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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정아은 “모든 일의 핵심에는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요”

  • 2020.07.03
  • 조회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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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들은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
일단 나의 경험만 돌아봐도 우리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엄마였다. 가족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의 시작을 준비했고, 다른 가족들이 저녁 먹고 TV를 보면서 쉬고 있을 때도 엄마는 설거지를 하거나 과일을 깎아주셨으니까 말이다. 엄마는 집에서 놀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는 '엄마'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한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가사노동을 폄하하고 주부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 '오래된 거짓말'의 연원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질문을 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제1 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던 정아은 작가와 이 오래되고 거대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부에게 '집에서 논다'는 말, 좀 더 보태면 '남편 덕에' 집에서 놀고 먹으면서 팔자가 좋다는 말을 참 쉽게 해요. 그 말이 사실도 아닐뿐더러, 그 말에 깔린 폄하와 무시가 작용하는 방식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이 엄청나요. 그렇다고 여성이 실제로 집으로 돌아가면 칭찬받고 사회에서 좋아해주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계속 비하를 하는 거죠. 자기 손으로 돈 안 벌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편하게 놀고 먹는다고요. 그런데 실제 주부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렇게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물론 아주 부유한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주부 스스로도 '난 집에서 놀아' '놀면 뭐해, 이런 거라도 해야지'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거든요. 저도 많이 하는 말이고요
 
 
작가님은 직장을 다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전업 주부가 되었는데, 전업 주부가 된 후 가장 달랐던 점은 어떤 것인가요
 
우선 가사일은 범위가 없는 일이라는 것에 놀랐어요. 회사일은 출퇴근 시간도 있고, 이것은 해야하고 저건 하면 안되고, 이 일의 책임소재는 누구에게 있고 이런 것들이 분명하잖아요. 그런데 주부의 일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내가 해야하는 일인지 모르겠고, 사람마다 나에게 기대하는 '주부가 해야하는 일'의 기대치가 너무 다른 거죠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척 여자 어른분이 제 남편에게  "이제 출장 갈 때 짐 안 싸도 되서 좋겠네" 그런 말을 하는데 저는 깜짝 놀랐어요. 왜 결혼하면 출장 갈 때 자기 짐을 안 싸도 되지? 나도 회사 다니는데? 내가 회사를 안 다닌다고 해도, 출장 갈 때 짐 싸는게 집안 일인가? 이게 주부가 해야하는 일인가? 그런 식으로 갑자기 쿡쿡 치고 들어오는, '당연히 주부가 해야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집안일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고요. 그런 것들이 충격적이고 놀랍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수많은 일들을 다 내가 당연히 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요
 
 
작가님은 주부들이 온종일 가사노동을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돈과 자본주의가 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늘 궁금했어요.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주부들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똑같은 여자 사람인데도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정말 다르거든요왜 그럴까 정말 궁금했는데 결국 모든 것의 핵심에는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어요. 이런 얘기도 많잖아요. 어느 부부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사이가 좋아져서 알고봤더니 수입이 몇 배가 되어서 그랬다더라, 그런 얘기들이요. 알고보면 핵심에는 돈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여성이고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풀어보고 싶었던 그런 것들을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니까 훨씬 더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돈과 자본주의'가 핵심이라는 걸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돈에 관한 소설을 구상했는데,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안 읽고 돈에 관해 쓰는게 말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혼자 읽으면 어렵고 끝까지 못 읽을 것 같아서 『자본론』 강의를 듣고 세미나 하는 모임에 참여했죠
 
『자본론』을 읽고 토론하면서 새롭게 알게되고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토론 모임에서 자본주의와 회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 한참 열을 올리던 중에 갑자기, 나는 자본주의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거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했던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고요. 그 말들이 '진짜 내 생각'이 아니고 '진짜 내 언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죠.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자본론』 안에는 여성이 없었어요. 물론 『자본론』에서 '남성'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자본가, 노동자로 가정하는 것은 다 남성이에요. 여성이나 아이가 노동을 하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상황이고, 하면 안 되는 일인 것처럼 표현되거든요. 반면 여성이 집에서 하는 가사 노동은 전혀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고, 그래서 경제현상에 넣어서 함께 분석하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어요. 여성은 『자본론』으로부터도 굉장히 소외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여성인 나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자본주의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회의 많은 영역들에서 디폴트값이 남성이다보니 여성은 소외되기 쉬운데요. 지금 말씀 들으니 경제 영역에서도 디폴트는 남성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네요
 
사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성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그 안에서 배우고 살아가면서, 사실은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내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들이 많아요. 흔히 말하잖아요.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그래야 처자식도 먹여살린다고요. 그런데, 저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얘기들을 아무 생각없이 '아 그렇구나' 하면서 듣고 살다가 조금씩 깨닫는 거죠.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내 이야기인 것처럼 주입받고 살았던 것들이 많다는 걸요.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한 담론들도, 회사를 다니면서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남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에요. 보통 마흔이 되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50이 되면 입지가 탄탄해지고 60이 되면 사회적 의무에서 풀려나 자신의 생활을 찾는다고 하는데, 이 패턴은 인류 전체의 패턴이 아니라 주로 남자들에게 해당되는 패턴이거든요.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들에게 40대는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아니잖아요. 60대가 은퇴하는 시기도 아니고요


 
『자본론』에서 여성이 소외되었다는 것은 여성의 가사 노동을 자본주의에서는 ''로 취급하지 않기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다는 건데요. 그런데 또 여성의 가사 노동은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해요.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을 가능하면 싼 가격으로 사용하고 싶어해요. 그래야 더 많은 이익을 얻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가 겨우 먹고 살거나 약간의 사치를 누리는 것 이상으로 비용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돈을 주면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와 다음날에도 전날과 똑같은 상태로 일을 하러 갈 수 있도록 재생산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회사에서 임금을 책정할 때 보면 식비, 의복비, 주거비 같은 기본적인 생활비를 가정하고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임금 인상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생활비에는 쌀, 쇠고기 이런 재료비는 반영하지만 그 쌀을 끓여서 밥을 만들고 쇠고기를 반찬으로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동력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노동은 누군가가 공짜로 해주는 것이라고 가정하거든요. 지금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유지시키고 미래의 노동자가 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역할을 하는 '재생산자' 주부의 무보수 노동에 기대고 있는 것이죠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무보수 재생산 노동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또 ''을 통해서 여성이 자유로워진 점도 분명히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가사 노동 일부를 돈을 주고 외주 맡기면서 편해지는 부분도 있거든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토론하면서 갑자기 들었던 생각이죠.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좋았던 점이 있었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여성을 중세적 위치에 머무르게 하려는 힘은 너무나 커서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온갖 확대가족의 일에 끌려다니게 되요. 어떻게 보면 여성은 자본주의의 자장에 붙어 있어야 중세적 관계에서 오는 의무에서 어느 정도 면제가 되거든요. 자본주의에서 돈은 누구에게나 힘을 주지만 특히 여성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어요.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굉장히 양가적인 그런 것이죠
 
 
여성은 자본주의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는 존재라 때로는 사회에서 소외되었다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그래서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롭다 느껴질 때도 있어요
 
불안과 가능성이 공존하죠. 자본주의 때문에 여성은 굉장히 낮은 위치에 있지만 또 역으로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당위에서 벗어날 수도 있거든요. 이것도 역시 굉장히 양가적이죠.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거머쥐고 실제로 뭔가를 성취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지만요. 자본주의와 가사일에 대한 하방압력이 너무 크거든요.  
 
그래도 여성으로 사는 것이 불리하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로 살아서 좋은 것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어요. 왜냐하면, 깨달음은 주로 약자들에게 오거든요. 자기가 많이 당하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왜 나에게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 왜 나에게 논다고 하지? 그렇게 울분에 차 있으면 더 관심을 갖고 더 뜨거운 눈을 가지게 되거든요. 약자로 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구나. 내가 여자로 태어나서 사는 것에 대해서 한탄만 하고 있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걸 공부의 기회로 삼아야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고요
 
 
책의 뒷부분에서는 가사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움직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어떻게 대두하게 되었나요?
 
가사 노동에 임금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페미니즘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이슈이긴 한데요. 베티 프리단이 『여성성의 신화』를 출간한 1960년대 페미니즘의 조류는,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놓고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조류가 비판받았던 지점은, 가사 노동을 놓고 집 밖으로 나가 일을 한다는 것은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자본주의는 여성의 무상 가사노동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체제라 절대다수의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여성에게 집을 나가 너의 일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크지 않았죠. 그리고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경우에도 가사노동은 줄지 않아 이중으로 힘들어지기도 했고요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는 분들 중에는 이 부분에서 괴리를 느끼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집에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가사일을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일을 해야한다고 말하면, 그건 마치 내가 지금까지 해온 가사노동과 돌봄은 아무 가치 없는 일이고, 나는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여온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철학자 실비아 페데리코도 처음에는 가사 노동을 거부하는 쪽이었다가 점차 가사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어요가사 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가사 노동에 남자들도 들어오게 되거든요. 남자 중에도 가사 노동을 꽤 많이 분담하고 있거나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자랑하기 보다는 감추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가사 노동이 집에서 노는 일, 가치없는 일 취급을 받기 때문이거든요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해도 실제로 임금을 부여한다고 하면 그 방식과 지불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반발이 많을 것 같은데요
 
가사노동에 임금을 부여해야한다는 주장에는 어느 선까지 동의를 하는데, '그러면 그 임금을 누구에게 받아?' 라는 문제에서는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고요.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가사 노동에 임금을 주는 방법은 진짜 다양하고 이미 어느 정도는 시행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부부가 이혼할 때 재산분할을 하거나 남편의 연금에 대해 부인이 청구권을 갖는 것 역시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임금을 부여하는 방식 중 하나인 거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본이 노동자의 임금을 산정할 때 재생산을 위한 재료비만 산정하고 재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에 대해서는 비용을 산정하지 않잖아요? 그런 재생산 노동의 비용을 주부의 몫으로 따로 산정해서 지급할 수도 있죠. 싱글인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요? 재생산 노동을 자신이 직접 한다면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하거나 외주를 준다면 외주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죠. 그러면 전반적으로 임금상승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요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주장은, 여자들이 억울하니까 남자들이 돈을 줘야 해, 이런 차원이 아니에요. 사실 남자들도 죽도록 일해서 돈을 벌지만 월급은 항상 빠듯해요. 이건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재생산 비용을 안 주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협력해서 정당한 임금을 받게 하는 일이기도 하죠
 
 
가사노동을 모두 외주 주었을 때의 비용을 계산하면 꽤 많거든요. 그 비용만큼의 노동을 지금은 주부가 무상으로 하고 있는 셈이네요
 
현재의 시스템은 가정 내의 가사 노동을 어떻게든 무료인 상태로 유지하고 싶어해요. 그래야 이 사회가 지금까지 굴러가던 대로 편안하게 굴러갈테니까요. 그래서 이건 사회적 발상을 커다란 선에서 바꿔가야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이미 변화는 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치매 노인에 대한 요양원 서비스나 고추장이나 김치를 사 먹는 것도 모두 그런 방향인 것이죠. 요즘은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고 물품을 사서 쓰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적잖아요. 그 모든 걸 다 주부가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이미 가사노동에 임금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는 것이죠. 이제 정규직도 줄어들고 남자 혼자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어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이런 구분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작가님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작가님의 공부 방식이 재미있어요(웃음). 보통 '공부'한다고 하면 '교과서'를 찾거나 만인이 인정하는 '커리큘럼'을 따라가는데 작가님이 고르신 책들은 좀 다르거든요 
 
독서 리스트에 전혀 일관성이 없죠?(웃음). 항상 제 머리 속에 여성 문제가 있으니까 뭘 읽어도 항상 그 부분이 보이는 거죠. 사실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여성학적 접근이나 여성서사는 1도 안 나오거든요. 하지만 제가 항상 여성 문제에 꽂혀 있으니까 그런 책에서도 그런 문제들이 보이는 거죠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책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 사는 흑인이었다면 백인들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책에서 찾아낼 수 있었을 것 같고요. 그러고 보면 한 권의 책이지만 굉장히 다각도에서 읽힐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어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에서 작가님이 읽은 책 중에는 작가님과 의견이 다른 책도 있더라고요. 보통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담은 책을 만나면 도중에 덮거나 비판만 하고 끝나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책만 읽다보면 편협해지거나 다른 것을 못 보는 경우도 생기겠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흑이면 흑, 백이면 백, 이렇게 딱 떨어지는 걸 선호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 안에도 정말 많은 것이 들어있고, 좋은 부분도 있고 나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요즘 SNS 상에서 여러 논쟁들이 오가는데,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 가지 지점에서 의견이 갈리면 굉장히 공격적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페미니즘 내에서도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정말 많은 흐름이 있죠. 저는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탈코르셋이 필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선택권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거 하지 말아라, 저거 하지 말아라이런 억압은 너무 많이 당해왔잖아요. 가능하면 더 허용하는 쪽, 더 감싸는 쪽으로 가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릴께요
 
비합리적인 말, 공격하는 말을 들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에서 싸우자, 덤벼라, 이런 건 아니고요. 물론 싸워서 꺾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가 많죠. 그 말들을 마음에 담고 계속 가지고 가다보면, 그것이 내 시선을 달구어 세상을 뜨겁게 만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나를 공격하는 말은, 그 말을 던진 사람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뒤에 있는 넓고 깊은 역사, 오래된 사회적 편견과 연관된 것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억울하고 분한 경험을 할 때마다, '오냐, 내가 너를 샅샅이 연구해주리라생각하고 공부의 기회로 삼고 나의 자양분으로 변환시키면 좋겠어요. 그것이 존재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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