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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차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잖아요.”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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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에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썼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 나를 딱 맞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자주 사용했던 단어였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토론회가 끝난 후 참석자 한 명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소수자, 인권,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장애'라는 단어를 별 생각없이 사용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아니, 그게 뭐 어때서? 뭐가 문제라는 거야?'하는 반발이 동시에 느껴졌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저자의 경험이다. 평소 특별히 정의구현을 위해 앞장서지는 못하더라도 나름 선량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행동은 차별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돼요."라고 말을 들을 때,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말이다. "내가 언제 차별했어?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냐?"
차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차별받는 사람은 있는 걸까? 이 희한한 모순에 대해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와 이야기를 나눴다.  
 
 
제목으로 쓰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눈길을 끌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선량한 시민일 뿐이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분명 차별을 받고 있거든요. 그 간극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정치인들이 차별발언으로 비판 받을 때를 보면, 상황상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걸로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여성 교사들 있는 곳에서 여성 교사를 모욕하는 말을 한다거나, 장애인 앞에서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하는 건, 고의로 그랬을 상황은 아닌 거죠. 어쩌면 나쁜 의도는커녕 선의에서 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게는 모욕이 되는데, 그럼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이죠
 
그런 고민에서 나온 제목인데, 많은 분들이 제목만 보고 바로 이해하시더라고요. 본인의 경험과 결부시켜서 의미를 찾으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보면 분명 좋은 사람인데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걸 듣는 경험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차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차별한 사람은 없다고 하거든요. 분명히 차별 받은 사람이 있는데도 차별은 없었다는 말도 많이 하고요
 
차별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프롤로그에서 쓴 이야기는 제가 차별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차별을 보지 못했던 경험을 나눈 것이었어요. 그래서 차별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되는가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차별을 하지 않으려면 차별을 알아채야 하는데, 차별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는지를 탐구하려고 했어요.  

 
보통은 장애인이나 이주민, 성소수자 같은 차별의 대상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수납시키려고 하죠.  
 
성소수자가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할 때,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와 집회할 때, 어떤 사람들은 왜 굳이 밖에 나오냐고 말하기도 해요. "보기 싫다" "내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도 얘기하고요. 거리나 광장 같은 공공의 공간은 모두의 것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공공의 공간에 있는 건 자연스럽고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말해요.
 
성소수자나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 축제를 하고 집회를 하는 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존재와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사회에 드러내는 행위이거든요. 그런데 보이지 말라고 말한다면 사회에서 계속 없는 존재로 있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심각한 차별이죠.
 
 
차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거든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에 처하게 되잖아요.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하는 것인데, 고위층과 같은 일부 사람들만 특권을 누리는 게 아니에요. 누구든지 어떤 면에서는 특권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나는 비장애인으로서 아무 불편 없이 시외버스를 탈 수 있는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버스에 휠체어 탑승 장치가 없어서 버스를 탈 수 없다면, 나에게 버스를 이용할 기회가 있는 게 상대적으로 특권인 것이죠성별, 학력, 지역, 가족상황,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나이, 언어, 국적과 같이 다른 특성을 기준으로 하면 또 다른 특권이 발견되죠. 하지만 보통 이런 특권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고 익숙한 것이라서 눈치채지 못하곤 해요.
 
 
예전보다는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고 예민해지면서 일상에서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아졌어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차별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문제를 차별이라고 말하면, '네가 예민한 거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차별을 인정하더라도, 그러니까 '네가 더 노력해야 한다' '네가 참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도 해요.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그 책임을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차별을 당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변화하라고 할 게 아니라 차별을 하는 사람이 변화해야 할 문제잖아요. 차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상대가 예민하다고 탓하기보다는 문제제기 하는 얘기를 경청해보면 좋겠어요.
 
게다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 말했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한 번만 듣는 게 아닐 거예요. 여러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자주 반복적으로 듣게 돼요. 그래서 누군가 내가 한 말을 지적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예민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게 아니라, 정말 참다참다 못해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해야 더 맞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지 가해자로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네가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더 화를 내는 것 같고요
 
그건 그만큼 차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죠. 차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반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거잖아요. 그럼 나의 무엇이 부족한지를 듣는 자세만 갖춘다면, 변화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경우에 그 말과 행동이 차별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 방어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희생을 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차별을 한다고 그러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죠. 그런데 헌신한다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 상대를 열등하게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덜 경청하고 덜 존중하는 태도로 대할 수도 있잖아요.
 
 
선한 의도가 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네요.  
 
차별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거겠죠. 그런데 다행히도 자신이 못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면 알게 돼요.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도 제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기 보다는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다가 알게 된 것들이 많아요.
 
내가 다수자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소수자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잘 알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입장이나 위치가 바뀌어서 소수자의 입장에 처하는 상황이 있다면 알게 되겠지만 그런 기회가 없을 때도 많고요. 그러니까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거죠
 
이런 대화가 가능하려면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해도 안전할 것이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안심이 있어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분위기 없이 무턱대고 ', 이야기를 해 봐' 라고 해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별로 없겠죠
 
 
내 말이나 행동이 '차별'일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깨닫기가 쉽진 않은데요
 
무엇이든 저절로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인간관계도 그렇고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있죠. 차별도 마찬가지에요. 차별하지 마, 라고 해서 바로 차별이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는 차별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게 차별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렵죠
 
무엇이 차별인지 잘 보이지도 않고 판단도 잘 안되어서 역차별 논쟁처럼 사회에 많은 논쟁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이 갈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좋은 현상일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서로 주장은 달라보여도 바닥에 깔고 있는 전제는 같거든요. 차별은 좋지 않은 것이다라는 대전제요. 사람들은 정말로 평등을 원하는 것 같아요.
 
 
하긴, 차별이 더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불평등한 구조가 더 바람직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간혹 있기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헌법과 맞지 않는 주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겠죠불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본인이 그 구조의 맨 꼭대기로 올라갈 것을 확신하기 때문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구조에서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머지는 낙오될 텐데,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거잖아요. 아무리 애써 올라가도 여전히 그 위에 사람들이 있고 나는 계속 낙오된 것처럼 느껴지고요. 그런데도 왜 불평등한 구조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요.
 
 
책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이런 것도 차별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해주는 것이 좋았어요.  
 
사회 이슈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도록 질문을 던지려고 했어요.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가 있는데 평소에는 그냥 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 입장도 생각해보고 다른 입장도 생각해보고, 여러 각도로 이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그렇게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논의를 하면서 사안을 이해하는 관점이 넓어지고 또 바뀌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항상 개인의 이해득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니거든요. 사회정의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겨요. 정의로운 사회가 결국 자신에게 좋은 것이기도 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불평등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 내가 누리던 이익을 좀 양보할 수 있다는 마음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언어적 차별들도 많습니다. '다문화'라는 중립적이고 어쩌면 차별을 반대하는 용어가 오히려 차별의 단어가 되는 매커니즘이 궁금했어요. 
 
어떤 단어든 사람들을 집단으로 구분해서 그 집단의 이름으로 부르면 그 자체가 기분 나쁜 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개별적인 사람으로 존중 받고 싶지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면 불쾌한 마음이 들거든요. 게다가 만약 낙인이 있는 집단이라면 그 집단의 이름으로 나를 호명했을 때 낙인이 함께 오는 거죠.
 
'다문화'라는 용어는 다문화주의라는 말에서 왔어요. 다문화주의는 본래 다양한 문화를 존중한다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특정 집단을 호명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죠. '다문화가족'이란 말은 일부 이주민가족에게 사회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제도적으로는 선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겠죠.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낙인이 생겨요.
 
제도적으로 생기는 낙인인데, 이건 제도의 한계이기도 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한계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교실에서 '다문화'라는 명칭으로 누군가를 호명하는 순간,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시키면서 낙인을 호출하는 효과가 있죠. 이런 낙인은 일상적인 관계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지만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차별금지법이 일상의 모든 차별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거예요.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최소한 차별은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규칙을 정하고, 차별적인 제도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한 기본 틀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거죠.
 
외국의 경우 무엇보다 고용, 교육, 재화와 서비스의 이용 같은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이 차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개인의 편리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차별할 때가 있는데, 여기에 공공의 원칙을 세우는 거죠. 비교하자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 성희롱을 하지 않겠다고 사회가 약속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차별금지법이 마치 일부 소수자만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해서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성별, 학력, 지역, 장애, 가족상황,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국적, 언어, 직업, 경제적 수준 등 어떤 이유로든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건, 나도 어떤 이유로든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 받으며 동등한 기회를 갖도록 국가와 사회가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건 모든 사람의 삶에 관한 문제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평등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알기가 쉽지 않아요.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이니까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차별적인 구조 안에서는 생각에 한계가 있어서 소모적인 논쟁을 하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차별에 관해서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하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 상상하고 연구하고 설계하는 작업이요.
 
꽤 오랫동안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동질한 집단을 만드는 데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낯선 사람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내부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쉬운 방식이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배제의 방식 때문에 끊임없이 사회가 분리되고 그 중에 약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면서 차별이 지속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류는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노력해 왔잖아요. 그러려면 서로 관계 맺는 법도 배워야 하고 함께 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하죠.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뒷부분에 넣은 것은 그런 이유예요. 화장실이라는 모두에게 필수적인 공간을 장애인이나 트랜스젠더와 같이 아직도 편안히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노동현장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 이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요. 이런 모두를 포함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화장실을 설계해 보는 연습을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기존의 화장실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해보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더라고요. ‘다양성을 포함한 평등을 위해 그런 식의 연구, 교육과 정책들을 많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북뉴스)


선량한 <!HS>차별주의자<!HE> [정치/사회]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 창비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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