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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김지경 기자 “77사이즈가 자연스러운 정의사회가 어서 도래하기를!”

  • 2020.06.09
  • 조회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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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많고 연륜 있는 남성 기자 출신 앵커와 젊은 여성 아나운서. 오랫동안 TV뉴스의 공식같은 것이었다. 최근 TV 뉴스 속 앵커들이 다양해지면서 이 공식은 점점 힘을 잃고 있지만, 오래된 관행을 깨는 것, 그 시작이 편안할 리는 없다. 마흔의 정치팀 기자이자 워킹맘인 김지경 기자에게 토요일 아침 MBC <뉴스 투데이> 앵커를 맡으라는 미션이 떨어졌을 때, 그가 겪은 것 역시 좌충우돌, 고군분투, 이런 사자성어가 찰떡인 상황들이었으니 말이다 
 
그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경험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적어간 에세이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를 쓴 김지경 기자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40' '기자 출신' '워킹맘' 앵커라는 존재는, 기자님이 처음 앵커로 발령받을 때만 해도 이례적이었는데요. 처음 발령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책에서 보니 앵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정치팀 기자로 일하다 보니 국회에서 열심히 정치인들의 말을 '받아 치기'를 하던 중에 앵커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처음 든 생각은 왜 나를 앵커로?'란 거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보도국 기자들도 다들 궁금해 했었고요. 여기저기 물어보긴 했지만 어떤 이유로 제가 아침뉴스 앵커로 뽑히게 되었는지는 취재하는 데(?) 실패해서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쯤 제가 출입하는 정치부에 현안들이 많아서 중계차로 연결해서 뉴스에 나올 일이 많았었는데요, 그걸 보고 누군가  ‘한 번 시켜볼까' 생각한 게 아닐까 혼자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일단 앵커 미션을 받아 들고 나서는 곧 엄청난 걱정이 밀려들었는데요. '방송사고로 영원히 움짤로 남는 일은 하지 말자!' 그리고 '완전히 망해서 40대 여기자의 앵커 진출을 막는 일만은 없도록 하자!' 이 두 가지 결심을 하고 뛰어들었습니다.
 
 
여성 앵커라고 하면 드라마 『미스티』에서 앵커 역을 했던 배우 김남주 씨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는데, 책의 첫 에피소드는 앵커룸에 77사이즈 옷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왜 앵커룸에는77 사이즈 옷이 없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서 '?'라고 의문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라디오스타> 식으로 질문을 드리자면, “김지경 기자님에서 77 사이즈란?
 
저에게 77사이즈는 '홍길동의 아빠'? 『홍길동전』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고…” 이 부분이잖아요. 제가 77사이즈라서 77사이즈라고 하는 건데, 아직까지도 저더러 '가짜 77이지? 뻥 치지 마라?!' 고 말하는 분들이 어찌나 많은지! 제가 키를 실제보다 키우는 것도 아니고 몸무게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신체 사이즈를 가짜로 늘린다는 오해를 받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론 여성의 사이즈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복잡 미묘하고 예민한 문제인지 드러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책 제목도 저는 '77사이즈 아줌마의 앵커 도전기'로 하면 딱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는 바로 가짜 77사이즈 논란에 휩싸일 거라면서 우려했거든요. “ 77사이즈야말했을 때 , 그렇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앵커룸에도 77사이즈 옷들이 자연스럽게 구비되는, 그런 정의사회가 어서 도래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책에서는 방송국에서 '여성'이 일하면서 경험해야 하는 부당한 차별과 부담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많던데요. 기자님이 앵커를 맡으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요?'하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떤 것인가요?
 
책에도 썼지만 그저 '관행'이라면서 남자 기자에게 메인 앵커를 맡기는 것을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 앵커는 경험 많은 남자 기자, 그리고 연차 어린 여자 아나운서가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여자 아나운서 입장에서 남자 기자가 메인 앵커를 맡는 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토요일 <뉴스투데이>를 저와 남자 기자가 맡게 됐어요. 그 남자 기자가 제 후배였기 때문에 남 기자가 메인 앵커를 맡게 되면 말 그대로 '남자'라서 되는 상황이었죠제가 앵커에 ''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 제기를 해도 되나 고민했었는데,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지나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고... 결국 보도국 선배들한테 말씀드렸고, 그게 받아들여지면서 제가 메인 앵커를 맡게 됐습니다.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에 저도 많이 공감했어요. 가족이나 일이나 뭐 하나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우울했다, 이런 고민은 왜 나만 하고 있나 싶어 울컥했다가, 또 일다가 바쁘면 까먹고 집중해서 일하다 좀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면 다시 우울해지고요. 기자라는 직업은 근무 시간도 불규칙하고 일도 많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이라 워킹맘에게는 특히나 어려운 직업인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가슴 아프지만 부모님의 희생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침 7시 전까지 저희 집으로 출근하셔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저희 부부 가운데 한 명이 퇴근한 뒤에야 집에 돌아가시는, 말도 안 되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계시거든요. 저희가 야근하거나 숙직을 하면 같이 야근에 숙직까지 하시면서요. 저는 일 열심히 하라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시는 부모님에, 으레 집안일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맡아 하는 남편이 있는데도 이렇게 하루하루 허덕이는데, 한국의 워킹맘들은 정말 숨 붙이고 살아 있는 게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늘 얘기합니다. “결혼은 원한다면 해도 괜찮은데, 애 낳는 건 잘 생각해봐!! 인생이 확 바뀐다!!” “사회를 위해 출산율 어쩌고~” 하시는 분들은 그럼 본인이 애 낳읍시다! 아님 사회를 애 낳을 수 있게 바꿔주시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기자'라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라면 어떤 것인가요?
 
기자로서 갖게 되는 특권이 정말 많습니다. 온갖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현장을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또 그런 현장을 자신의 눈을 통해 해석하며 기록할 수 있죠. 또 궁금한 게 생겼을 때, 도대체 이건 왜 이런 건지 직접 물어볼 수도 있고요. '기레기'란 모욕에 온갖 소송에도 바로 걸릴 수도 있고, 심신이 고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이 현장이 주는 매력이 큰 것 같습니다
 
 
'기자의 일'과는 또 다른 '앵커의 일'이 가지는 매력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기자로서 바깥에서 만나는 현장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앵커를 하면서 처음으로 스튜디오 안 현장을 만났고,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배웠습니다. 수화통역사 선생님을 만나서 '농인' '청각장애인'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처음 들었고, 진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뉴스피디, AD, FD, 작가, 스크립터, 카메라감독, 오디오감독, 기술감독, 코디, 헤어메이크업 디자이너 등등 - 도 처음 만났습니다. 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리포트 하나를 제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것들이 모여 뉴스 프로그램 전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그날의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하는지도 많이 배웠고요. 바깥 현장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스튜디오 안이었습니다.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빨간 불이 켜진 카메라 앞에서 느꼈던, 부담스럽지만 벅찬 마음이 오래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일하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는 많지 않았어요. 성공한 CEO나 유명인의 이야기는 간혹 있었지만 꼭 정상에 있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멋지게 해내는 '언니'들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힘들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멋진 '언니'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라면 무엇일까요?
 
기자의 장점은 나의 정체를 숨기고 온갖 얘기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을 내도 되는 건가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던 때,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건 친구의 한마디 때문이었는데요. “그냥 뭐 중요한 거 한다고 생각하지 마. 한 명에게라도 위안과 공감을 주면 되는 거야.” 저는 결혼 전에는 에세이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느새 책장을 보니 온갖 워킹맘들의 이야기가 잔뜩 꽂혀 있더라고요. 일상이 너무 억울하고 힘들고... 그래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어려운가' 싶어 일하는 언니들 책을 보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제 이야기도 그렇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아니, 앵커도 겉으로는 좀 화려해 보이는데 사는 게 다 똑같네?! 하하!” 한 분에게라도 그런 공감과 위안을 드릴 수 있다면 저로선 대만족입니다. 물론 공감과 위안을 넘어 뭔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멋질 테고요!   

 
사실 여성, , 워킹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들에 대한 것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기자님 책에서는 그런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으면서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들려줘서 좋았어요. 원래 성격도 밝은 편인가요?
 
최근 책을 먼저 읽으시고, 저를 만나신 분이 성격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처음 만나면 수줍음도 많고 나름 참한 인상이라서, 최근에도 한 국회의원에게 신사임당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거든요. 책에 등장하는 쾌활한 화자는 초면일 경우 저와 빈속에 소맥을 말아 한 3차쯤 가면 볼 수 있는 인격체인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킬킬거리면서 읽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건 집필 계기가 저도 앵커로 겪는 상황이 웃겨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 내가 77사이즈라고 했는데! 코디님은 왜 믿지를 못하셔?! 너무한 거 아니야?!” 이러면서요. 그리고 '글을 쓴다'기보다는 새로 접한 앵커의 세계를 '기록한다'는 기자의 마음으로 적었는데, 방송 기자다 보니 어떤 장면이나 대화를 관찰하고 묘사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서, 비교적 생생하게 인상적인 장면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 앵커 + 엄마, 여기에 저자까지 되셨어요.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요. 책을 출간하기까지 어려웠던 점, 그리고 책을 낸 후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일단 글을 쓰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정치부 기자+앵커+5살 아들 엄마'를 하려면 매일 할 일의 목록 10개 가운데 4~5개만 간신히 하고 절반을 다음 날로 미루며 살아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도 토요일 새벽에 앵커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는 대신 글을 썼던 건 역설적으로, 글을 쓰는 게 그런 힘겨운 일상을 견딜 힘을 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온갖 의무감만 가득한데그래도 나의 의지로 하는 게 하나는 있구나.’ 하면서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책을 내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책을 읽었다, 워킹맘인데 공감했다, 일하는 언니의 얘기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이런 리뷰를 보면서 제가 오히려 힘을 얻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속도가 너무 더뎌서 속 터지긴 해도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이 너무 힘들어도 주변에 내가 믿고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만 있다면 견딜 만한 것 같고요. 그러니 독자 여러분! 우리 힘들어도 죽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남아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마음산책
 
 
 
 
내 <!HS>자리는<!HE> 내가 정할게요 [시/에세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
김지경 | 마음산책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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