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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김민섭『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하드보일드한 일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 2020.05.08
  • 조회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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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못 견디게 끔찍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즐거운 날도 있고 (특히 월급날) 성장이나 보람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순간순간, 힘든 때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맞는 것인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사회 초년생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서 나름 경력을 쌓고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도,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고수에게도, 일이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는 인생 만화의 한 줄 명언에서 시작해 하드보일드한 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대한 저자의 경험을 풀어놓은 책이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비정한 일의 세계, 그 맨 얼굴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김봉석 작가, 그리고 경계인의 시선으로 공부와 노동의 세계를 바라보는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에게 들어보았다. 김민섭 작가는 김봉석 작가의 책에 추천사를 써 준 데 이어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김봉석

 
어른의 세계, 일의 세계라는 것은 엄청 냉정하고 드라이하고 하드한 세계가 맞아요. 그런데 일에 관해 말하는 많은 책들이 사실 굉장히 낭만적인 태도를 취해요. '성공' '자아실현' '' 이런 키워드로요. 두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이란 그런 것과는 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작가님들께 ''이란 가장 먼저 어떤 것인가요?
 
김봉석 | 저한테 일은 우선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경제적 자립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고요. 나의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생활을 얻는 것이죠. 자아실현이나 다른 무엇은 다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하고 싶다면 어려운 길을 갈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가야죠.
 
김민섭 | 저에게도 일이란 우선 이 되어야 합니다. 집세, 공과금, 식비, 그에 더해 아이들이 있다면 양육비까지, 이처럼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행위가 되어야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건물주라거나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에게 일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프리랜서 비슷한 사람이어서 집에서 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무언가 쓰고 있으면 7살이 된 아이가 와서 아빠, 일하는 거야?”하고 묻습니다. 그때 제가 , 아빠 일해.”라고 하면, 얼마 전까지는 놀아달라며 노트북을 발로 밟던 아이가 이제는 그래 열심히 일해서 내 장난감을 사 줘야 해.” 하고는 얌전히 나갑니다. 제가 일을 해야 자신의 장난감을 살 돈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고 제가 일할 시간을 존중해줄 나이가 어느덧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재능기부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일로 삼는데, 그걸 기부하라고 하는 건 대개 폭력이 됩니다. 특히 젊거나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됩니다. 일에는 정당한 대가를 주어야 합니다.
 
 
보통은 직장인이냐 프리랜서냐, 사원이냐 팀장이냐, 또는 창업가냐 등 경험하는 일터의 모습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요. 작가님들은 일반적인 경우에 비한다면 굉장히 다양한 형태, 다양한 위치에서 일을 경험하셨는데요.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일을 경험한 후 생각하게 된 것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김봉석 | 결국 일의 본질은 같구나. 열심히 하는 것으로 기본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고 싶다면 다른 각오나 계획이 필요하구나인 것 같아요. 일하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과한 성공의 길에는 필연적으로 오물이 끼어들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되도록 즐거운 방식으로 하자, 그런 거죠.
 
김민섭 |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구나,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직장인들이야 당연히 협업을 해야 할 테지만, 프리랜서들도 혼자서 일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의 경우도 글을 쓸 때 어디 조용한 데서 명상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여러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경험하고 감각한 것들이 글쓰기라는 행위와 맞물려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연결이 결국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일하는 환경, 직장이나 동료, 프리랜서라면 클라이언트에 대한 공정하고 냉정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현실을 정확히 직시해야 거기에 맞서 싸우건 버티건 도망치건 행동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또 조직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많은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사실 밖에서 보면 하나도 '안 당연'한 건데 말이죠.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조직이 뭔가 이상하다 하는 걸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을까요?
 
김봉석 | 자신의 느낌을 믿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계속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 뭔가 방향이 계속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 월급이 안 나온다거나 사람들이 계속 그만둔다거나 하는 눈에 보이는 문제가 있다면 그건 명확한 기준이죠.
 
김민섭 | 저는 대학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동료들과 모이면 다른 학과 걱정, 다른 회사 걱정, 사회 걱정, 나라 걱정, 참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말고는 모두가 비정상으로 보였으니까요. 부끄럽네요. 일하는 조직, 내가 몸담은 공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개인과 조직을 동일시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문화, 제도, 언어 많은 것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개인은 지워지고 조직과 직책의 이름만 남게 됩니다.
 
저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간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나로서 잘 선택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김민섭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필요한 것 같아요. 책에서 보여주는 작가님의 자기 평가는 굉장히 박하던데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런 냉정한 평가는 필요한 것인가요?
 
김봉석 |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박하다기보다는 그게 편해서 그러는 거죠. 최소나 최악에서 가면 그보다는 나은 결과가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만 도취에도 자학에도 하나에만 빠지지 않고 긍정과 부정을 왔다갔다 하는 게 좋죠. 인간은 위로도 질타도 늘 필요하니까요.
 
 
책은 만화 속 장면과 문장들과 현실 직장 이야기를 엮었는데요. 사실 만화가 정말 인용하기 좋은 명언, 명문장의 보고긴 하죠(웃음). 그런데 작가님이 고른 문장들은 만화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그런 '명언'들은 아니거든요. 이 문장들은 어떻게 고른 건가요
 
김봉석 | 누구나 좋아하는 명언들도 있고요(웃음) 그냥 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책에서 보니 작가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공세를 펼치기 보다는 최선의 방어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사이다' 전개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좀 답답해 보이고 부정적이고 수세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런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김봉석 | 사이다는 현실에서 쉽지 않지요. 만화나 영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사이다는 다 죽여버리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누구나 존 윅이 되는 것은 불가능이죠. 보통 사람들은 영웅도 천재도 아니고요. 일상에서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쌓아가는 사람들이죠. 위기에서 그들 중 누군가는 영웅이 되는 것이고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만큼 선의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섭 | 일을 하다 보면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정욕구를 채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대학원은 뒷말이 무성한 공간입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앞에서보다는 뒤에서 말이 많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다만 자신의 온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말들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그는 여러 말들의 진원에서 멀어지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사이다가 아닐까 합니다.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승리도 패배도 아닌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낭만'을 모조리 제거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낭만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봉석 | 일상이나 작은 순간들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언젠가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거창하거나 위대한 꿈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어떤 미래.
 
김민섭 | 일의 낭만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고 해서 채워지는 게 아닐 것입니다. 저도 10년 넘게 문학연구를 하면서 나의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건 그저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일을 하면서 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졌습니다. 낭만이라는 것은 일하는 동안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몸과 언어와 사유로서 거기에 존재할 수 있다면 거기는 낭만이 넘치는 공간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완벽한 타인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나와 대리운전을 시작하면서도, 대학 바깥에도 강의실과 연구실은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 나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어디에서 일을 하든 나의 낭만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봉석 | 말 그대로 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죠.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기승전결로 꽉 짜인 구조는 인생에 없어요. 길게 본다면 그렇게 나뉘어지겠지만 30, 40살 정도로도 불가능하죠. 누구나 그 이상의 시간을 더 살아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거나 실패라고 해도 다음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의 세계에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하는 독자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김봉석 | 일은 철저하게 프로페셔널이 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 그래야만 다음 순서로 갈 수 있습니다. 위대한 결과가 아니라 평균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직업인이 됩시다. 그리고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잃지 않아야겠지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김민섭 | 작가가 되고 나서는 글을 쓰는 일이 가장 힘듭니다. 쓰기 싫어서 방바닥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웹툰을 보다가 몇 시간이 훅 지나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감이 임박하고 나면 거의 울면서 씁니다. 무엇이든 일이 되고 나면 힘들고 지난합니다. 무엇을 하든 일의 세계란 대개 가혹합니다. 다만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나, 나의 몸과 언어와 사유를 잃지 않았나, 하는 것을 자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일하고 있기에 어디서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한겨레출판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시/에세이]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김봉석 | 한겨레출판사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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