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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LC.RC『친구의 부름』최재훈, 러브크래프트를 통과해 마주친 오늘의 공포

  •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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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 미국의 소설가. 현대 공포 문학의 시초로 불리며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등의 작가와 기예르모 델 토로, 존 카펜터 등 공포 영화의 장인들, 그리고 그 외에도 미술, 게임, 만화 등 예술과 대중문화의 많은 영역에 지금까지 깊은 영향과 영감을 주고 있는 작가다.
 
이런 소개만 듣고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펼쳐봤다면,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불균질하고 거친 요소들에 한 번 놀라고,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하고 강렬한 에너지에 또 한 번 놀라게 될테니 말이다. 이 단계에서 당황하지 않고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매혹을 느낀 독자에게는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2020년의 독자들에게 러브크래프트 작품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남성중심주의와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은 그냥 넘기기엔 너무 거슬리는, 불편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이 생겨난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읽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Project LC.RC(LoveCraft ReCreate)는 이 고민에 대한 신선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21세기의 작가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오마주하면서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 낡은 요소들에 대해서는 전복적인 시각으로 다시 쓰는 것이다이 프로젝트에는 김보영, 김성일, 박성환, 송경아, 은림, 이서영, 이수현, 홍지운 등 한국의 대표 SF 작가들과 BTS RM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작가 최재훈이 참여했다. 이 중 최재훈 작가는 그래픽노블『친구의 부름』을 쓰고 그렸을 뿐만 아니라 시리즈 8권 전체의 표지를 맡아 각 소설의 개성을 반영하면서도 모아서 봤을 때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장대한 아트워크를 만들어냈다. Project LC.RC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최재훈 작가와 프로젝트 LC.RC에 대한, 그리고 직접 쓰고 그린 『친구의 부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Project LC.RC는 기획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이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은 게, 2019년 늦여름 쯤이었어요. 알마 출판사 대표님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러브크래프트를 아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한다, 그랬더니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때부터 두근거렸어요.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기획 자체가 한국에서 많지가 않으니까요. 저에게는 표지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한 권 한 권의 표지로 보이되, 다 모았을 때 직관적으로 한 프로젝트로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8개의 작품 중에서 한 편은 저에게 그래픽노블로 그려달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재미있게 해보겠다고 얘기를 했죠
 
 
'각 작품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면서도 8권을 모았을 때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림'이라는 것이 얼핏 들어도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구성을 짜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8개의 개별적인 책 표지를 그리는 거라면 어렵지 않죠. 그런데 표지들을 보면, 각 표지에 있는 이미지들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거든요. 이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각 표지에서 자연스럽게 변형이 되어야 하고, 빛의 방향과 음영도 세밀하게 고려를 해야 했어요.  8개의 표지 이미지를 모았을 때 각 표지 이미지 속 요소들이 대칭이 될 수 있도록 배치하고요. 한쪽에 달이 있으면 대칭 지점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고, 한쪽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면 반대쪽에서도 무언가 올라오는 이미지를 넣었어요. 이렇게 했을 때 전체적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지거든요.   
 
그렇게 구성을 하느라 머리에 쥐가 났어요(웃음). 1번과 2번을 그리다 보면 5번의 어떤 요소와 연결되니까 5번을 그리고, 5번을 그리다 대칭에 있는 4번 그리고, 4번을 완성하려면 8번의 요소를 묘사해야 하는 식이거든요. 엄청 공들였죠. 그래서 완성시켰을 때 뿌듯했어요. 그리고 작업 결과를 좋게 봐 주셨는지, 이 작업을 공개하고 새로운 일이 3건이나 들어왔어요(웃음). 여러모로 감사한 프로젝트죠
 
 
러브크래프트를 원래 좋아하셨나요? 러브크래프트가 한국독자에게는 낯선 작가인데요. 다가가기 어렵기도 하고요. 저도 예전에 러브크래프트 원작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러브크래프트, 이상하죠(웃음). 보통 러브크래프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인 경우가 많아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너무 좋게 봤는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한 번 읽어볼까?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다른 정보 없이 러브크래프트를 읽으면, ? 이게 뭐지? 이상한데?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죠(웃음).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원작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이 문제가 있고 엉성한 부분도 있거든요. 하지만 분출되는 그 특유의 이상한 분위기가 있어요. 뭐랄까. 작품을 통해서 러브크래프트가 스스로 자신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느낌? 그런데 그게 너무 독특하기 때문에 많은 독자와 많은 예술가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도 매력을 느끼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읽히기 보다는 새롭게 재창조, 재해석한 이런 시도가 더 의미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원작의 유명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목적만은 아니고요
 
러브크래프트 작품 속의 인종차별이나 남성중심적인 요소들을 전복시키고 재해석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시도죠. 한국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고요. 문학이라는 씬에서 어떤 다음 단계에 대한 제시이자 재미를 주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8편 전부가 그래서 굉장히 의미있고, 그래서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출판계에서도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시도를 통해서, 이런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는 독자들이 상업적으로 의미있을 만큼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독자들은 새로운 작가를 원하고 있어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당장 돈은 안 되더라고 새롭고 다양한 것에 투자를 해야하는데, 한국에서는 출판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 전반에서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시장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당장의 자본중심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죠. 이미 유명하고 인기있는 작가들하고만 일을 하고 싶어하지 새로운 작가들을 쫌 꺼리거든요. 그런 경향을 희석시키고 다양성으로 끌고 가는 움직임이 있어야 독자들도 다양한 작품을 소비하게 되고 시장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기획이 더 필요한 것 같고요
 
좋은 작업과 좋은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 보게 되어있고, 우리는 그걸 믿을 필요가 있어요. 이번 제 작업에 대한 주변의 피드백을 들어보면, 어쨌건 전에 없던 느낌의 책이 서점에 놓여졌다는 건데요. 서점에 이 8권의 책이 놓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 그래도 뭔가 약간 넓어졌네,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직접 그리고 쓴 『친구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의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것인가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러브크래프트는 끝없이 자기를 쏟아내요. 그래서 이야기가 일종의 망상처럼 전개되고요. 이런 방식을 차용해서, 어떤 사건이 있고 이 사건 속에서 한 인물이 느끼는 죄의식, 거대한 윤리적 강박 같은 것을 독자들이 체험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것이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의 세계, 미지의 공포라는 것과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친구의 부름』은 대학생인 원준이 아이돌 가수의 자살 이후 갑자기 잠적한 친구 진구의 자취방을 찾아가며 경험하는 기묘한 분위기와 체험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악몽으로 그려내는데요. SNS에서 가볍게 떠도는 말들이 결국은 칼이 되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지금 여기의 현실과 맞닿아 있어요
 
제가 '오버워치' 게임을 하거든요. 헤드셋을 끼고 말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데, 게임을 하다보면 말투만 봐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분명한데 저에게 서슴없이 "벌레야, 그렇게 하면 어떻게" "아니 틀딱이 왜 여기서 게임을 하고 있어?"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어린 친구들이 그런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에 너무 일찍,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이 되고 그것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글을 쓰는지,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접근한 작품이에요
 
이건 10, 20대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지금의 어른들, 50 60대뿐만 아니라 10 20대와 직접 연결되는 30 40대들은 어린 친구들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 이런 것도 생각을 해야 해요. 이건 틀렸고 이렇게 잘못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나와 주변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과 언어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짧은 분량이지만 임팩트있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이 어두워지고 무거워져서, 그래서 이야기는 쉽게 흘러가되 마음에 남는 형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어요
 
 
마지막에 원준이 자신의 죄를 깨닫는 순간 공포의 방에 갇히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어요. 죄를 깨닫고 구원이 아닌 공포의 방에 갇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준이 갇힌 공포의 방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공간이에요. 현실에서 원준은 멀쩡히 잘 살아갈거에요. 하지만 자신의 윤리적, 도덕적 강박에 갇혀서 스스로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체험하는 공간의 상징으로서의 공포의 방이죠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내가 한 행위가 죄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거든요. 『친구의 부름』은 죄의식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에요. 진구의 방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0824인데, 이게 러브크래프트의 생일이거든요. 즉 원준은 크툴루의 세계, 러브크래프트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죄의식과 반성의 공간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작품 속에서는 원준이 공포의 방에 갇히는 걸로 끝나지만, 결국 원준이 이 경험을 계기로 자기 죄의 무게를 깨닫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 
 
 
그래픽노블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묵음 처리되면서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등장하는 부분이 더 강렬하던데요. 
 
그게 이미지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체험으로서의 작품'에 가까운 거죠. 영화 속 어떤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장면의 의미를 나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 장면을 관객들이 직접 보면서 그 장면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친구의 부름』은 원준이 죄의식을 발견하는 순간, 독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원준의 죄의식을 체험하고 그걸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어서 많이 고민했어요. 책을 덮었을때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장면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지?' 이런 질문을 갖게 된다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모든 것이 바뀌어가는 시대잖아요. 몇년 사이에 가치관, 젠더문제, 가족관계, 정치적 이슈의 지형들이 급변하면서 서로 뒤섞이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분노, 의도하지 않은 예민함들로 서로에게 부딪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3040들은 자신의 위와 아래 세대에게 어떤 포용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5060 그리고 그 이상이라면 나는 경직되어 있지 않나 고민해보고, 10 20대라면 나는 가까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그런 마음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서로 대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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