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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포에지’ 책임편집 김민정, “나에게 맞는 시적 세계를 발견하는 기회”

  • 2021.01.26
  • 조회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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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이렇게 유명한 책이, 절판이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다시 검색해봐도 여전히 절판. 중고책은 원래 가격의 몇 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데 말이다
 
'문학동네포에지'는 그렇게 서점에서 찾기 힘든 책, 그 중에서도 시집들을 다시 복간한 시리즈다. 문학동네에서 펴내지만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던 시집들만이 아니라 본래 다른 곳에 적을 두고 있던 시집들까지 함께 담았다. 기획과 디자인, 1차분으로 선 보이는 열 권 시집들의 면면까지 구석구석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 '문학동네포에지'에 대해서 책임편집을 맡은 김민정 시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작업과 함께 우리가 다시 읽고 계속 읽어야 하는 작품들을 환기시키고 알리는 일도 중요한데요. 하지만 복간 시리즈를 쉽게 시작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책들을 시리즈에 넣을 것인지, 어떤 기획으로 가져가야 할 지 생각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거든요, '문학동네포에지'의 준비는 얼마나 걸렸나요?
 
복간 시리즈는 저에게 계속 숙제였어요. 다만 새로운 시집을 만들면서 과거의 시집들을 다시 움직이는 작업을 하기는 너무 힘드니 우선 '문학동네시인선'이라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먼저 안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복간 시집 시리즈는 문학동네시인선 시작 때부터 함께 고민하고 있다가 문학동네시인선이 100번을 향할 때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복간 시집 시리즈라는 것이 단순히 기존에 절판된 시집들을 다시 펴내는 것은 아니라서 더 까다로운 것 같아요.  
 
시집을 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복간 시리즈라는 것이 그래요.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있는데다 과거를 정리하고 그 정신을 담아내는 일이잖아요. 기존 시리즈와의 차별화도 생각해야 하고요. 그리고 10권 내고 끝낼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질 시리즈이기 때문에 앞통수도 보고 뒤통수도 보고 옆통수도 보고 그렇게 챙길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리고 시라는 장르가 예민해요. 폰트, 자간, 사이즈, 이런 것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거든요. 그래서 종이 결정하는데만 1년이 걸렸어요. 디자인도 이미 다 만들어진 본문을 수십 번도 더 뒤집었고요. 이건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을 두고 이걸까? 아닌가?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문학동네포에지'라는 시리즈 명은 어떻게 정하게 된 건가요?
 
원래 문학동네에서 90년대에 '포에지 2000'이라고 절판 시집 시리즈를 낸 적이 있어요, 문학동네에서 낸 책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절판 시집들을 모았던 것인데, 그 취지가 지금의 작업과 일치하죠. '포에지'란 말하자면 시의 정신이거든요. 그래서 복간 시집의 의미를 살리면서 과거의 작업들도 환기시키자는 의미에서 '포에지'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이름 자체도 너무 좋고요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던 시집 말고 다른 출판사의 절판 시집들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어요
 
제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시집들만 정리하고 끝냈을 거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보니, 저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주고 좋았던 시집들을 같이 읽으려고 찾아보면 절판되어서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시집을 보고 공부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 읽는 일은 없게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문학동네 출간 시집 말고도 다른 절판 시집들을 알아봤는데, 의외로 절판된 책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지금도 시집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들도 있지만 예전에는 활발하게 시집을 출간하다 도중에 주춤한 경우도 많거든요.  
문학동네가 어쨌든 '동네'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출판사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뚜렷한 하나의 줄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누구는 장화를 신고, 누구는 등산화를 신고, 그렇게 자유롭게 길을 가는 시인들의 작품을 모셔오고 싶었어요. 치우침없이 다양하게.
 

 
1차분으로 10권의 시집이 먼저 나왔어요. 1번은 김언희 시인의 『트렁크』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을 정리해보니까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 시인의 시집이 많지 않더라고요. 문학동네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 시인선도 마찬가지고요. 훌륭한 여성 시인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리즈의 1번은 여성 시인으로 하자 생각했죠. 1차분 리스트업을 하면서 1, 3, 5, 7, 9번은 여성 시인으로 해서 균형을 맞췄고요.
 
 
이번 1차분에서는 시인의 '첫 시집'을 배치한 것이 눈에 띄는데요. 시인에게 '첫 시집'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첫 시집은 시인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데 절판인 경우가 많더라고요개인적으로 제 첫 시집도 절판 상태였거든요. 첫 시집은 미흡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지금 쓰고 있는 시와 방향이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가장 뜨겁고 시에 대한 열망이 절절할 때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기에 독자들에게는 귀한 경험일 수 있다 생각해요
 
첫 시집들을 다시 보면, 지금하고 똑같이 쓰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첫 시집과는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있어요. 거기서 그 시인의 기질이 보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지금의 시를 쓰기까지 그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충분히 가치가 있고요. 김언희 시인의 경우는, 첫 시집 『트렁크』를 편집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지금과 똑같아서 놀랐어요. 성석제 선생님은 지금은 시를 쓰지 않지만 그 출발점이 시인이었거든요. 이런 기획이 아니면 그 과거를 다시 가져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책의 디자인에 있어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요
 
책 크기부터 키웠다 줄였다 별 짓을 다 했는데 결국에는 문학동네시인선과 마음껏 섞일 수 있게 사이즈를 같게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문학동네시인선과 문학동네포에지가 서로 섞여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대신 표지 색상은, 문학동네시인선의 강렬한 색상은 빼고 파스텔톤으로 가져갔어요. 문학동네시인선이 앞으로 피어날, 지금 피어있는 꽃이라면, 문학동네포에지는 꽃이 있다 떨어진 꽃자리, 꽃을 봤던 사람들의 기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내지 편집도 많이 달라졌나요?
 
2011년에 문학동네시인선를 런칭할 때는 산문시가 정말 많이 나와서 그런 산문성을 한 번씩 잡아주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시가 시작되는 부분 옆에 선으로 표시하는 디자인을 했고요
 
그런데 문학동네포에지의 시들은 요즘 시들보다 산문성이 덜해요. 그래서 다른 장치 없이 서체 자체를 가독성 있게 가려고 했죠. 대신에 자간과 행간에 굉장히 예민해요. 자간을 조금만 줄여도 너무 붙어서 답답한 느낌이 들고, 너무 벌려놓으면 허방져 보이고요그래서 본문 시안만 열 댓 개를 받았어요. 서체, 사이즈, 자간 이런 걸 다 다르게 해서요. 그리고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는데,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가독성 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독자 입장에서 지루하지 않고, 다음 장을 넘겼을 때 불편함이 없고요
 

 
1차분으로 출간된 시집들 중에서, 독자들이 먼저 읽어주면 좋겠다 하는 시집이 있다면요?
 
저 개인적으로는 문학동네포에지 1번인 김언희 선생님의 『트렁크』요. 그 시집이 처음 나온 93년에는 제가 고등학생이라서 몰랐는데, 대학교 1학년 때 그 시집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 시를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이 시집은 읽기 어려울 수 있어요. 친절하지 않고요. 이게 시야? 이게 아름다워? 불편한데? 그런데 그걸 느끼게 하고 발화하게 만드는 것도 시를 읽는 주체로서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집을 내던지는 것도 나의 의지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도 나의 의지인 거죠. 시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좋지만 시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이 중요해요. 시를 읽는 독자가 시를 읽을 때의 내 마음을 알게 하기 때문에, “어떤 것부터 봐야 해요?”라고 물으면 1번부터 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장 기다렸던 책은 박상수 시인의 『후르츠 캔디 버스』. 이 시집을 정말 좋아하는 팬들이 계세요.  ‘『후르츠 캔디 버스』 언제 나오나요?’ 물어보는 독자분들도 꾸준히 있었고요. 이 시집은 요즘 시대, 요즘 친구들이 봤을 때도 불편함이 없고 재미도 있어요. 지금 딱 맞는 온도를 갖고 있는 시집이라, 그 시절에 너무 일찍 나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두 권, 1번과 10번을 먼저 추천해드리지만, 마음대로 읽으시면 됩니다(웃음). 
 
 
독자들이 '문학동네포에지'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문학동네포에지'는 시에 좀 더 친밀하고 익숙한, 그래서 시를 많이 읽었고 심지어 시 쓰기에도 가까운 독자분들이 선호할 시리즈이긴 해요.
2000년대 이후의 시를 주로 읽고 그 시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그 이전에 이미 새로운 것의 태동이 있었다는 것을 '문학동네포에지'를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지금 새로운 것들도 어떤 물줄기 아래에서 나온 것이고, 그 시절의 '신상', 지금을 있게 한 그 '신상'을 통해 그 물줄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일부러 더 다양한 목소리를 모았어요. 요즘 독자들은 시를 탐구할 때 굉장히 다양한 셀로판지를 갖고 있어요. 빨간색을 좋아한다면, 빨간색을파란색을 좋아한다면 파란색 시를 보여줘서 그런 부분을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제가 편집하고 교정을 보면서 좀 놀랐던 것이, 제가 문청 시절에 읽었던 시들을 지금은 그때와 다른 마음으로,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때와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요. 시를 오랫동안 전문성을 갖고 봐오신 분들도, 다시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친 것들이 있지 않았나 살피는 마음으로 본다면 흥미진진할 거에요. 시절에 따라서 재발견할 수 있는 움직성을 갖고 있는 시들이거든요
 
 
'문학동네포에지'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새롭게 누군가의 작품을 기다려서 내야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쫓기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에 한 번, 10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양치기 소년이 되는게 아닐까 걱정되지만, 목표는 그렇습니다(웃음). 이제 1차분이 나왔지만 계속 쌓여야 관심이 더 생기고 기다리는 독자분들도 생기니까 열심히 준비하려고 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문학동네포에지' 10권씩 내는 이유 중 하나는, 10권 안에 굉장히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나에게 맞는 얼굴을 골라볼 수 있도록요. 10권의 시집이 모두 나에게 맞을 수는 없어요. 그 중에 나에게 맞는 시어, 나에게 맞는 시적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으면 해요
어쩌면 하나도 안 맞을 수도 있죠. 그러면 다음 시리즈를 기다려 주셔도 되고(웃음), 나에게 맞는 것이 없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다른 장르와 비교해도 시는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부분이 있거든요.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좋다고 밑줄을 긋거나 접어놓은 부분은 지금의 나하고 가장 많이 닮아 있어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를 때도 시가 거울처럼 나를 비춰서 그 부분을 말해줄 때 강하게 빨려들고요
 
'문학동네포에지'를 통해서 시집의 다양성을 경험하시고 나에게 맞는 시집, 내가 특별히 좋아할 수 있는 시인이 누구인지 그런 것들을 한 번 가늠해보고 가능성을 한 번 타진해보시길 바래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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