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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봄을 되찾는 시간『시절과 기분』김봉곤

  • 2020.05.26
  • 조회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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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날이 더워졌다. 반팔 티셔츠 위에 겉옷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문득 떠오른 의문. 올해….봄이 있었나? 겨울 지나고 바로 여름이 온 것처럼, 봄의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꽃도, 연두색 새순도, 부드러운 공기도, 그리고 사랑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김봉곤의 소설이 있어서 다행이다. 김봉곤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읽고 나니, 웃었고, 울었고, 아직까진 좀 위가 따끔따끔하지만 자주 떠올리게 되는 사랑의 계절을 지나온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 이 2년 만에 봄의 기분을 담은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출간한 소설가 김봉곤과의 인터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시니까 더 실감하겠지만, 사실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19 여파로 신간을 출간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잖요. 출간 시기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많이 걱정 되긴 했지만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제 책 출간이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니까요(웃음). 하지만 책을 낸다면 이 시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표제작 「시절과 기분」도, 소설집을 닫는 「그런 생활」도 배경이 봄이거든요개인적으로 이 무렵의 초록색을 정말 좋아하고요. 그래서 이맘때쯤 책을 내고 싶었죠
 
 
그건 맞아요. 『시절과 기분』 에 수록된 소설들은 늦봄에서 초여름의 느낌을 담고 있어서 저도 이 책은 5월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전작인 『여름, 스피드』, 신작인 『시절과 기분』 '계절감'이 강하게 느껴지는데요. 그 계절감이라는 것이 도시에서는 거리 풍경이나 패션, 상업적인 시즌 행사 같은 것들로 먼저 다가온다면 작가님 작품 속에서는 날씨, 공기, 바람, 온도, 습도 같은 자연물과 감각적인 것을 통해서 느껴지고요
 
그러고보니 『시절과 기분』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제가 파주로 이사온 후에 쓴 소설들이네요. 파주가 계절 변화를 관찰하기 정말 좋은 곳이거든요. 정말 드라마틱하게 계절이 변해요. 하루 아침에 낙엽이 다 떨어져 겨울이 되기도 하고 또 하루 아침에 온통 초록색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날씨와 자연물의 영향을 받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조금 들다 보니 자연물의 신묘함, 경이로움, 감사함 같은 것을 더 감각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또 제가 자라면서 보아왔던 일본 소설이나 영화에 담긴 계절감과 서정성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런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어떻게 해야 감각적인 것과 이야기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시절과 기분』은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아주 잘 살린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절'이라는 단어는,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래도 환하게 빛나는 시간들이란 느낌을 줘요.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런 '시절'의 느낌이 있어요. '기분'이라는 단어도 잡힐듯 말듯한 뿌연 느낌이 묘하게 '시절'이라는 단어와 묘하게 잘 어울리고요
 
'시절'은 어떤 슬픔을 품고 있긴 하지만 또 어떤 긍정적인 마음, 이제는 해소된 어떤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기를 말하는 것 같아요. 약간 올드한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좋더라고요(웃음). 
 
'감정'이 더 진한 것이라면 '기분'은 좀 더 옅은 느낌이죠. 시간이 지나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남아있는 것은 '기분' 정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시절' '기분'이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요. 사실 두 단어의 조합이 보통 쉽게 떠오르는 것은 아닌데, 같이 썼을 때 제 안에서 정서적인 충동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소설집을 관통하는 제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시절과 기분』 표지 이미지는 전작 『여름, 스피드』 표지와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이죠? 표지 이미지는 직접 고른 건가요
 
, 제가 직접 골랐어요. 「시절과 기분」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이 작품을 표지로 마음 속에 둔 상태라서, 누가 이걸 먼저 표지로 쓰면 안되는데, 하고 마음 졸이고 있었죠(웃음). 
 
 
첫 소설집이 등단 이후 써 온 작품들을 모은 것이었다면, 두 번째 소설집은 각 단편들이 가지는 분위기나 전체적인 구성이 좀 더 응축되어 있는 느낌이던데요. 단편집이지만 한 권의 소설 같이 읽히기도 하고요
 
첫 소설집이 그때까지 발표한 작품들, 그 당시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묶었던 거라면, 두 번째 소설집은 제 인생의 유의미했던 ''들을 연작처럼 써보자 했죠. 그래서 「시절과 기분」, 「데이 포 나이트」, 「나의 여름 사람에게」, 「마이 리틀 러버」까지 4부작처럼 썼어요
 
「엔드 게임」은 「마이 리틀 러버」를 쓰기 직전에 쓴 소설인데,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제 등단작에도 나왔던 사람이고 「마이 리틀 러버」의 주인공이기도 해요. 「엔드 게임」은 상상력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오토픽션으로 썼는데, 그 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고요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한 번 더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정말 한 세계를 떠나보내는 느낌으로, 한 세계를 마무리 짓는 느낌으로 좀 더 상상력을 가미해서 썼던 것이 「마이 리틀 러버」 였어요.  
 
 
작품들의 배치 순서에도 의도가 있나요
 
완전히 발표순으로 실었어요. 배치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떤 소설은 저에게는 좋지만 어떤 독자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가독성이 좋거나 좀 더 친절한 소설을 앞에다 배치할까도 생각했는데, 결국은 발표순으로 싣기로 했어요. 제 감정이나 작업의 연대기가 컨텍스트로 보여질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에서 점차 현재로 오는 느낌도 있고요.       


작품들을 보면 현재의 사랑과 과거의 사랑, 이 사람과의 관계와 저 사람과의 관계가 서로 교차되는 구성들이 많아요. 그런 교차점을 통해서 내가 ''를 좀 더 분명하게 자각해가는 어떤 과정이 보여지던데요. 
 
제가 주로 쓰는 작법인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소설가들도 비슷할 것 같긴 한데, 이곳에 있지만 과거를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다시 과거를 생각하는 지금을 인식하는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그런 것이 글을 쓰는 방식과 유사하기도 하고요
서사 예술은 시간 예술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시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돼요. 또 소설로 쓰여졌을 때만 열리는 시간 같은 것도 있어요. 어떤 때는 시간이란 것이 순서대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구상해보면서 제 나름의 타임라인을 만드는 것 같아요
 
 
작품들 속에서 계속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의외로 사랑의 대상에 대한 묘사는 많지 않던데요. 상대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간략하게 스케치하듯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제 소설쓰기는 너무 ''에게 집중되어 있는 면이 없잖아 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릴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 아닌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쓸 수도 있고, ''에 포커스를 맞추되 비율을 조절하거나 그렇게 다양하게 변주할 가능성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게 하는 소설은 오랜만에 읽었어요. 2020년의 한국 사회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젠더와 계급, 차별과 권력, 정치와 사회, 가족의 문제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이 오히려 신선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이 퀴어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고 또 감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사회적 현실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어요. 왜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리고 제 책의 구매 연령대를 보면 의외로 30대가 많더라고요. 제 친구들이 많이 산 건가 싶기도 하지만(웃음) 제 동년배의 독자들, 그리고 좀 더 높은 연령대의 독자들이 제 소설의 어떤 레트로함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좀 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연애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게 아닐까 싶고요.  
 
 
소설들의 마지막이 약간씩은 어떤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종결되던데요
 
정도의 차이도 있고 톤의 차이도 있지만, 『시절과 기분』 수록 작품들에서는 어느 하나로 단정짓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끝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도 실제의 반영일 것 같기도 해요. 첫 번째 소설집 같은 경우에는 확신으로 많이 차 있었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나를 받아들여, 이런 느낌이었죠. 이후에는 조금 더 헤매는 사람, 조금 더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 그 혼란스러움을 관찰하고 그 흔들림이 무엇인지 보는 사람이 된 거죠. 전작에서 확신하게 된 것들의 이면에 있는 것들,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를 떠올리게 된 시기, 그런 글쓰기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 되었고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된 지금,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다고 느끼나요?
 
많이 변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죠. 물리적으로는 고향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지난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행복한 감정이나 괴로운 감정이 주는 총체적인 행복감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는 않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점이라면 이런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요. 그때도 지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금을 가장 좋아하고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독자분들과 직접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만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저와 독자와 제 책의 운명이겠죠. 하지만 저는 많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거든요(웃음). 지금은 서로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저는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을 상상하고, 독자들은 책만 오롯이 읽고 느끼다 언젠가 만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절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확실히 올해는 봄을 잃어버렸어요. 『시절과 기분』 은 표지부터 수록된 작품까지 봄의 계절감을 많이 담았으니, 책으로라도 잃어버린 봄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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