그런 불안들을 어떻게 다루나요?  
 
저도 잘 못 다뤄요(웃음). 방법이 없다면 없고, 또 너무 많은 게 방법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누군가에게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이 운동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멘탈이 오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나의 이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운동을 한다거나 집안 청소를 한다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에 매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거나 또 몇날 며칠 넷플릭스만 보면서 자신의 불안을 견디기도 하고요
 
저도 불안에 강한 타입이 아니라 항상 휘청휘청 해요. 그래서 주변 작가들이나 동료 뮤지션들에게 넋두리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저는 스트레스 받으면 잠을 좀 많이 자고, 달리기를 하고 하면서 계속 저를 다독이는 편이에요. 그렇게 겨우겨우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데 보통 예술가, 창작자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과는 좀 다른 존재,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작가님의 글에서 보이는 예술가는, 사실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 같아요. 책에 나온 에피소드 중에, 희곡 낭독 모임에서 처음 연기를 하는 일반인 참가자들이 점점 연기에 몰입하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그 글을 읽으면서 전업으로 예술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예술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곡 낭독 모임 에피소드에서 제가 느낀 건, 다들 연기를 너무 잘 하시는 거에요. 처음 하는 건데도 호흡을 쓸 줄 아시고 감정선의 변화에 따라서 표정도 바꾸고요. 감히 단언에 가깝게 말씀을 드려보자면, 예술성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한테 다 내재되어 있는 거라 생각해요. 예술을 가지고 직업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예술성을 좀 더 분명하고 아름답고 근사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것이고요. 그런 기술에도 약간 재능이 요구되잖아요
 
그리고 미술이나 음악, 영화나 사진, 그림 같이 뭔가를 창작해내는 그런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요구되는 각종 일들이 다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얼마 전에 싱크대 배수관이 막혀서 배관 수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수리를 해주셨는데요. 그 분이 수리를 마치고 물이 잘 내려가는지 확인하면서 "예술이지?"하시는 거에요(웃음). 맞아요. 진짜 그것도 예술 맞아요.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을 때도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그 맛을 만들어내는 엄마의 요리도, "와 이건 정말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예술은 진짜 흔한 것 아닌가 싶고요
 

 
책 속에는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나 뮤지션처럼 이름이 알려진 분들만 아니라 가족, 친구, 그리고 팬, 그런 분들의 이름도 모두 실명으로 호명해 주셨던데요. 그렇게 이름을 모두 불러준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글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사람들이 알 만한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그냥 제가 아는 사람, 친구도 나오거든요. 그걸 그냥 내 친구 김씨, 이니셜 A, 그렇게만 표현하기 너무 아쉬웠어요. 더 드러내서 자랑하고싶은 그런 마음들이 있어서 실명을 썼어요. 본인의 실명이 나오는 걸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제 주변 사람들은 다 기쁘게 생각해줘서 저도 더 신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 실명을 마음껏 발음하면서 글을 썼습니다(웃음).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요.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굉장히 사소했어요. 너무 몸이 안 좋아서 뭐라도 운동을 해야겠는데 뭘 해야될지 약간 모르겠어 하던 때였어요. 여름날이었는데, 모르겠다, 그냥 나가보자 이렇게 된 거였어요. 그래서 집에서 신던 운동화에 반바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가서 잠깐 뛰었는데,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고작 1킬로미터 남짓 뛰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딱 멈췄는데, 제가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인데도 제 얼굴에 있는 땀구멍에서 일제히 땀이 솟아서 턱을 타고 흐르는 거에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땀 흘려서 뭔가를 제대로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이거 너무 좋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달리기를 점차 점차 시도를 했죠
 
사실 달리기 라는 운동에 대한 동경은 좀 오랫동안 갖고 있었어요. 왜냐면 작가님들 중에 달리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시고 또 달리기를 통해서 글을 쓰는데도 굉장히 도움을 많이 얻는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정말 달리면 그렇게 좋은가? 그런 생각을 진짜 진짜 오래 했었어요. 그래도 나는 달리기에 소질이 없어, 나는 못 뛸 거야, 라는 생각으로 아예 엄두를 못 냈죠그러다가 2년 전에 그렇게 얼결에 잠깐 뛰어보고는 그 흐르는 땀에 취해서 (웃음계속 뛰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달리기도, 채식도, 책방도, 글쓰기도, 꾸준히 오랫동안 하시네요
 
책에서 달리기나 채식을 꾸준히 하는 이야기를 써서, 원래 요조라는 사람은 뭐든 묵묵히 꾸준하게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고요. 계속 하지 못하는 게 더 많아요(웃음). 조금 하다 포기하고 조금 하다 마는 그런 숱한 일들 중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게 그 두 가지라 그걸 썼을 뿐인 걸요.
 
그런데 왜 그렇게 달리기와 채식 생활은 꾸준히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일단은 목표치가 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달리기도 그렇고 채식도 그렇고 하다 보면 부딪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더 나아지지 않고 힘들어 못 할 것 같은 지점들이 있었죠. 그때 그냥 내려놓는게 아니라 목표치를 아주 낮춰서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 포기하지는 말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더니 역설적으로 굉장히 꾸준하게 해 올 수 있던 거였어요
 
그래서 거기에서도 많은 배움이 있었어요. 책에서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뭔가 지나치게 높은 목표치를 정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것보다는 슬렁슬렁, 하는 듯 마는 듯, 못하면 내일 하지 뭐,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 최선을 다하는 그런 방식이 저에게는 더 맞았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나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고 또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물들어서 돌아보면 꽤 많이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달라진 모습을 알아차릴 때, 왠지 기분이 좋고요.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책방 같은 경우도 그냥 슬렁슬렁 했던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까 어느새 6년 정도 된 것 같아요그런 방식, 그런 노선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슬렁슬렁, 하는 듯 마는 듯, 너무 심각하고 비장하지 않은 그런 태도로, 그냥 그렇게 가볍게 가볍게 해 나가는 게요
 
 
채식에 대한 작가님 이야기도 좋았어요. 채식이란 신념이 필요한 일,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각오가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신념이라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채식을 시도하던 초반에는 저도 그런 신념 때문에 약간 심각하고 진지해졌던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 제 스스로가 좀 무서워지더라고요. 왜냐면 고기를 열심히 먹는 사람들그리고 고기 안 먹겠다는데도 기어이 계속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말하는 엄마가 야속하고 미워지려고 했거든요. 왜 이렇게 고기를 먹는 거지안 먹어야 좋잖아. 아니면 조금만 먹든지. 왜 이렇게 열심히 먹는 거야! 이런 마음들이 생겼어요. 근데 그게 굉장히 위험하잖아요. 아무리 내가 믿는 신념이 옳다고 해도 내 신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너희는 악이고 우리는 선이야, 우리가 정의고 너희는 아니야, 그런 식으로 가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믿는 신념이라는 걸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가지고 가면 이게 나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서는 '묽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채식을 하지만 제 생일마다 고기를 먹는 이상한 의식도 하고(웃음), 그렇게 내 신념을 내가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슬렁슬렁 하면서, 또 타인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채식을 한 번 시도하면서 다양한 채소의 맛을 경험해보라는 이야기 좋은 것 같아요. 채식이 힘든 일이 아니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채식을 하면서 느낀 건데, 고기를 먹던 시절, 음식을 제한하지 않고 다 열어두고 먹던 때 오히려 더 먹던 것만 먹고 살았던 것 같아요. 맨날 먹어도 돈까스, 제육볶음, 탕수육 이런 것들만 먹잖아요. 그러다 '고기를 좀 끊어 볼까?' 해서 채소 쪽으로 눈을 돌리니까, 오히려 식생활의 스펙트럼이 쫙 넓어졌어요. 이제껏 먹어 보지 않은 채소와 음식이 너무 많더라고요. 장난치듯이, 재미로, 이것도 먹어 보고 저것도 먹어보고, 이거 맛있잖아? 이건 너무 맛없어! 그런 경험들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세상에는 이렇게 먹을 게 많은데 내가 왜 여태 이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을까, 그런 깨달음을 고기를 멀리하면서 깨달았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그래서, 다시 고기를 먹는 생활로 돌아가도 좋으니까 잠시만이라도 제가 했던 그 경험, 고기를 잠깐 안 먹으면서 그 동안 안 먹었던 다른 음식들을 먹어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더 다양해지고, 다시 고기를 먹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음식거리가 더 많아지거든요. 그건 본인의 인생에 분명히 좋은 일이니까 그런 기간을 한번쯤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채식을 하면서 먹게 되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처럼, 제주와 서울을 오고가는 생활 역시 작가님에게 삶의 스펙트럼을 넓혔을 것 같아요. 제주와 서울을 오고가는 생활이 하면서 달라진 점이 느껴지나요?
 
확실히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주도를 관광객의 입장에서 좋은 것만 보기 위해서 갔다면, 지금은 제주도에 살고 있는 거주인의 입장에서 좋은 것뿐만 아니라 안 좋은 것도 더 많이 보게 돼요. 예전보다 훨씬 더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복잡한 마음이에요관광객으로 올 때 보다 더 불편한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고요. 나는 이 땅을 잠깐 빌려서 지내고 있다는, 그러니 굉장히 조심스럽게 제주라는 땅에서 살아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느껴요.
 
그리고 제주에서 살다보니 아이러니하지만 서울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 때는 전혀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주에서 5년을 살다보니 서울에서 보는 네온사인의 현란함, 골목의 모습, 전 세계 어디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각종 편의시설 이런 것들이 너무 좋고요. 물론 공기도 안 좋고 교통체증도 심하고 삭막한 도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서울이 진짜 아름다워요
 
제주에 살면서 서울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좋고제주에서 살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것들도 보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는 그런 생활도 좋아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웃음).
 
 
'2020'이라는 특수한 시절을 경험하면서 정말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는데요. 마냥 나쁘다고 하기엔 '이건 좋은데?' 하는 것도 있었고 또 정말 '너무 싫다' 생각되는 일들도 있을텐데요
 
코로나 때문에 사회 전반에 청결과 위생 관념이 평균적인 교양으로 자리잡게 된 건 좋은 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직장 다니는 분들은 재택 근무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시고요. 또 코로나를 통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도 다행이고요. 예전에는 소수의 관심있는 사람들만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한테는 코로나로 인한 단점이 여전히 더 많이 느껴져요.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충분히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언제나 마스크 때문에 온전한 표정을 만날 수 없고요. 그리고 저처럼 뭔가를 창작하고 책이든 노래든 발표하는 일을 하는 어떤 노동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굉장히 목이 말라 있거든요. 과연 어떻게 읽었을까? 어떻게 들었을까? 무슨 얘기를 나한테 하고 싶을까? 이런 것에 정말 목이 말라 있는데 그런 소통의 창구가 막혀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요
 
그래서 얼른 상황이 나아져서 사람을 만나 침 튀겨가면서 이야기도 하고, 웃고 껴안고, 술도 같이 마시고, 행사들도 갖고 싶어요. 전에는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아' '나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 이랬는데 이 시절을 통과하면서 생각하니 제가 정말 오만했고 속 편한 철부지 같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나는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얼른 좋은 시간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너무 간절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책을 발표하고 나서, 실패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가요? 그리고 책 표지에 '용감하게 겁이 나' 라고 적혀 있는데 이 용감하게 겁이 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요? 이런 질문을 제법 자주 들었어요
 
제가 그런 질문을 들으면서 떠올렸던 건 '귀신의 집'이었어요. '귀신의 집'에 다들 잘 들어가시나요? 저는 혼자서는 절대 귀신의 집에 못 들어가요. 그런데 친구들이랑은 같이 들어갈 수 있어요. 친구들이랑 간다고 겁이 안 나느냐, 안 무섭냐 하면 그렇지 않죠. 다만 친구들과 함께 가면 더 용감하게 겁을 내는 것 같아요. 더 소리도 크게 지르고 더 많이 놀라고요. 있는 힘껏 무서워하는 그런 행동들 가운데는, 지금은 너무 무섭지만 이건 곧 끝날 것이고, 여기를 나가면 이 경험은 우리에게 너무 즐겁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라는 사실이 주는 평정심이 있어요. 그걸 믿고 있는 힘껏 무서워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섭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요. 용감하게 겁이 나, 라고 하는 그 표현도 아마 그런 느낌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패라는 것이 마치 '귀신의 집'에 혼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겁이 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이 귀신의 집에 함께 들어가주는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당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주지 못 하지만 적어도 있는 힘껏 무서워! 너무 무서워! 그렇게 소리 지르게 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 기사_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영상 및 사진_김수진(교보문고 북뉴스)


실패를 <!HS>사랑하는<!HE> 직업 [시/에세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 마음산책
2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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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a4611
  •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달리기와 채식 저도 꼭 도전해 보고 싶네요. "묽은 사람"이라는 거, 비장하지 않고 슬렁슬렁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거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스타일인데 공감이 되네요. 책도 읽어볼게요 고맙습니다!
  • 2021/03/3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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