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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술이 만났을 때 생기는 재미있는 일들『실험실의 명화』이소영

  • 2019.12.04
  • 조회 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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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미술과 이성적인 과학은 서로 양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서로를 끌어당기며 함께 나아가고 있는 관계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아주 많은 영역, 깊이까지 스며들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미술과 과학은 서로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가고 있는 중이다
 
이소영 작가의 『실험실의 명화』와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과학과 미술로 읽는 새로운 미술사'를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모나리자 목소리를 복원한 과학자, 천문학 서적을 탐독했던 고흐,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신경세포 스케치로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라몬 이 카할 등 과학과 미술이 서로 연결되는 의외의 지점들이 주는 재미를 만나고 미래의 미술에 대한 솟아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던 이소영 작가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미술과 과학을 함께 다루는 책이 많지 않은데다, 보통은 화학이나 의학, 수학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의 다양한 분야와 미술이 만난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요
 
보통은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와 예술을 엮어서 쓰는 경우가 많죠. 미술과 수학, 미술과 화학, 이런 식으로요. 저는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기자들은 자기 전문 분야가 있더라도 관련된 다양한 영역으로도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하게 되거든요. 이 책에 담긴 내용들도 제가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중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모아서 쓴 책이죠.
 
 
미술사를 전공하고 IT잡지 기자로 경력을 시작한 것이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기자직을 얻는다고 하면 보통은 미술잡지나 일간지 쪽으로 많이 가는데, 저는 첫 직장이 IT기업이었어요. 제가 대학원 다닐 때 <스키조>라는 웹진 - 우리나라 최초의 웹진으로 기록되어 있을 거에요 - 에 참여했는데. 졸업을 할 때가 한국에서 벤처붐이 일어날 때여서 그 경력으로 IT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시절이었죠(웃음). 
 
지금은 과학 칼럼을 쓰시는 분들도 많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해서 일반인들에게 과학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분들도 많지만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분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전달하는 일을 IT나 과학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하게 되었죠
 
저도 그런 일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과학자들이 예술, 특히 시각 예술 분야에 대해서 연구한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역사나 철학 등에 기반을 두고 미술사를 연구하지만 과학자들이 미술을 보는 방식은 전혀 달랐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고요
 
 
『실험실의 명화』은 2012년에 나온 책이고,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는데요. 2012년이면 한창 한국 사회에서 '통섭'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던 때였지만 정작 그 당시에는 통섭이 어떤 의미인지, 통섭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올지 가늠이 안되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에야 과학과 미술이 융합되었을 때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이해가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 책은 지금 읽을 때 오히려 더 잘 이해가 될 수 있는 것 같고요
 
『실험실의 명화』는 저에게 첫 책이라 의미가 있지만 나온지 꽤 되어서 한동안 다시 보지 않았어요. 그러다 작년, 올해 이 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죠
이 책이 나올 즈음에 통섭과 융합의 중요성이 한창 부각되었는데, 그 다음 단계로 더 깊어지지 못한 것 같아요. 그때 통섭과 융합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실생활에서 접하게 되었다면 지금 이 책의 내용이 굉장히 낡은 것처럼 느껴질텐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통섭이나 융합 같은 이슈들이 큰 파도들을 만들었지만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변화는 체감하지 못한 채 몇 년이 흘러온 것이죠. 학교 교육에서도 통합 교육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스토리텔링 수학 등이 유행했는데, 막상 합쳐놓고 보니 제목끼리만 만나는 상황이 되고 실제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된 것 같아 실망도 있고요.
 
그래서 이 책 『실험실의 명화』가 아직은 조금 더 읽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미술과 과학이 합쳐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시너지라든가, 재미있는 것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들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거든요
 
 
책을 읽어보니 미술과 과학이 굉장히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르네 마그리트의 이상한(?) 인어 '집합적 발명'에서 발이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 화석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정말 무릎을 치게 하던데요(웃음). 
 
저도 다시 읽어보니까, 정말 잡다한 걸 많이 쓴 책이더라고요(웃음). 첫 번째 책이라서 자유롭게 이것저것 쓰고 싶은 것을 다 넣었나봐요.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미술 관련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은 아니고 또 그렇다고 과학 분야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에 매이는 것 없이 자유롭게 책을 썼던 것 같아요. 미술계나 과학계나, 어디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서 생각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자유분방함이 있는 책이죠
 

 
역사적으로 미술가와 과학자의 관계는 밀접했다가 근대 이후 점점 멀어졌거든요. 그러다 최근 현대미술에서는 미디어아트나 여러 테크놀로지를 사용한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미술과 과학이 다시 가까워지는 추세인 것 같고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학이 주도권을 잡고 다른 분야들을 이끌고 갔다면, 지금은 과학이 주도권을 가지는 시대에요. 지금 과학과 예술의 여러 협업 사례들은, 과학 분야에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서 예술이 필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해서 결합하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 현장에서의 작업을 보면,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함께 작업하는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고요
 
 
그렇게 미술과 과학이 결합한 현대미술의 경우,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고 난해한 경우도 많은데요. 
 
일반인들이 그림이나 예술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예술 씬(scene)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사이의 간격이 넓은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괴리가 심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기술이나 문명이 달려가는 속도 자체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고 전문적인 예술가들도 그 속도를 따라서 같이 움직이고 있어요. 하지만 대중들이 예술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속도로 똑같이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금 예술의 어떤 미적 취향은 보편적인 대중의 취향을 포용하지 못하는 면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다음 시대의 파도를 어떤 식으로 넘게 될 것인지, 잘 가늠이 안돼요. 그래서 궁금해요. 앞으로 미술관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말이죠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그림 그리는 재료와 도구에 관한 책인데요. 달걀과 식초를 섞어서 만든 템페라에서 튜브에서 짜서 쓰는 아크릴 물감으로의 변화만 해도 엄청난데, 지금은 더 큰 변화가 왔어요. 종이 위에 연필이나 물감으로 그리던 그림에서, 이제는 태블릿  위에 디지털 화소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요
 
지금 우리는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그렇게 구세계와 신세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인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조선 시대를 살았다면 붓이라는 한 가지 도구만 사용하니까 도구의 변화에 관심을 덜 가졌을 거예요. 하지만 저 자신도 굉장히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점차 디지털화되어 가는 도구를 사용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미술의 도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더 이상 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림 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의 도구들, 오늘의 인간을 만드는데 기여한 그런 도구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그 도구들이 가지는 의미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어요. 도구에 관련해서는 기록이 남아있는 분야가 많지 않아요. 과학 실험 도구들도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실험했는지 보다는 실험 결과만 중요하잖아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거든요
 
책을 쓰면서는, 이런 것이 유물론인가 생각할 정도로(웃음) 화가들은 자신이 사용한 재료에 의해서 규정되는 면들이 많더라고요. 작품의 크기, 작품이 걸리는 장소, 그런 물질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들이 많았어요
인터뷰 오기 전에 용산에서 '바바라 크루거 전시회'를 보고 왔어요. 바바라 크루거의 대형 설치작업들의 재료를 보면 '비닐'이라고 써 있는데, 쉽게 말해서 실사출력 시트지에요(웃음).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 인쇄를 수작업으로 했고, 바바라 크루거는 프린트해서 출력한 거죠. 실사 이미지를 대형으로 출력할 수 있는 기계가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죠
 
 
어떻게 보면 도구는 화가의 작업 뿐만 아니라 예술의 개념도 바꾸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똑같이, 섬세하게 그리는 방향으로 예술과 도구가 변화해 왔다면, 이제는 여러 재료와 도구를 통해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잖아요
 
화가들은 새로운 재료, 남들이 사용하지 않은 재료를 탐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 얼굴을 그리더라도 재료의 물성에 따라 달라지거나 하는게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상업적인 캠페인과 예술작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과 백화점 문화센터나 키즈카페 설치물과 언뜻 봐서는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둘 다 비슷한 재료로, 놀이라든가 체험의 형태로 예술을 경험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프 쿤스는 알루미늄으로 거대한 풍선강아지를 만들어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지만, 그보다 작은 규모라면 백화점이나 키즈카페에도 비슷한 것이 많거든요. 터치스크린을 활용하거나 관람객의 움직임이 반영되는 작품들, 이런 것들은 키즈 카페에도 많아요.  
 
60년대 까지만 해도 미술계가 과학기술과 협업을 해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해내고, 실험적인 시도로 대중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를 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실생활에서 그보다 더 놀랄만한 기술 구현이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니 예술을 통해서 어떤 혁신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기술과 결합된 미디어 아트의 경우,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약간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예술 작품을 보면서 예술적인 경이보다는 '이건 좀 신기하네' 정도의 느낌을 받기 쉽거든요
 
 
요즘 인기 있는 전시 중에는 반 고흐나 클림트의 작품들을 디지털 이미지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있어요. 같은 고흐의 그림을 보더라도 미술관에서 실제 작품을 보는 것과, 미디어 아트로 디지털 이미지를 보는 것과는 감상의 경험이 완전히 다를텐데요
 
실제로 그런 전시들은 약간 테마파크 같은 성격이 있어요. 요즘은 미술관에서 사진 찍는 것도 허용해주고, 사진 찍기 위해 미술관을 가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예술을 소구하는 방식 자체도 변화하고 있는 것 같고요. 루브르 미술관이나 내셔널 갤러리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과, 제주 '빛의 벙커'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디지털 이미지로 보고 그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동일한 맥락으로 놓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것들과 결합한 예술 경험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해볼 기회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사실 과거에는 이랬는데 이렇게 변했어, 라는 이야기보다는 그렇다면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으로 쓴 책이에요우리 아이들은 연필이나 크레파스 말고 태블릿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되면 인간은 대체 무엇이 될까? 그런 궁금증이요
 
 
인류의 문명은 지금까지 거의 손으로 사용하는 도구들로 만들어져 왔지만 이제는 디지털 도구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되었네요. 그런 도구의 변화가 가져올 변화가, 생각 이상으로 클 것 같아요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이 있어요. 그 불안이란, SF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도구와 기계가 없을 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혹은 고장이 났을 때 우리가 그걸 직접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인 것 같아요. 심지어 전문가라는 사람도요. 요즘 자동차는 전자장비가 많기 때문에 고장 나면 정비소에서 못 고치고 자동차를 만든 공장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계를 우리가 스스로 핸들링 할 수 없다는 것, 고장이 나면 내가 고칠 수 없고, 고장이 나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큰 사고를 낼 것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해요.. 어디가 어떻게 고장났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그런 시대가 오고요.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미래의 미술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겠네요. AI 아티스트 같은 것도 마냥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잖아요
 
얼마 전 영국에서 아이다(Ai-Da)라고, 세계 최초의 로봇 예술가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그런 AI 아티스트는 로봇의 형태를 할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일수도 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예술가, 엔지니어들이 한 팀을 이루고 있죠.  
현대미술에서도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이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때는 아티스트가 직접 행위를 하거나 얼굴도 나오고 발언도 하고, 엔지니어는 보조적인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대등한 상태로 협업을 하고 외부로는 로봇의 형태 또는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죠
 
여러 명이 작업한다고 반드시 그 성과물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업물의 양이라든지 작품의 평균적인 퀄리티는 높아질 수 있죠. 주목할 만한 AI 아티스트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지망생들이 AI 아티스트 팀의 일원으로 AI 아티스트를 위해서 작업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과학과 예술의 미래라는 주제,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혹시 다음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나요?
 
세 번째 책으로 미술관에 숨어 있는 기계에 대해서 쓰고 있어요. 미술관의 기계적 장치들은 지금까지는 가능하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첨단 장비를 사용해서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새로운 감상의 지평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죠. 터치스크린을 사용해서 작품 일부를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하거나, 실제 작품은 작은데 그걸  벽면 전체에 확대된 형태로 감상하게 한다던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게 하는 식으로요
 
예전에는 관람객들이 예술 작품 앞에서는 카메라나 휴대폰을 켜는 것이 제지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람객이 본인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서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증강현실을 사용해서 작품 정보를 보고,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예술작품 감상의 기본적인 룰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다 깨져 버린 것이죠.  
미디어 아트 작품의 경우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서부터 디스플레이인지 구분이 흐릿해졌어요. 구글 아트 프로젝트 (세계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을 고해상도 화질로 선보이는 가상미술관 서비스)처럼 미술관 밖에서 미술을 경험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험이 되고 있고요. 사실 미술관 바깥에서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원본을 보는 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어요. 직접 유명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기 힘든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예술의 대중화, 예술의 민주화의 혜택을 더 충분히 누릴 수 있고요
 
그렇게, 미술관에 있는 기계장치들이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하는지가 궁금해요. 과거에는 기계장치들이 모두 감추어져 있음으로써 미술관에 어떤 권위를 부여했다면, 지금 미술관은 여러가지 기계적인 경험에 의해 오락과 감상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기 때문에   즐거우면서도 애매모호하죠
 
맞아요. 최근에 미술관 전시를 다녀오면 감동 받는 것도 있지만 뭔가 애매모호한 감정들이 남거든요
 
미술관은 원래 좀 애매모호한 점이 있어요. 영화관은 들어가서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으면 되요. 영화가 끝나면 일어나면 되고요. 그런데 미술관은 어떤 속도로 걸어서 얼마나 빠르게 작품들을 지나쳐와야 하는지 애매하죠
최근 현대 미술에서는 영상 상영물도 많은데, 이걸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인지도 애매해요. 영상이 한 30개 정도 전시되어 있는데 영상 작품 한 개당 상영 시간이 20~30분 정도 되면  그 작품들을 다 보려면 하루 종일 걸리죠. 영화관처럼 좌석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작품들을 모두 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편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마음 속에 걸리는 부분은 계속 있죠. 그렇게 현대미술에는 '내가 그 작품을 봤어'라고 말할 수 있는 명쾌함이 없다는 점이 어려운 점이죠
 
 
미술을 과학으로 본다고 했을 때, 과학적인 분석이 작품이 가지는 아우라를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요. 
 
한 편의 소설을 100명의 평론가가 분석한다고 해서 그 작품이 가지는 본래적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의 층위가 생기는 거죠.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과학자, 건축가, 미학자, 음식평론가 모두가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래도 작품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깊어진다고 생각해요
 
클림트나 반 고흐의 작품들은 엄청나게 많은 상업 용품에 사용되고 있잖아요.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사이즈나 물질성이 전부 사라지고 미디어 아트나 굿즈상품 처럼 전혀 다른 형태로 보여진다고 해도 원작의 힘이 계속 살아있다는 것이 미술작품들이 가지는 힘은 것 같아요. '모나리자'를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화화하고 패러디 했어도 '모나리자'가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는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죠
 
저는 과학자들이 더 연구를 많이 해서 뭔가를 밝혀낸다고 해서 미술 감상에 위해가 되지 않을꺼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다른 색깔을 덧입혀주면 원작의 가치가 더 깊어지는 거니까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실험실의 <!HS>명화<!HE>(리커버 에디션) [예술/대중문화]  실험실의 명화(리커버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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