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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를 빼고 헬조선을 논할 수 없다『386 세대유감』심나리

  •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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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어쩌다 헬조선이 되었을까? 높은 실업률과 취업난 속에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며 나아질 게 없는 미래 앞에서 연애, 결혼, 출산에 더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N포세대는 한국 사회를 지옥과도 같다며 ‘헬조선’이라 부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20대 청년층을 ‘88만원 세대’로 호출한 지도 햇수로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각종 청년 정책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몇 걸음 나빠졌다고 청년들은 체감한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경제가 암울한 미래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더 나아질 게 없는 현실과 자신들에 대한 자조 섞인 체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오늘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심리적 불안이 커지는 것 또한 불안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요즘, 386세대와 세대 불평등의 이슈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386 세대유감』이 출간되어 세간의 화제를 모았고,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정치사회분야 9위에 랭크되었다. 신문 매체와 방송 매체는 ‘386세대에 대한 본격 비판서’ 출간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네티즌들이 댓글을 수백 개씩 달면서 논쟁을 뜨겁게 달궜다. 이 책의 제목처럼 386세대에게 어떤 유감을 가져야 마땅한 것일까? 저성장 시대여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주도하고 방관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일까? 386 세대유감』의 공저자 가운데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자 심나리 씨와 함께 ‘386세대’를 문제 삼은 이유를 본격 인터뷰한다.
 
 
6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왜 386세대로 비판받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7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취업난을 겪어야 하는가, 80년대, 9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N포세대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묻고 싶다.
―『386 세대유감』 공저자, 서울대 박사과정 심나리 씨 인터뷰 중에서
 
 
386 세대유감』이라는 책을 공저하셨는데요, 많은 신문사에서 서평 기사를 앞다퉈 다루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요?
 
현재 대한민국에서 ‘세대’라고 말할 때 가장 또렷하게 그릴 수 있는 세대가 누굴까요? 아마도 386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50대가 된 만큼 ‘586’이라고도 불리죠. 저와 김정훈 CBS 기자, 그리고 김항기 비서관, 이렇게 세 공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386세대가 갖는 특수성과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50대는 대체로 한 사회를 이끄는 중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386세대가 중추인 오늘의 한국 사회 현실은 어떤가요? 헬조선, N포세대, 흙수저, 금수저 같은 말들이 일상어가 됐죠.
 
저희는 우리 사회가 도대체 왜 ‘헬조선’인가를 살폈어요. 부동산, 교육, 노동을 둘러싼 불공정이 판치는 현실을 거슬러 되짚다 보니 다른 세대와는 유독 구분되는 세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386세대죠. 386세대는 전두환 정권의 대학졸업정원제 수혜를 입어 당시로는 전무후무한 30%대 대학진학률을 기록한 세대예요. 이렇게 비대해진 대학생 규모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에너지가 되어 1987년 민주항쟁의 성공으로 귀결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많은 이의 목숨이 희생된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인데요, 이러한 희생과 공로를 인정받아 어떤 이들은 정치 무대로 갑니다.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 혹은 부채감을 갖고 있다는 건 386세대를 구분 짓는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386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땐 이른바 ‘3저 호황’이라고 해서 우리 경제가 날개를 달았던 시기입니다. 기업들은 학점에 상관없이 대학 졸업생들을 모셔가려 안달했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직장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구분도 없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이 모든 체제가 깨지는데요, 386세대는 당시 이미 회사에 취직은 했지만 잘릴 만큼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386세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시기 즈음엔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신도시 200만 호 아파트 건설’과 같은 정책이 추진된 걸 보면 386세대에겐 다분히 시대의 운이 따랐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요?
 
저희는 이러한 시대적 운을 계산해 ‘세대별 손익계산서’라 이름 붙여 비교를 했는데요, 이것만 봐도 386세대의 운은 눈에 띄는 걸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는데, 책에서 구체적으로 한 번 봐주시면 좋겠어요.
 
 
386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다분히 운 좋은 시대를 만났다는 말씀인데요, 운이 좋았다는 말로는 386세대를 나빠진 우리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386세대는 전 세대에서 가장 비대한 세대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하는데요, 386세대가 선택한 것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저희는 부동산이 ‘부의 추월차선’이 되고, 사교육이 사()교육이 되었으며,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젠더와 문화 같은 가치는 여전히 후진적인 지금의 현실 속에 386세대가 선택한 것들이 녹아 있다고 봤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선택이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이끌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나빠질 것을 아주 몰랐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은 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저희는 ‘미필적고의’라는 법률 용어를 가져왔어요. 저희 책의 부제가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가 된 이유죠.
 
 
우리 사회가 지옥에 비유되는 ‘헬조선’이 된 데 지금의 50대인 386세대가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요, 다분히 논쟁적인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언론의 관심이 높았던 것 같은데요?
 
, 그렇습니다. 논쟁적인 주제이고, 또 누군가에겐 매우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어요. 여러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봐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적 형태의 논의를 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언론인, 연구자, 정치 비서관, 직종이 다른 세 분이 책을 공저하셨습니다. 책을 함께 집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세 분이 어떻게 만나 책을 집필하게 되셨나요?
 
특정 주제에 대해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손뼉 치며 마구 반가워하잖아요. 제가 볼 때 김정훈, 김항기 두 사람이 딱 그럴 것 같았어요. 김정훈 선배는 제가 언론사에 다닐 때 칼보다 더 날카로운 혀로 저를 훈련시킨 사람인데요, 이 분이 몇 년 전부터 386세대에 대한 문제적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김항기 씨와는 386세대 정치인의 참모로 함께 일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386세대에 대한 책을 한 권 꼭 쓰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두 사람의 이 말을 꽤 오랫동안 듣기만 하다 지난 겨울에 제가 중매에 나섰습니다. 언론뿐 아니라 학계에서 386세대에 대해 재조명이 이뤄지기 시작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둘을 마주 앉혔습니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했는데, 예상치 못한 건 중매쟁이인 저까지 함께하게 된 거예요. 혹여 둘 사이가 잘 안될 경우를 대비해 일종의 ‘무한 보증’을 제게 맡긴 건데… 제가 제 발등을 찍었던 겁니다. (웃음)
 
책이 진짜로 나올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발등을 찍은 느낌이었지만, 이렇게 실물로 책을 접하니 ‘이걸 같이 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책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죠. 큰 생각은 같아도 작은 생각의 결은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고, 또 각자의 글 스타일도 달라서 처음에 우려가 컸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모두 ‘초짜’ 저자라는 치명적 결함도 있었죠. 다행스럽게도 웅진지식하우스 신동해 주간님이 초기 두 달간 저희와 브레인스토밍을 같이 하면서 세 명의 유기적 결합이 꽤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응어리들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른이니까 잘 숨기고 있어요. (웃음)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세 명의 특기와 색깔이 굉장히 다른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충돌보다는 보완 기능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책을 보면 386세대에 대한 울분 같은 게 느껴집니다. 386세대인 지금의 50대 독자들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뼈아픈 비판으로 들릴 것 같고요. 책을 출판하고 50대 독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이 사회, 세상에 대한 울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사회, 세상이 만들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세대로 치면 가장 크고 강력한 집단이 바로 386세대이기 때문에 386세대를 말하지 않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수 없었어요. 386세대를 싸잡아 비판하기 위해 헬조선을 말한 게 아니라, 헬조선을 말하려다 보니 386세대를 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50대 독자들께서 뼈아픈 비판으로 들어주신다면 저희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니까요. 뼈아픈 비판에 대한 ‘이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후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에 대한 공감이 선행돼야죠. 그런데 386세대라도 다 같은 386세대가 아니라서 책에 대한 반응도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분들은 ‘정말 시의적절하게 잘 내놓았다’고 격려해주시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세대론으로 갈등만 부추긴다’며 질책하시기도 해요. 저희는 양쪽의 반응 모두 논의를 이어나가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실망스러운 반응은 외면이나 무반응인데요,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응원 모드였던 주변의 50대 선배님들이 막상 책이 나오니 별 말씀이 없으신 건 의외였습니다.
 
 
지금의 50대를 386세대라고 통칭하며 모두를 기득권 세력으로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88만 원 세대』라는 베스트셀러도 있었지만, 과연 ‘세대론’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유효한 프레임으로 제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맞아요. 세대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용감하고 무식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받기도 좋죠. 요즘처럼 개개인의 특성이 다양하고 존중받는 시대라면 더더욱 그래요. 오히려 파편화가 심해 세대 공통의 특징을 포착해내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 386세대는 20대에 민주화, 30대에 IMF 외환위기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으면서 공통의 집단적 심성을 키웠다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인간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20~30대에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경험,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경험은 다른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에요. 이런 경험들이 모여 386세대의 DNA라고 할 만한 것들도 생성되었죠. ‘우리 때는 말이야’나 ‘너희들은 아직 어려’와 같은 말, 네 편 내 편 가르기, 만나면 학번부터 묻는 등의 행위가 다 397세대의 DNA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정의와 자유, 평등의 가치를 과거 어느 세대보다 중요하게 보았다는 것도 386세대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말하자면 구시대의 막차를 타고 새 시대를 꿈꾼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386세대가 꿈꾸던 새로운 시대가 과연 실현되었는지를 물어야겠네요.
 
저희는 바로 그걸 묻고 있는 거예요. 그걸 묻기 위해 386세대를 호명한 거죠. ‘세대론’이 무용할 뿐 아니라 갈등만 조장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과연 386세대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거리에 나가 물어보면 어떨까요? 열에 아홉은 ‘386세대가 존재한다’고 말할 거예요. 따라서 저희는 존재하는 세대와 이를 둘러싼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 건 아니에요. 다만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이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를 소개한 정도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386세대라도 다 같은 386세대가 아니라는 말씀도 맞습니다.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죠. 위부터 아래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죠. 그래서 저희도 책을 쓰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어요. 특히 민주화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분들, 지금도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분들, 또 여전히 각종 운동 현장에 계신 분들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요. 이런 일반화의 오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386세대가 ‘평균적’으로 누린 시대적 운과 기회는 분명 특출했다는 겁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나는 기득권의 삶을 산 적이 없는데 왜 내가 6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아야 하는가’라고 생각이 드실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희의 이야기를 개개인이 아닌 집단의 평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주시면 어떨까요? , 바로 그 마음으로 헬조선을 탓하는 후배 세대들의 마음을 이해해 봐주시면 어떨지도 제안 드리고 싶어요. 후배 세대들도 ‘7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취업난을 겪어야 하는가’, ‘왜 80년대, 9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N포세대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었거든요.
 
 
386세대유감(世代遺憾)’이라고 세대를 통틀어 비판했지만 결국 비판의 화살은 좀 더 좁혀질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 그렇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 사회가 ‘약자들 간의 의자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건 386세대를 포함해 모든 구성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한다면 전선은 386세대와 여타 세대 사이에 그어져선 안 되겠죠. 공정, 정의, 평등과 같은 가치를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사로만 쓰면서 불공정, 부정의, 차별을 사회 시스템에 안착시키려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그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희는 ‘386 물러나라’고 주장하지 않아요. 오히려 ‘함께 손을 잡아보자’고 말을 하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 각자가 ‘나는 피해자이기만 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건 386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제 스스로 계속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1995 9, 서태지와 아이들은 사회 변혁을 노래한 <시대유감>을 발표했다. 서태지의 진단은 옳았다.” 이 책을 시작하는 첫 문장입니다. 이 책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앨범 발매를 금지한 데 저항한 청소년 운동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데요, 이 사건으로 책을 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25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사회에 절망과 아우성, 포기, 위선, 가식이 넘쳐난다고 대중가수가 노래할 정도였다니요. 절망감에 빠지면 내가 겪는 지금이 최악인 것 같지만, 이 노래를 안 뒤엔 어쩌면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했어요. 우리가 헬조선을 말하는 건 어떻게든 이 상태를 끝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인데, 어쩌면 그건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감도요.
 
<시대유감> 사태에서 놀라웠던 건 칼질을 한 권력자에게 청소년들이 ‘대들었다’는 거예요. 공연윤리위원회와 문체부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심지어 PC 통신으로 전자서명운동까지 벌였어요. 자식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서태지 구하기에 나서니 부모들도 정부 압박에 가세했다고 하죠. 바로 이때 청소년들이 X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좀 더 넓히면 밀레니얼 초반 세대도 해당될 수 있어요. 이렇게 발랄하고 발칙했던 10대를 보낸 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제 자신에게 국한해서 말하자면, 좀 거칠게 표현해 거세된 젊음을 살았구나 싶어 부끄러웠어요.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충실한 모범생으로만 살아왔구나 싶은 거죠. 386세대에게 미필적고의를 묻기 전에 우선 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공저자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입니다. 기자로 언론사에 몸담으셨다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경력단절녀가 되셨다고 이력에 밝히셨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으로서 해결해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386세대 비평서와 연관 지어본다면, 여성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과 386세대는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의 경우는 아이를 낳아서 경력단절이 되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임신을 이유로 회사에서 부당한 보직 변경도 당해봤고 또 육아휴직도 3개월밖에 못 쓰긴 했지만, 엄마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편이라 회사를 그만둘 만큼의 절박함은 없었거든요. 문제는 자발적 사직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언론사 경력도 있고 소위 말하는 가방끈도 더 길어졌는데 구직 시장에 들어간 서른 넘은 아이 엄마를 ‘제값’에 쓰려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이후 386 정치인과 연을 맺고 정치 영역에 발을 담갔을 때는 보상보다 보람을 스스로 선택했죠. 4년 넘게 정치 영역에 있다 비자발적으로 다시 경력이 단절되자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남편이 버니까 쉬엄쉬엄 일자리 찾아’, ‘이참에 아이랑 더 많이 시간 보내면 좋겠네.’ 제가 남자였어도 아내가 버니까 쉬엄쉬엄 일자리 찾으라고, 이참에 아이랑 더 많이 시간 보내라고 말을 했을까요?
 
사실 이런 말들은 대부분 386세대 남성 선배들에게서 들었어요. 그리고 이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중추 세력이고, 다시 말하면 이 사회의 어젠다 세팅 그룹이죠. 정치권 386세대라면 이 사회의 제도, 규칙을 만드는 힘도 가졌어요. 이런 분들 다수가 여성을 반쪽짜리 인력 자원으로 봅니다. 당연히 여성의 사회생활도, -가정 양립도 이런 시선 속에서 정책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당사자성을 강조하고 있는 ‘정치하는 엄마들’과 같은 단체 활동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삶, 엄마의 삶이 향상되려면 스스로가 더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싶어요. ‘당신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겠다’며 선출된 정치인이라도 스스로 당사자가 아닌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흔히 ‘사회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라는 말이 가진 추상성이 너무 크고 그 안에 ‘나’가 생략돼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물론 각자 삶의 무게가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엄마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이 더 많아지고 이들을 위한 무대가 더 넓어지면 여성의 삶, 엄마의 삶, 가족의 삶도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책의 마지막 5 <게임체인저의 등장>에서 우리 사회를 약자들끼리 자리를 두고 싸우는 ‘의자게임’에 비유하신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해도 사회는 변하지 않을 거야, 대의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없어,라고 체념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큰 것 같습니다. 직장 안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나 하나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싶고요. 어떻게 우리끼리 싸우는 의자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을 바꾸는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저희에게도 숙제예요, 그 답을 찾는 것이. 참 힘 빠지죠. 정작 강자들은 멀리 떨어져서 싸움을 관망하고 있고, 약자들끼리 서로 눈치 보다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을 찾아서 짓뭉개요. 우리 사회에서 약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바꾸냐고요? 각자가 바뀌지 않는 이상 누가 나서서 바꿔줄 수 있을까요? 각자도생의 질서가 이미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누가 먼저 손을 내밀까요?
 
나 하나를 지키며 사는 것도 어려운 세상에서 공동체, 대의, 정의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게 허공에 뜬구름을 잡는 느낌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또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 하나 지키는 것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없지도 않더라고요. 이런 분들 보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고 다짐을 하긴 합니다만, 참 어려워요.
 
 
마지막으로 386세대의 아래 세대들,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 혹은 88만원세대라 불리는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 들려주신다면요?
 
저희 프롤로그 글 제목이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는 당신과 나에게’에요. 편집자께서 이 제목을 붙여 주셨을 때 저는 울컥했어요. 세상에 대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줄곧 밀고 당기기를 하다 최근에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다 간신히 붙잡고 또 섰는데요(책 덕분이에요), 저희 책을 읽거나 혹은 들으시는 분들과 조금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답을 같이 찾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게 저희 세 공저자의 바람입니다.
 

 
| 기사 및 사진제공_웅진지식하우스
 
 
386 <!HS>세대유감<!HE> [정치/사회]  386 세대유감
김정훈 | 웅진지식하우스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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