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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읽는 조선의 역사『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김진섭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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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조선시대 27명의 왕에 대해서는 한 명씩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비는? 혹시 지금 떠오르는 왕비가 있는가? 장희빈? 장희빈은 왕비가 아니라 '희빈' 장씨다
 
조선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지만 '조선의 왕비'는 늘 소외받는 존재였다. TV나 드라마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 왕비는 극소수고, 그나마도 주로 시기와 질투로 얼룩지거나 정치적 암투에 휘말린 비극적 삶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조선의 왕비'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왕에게 왕비의 친정은 왕권 강화를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이자 때로는 권력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였고 늘 견제하고 주시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비는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형식적이었을지언정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다. 우리가 조선의 왕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는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하며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를 두껍다』 등을 쓴 김진섭의 책이다. 44명의 조선의 왕비에 대해서 한 명 한 명 살펴보고 다른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책,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의 저자 김진섭과의 만남
 
 
왕비로 읽는 조선 역사의 의미
 
 
조선시대, 특히 왕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책은 항상 인기가 많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책들도 참 많고요. 그런데 왕비는 별로 주목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왕비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보는 책이라는 점에서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는 의미가 있는데요
 
왕비에 대해서는 자료도 많지 않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또 왕비에 관한 민가의 말들은 또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왕비와 관련된 책이나 콘텐츠들 중에는 정사 내지는 사실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고요. 그런 얘기들이 왜 사실로 믿어지게 되었을까 궁금했죠.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식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느냐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20명 내외의 주요 왕비만 다루려고 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 내용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모든 왕비를 다 다룰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모든 왕비들을 쭉 이어서 봤을 때  연결되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44명의 왕비를 모두 살펴봤어요
 
왕비에 대한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정사로 기록된 것이라도 그걸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것 같고요. 그 기록이 만들어진 전후의 상황, 문맥 속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왕비가 자신의 말이나 글로 직접 남긴 기록은 거의 없어요. 보통 왕비와 관련된 기록들은 다 왕을 통해서, 대신들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거든요.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또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죠
또 객관적인 자료가 많지 않았어요. 자료들의 출처를 추적하다 보면, 근거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들이 많았어요. 인터넷에 발달되어서 자료를 찾기 쉽다고 하지만, 많은 자료들의 출처가 불분명 하다보니 나중에는 자료가 나오면 나올수록 헷갈리더라고요.  
 
왕비는 조선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여성이지만 정확한 역할이나 위상은 정해져 있지 않은데요. 조선에서 왕비라는 존재의 의의는 무엇이었을까요?
 
고려 시대에는 한 왕이 여러 명의 왕비를 둘 수 있었지만, 조선 시대에 왕비는 오로지 한 명 뿐이었어요. 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석이 아니었고요. 그렇게 때문에 비록 형식적일 수는 있지만 왕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고 왕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 존재감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죠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비록 왕비가 공개적으로 정치에 나서는 일은 없지만 왕비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 어떻게 존재감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정치가 달리지기도 했고요
 
조선이 500년 동안 지속되는 동안 왕비의 위상도 계속해서 변해갔는데요. 조선 초기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왕이 왕비 친인척들의 힘을 빌렸다면, 후기로 갈수록 점점 외척들의 권력이 커지면서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던데요. '외척'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상이지만 사실 왕비 가문과 주변 세력은 조선의 정치 역학에 있어서 중요한 플레이어더라고요. 마냥 무시하거나 배척할 수는 없는 존재였어요.  
 
어떤 집안에서 왕비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죠. 권력이 있는 집안과 손을 잡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권력이 없는, 앞으로도 권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적은 집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모두 정치적인 행동이거든요. 그런 계산들을 굉장히 치밀하게 했던 것 같아요
 
시대별로 왕비와 외척의 의미들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정치 안정도가 좌우되었고 그들이 현실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죠. 조선의 개국 초기에는 왕실과 가장 가깝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가문이 결국 왕비의 집안이었거든요. 왕비 가문이 왕권에 협조를 하느냐 반기를 드나에 따라서 여러 상황이 바뀔 수 있었죠. 그래서 처가의 힘을 너무 억제해도 도움을 받기 힘들고, 또 너무 힘을 키워줘도 위험하고요. 때로는 동반자였고 또 때로는 경쟁자이자 견제하는 세력이기도 했죠. 조선 중기를 넘어가면서는 왕비 집안의 세력을 어떻게 억제하고 권력화되는 것을 방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요
 
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면 왕이 바뀔 때마다 역사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면서 일정 부분 역사가 단절되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왕비와 왕비 집안을 중심으로 모인 복잡한 인간관계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연속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죠
 
아는 왕비, 몰랐던 왕비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를 읽다 보니 왕비를 부르는 시호가 좀 헷갈리더라고요. 왕비의 경우는 세자빈일 때, 왕비가 되었을 때, 또 대비가 되었을 때 계속 부르는 이름이 달라지니까요. 저는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가 인수대비와 동일인인 걸 처음 알았어요(웃음). 
 
소혜왕후라는 호칭보다는 인수대비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가급적이면 '왕비'라는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호칭을 '왕후' 쪽으로 정리를 해봤어요
일단 조선의 왕비도 여자였기 때문에  대부분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어요. 원경왕후, 소혜왕후 이런 시호들은 사후에 내려지는 이름이고요.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왕비가 되기도 하고 생전에는 왕비가 아니었지만 사후에 왕비가 되기도 하고 해서 저도 정리하는데 많이 헷갈렸어요
 
조선의 왕비라고 하면 드라마를 통해서 알려진 몇몇 인물들만 유명하거든요.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왕비가 혹시 있나요
 
다 알려주고 싶지만, 두 명 정도를 예를 들어보면, 우선 태조의 첫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에요. 신의왕후는 조선이 건국하기 10여 개월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살아서 왕비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어요. 신의왕후에 대해서는 생전에 고생만 하다 후처가 들어오면서 버림받고 소외당했다는, 여성과 여성의 갈등 속에서 한 여성이 핍박을 받았다는 관점으로 많이 보는데, 다른 관점도 적용해볼 수 있거든요.  
신의왕후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의 어려운 생활을 책임지고 극복해나갔던 사람이에요. 6 2녀를 낳고 이성계가 전공을 세워 상으로 받은 농장, 이성계의 사병들, 그리고 사병의 가족들까지를 거느리고 관리했던 인물이죠. 신의왕후가 이런 관리를 잘 했기 때문에 이성계가 대외적인 활동을 부담없이 할 수 있었을 테고요
저는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여장부 스타일로 신의왕후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성계와 신의왕후는 두 살 터울의 같은 고향 출신인데, 둘이 어렸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고, 그래서 이성계가 밖에서는 세상을 호령하다가도 집에 와서는 부인에게 꼼짝 못하는 모습도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상상 아닐까요(웃음).  
 
또 한 명, 관심 가져볼 인물이라면 인조의 정비인 인렬왕후에요. 자료를 보면 인조반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고, 전략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거든요. 그리고 왕비의 자리에 올라서는 동냥아치 중전마마라고 불릴 만큼 검소했고요. 그 외에도 구체적인 일들을 살펴보면 이제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는 후대에도 칭송받는, 왕비의 모범 같은 인물인데요
 
하지만 소헌왕후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모양처의 카테고리에 가둬둘 인물은 아니에요. 세종은 우리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성공적인 치세를 한 성군이지만 그런 세종과 함께 했던 소헌왕후도 그 만큼 그릇이 컸던 사람이거든요
물론 사는 동안 갈등이 왜 없었겠어요. 특히 세종이 즉위하자마자 친정 아버지인 심온이 태종에 의해서 누구나 아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요. 그런데도 소헌왕후는 당시에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친정의 몰락과 관련해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건 소헌왕후가 소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왕비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의 말이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자신의 억울함보다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말을 아꼈을 가능성이 커요. 그만큼 정치를 잘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런 부분에서, 소헌왕후도 현모양처의 틀에 넣어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는 위엄있는 존재로 보면 더 풍성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중기 이후로는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대비의 존재가 많이 부각되는데요. 특히 후계 구도를 정하는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돼요
 
묘하게도, 조선 전기에는 왕비가 모두 왕보다 일찍 사망해요. 태조도, 태종도, 세종도요. 그리고 공석이 된 왕비의 자리를 다시 간택하지 않고요. 그래서 왕비와 후궁들의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세조 이후부터는 왕보다 왕비가 더 오래 살고, 왕비 자리가 공석이 되면 새로 계비를 간택하면서 왕실 내에서 여성들 사이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왕비보다는 대비 쪽의 존재감이 더 커지게 되죠
 
대비의 역할도 왕비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에요. 다만 왕실의 어른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왕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후계구도를 지목하는데,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하죠. 어떤 후계구도를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정치의 역학 관계가 달라지니까요. 그러면서 대비들의 훨씬 강한 존재감을 갖게 되요. 그리고 또 묘하게도,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들의 수명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요.
 
왕비의 수명이 길어져서 복잡해지는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정비의 아들인 효종 사망 때,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사망했을 때 상복을 몇 달 동안 입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예송논쟁 같은 경우도 생기고요
 
사실 상복을 몇 년 입냐, 몇 개월 입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면 중요하겠지만 충분히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문제죠.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누구의 논리가 수용되느냐가 권력, 정파적 이익과 연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 논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거든요. 사실 조선 초기에서는 이런 문제를 꺼낼 수도 없었죠. 왕권에 도전하는 문제니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발언이거든요. 하지만 이때는 왕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서로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권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뜻하죠. 이 와중에 괜히 가만히 있는 왕비와 대비만 마음 고생하게 하고 말이죠
 
보면 볼수록…. 왕비가 되어서 좋을 게 없어 보이네요(웃음
 
농담이든 진담이든 왕비처럼 받들어준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웃음). 현명하게 처신하지 않으며 구설수에 오르고 툭하면 폐비시키라고 하고, 왕비는 힘들었을 거에요
왕비의 집안들도, 세월이 좋을 때는 왕비가 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고 가문이 권력을 갖는 길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는 언제 위험한 곳으로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리가 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간택단자를 안 내놓으려고 하기도 해요. 부침이 심했죠
 
각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에는 왕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흔히 왕만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왕비도 함께 묻혀있으니 왕릉을 이야기하면서 왕 이야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왕릉을 조성할 때 풍수지리를 보는 이유는, 결국 후속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거든요. 능이란 결국 후손들이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왕릉을 통해서 후손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고요. 그리고 정비와 계비가 있던 왕의 경우, 왕이 어느 왕비와 묻히느냐도 중요하거든요. 왕 사후에 왕비의 친정이나 떠받쳤던 권력 구조와 관계가 있으니까요
 
왕비에 대해 더 이야기할 것들
 
 
앞에서 왕비와 관련된 자료를 중에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야사가 많았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조금 조심스러운 것은,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왕비와 관련된 역사는 대부분 근대 이후에 알려진 것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의 근대는 개화라는 대격변기이면서 일제 강점기라는 식민지 경험을 동시에 갖고 있거든요. 그렇게 볼 때, 그 시기에 작성된 기록이라면 단순히 쓰여진 문자 그대로 말고 그 뒤에 뭔가 숨은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커요. 예를 들자면 왕비 외척들의 부정행위만 부각시켜서, 이렇게 부패했기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그런 식의 패배주의와 식민사관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당시 알려진 이야기들이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굉장히 잘 봐야 해요. 잘못하면 역사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식민사관으로 빠져버랄 수 있거든요
 
왕비에 관한 야사들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여러 왕비에게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떤 상징이나 신화처럼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의 경우, 세조가 난을 일으킬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갑옷을 입혀주고 독려해서 행동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왕건의 부인에게서도 찾을 수 있거든요.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목이 마른 이성계에게 두레박에 나뭇잎을 띄워서 건넸다는 이야기도 왕건과 동일하고요.  당사자의 정통성과 신화적 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정권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봐도 되는 것이죠. 그런 야사들에 대해서 한 번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그리고 수렴첨정을 한 대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수렴청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한계도 보여요. 왕권 강화나 친정 가문의 권력 유지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백성이나 국가에 대한 큰 비전을 갖지는 못한 경우가 많았고요
 
수렴청정을 한 대비들은 본인은 정치를 잘 모른다고 했지만 정치를 알 수 밖에 없었죠. 생존을 위해서는 정치적 감각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졌다 해도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관계 속에서 그걸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에요
조선 후기로 오면서 왕비와 대비의 집안, 외척들이 권력을 잡게 돼요. 근대라는 커다란 변화 속에서, 왕실을 지켜야 국가를 지켜야 한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넓은 변화를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 권력만을 추구하다 정치의 본질인 백성을 간과한 것은 안타깝죠
 
사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왕비는 몇 명 없어요. 보통은 드라마에서 많이 본 몇 몇 왕비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정도거든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의미가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면 다들 대사도 없는 존재로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드라마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더라도 다들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니까 더 많은 다양한 인물들도 봐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도 장희빈 같은 몇몇 사람들, 궁궐 내의 시기와 질투, 권력에 희생된 비운의 왕비 같은 캐릭터만 등장시킬 게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왕비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보이지 않던 관계가 보이고 새로운 콘텐츠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선입관을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읽어주세요. 꼭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어요. 모든 챕터들마다 다루는 왕비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했어요. 보고 싶은 왕비를 선별해서 한 명 씩 골라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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