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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나태주 “시가 살아야 하는 곳은 독자의 마음”

  •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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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경험하는 일상을,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로 길지 않은 분량으로 담아낸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가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을 피운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그렇게 우리 마음 속에 꽃을 피우는 작은 꽃씨 같다
「풀꽃」의 나태주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50년 동안 꾸준히 시를 써왔고, 50년 중 많은 시간을 중심부에서 비껴나 조금은 외로운 창작생활을 해야했 지만 지금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그의 시를 읽고 쓰며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50년은 작은 꽃씨가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우기까지 필요했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를 펴낸 나태주 시인과의 만남
 

 
2020년에 등단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입니다
 
50년이면 반세기인데, 반세기의 무게가 있어요. 두려움도 있고요.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인데, 등단하고 50년이나 지났으니 사실 생산하고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게 맞죠. 그래도 이렇게 50년 동안 시를 써온 나에게 수고했다고, 출판사에게는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이런 시를 읽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간 책을 내게 되었어요
 
 
50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신 것도 놀랍지만참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내가 이념이 없어서 그래요. 나는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촌사람이고요. 50년 동안 어디에도 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50년 동안 많이 곤궁했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요. 젊은 시절에 빨리 힘을 발휘하고 싶으면 내 편을 만들면 돼요. 내가 가진 힘이 2라면 자기 편의 힘 8을 빌려서 10을 발휘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나는 예전에도 3, 4 정도를 가졌고 지금도 3, 4정도를 발휘하는 거죠
 
내가 바라는 것은, 한국어를 알고, 한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는 시에요. 괴테가 말했죠.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것이 시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중년 이후부터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노래가 되고 철학이 되고 인생이 되는 시를 써야겠다, 이념을 넘어서 계층을 넘어서 세대를 넘어서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가 보편성을 가져야 해요.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보편성이 가장 넓은 시인은 김소월이에요. 바닥이 굉장히 넓고 높지 않는 삼각형이죠. 김소월의 시 같은 보편성을 가지려면 형식적으로는 짧고 단순해야 해요. 언어로는 표현이 쉬워야 하고, 내용은 임팩트가 있어야 하고요.
 
 
선생님의 시는 초등학생이 읽어도 걸리는 단어나 표현이 거의 없어요. 그만큼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인데, 울리는 감정들은 크거든요.
 
그건 내가 초등학교 선생을 오래 해서 그래요. 아이들 말투로  하루 종일, 오랫동안 말을 해서 그게 체질화되었죠. 어느 편을 들지 않아서 힘이 없었지만 50년이 지나니 지금 나에게 득이 되었듯이, 초등학교 선생을 오랫동안 하면서 대우가 허술한 것도 있었지만 그게 또 시간이 지나고 보니 플러스  요인이 되었어요
 
시에서도 '단순함'은 큰 화두에요. 세상이 복잡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더 단순해지고 싶어해요. 짧다, 단순하다, 이런 것은 휴대폰하고도 관계가 있고요. 지금 우리의 삶은 정적이고, 고유하고, 갇혀있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움직이고, 터져있고, 뚜렷한 지향이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죠. 도시 속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짧고 단순한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처음 시를 접하고 시를 쓰게 된 계기, 기억하시나요?
 
시는 나에게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이었어요. 우리는 육체나 물질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정신, 영혼, 감정, 정서의 문제도 처리해야 하잖아요.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오래 전부터 문제였어요. 그러다 결정적으로는 한 여자를 만나고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이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왜 보고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걸까,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어떻게 해소하고 어떻게 질서와 평형을 유지할까. 그걸 시가 해결해주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으면 나의 문제가 조금 감소되고, 내가 시를 쓰면 더 확 해결이 되고요. 그래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늘 하는 말인데, 그래서 시는 러브레터에요
 
그리고 시인은 서비스맨이고요. 봉사와 희생을 하는 사람. 시인이란 크지는 않더라고 문장으로 독자에게 봉사와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에요. 시란 현실에 참여하고 영향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그런 생각에 반대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시에 대한 내 생각도 비난받고 싶지 않고요. 그리고 놀랍게도 제 생각을 지지해주는 독자분들이 계시고요. 시가 살 곳은 책이 아니라, 서점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에요.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서 마음을 위로해주고 결과적으로 유익한 것이 되어야 해요. 그럴 때 시는 가치를 인정받고 회복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죠
 
 
그런데 여전히 시를 어렵게 생각하고 또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시를 이해하려고 하면 어렵죠. 수능공부 하듯이 공부하면 안돼요. 그냥 즐기고, 이해가 안되면 넘어가세요. 우리가 인생을 다 이해하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살아보는 거죠. 그러다 '아 그때 그건 이런 것이었구나' 깨달을 때가 있잖아요. 시도 그래요. 그냥 읽어보는 거에요. 그러다 언젠가 갑자기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시는 아는 게 아니에요. 느끼는 거죠. 우리가 음악 이론을 몰라도 음악을 느끼고 즐기는 것처럼요
 
 
이번 50주년 기념 시집은 구성이 독특한데요. 1부는 신작 시, 2부는 독자들이 사랑하는 시, 3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사랑하는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구성을 잘 했어요. 한 사람의 작품들이지만 서로 다른 지향과 작품으로 구성되었거든요. 그런데 시집이 너무 두껍진 않나요? (웃음) 독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드리고 싶어서, 그릇에 담을 수 있는데 까지 가득 담아서 드린 거지만 말이에요
 
 
무엇보다 50주년 기념 시집에 신작 시를 100편이나 담았다는 것이 신선했어요
 
2019년 동안 4권 분량의 시를 썼어요. 이 책에 담은 것 말고도 2020년에 세 권의 책이 더 나올 거에요. 내가 이렇게 많은 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움직이면서 시를 쓰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시를 빨리 써야 하고,   두 번 쓸 수가 없어요. 그 장소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요. 노마드적인 거죠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제목은 출판사 권유로 정했지만 마음에 들어요. 우리 인생 자체가 여행이고 우리는 이 세상에 붙박이로 살 수 없어요. 보고, 듣고, 소유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못 되요
 
떠나온 곳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여행
 
제가 쓴 시인데, 인생도 똑같아요. 우리는 아무리 좋았어도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그걸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그래서 지금이 최고고, 지금이 영원이고 지금이 끝인 거예요. 그걸 알면 인생이 훨씬 유용해집니다. 미루지 않을 것이고, 헛된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고, 헛된 희망을 갖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거에요.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요.
 
 
시를 50년 동안 써오셨는데 지금도 이렇게 많은 시를 쓰시는군요! 시를 쓰는 것이 일상이시겠어요. 이렇게 꾸준히 시를 쓰기 위해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움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해요.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해요. 어떤 것을 뜨겁게 하고자 하는 열렬한 마음이죠.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그리워하고 '뜨겁게' 호기심을 가져야 해요. 시에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재능이 비슷하다면 열정이 있는 사람이 재능을 뛰어넘죠. 열정이란 것은 결국 무언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불이 붙는 거에요. 열정이 그리움과 호기심과 사랑을 키우고, 그런 것들이 시를 키우는 것이고요. 좋아하는 것, 그 위에 열정, 그 위에 호기심과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그 위에 시에 있는 것이죠.
 
 
선생님의 시에 담긴 이야기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만나는 경험과 감정들이에요. 누구나 경험하지만 또 그걸 끄집어내서 시로 쓰는 건 쉽지 않아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시인은 부지런해야 해요. 자다가도 시가 떠오르면 일어나서 시를 써야 하죠. 나는 자다가 일어나서 쓴 시가 많아요. 물론 꿈 속에서 쓴 시와 깨어서 쓴 시는 다르죠. 하지만 꿈 속에서 반쯤 날아간 시라도 붙잡아서 써야 해요. 무엇이든 소중하게 생각하고 붙잡아둬야 하죠. 나는 그래서 시를 멀리서 찾지 않아요. 시는 주변에, 우리들 말 속에, 길거리에 널려 있어요. 남들이 버린 쓰레기 속에 보석이 들어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긴 시간 동안 시를 쓰면서, 선생님의 시에서 변화가 있었나요?
 
많이 바뀌었죠. 처음에는 '그럴듯한' 시를 썼어요. 문학사에 나오는 시 같은 시, 배운 시, 그런 시였죠. 그러다 중년 이후, 노년부터는 달라졌어요. 시 답지 않은 시, 내 멋대로 쓰는 시로요. 내 멋대로 써도 시가 되는 시요
『채근담』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세상 사람들은 유자서(有字書), 그러니까 글자로 쓴 책만 읽고 무자서(無字書), 글자로 쓰이지 않은 책은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요. 여기서 글자로 쓰이지 않은 책이란 세상, 사람, 인생, 그런 것들이죠. 글자로 쓰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인 거에요
마찬가지로, 글자로 쓰인 시만 읽을 게 아니라 글자로 쓰여지지 않은 시를 찾아야 해요. 인생, 자연, 세상, 사람, 이런 것들이죠. 그런 것들이 내 시의 원천입니다.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시 다운 시만 쓰려고 하니까 시를 쓰기 어려운 거에요. 자꾸 꼴을 정하니까 어려워지는 거죠. 그냥 쓰세요. 개구리가 물에 뛰어들 때 준비운동 하고 뛰어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뛰어드는 것이죠. 마찬가지에요. 그냥 시에 뛰어드세요
 

 
광화문글판에 실린 선생님의 시 「풀꽃」은 이후에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대표작이 되었는데요. 2015년에는 시민들이 가장 사랑한 광화문글판으로도 뽑혔고요.  
 
「풀꽃」이 나의 대표작은 아닌데 대표작이 되었어요. 여기에 답이 있어요. 시인의 대표작은 시인이 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독자가 정하는 것이죠. 광화문글판, 드라마가 시를 알리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게 기회가 되어서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나에게는 행운이에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그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겉으로는 그럴듯하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내면적으로는 많이 피폐해져 있다는 뜻이에요. 독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너도 그렇다'에서, 그래, 나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존재구나, 그런 것에 위로를 받고 자기 수긍을 하는 것이죠.
 
결국 시가 사랑받은 것은 제가 잘 해서가 아니고 독자들이 한 것이고, 또 세상이 한 거죠. 다만 시인은 세상을 읽고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할 줄 알아야 해요. 세상이 지금 얼마나 각박하고 힘든가를 알고 위로해 주고 부축해 주고 희망을 주고 응원을 하고 동행을 해줘야 하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우리 인생은 한 번 밖에 없는 여행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렇기 때문에 귀하고 그러므로 아름답습니다. 절실하고요. 그냥저냥 사는 건 자기 인생에 대한 죄악이에요.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인생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살길 바래요.
 
새해가 되었는데, 새해라는 것이 그냥 날짜 하나 바뀐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365개의 태양과 365개의 달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새로운 일년 안에, 별은 또 얼마나 많고 나비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속상한 일도, 나쁜 일도 있겠지만 내 인생도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좋은 거에요. 선물로 받은 내 인생을 아껴야 해요. 슬플 때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거기에 너무 치이면 안돼요. 화나 분노보다 내 인생이 더 귀하니까요
 
괴테가 말한 행복한 삶의 5가지 법칙이 있어요. 어제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라. 오늘 일에 집중하자. 내일은 신에게 맡기자. 작은 일에 화내지 말자.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쉬운 것 같지만 하기는 어려운 일들이죠. 하지만 하게 되면 눈부신 선물이 될 수 있고요.
새해에는 지난 날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날마다 그 시간에 집중하고, 내일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작은 일에 화내지 마세요. 그러면 새해가 훨씬 좋아질 거에요. 그리고 그런 사이에 시가 좀 들어가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제 시 「풀꽃」을 독자분들께 돌려드리고 싶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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