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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문태준,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져요”

  • 2019.08.23
  • 조회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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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나무는 항상 다른 나무였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었다가 비가 오면 비를 맞은 나무가 되었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안심을 주다가도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한 그루 나무에서 자연과, 일상과, 유연한 태도와, 끊임없는 변화를 모두 포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는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인의 계보를 잇고 있는 시인 문태준이 10년 만에 낸 두 번째 산문집이다.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문장들이 품고 있는 새로운 풍경들에 대해서 문태준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산문집 『느림보 마음』 이후에 10년 만의 산문집이네요. 10년이라는 시간도 있지만 첫 산문집과는 또 다른 느낌의 책이 되었습니다.  
본업이 시 쓰는 일이다 보니 그 사이에 산문집은 내지 않았지만 시집을 몇 권 냈죠.  
첫 산문집에서는 가족, 자연, 성장기에 관련한 이야기를 썼다면 이번에는 시를 쓸 때 도움을 준 다른 시인들의 시, 음악, 미술과 화가의 삶, 영화, 그런 것들에 대한 짧은 생각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관심사가 좀 펼쳐진 느낌이죠
 
 
짧은 산문들이 많아요. 짧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은 것이, 시와 산문의 중간 정도 되는 호흡입니다
전반적으로 짧은 산문들이 많은데, 산문이지만 시적인 율동이 있는 글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푸른 나뭇잎 한 장, 시원한 한 번의 바람, 하나의 파도 같은 산문을 쓰고 싶었어요. 책장 어디를 펼쳐서 잠깐 잠깐 읽어도 그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요
 
 
산문집 제목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인데요.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이지만 곱씹을수록 여러가지가 생각나는 문장이에요
시인 김용택 선생님께서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씀이에요. 이 문장을 제목으로 써도 괜찮을까 여쭸는데 흔쾌히 괜찮다고 해주셨죠. 뜻이 큰 문장이에요. 바람이 불어오면 꼿꼿하게 서 있던 나무가 바람을 따라 느긋하게 기울어졌다 다시 바람을 벗으면 본래 제 자리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에요. 나의 외부에서 오는 것들을 수용하는 유연한 성품에 대한 이야기죠. ,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그렇게 한 번 기울어졌다 회복된 나무는 예전과는 뭔가 달라진 나무잖아요. 또 나뭇가지에서 새가 앉아있다면, 그 나무는 새가 앉아서 노래하는 나무가 되고요. 그런 풍경들을 그려봐도 좋을 것 같아요
 
 
자연과의 교감을 다루는 글들이 많은데요. 사실 현대인은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자연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자연과 떨어진 공간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살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자연에서 살았던 시간도 있고자연으로부터 신선한 공기를 제공받아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알고 보면 인간도 태어나고 사라지는, 어떤 생멸이 있는 작은 자연이고요. 인공적인 건물이 서 있는 도심에서 살더라도 자연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연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자세히 보면 매일매일 무언가 달라지고 있잖아요어떻게 보면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일상도 자세히 보면 항상 무언가 달라지고 있고요.  그렇게 자연과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눈인 것 같네요
얼마 전에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갔어요. 호크니 작품 중에 시골길의 같은 지점을 일곱 번 찾아가서 일곱 개의 그림으로 그린 작품이 있어요. 같은 길을 그렸지만 각각 다르죠. 볼 때마다 자연은 계속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우리 삶과 마찬가지에요. 우리의 삶과 일상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피어나고 떨어지고 하는 것을 보여주죠.  
꽃집에 있는 꽃을 볼 때와, 그 꽃을 내가 받았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 관점의 이동이 있으면 일상에서의 미묘한 변화나 작은 균열, 변화,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어요. 우리 삶에는 빛나는 순간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가 조금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런 빛이 있는 순간들이 많죠
 
 
불교방송PD로 오랫동안 일하고 계신데,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요
불교방송은 24년째 다니고 있으니까, 오래 다니고 있죠. 다른 시인들도 다른 직업을 많이 갖고 계세요.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고 쉽지 않은 것이죠
그럴 때마다 좋은 시구라든지 좋은 말씀 같은 것들, 시 쓰는 사람으로서 제 내면에 시의 언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과 예술가들의 삶과 생각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요
 
 
이번 산문집에는 시와 시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시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들을 접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하나의 시각, 고정된 시야만 가지기가 쉬워요. 세계를 볼 때 정면에서만 보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시각이 점점 우세가 되면 고정되어 버리죠. 그보다는 사물과 세계를 위에서도 내려다보고 아래에서도 올려다보고 뒷면에서도, 측면에서도 바라본다면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겠죠. 그렇게 대상과 세계를 다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목을 다른 장르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죠.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지만, 가끔은 다른 장르가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여산진면목'이라고 하는데, 산 속으로 들어가면 산 전체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산의 참모습을 보려면 여러 방면으로, 여러 시야에서 봐야 하는 것이죠. 다른 장르를 접하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입장에서 보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 관점과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확장된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저도 매일 책만 읽다가 가끔 미술이나 음악 같은 다른 장르를 경험하면 신선하고 새로워진 느낌을 받아요.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이나, 제가 지나쳐버린 세상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서는 일상이 다양한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보여줘요. 낙엽 밟는 소리, 눈이 녹아서 최초로 물이 되는 순간에 생겨나는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 그리고 빗방물이 떨어지는 소리, 류이치 사카모도는 이런 소리들을 녹음하고, 그렇게 일상에서 채취된 소리들이 그대로 음악에 편입이 되죠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일상 속에서 흩어져있는 언어들이 시로 편입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작곡하는 사람들을 보면 근사해요. 우리는 음을 듣지만 그 음들을 최초로 배치해서 음의 흐름을 만들고 악보를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음악을 들으면서도 생각을 해요. 음악을 들을 때면 눈보라 치듯 몰아치거나 계곡물처럼 흘러가거나 혹은 완만한 흐름을 갖는데, 한 편의 시에도 그런 것들이 있거든요. 조급해지는 부분이 있고 거세지는 부분이 있고 잠잠해지는 순간도, 휘둘러 나가는 순간도 있죠. 다른 예술에도 시에도 마찬가지의 것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관심있는 예술 장르가 있으신가요
최근에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시와 그림은 장르는 다르지만 그 일을 수십 년 하다 보면 결국은 비슷한 곳, 공통된 생각에 도달하는 것 같아요.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런 말을 해요. 앞에서 같은 장소에 일곱 번 가서 일곱 개의 풍경을 그렸다고 했는데, 그 지점에 서서 세계를 감각하는 순간 생겨나는 '첫 생각'이 있는데, 그 첫 생각을 스스로 신뢰해야 한다고요. 시인에게는 시적 영감 같은 것이죠. 어둠 속에서 촛불이 탁 켜지는 순간 같은 것, 시가 내려앉는 순간인데, 그 순간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는 거에요
또 한 가지는, 작품을 그리는 그 날의 특별한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도 해요. 이건 직관과 관련이 있어요. 자신의 첫 생각에 대한 신뢰, 그리고 어떤 불가해한 직관을 기초로 해서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이죠. 그런 호크니의 생각은 시 쓰는 사람인 저도 공히 공감하는 대목이에요. 그런 것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예술들도 좋지만 시만이 가지는 매력도 있습니다. 사포의 「저녁 별」이라는 시는, 몇 천 년 전 먼 이국에서 쓰여진 시지만 지금 제가 읽어도 감흥을 느낄 수 있거든요. 산문과는 다른 매력이겠죠. 그리스 비극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좀 더 쉽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참 멋진 시죠? 사포 뿐만 아니라 네루다, 타고르, 프랑시스 잠, 이런 시인들의 문장은 짧지만 지금까지도 생명력이 있는 문장들이에요. 이번 책에서는 그런 좋은 시구들을 좀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이런 멋진 문장들은 돌 속에 숨겨진 푸른 옥 같은 문장들이죠. 그런 문장들을 저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서,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좋은 문장들을 많이 넣었어요
 
 
새해가 되면 몇 개의 문장을 마음에 담아놓고 한 해의 지표로 삼으려고 한다는 글도 인상적이었어요. 새해 계획을 세울 때마다 '금연, 금주, 다이어트' 이런 결의를 다지는 것보다 "묵은 순 터 / 새순 돋듯" (신동엽, 「너에게」 중에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성철스님) 이런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면 뭔가 다른 마음으로 한 해를 살게 될 것 같아요
"억지로라도 쉬어가자" 이런 문장도 괜찮습니다(웃음). 이 문장은 제가 강릉의 한 스님의 방에서 본 문장이었어요. 억지로라도 약간의 쉼, 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그런 문장들을 메신저 상태 메시지 같은 곳에라도 적어놓고 수시로 들여다보면 뭔가 자신의 삶을 생기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란에서의 시 낭독회 경험도 재미있었어요. 낭송자가 시를 낭송하는 중간중간에 객석에서 탄성과 감탄을 하는게 추임새 넣는 것 같았다고요. 시를 경험하는 방법은, 그렇게 여러가지가 있구나 하는 걸 생각하게 했어요
이란 사람들은 시를 굉장히 좋아하고 생활 속에서도 시를 즐기더라고요. 그리고 이란에서 태어난 시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굉장히 커요. 그리고 악흥이라고 할까요, 음악을 즐길 때 느끼는 흥,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이란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데, 영혼의 신성성, 영성을 지키기 위해 매일 기도를 하고 시를 읽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은 자기 영혼을 가꾸는 사람들인 것이죠. 종교가 일상으로 들어와 있고, 시의  음악이 일상화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와 일상, 그리고 종교와 자연까지 뭔가 다 연결되는 느낌이네요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져요. 우리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거나 뭔가 사물이나 대상을 볼 때면 내면에 잠깐씩 공간 같은 것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은 오래 있는 건 아니고 만들어졌다 사라지고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어떤 것이요. 그렇게 만들어졌다 스러지고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런 공간을 보는 훈련을 시나 종교(영성)을 통해서 하는 것이죠
 

 
작가님은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많이 소개되는데요. 서정시라고 하면 마냥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시를 읽으면 서정이라는 부드러움 안의 단단함이 있다고 느껴져요.  
서정시라고 여린 감성, 사랑과 이별만 다루지는 않아요. 뭔가 하나의 현상이 일어났을 때, 움직임을 살아있는 시적 언어로 잡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서정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회적 주제와 관련된 것도 서정시를 통해서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감정의 움직임, 생각의 움직임을 시로 표현해서 시를 읽는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과 입장을 이동시키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죠
 
또 시라는 것은 해석을 보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과 한 알을 노래한다고 할 때도 그 사과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해석을 할 수 있어요  사과의 색감을 볼 수도 있고 사과의 낙화, 여러 계절을 지나온 과실로서의 사과, 하나의 사과가 무르익기까지 도움을 줬던 것들, 그런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죠그렇게 보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해석의 총량을 계속해서 늘려주는 일을 시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인데, 혹시 다음 산문집도 10년 후는 아니겠죠? (웃음)
다음 산문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다시 시 쓰는 일을 계속 해야겠죠. 지난 해에 시집이 나오고 시인으로서 어떤 시적 변화, 시 세계의 깊어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상도 받고 또 제 시집을 독자분들이 읽어주셔서 시 쓰는 일에 격려를 많이 받았죠. 시 쓰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나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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