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컨텐츠영역

목록보기

『치유 일기』박은봉 “힘들었지만 아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

  • 2020.12.17
  • 조회 1954
  • 트위터 페이스북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날들. 이제 겨우 여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그 때, 느닷없이 마음의 병이 들이닥쳤다. 불안증과 우울증, 뒤이어 협심증 진단까지. 글쓰기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글쓰기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은 절망이었다.
하지만 지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을 받고 걷기, 일기 쓰기, 요가, 명상, 치유 프로그램, 심리상담 대학원 진학,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거쳐 9년 만에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9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 『치유 일기』다.
40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 『한국사 편지』의 저자 박은봉이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운 9년의 이야기를 적어간 『치유 일기』에 대해서 저자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했는데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네요. 오랜만에 책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기분, 남다를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10년 만인 것 같습니다. 새 책을 내는 것이.
기분은 담담합니다. 무사히 마쳤구나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글쓰기를 한 건데, 저를 알고 계셨던 독자들은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서 자신이 겪은 마음의 병과 고통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책에도 썼듯이,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포기하지 않게 해준 것 중 하나가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그 이야기들을 읽고 들으면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첫째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둘째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유별나게 이상한 사람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구나. 그건 정말 큰 위안이었어요. 그리고 나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람들처럼. 이건 깜깜한 어둠 속 한 점 빛 같았어요. 언젠가 저 빛 속으로 나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이요.
 
지금 이순간 혹독한 마음의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받았던 것을 갚는 일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해가 많은데요. 일반적으로 우울하다고 하는 것과 우울증이라는 병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은 마음과 몸에 느껴지는 것이 전혀 달라요. 우울한 기분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 중 하나지요. 기쁨, 슬픔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우울증은 질병이에요. 사전적 정의는 보통 일상생활 유지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우울증이라고 해요. 저도 직접 겪기 전에는 전혀 몰랐어요. 그저 처지고 울적한 기분 아닐까 싶었고, 확 떨치고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편견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었어요.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예요. 우리가 몸의 어떤 질병, 이를테면 위장이나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떨쳐버리고 싶다고 해서 떨쳐지지 않지요.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나을 수 있어요. 우울증도 마찬가지예요. 병이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우울증은 단지 마음에 그치는 병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같이 나타나요. 그 신체 증상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워요. 뇌의 변화, 호르몬 변화도 일어나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탓인지 다른 병에도 자주 걸리더라고요. , 우울증은 단독으로 오기도 하지만 다른 질환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공황장애와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이런 식으로요. 제 경우, 불안증과 우울증이었어요. 
 
책을 쓰면서 제가 경험한 불안과 우울의 모양, 그리고 치유과정에서 내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가능한 한 상세히 묘사하려고 했어요. , 약물치료뿐 아니라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어요. 제가 시도하고 경험한 것들 중심으로요. 그렇게 하는 것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정신과 약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많아요. 작가님도 정신과 약을 처음 먹을 때는 꺼리신 것이 있던데요. 정신과 약에 대해서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약의 효과와 또 한계도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매우 꺼렸죠. 어떻게든 안 먹고 해결해보려고 요리조리 피했어요. 참담함과 자괴감이 상당히 컸거든요.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정말 괴로웠어요. 정신과 약, 또는 정신과 약 먹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저도 갖고 있었던 거예요. 몸 아플 땐 병원이나 약국으로 주저 없이 달려가면서 왜 마음 아플 땐 꺼리고 숨기는 걸까요.
저는 비교적 강도 높게 약을 먹은 거 같아요. 하루 세 번, 한 번에 서로 다른 종류의 약을 서너 알씩 먹었으니까요. 쉬운 시간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효과는 분명했어요. , 필요할 땐 먹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그럴 필요가 안 생기는 것이겠지요.            
 


마음의 병은 몸의 병처럼 치유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완치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어려움 중 하나인데요. “약은 증상을 완화하거나 없애 주긴 하나 행복하게 해 주지는 않았으며, 심리상담은 평온을 찾게 해 주었지만 기쁘거나 충만감을 안겨 주진 않았다고 쓰신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결국 스스로 치유를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셨는데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돌이켜보면 저의 심리학 공부는 일종의 장기간에 걸친 재발 방지 프로그램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약물치료나 심리상담 종료 후에도 다시 나빠져서 또 약을 복용하거나 상담소를 찾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저 자신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료경험담 중에는 약물치료나 상담 종료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또 다른 시작입니다. 자기 자신을 만나가는. 완치로 가는 길에서 만난 아주 중요한 과정, 그게 저한테는 심리학 공부였던 거죠.
 
저는 약물치료나 상담 종료 후에도 자기치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겠다고 판단될 때 약이나 상담은 종료될 겁니다. 그럼 그 다음은 스스로를 돌볼 차례인 거예요. 제게는 그것이 공부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운동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봉사활동이 될 수도 있겠지요.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작가님이 직접 시도하고 경험한, 마음의 병 치유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도 알려주고 있는데요.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 두기는 많이 접해본 내용이 아니라서 저는 흥미로웠어요.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감정과 나를 분리시키는 거예요. 우리는 보통 감정이나 생각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지만 실은 이게 분리가 돼요. 탈동일시라고 하지요. 감정을 분리시켜 나 밖으로 내어 놓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안에 쌓아놓거나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내어놓으면 감정이 영구불변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돼요.
분노 같은 강렬한 감정도 분노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분노를 지켜볼 수 있게 되면, 이윽고 사라져요. 숙주를 벗어난 바이러스가 오래 못 사는 것처럼요. 내 안에서 휘몰아치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감정을 나 밖으로 내놓고 객관화시킬 줄 알면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도, 사로잡히지도 않게 되지요. 화가 나도 덜 고통스럽고 슬퍼도 덜 몸부림치게 돼요.
감정뿐 아니라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은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에요. 영원하지도 않고요. 이렇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고 극성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아는 것. 이것은 명상의 기본 원리이기도 해요. 알아차림 또는 마음챙김이라고 하지요.       
 
 
걷기가 작가님의 치유에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에게 걷기는 어떤 역할이었나요?
 
걷기는 협심증 진단을 받았을 때 한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거였어요. 몸의 건강을 위해 한 일인데, 마음에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집 근처에 한강공원이 있어서 매일 거길 걸었어요. 걷기를 마치고 나면 강둑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고 강물을 보고 내 마음을 보았어요. 그 시절, 걷기는 저를 살게 해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했고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길에서도 걷고 마음으로도 걷고, 그랬지요.       
 
지금은 다른 동네에 살지만 걷기는 여전히 매일 합니다. 출퇴근할 때 삼십분 씩. 걸을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을 걸음에 온전히 집중하는 거예요. 음악을 듣거나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지거나 하지 않고요. 그렇게 걷다 보면 몰입이 안겨주는 고요와 평온을 느낄 수 있어요.            
 
 
걷기와 함께 글쓰기도 중요한 치유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던 작가였기에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더 힘들었을 것 같고, 또 치유를 위해 글을 쓰게 된다는 것이 한층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일기는 꾸준히 써오신 건가요? 일기를 쓰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일기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썼어요. 중간에 몇 년씩 안 쓰다가 또 갑자기 쓰다가 그러면서요. 좋을 때는 한 줄도 안 쓰고 안 좋을 때 열심히 쓴 것 같아요. 이 치유일기도 안 좋을 때 열심히 쓴 것 아니겠어요.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썼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일기쓰기는 내 안에 있는 고통을 밖으로 꺼내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해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재화(externalization)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외재화는 치유의 첫걸음이기도 해요. 제 경우는 글이 외재화의 매체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매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어떤 것이요. 이를테면 그림 그리기, , 요리, 뭐든 될 수 있겠지요.
 
 
9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그 동안 경제활동이나 창작활동을 활발히 하기 어려웠고, 굉장히 아쉬운 시간일 수도 있는데요. 지금 돌아보는 지난 9년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픈 질문이에요. 인생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시기, 그리고 작가로서 어찌 보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야 할 타이밍에 고꾸라져 버린 것이니까요. 참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만약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 행복할까? 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요, 예요. 오십에 제가 겪은 일은 저를 무너뜨렸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내 안의 근본문제들을 발견하고 성찰하고 치료할 기회를 갖게 해주었어요.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예전의 문제들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거예요. 그건 정말 불행이에요.
 
지난 9년은 매우 힘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환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마 가장 중요한 챕터가 되지 않을까요. 지금의 저는 9년 전 저보다 훨씬 평안하고 훨씬 자유로워요. 지난 9년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지금이에요.
 
 
이제 어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라는 것이 있을까요?
 
열심히 쓰려고요. 다음 책을 준비 중이에요. 마음과 역사에 대한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다음이요? 다시 역사가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지금 이 순간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다면, 또는 그런 사람 옆에 있다면, 저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이겨냈으면 당신도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돌베개
 
 
 
치유 <!HS>일기<!HE> [시/에세이]  치유 일기
박은봉 | 돌베개
2020.11.23
 
 
 
  • 퍼가기 인쇄 트위터 페이스북

최신기사 보기

눈에 띄는 책 목록보기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댓글등록

현재 0 / 4000 bytes (최대 한글 2000자, 영문 4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