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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헨델』역자 한기정 “헨델은 성실하고 따뜻한 천재”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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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의 젊은 작곡가는 후원자를 따라 런던에 갔다가 평생 그곳에 거주하게 되고 이후 런던에서 50여 년을 살며 걸작을 작곡해낸다. 흔히 음악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붙는 프레데릭 헨델의 이야기다.
 
『런던의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가이자 지휘자 제인 글로버가 헨델의 런던 시절을 조명한 책이다. 고향인 독일을 떠나 런던에 정착해 활동한 헨델의 삶과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 헨델을 매료시켰던 당시 런던의 문화계 풍경, 그리고 당시 영국과 유럽의 정치문화사까지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런던의 헨델』의 한기정 번역자에게 책에 관해, 그리고 헨델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이력이 독특하신데요. IT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한 책 『셰익스피어를 읽자』를 쓰셨고, 이번에는 작곡가 헨델의 전기를 번역하셨습니다. 번역을 해보니 어떠셨나요?
 
“내 글을 쓰는 것과 다른 사람의 글을 번역하는 건 어떻게 다를까요?”라는 질문으로 바꿔 답해 볼게요. 공통점은 둘 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선, 어려움의 종류가 달라요. 내 글을 쓸 때는 글 자체보다는 생각을 정리하고 펼쳐나가는 게 어려워요. 번역은 내 생각을 개입시킬 여지가 없어서 편한 점도 있지만,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조금 다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게다가 저자의 문체와 제가 쓰는 문체가 크게 다를 경우에는 저자의 스타일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번역자로서 상당히 힘들더군요.
 
 
번역을 하려면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해야 할 텐데요. 원래 영어를 잘하셨어요? 영어와 어떤 인연이라도 있던 건가요?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는 많이 한 편이고 특히 대학생 때는 번역 아르바이트도 좀 했지요. 한 번은 방학을 거의 반납하고 번역을 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번역일 자체가 좀 꺼려졌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책은 원서로 많이 읽었지요.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쓰셨고, 이번에는 헨델의 전기를 번역하셨에요. 둘 다 영국인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예술가인데요.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특별히 생각한 건 아닌데, 듣고 보니 그렇군요.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레온 블랙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굴지의 자산관리회사 공동 창업자입니다. 뭉크의 그림 『절규』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깬 사람으로 유명하지요. 아이비리그의 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고요. 그가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하버드에서 배운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모든 통찰력은 대부분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웠다고 답했다지요. 수많은 작가와 유명인들이 셰익스피어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저는 레온 블랙의 말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인간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라는 점에서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해요. 문학적인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언어는 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헨델은 독일 태생이지만 젊은 시절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 상주하게 되는데요. 그가 영국시민이 된 것은 음악적인 면에서 독일보다 영국이 더 큰 시장이었고 음악 활동을 하기에도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에는 헨델에 필적할 만한 음악가가 없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런던에 뿌리박을 생각까지 했다는 건 음악가의 재능뿐 아니라 자신이 활약할 무대를 정확히 판단하고 실행하는 능력도 대단했다고 봐야 해요. 영국 왕실의 후원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초기부터 런던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인상적인 음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지요. 사실 영국 태생의 유명 음악가는 많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엘가 정도? 그러니 영국이 헨델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하지요. 헨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영국 왕실의 대관식이나 주요 행사에서 연주된다고 합니다.
 
 
『런던의 헨델』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았던 헨델이 다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헨델의 가장 인상적인 면은 음악 천재인 측면보다는 끊임없이 분투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입니다. 헨델은 천재 예술가에게 흔히 나타나는 괴팍함도 없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며 주어진 조건에서 늘 예술가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조차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헨델은 셰익스피어의 사상과도 아주 잘 통하는 인물인데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헨델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헨델은 대체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천재에게는 희귀한 능력이지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헨델은 그 당시로는 상당히 장수한 편이고 시력을 잃으면서도 유머는 잃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있는 체력으로 죽기 직전까지 작곡을 계속했습니다. 음악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헨델의 따뜻하고 원만한 인간관계와 꾸준하고 성실한 작업과정을 통해 창조한 수많은 걸작을 볼 때 꽤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니 이 두 사람 이후의 모든 음악은 바흐와 헨델의 자식인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헨델의 어떤 면에서 자극이나 감동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천재성이야 따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헨델의 삶의 방식에서는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팀으로서 최대의 능력을 뽑아내는 능력이 바로 리더십 아니겠습니까. 헨델은 리더십이 뛰어난 관리자였습니다. 게다가 정말 열심히 살았던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성실한 천재가 또 있을까요? 천재는 요절한다고 하지만 헨델은 오래 살았습니다. 치명적인 병에도 초인적인 의지로 오래 버텼습니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건 마음대로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헨델은 죽음마저 완벽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음악도 매우 감동적이죠. 먼저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거)’나 ‘Falsa imagine(거짓 이미지)’를 들어보세요. 헨델의 음악이 주는 감동에 빠지기 시작할 겁니다.
 
 
클래식 음악을 평소에도 좋아하시나 봐요? 음악 용어들이 많은데, 표현이 자연스러워 잘 읽혔거든요.
 
, 좋아하지요. 친구들 몇몇과 오디오 기기에 관심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피커나 앰프 등 기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목적은 음악이라는 걸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좋은 스피커보다는 좋은 음악, 좋은 연주로 관심을 돌렸지요. 사실 헨델의 음악은 즐겨 듣는 곡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전문 음악인인 저자의 음악묘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거의 모든 곡을 찾아서 다 들었죠.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요? 어떤 분께 권하고 싶으세요?
 
음악은 물론이고 인물의 전기, 유럽의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헨델의 레파토리 중 주요 음악의 연주에 관해 표현한 부분들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저자가 전문 음악인이기 때문에 곡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자세하고, 그래서 더 묘미가 있더라고요. 실제 곡을 찾아 들어보면 과연 적절한 묘사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잘 접하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몇 번 들어보면 대개 좋아하게 됩니다. 헨델의 음악 중 유명한 곡들을 들어보며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음악 천재 이전에 열심히 살며 많은 것을 이루고 멋지게 간 인물의 이야기로도 훌륭합니다.
 
| 기사 및 사진제공_뮤진트리
 
 
 
 
런던의 <!HS>헨델<!HE> [예술/대중문화]  런던의 헨델
제인 글로버 | 뮤진트리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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