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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방인의 산책』다니엘 튜더 “외로움은 사회적 문제”

  • 2021.02.23
  • 조회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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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꽤 좋았다. 명절 때 어디 안 가고 집에서 늘어져 있었을 때도, 솔직히 많이 좋았다. 원래 어디 돌아다니는 것,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코로나 시대에도 나름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방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나,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는 현재의 나는 어쩐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외로운 것일까? 하지만 외롭다는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다. 외로움을 고백하다니, 너무 찌질해 보이고 나는 루저!’라고 광고하는 것 같아 창피하니까.  
 
한국에서 영어 강사, 금융맨, 외신기자, 사업자로 11년차 서울의 영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니엘 튜더의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외로움은 당연한 것일까? 당신은 이 외로움이 괜찮은가?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말할 수 없었던 외로움에 대해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와 서면으로 나눈 이야기들.   
 
 
책을 읽으면서 정신이 좀 번쩍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외로운 건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로움이 과연 당연한 것이고,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고, 최선일까? 하는 질문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어요.
작가님은 '외로움'에 대해서 책을 써야겠다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외로움이 어느 정도까지 당연한 일이지만 외로움의 발생률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 외로우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수백만 명이 외로워지면 사회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책 핵심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왜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지 물어보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현대인은 모든 방면에서 자유, 편리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너무나 큰 부작용도 낳고 있죠.
 
어쨌든 몇 년 전 우리 가족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때 전 부모님을 돌보고 ‘효도’를 하기 위해 제가 하던 사업을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갔죠. 저는 원래 항상 '바쁜' 사람이었는데 집에 돌아가 갑자기 생각할 여유가 생겨서인지 어느 날 제가 매우 외로워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바로 제 생활 방식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진심으로 가까운 친구는 많이 없는데 ‘친구 같은 지인, 지인 같은 친구’는 많고, 옆집 사람도 모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프리랜서처럼 일하기 때문에 특정 회사에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면보다 비대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것, 이 모든 게 제 외로움을 가중시켜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약하면, 깊은 소속감과 깊은 친밀감을 경험하기 힘든 생활 방식이라는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외로움은 선택과 자유를 즐기는 21세기 부자 나라 공통의 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 년 전에 태어났으면 그렇게 살 가능성은 당연히 없었겠죠. 그래서 외로움과 현대화에 대해 공부도 하고, 외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알고 보니 외로움이 우리도 모르게 정말 큰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단 걸 깨달았어요.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공동체와 잃어버린 소속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이런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는 '미국과 유럽에서 고독과 소외의 문제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어도 사실 좀 배부른 소리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외로움'이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어버렸네요. 원래 '한국인의 정'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서울생활을 11년 해오면서 그 ''의 문화가 변한 것 같나요?
 
물론 집단적 외로움이 부국의 문제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하튼 ‘정’에 대해 말하자면,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발 이전,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상호 의존이 매우 중요해서 ‘정’ 문화가 내재돼 있었겠죠. 우리 증조 할머니가 자란 아일랜드 시골도 마찬가지였겠죠.
한국의 독특한 점은 정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입니다. 제가 2000년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정’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사회 변화가 계속 빨리 진행돼서 이제 젊은 서울 사람들은 런던이나 뉴욕 사람들과 비슷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는 집단과 위계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존재하고픈 욕망이 강하고, 그런 의미에서 개인주의를 좋게 봐요. 하지만 이 개인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다른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개인주의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긴 한데, 언제까지나 마냥 권장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공동체를 재창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현대화된 사회에서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간섭, 원치 않는 조언, ‘갑질’ 같은 걸 하면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피할 선택권이 우리 조상들에겐 없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인간이 만든 공동체(가족, 종교, 회사, 나라 등)에 권위주의적이고 부담스런 면은 당연히 있습니다. 이 부분은 21세기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가치관과 좀 어긋나죠. 하지만 인간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소속감을 강하게 원하게끔 진화된 동물이어서, 소외감과 개성 침해 중 (어느 정도 까지는) 선택해야 합니다. 유일한 탈출구는 커뮤니티가 모든 구성원을 존중하도록 재설계하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마 30년 후쯤 우리는 이 시대를 전환점으로 되돌아보지 않을까요?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일과 삶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내가 가져야 할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요즘 똑똑하게 사는 사람의 이미지에요. 하지만 그런 태도로 살면 손해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손해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놓치는 행복이 있을 것 같고요. 냉소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이들이 놓치는 것들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 '똑똑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살고 있고, 아마 이 복잡한 세상에서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그런 식으로 살아야겠죠.
그런데 행복하게 살려면 (방어적으로가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헌신, 공동체, 친밀함(commitment, community, closeness)이 필요해요.
사실 저도 이런 점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똑하다’는 단어를 잘 고르신 것 같아요. 똑똑하다는 것과 지혜롭다는 건 매우 다른 거죠.)
 
 
점점 외로워지는데 또 타인의 시선을 엄청 신경쓰는 것도 아이러니한데요. 책에서 '머스터베이션(musturbation)'이라고 표현하셨는데, 한국에서는 특히 심해요. '언제까지 무엇을 성취해야 한다' 는 외부와 내면의 압력이 강하죠. 머스터베이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의지로 진심을 다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지만, 다른 요인도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불행할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해야겠죠. 소위 명문대인 옥스퍼드에 합격했을 때 주변에서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옥스퍼드대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군요.
 
우리는 지위에 집착합니다. 그런데 지위는 사회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위를 얻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맥락 밖에 있어요. 지위나 직책 같은 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으니까, 자신을 그런 걸로 정의하는 건 위험한 일이죠. (대부분 사람들이 ‘연예인’을 부러워하지만, 요즘 시대엔 연예인이 10년 전에 한 어리석은 말실수로 하룻밤에 ‘취소(cancelled)’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추구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SNS 문화는 분명 그런 경향을 악화시킵니다. 그런데 SNS에서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진짜 나를 잘 모르며, 나에 대해 잘못 형성된 이미지를 비판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에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개인 SNS나 유튜브 채널이 있다보니 악플에 대한 고통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이 되었어요. 일차적으로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 그리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을 쉽게 기사화하는 언론의 문제가 크죠. 하지만 악플, 모욕, 비아냥 같은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보니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법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솔직히 악성 댓글에 대한 최선의 처리 방법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시하면 댓글의 힘이 곧바로 없어지니까요. 그리고 댓글을 분노의 배출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 다니면서 윗사람 갑질이나 사람한테 받는 다른 형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심리적 대처 전략으로 악성 댓글을 쓰기도 합니다.
익명성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무한하게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익명의 온라인 발언은 가치가 매우 낮은 것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있지만, 표현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된 사람의 표현만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하면 좋겠습니다.
 
 
SNS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아요. 저도 SNS와 점점 멀어지고 있긴 한데, 완전히 벗어났다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SNS와 거리를 두고 싶지만 자꾸 휴대폰에 손이 가는 분들께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저도 SNS를 가끔 쓰는데 “아예 쓰지 마세요”라고 하면 우스꽝스러운 소리일 것 같긴 해요. 모든 중독성이 있는 것들을 대할 때 그러는 것처럼, 적당히 사용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포스팅을 올리곤 했지만 지금은 글을 올리기 전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냥 주목받기 위해서 포스팅하는가?” “과시하기 위해서 포스팅하는가?” “포스팅을 보시는 분들을 기분 좋게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나 자신만 더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포스팅 빈도를 줄였습니다.
사실 내 휴대폰에서 대부분의 SNS 앱을 삭제했고, 대신 컴퓨터로만 페북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앱을 삭제하는 게 꺼려지신다면 알림을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랜선' 생활이 더 보편화되었어요. 코로나 이후에도 이런 랜선 생활은 계속 유지될 것 같다고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 랜선 생활들이 결국은 '대체재' 그것도 질이 떨어지는 대체재라고 보시는 건가요?
 
코로나 시기에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대면에서 비대면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에요. 비용과 시간 절약 면에서, 이젠 장기 출장보다는 영상 통화로 비지니스 상대와의 대화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린 접촉감과 다른 인간이랑 눈을 마주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비대면’ 방식은 임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계속해서 비대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만 같아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주된 생활 방식이 되기보다는 편리한 백업이어야 합니다.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외로움에 있어서 자연이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인간은 도시 환경보다는 자연 속에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우린 자연 속에 살기 위해 진화되었기에 외로움뿐만 아니라 우울함에도 산이나 바다 같은 환경에 있는 건 도움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도시 환경은 인류 역사의 극히 일부만을 위해 존재해왔습니다. ‘촌스러움’이 우리 DNA에 박혀 있는 거죠.
제 경우엔 자연 속에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이랑 연결되어 있고 제가 더이상 개인 아니라 큰 시스템의 작은 일부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기적인 생각, 그리고 인생이 남과의 경쟁이란 사고방식을 막아주는 것 같죠. 산꼭대기에서 본 우리는 모두 똑같죠.
 
 
집단 문화와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외로움은 전에 속해있던 공동체 (가족, 직장, 지역, 종교)가 사라졌다는, 구체적인 원인이 있는 외로움이에요. 그에 비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공동체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공동체에 속하는 경험이 필요한 이유라면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작고 가까운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진화된 동물입니다. 이렇게 살 때 진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근본적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직 신문기자이자 현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친구 같은 지인, 지인 같은 친구’가 (불가피하게) 너무 많지만, 사실 마음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마당발 성향의 단점을 알게 됐습니다.
 
 
외로움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시작인데요.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외롭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외롭다는 사실을 털어놓기가 쉽지가 않아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외로움에 대한 꼬리표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외롭다'고 인정하면, 남 앞에서 ‘루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고 걱정합니다. 오늘날 우울증 이야기는 이제 조금씩 남들 앞에서 꺼낼 수 있게 됐지만, 외로움은 여전히 꽤 어색한 주제이니까요. 그래서 외로움에 대한 얘기를 피하고 싶으신 분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경험상)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아, 나 같은 사람이 많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외로움은 더이상 그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외로움은 이제 사회 문제이며, 동시에 수백만 명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외로움에 대해 털어놓으면 상대가 이해해주고, 결국 더 친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보편화되면 외로움에 붙은 부정적인 꼬리표도 사라질 거고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코로나가 끝나면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놓고, 친구들이랑 술 좀 마시고, 해수욕장이나 산에 놀러가고 싶네요. 우린 ‘비대면’ 삶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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