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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이 떠오르는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의 저자 심보선 시인

  • 2019.06.20
  • 조회 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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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진주 같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특히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에세이 분야에서는 그 기쁨이 더 큰데 간만에 그런 책을 찾았다. 심보선 시인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작고하신 황현산 선생님이 자꾸 떠오른다.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의 글처럼 심보선 시인의 이번 산문도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또 주위를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흔히 생각하는 시인의 따뜻한 산문집은 아니지만, 이 책이 품은 열기는 더 뜨거워서 신형철 평론가도 ‘사랑’ 담긴 고백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놓치기 아까운 책. 놓치기 아까운 사람. 행동하는 시인 심보선과 나눈 신간 인터뷰.


[심보선의 안부]
재작년에 시집을 내신 이후로 책으로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시집을 내고 난 뒤로 딱히 작품 활동은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시집을 털고 난 다음에 시를 안 쓰는 기간이 길어졌어요. 아무래도 직장에 몸이 매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요즘은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외에 가끔 독자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참여하기도 하고 그 밖에 예술가들과 같이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계속 그 루틴이에요.

다른 예술가들과 활동한다는 건 어떤 건가요?
대표적인 게 안산 순례길입니다. 매년 한 번씩 5년째 하고 있는 일종의 거리공연인데,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안산을 걸어요. 거기엔 예술가도 있고 기획자도 있고 시민들도 있습니다. 5~6시간을 걷는 동안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되는데, 순례의 경험을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텍스트를 이용하거나 책이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순례 경험을 돕거나 생각할 거리를 공유하곤 합니다.

그런 다양한 활동들이 이번 산문집으로 완성된 것 같은데요. 시집으로 독자를 만날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시는 제가 만든 일종의 세계에 ‘관심 있는 분들 한 번 와보세요’ 하고 초대하는 느낌이라면, 산문은 제가 조금 더 다가가는 식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먼저 질문하고 또 가끔은 관심 좀 가져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형태예요.

연구자로서 논문을 쓰기도 하시는데요. 시, 산문, 논문은 각각 다른 ‘영혼’으로 글을 쓰는 건가요?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도 볼 수 있지만 조금씩 그 특징이 다르긴 하죠. 시의 경우엔 시 자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기보다는 일상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식이에요. 논문의 경우 사회학과 관련된 생각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제가 설정한 주제와 그 주제에 관련된 사람들의 삶 그리고 과거에 발표된 자료들과 선행 연구들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형태예요. 산문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지 않나 싶어요.

[13년의 기록]
이번 신간은 지난 13년간 써온 글들이 묶인 산문집이잖아요. 과거의 내 글을 쭉 읽는 경험이 색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데요.
이번 책을 엮는 과정에서 과거로 확 끌려가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이건 산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시의 경우엔 제가 시적인 표현 안에 드러난다고 해도 그건 만들어진 화자잖아요. 가상 인물인 거죠. 그래서 저를 과거로 데려가진 않거든요. 반면 이번 책에 담긴 산문들은 기간 자체도 10년 넘는 세월이 담겨있다 보니 저를 자주 과거로 데려가더라고요. 과거에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훤히 들여다보여서 재밌었어요. 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건 당시에 제가 했던 생각이 그대로 멈춰있지 않더라는 거예요. 조금씩 발전하고 진화하는 게 지난 글들에서 느껴졌어요. 보이지 않는,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어떤 끈들이 산문들 사이에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과는 달리 ‘저 때는 참 즐거웠네, 유쾌했네’ 싶은 지점들도 있고요.

‘멈춰있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는 생각’ 중 하나 정도 소개해주실 게 있나요?
대표적인 게 영혼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들입니다. 1부의 첫 글 <영혼의 문제>를 쓸 당시만 해도(2009년) 되게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영혼의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로 제가 바뀌고 또 사회가 바뀌면서 지금은 또 다른 영혼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 당시에 허름한 식당에서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영혼’ 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었거든요. 사회학이 계급 중심적인 사고가 있어서 한 사람이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그들이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나누는데, 당시 그 장면 속 아주머니는 사회학적으로 할 수 없는 말을 한 거거든요. 그때부터 사람이 품고 있는 가능성이나 한계에 대해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식당에서 바라본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밖으로 넓혀졌고요. 지금은 현재 한국을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장면이 식당 밖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생각의 변화 외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글 자체의 변화도 있었을 텐데, 그중 가장 특징적인 변화를 꼽아주신다면요?
제가 산문을 쓸 때 나름대로 지키려고 하는 게 ‘건조하게 쓰기’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건조하거나 차가울 수 없는 내용이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쓰려는 거예요. 근데 초반에는 가끔 그걸 벗어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 당시 산문을 쓴 화자(저)를 보니까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려는 중에도 유쾌하고 발랄한 모습들이 비치더라고요. 그 모습들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점점 더 나의 캐릭터나 나의 개성을 없애는 글을 쓰게 되거든요. 완벽히 성공할 순 없겠지만 점점 더 거기에 가까워지는 것 같긴해요. 그게 제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보통 시인의 산문이라고 할 때 독자들이 기대하는 그림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발랄함을 잃은 건 그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가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두 편의 산문은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이자 이주민의 권리를 노래하던 가수 ‘미누’와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첫 번째 글 <마석으로 다녀온 소풍>을 쓸 때만 해도 이주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같이 노래하고 놀았거든요. 그런데 <미노드 목탄, 미누를 기리며>를 쓰는 지금은 그러지 못해요. 미누가 추방당하고 거부당하고, 그럼에도 가까스로 다시 들어왔지만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명을 달리한 것처럼. 그 비슷한 사례들을 목격하고 나니까 더는 소풍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아주 가끔 사람들이 모이고 웃고 떠든다고 해도, 옛날엔 느끼지 못했던 그 웃음 너머의 씁쓸한 뒷맛이 이제는 느껴집니다.


[그의 글에서 우리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
저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들이 조금씩 겹쳐지더라고요. 그만큼 수록된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글을 쓸 때 독자를 설정하고 쓰긴 합니다만, 그 독자는 제 머릿속 상상의 독자들이잖아요. 그래서 제 글이 공감을 줄 거란 확신은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항상 떠올려요.
이를테면 제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이 주제를 일상생활에서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겐 그 이야기가 전달되기 힘들어요. 그분들께 이주 노동자의 세계는 낯선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의 삶과 연결이 안 되거든요. 그런 독자들에겐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이주 노동자의 삶과 그들 삶을 둘러싼 사회적인 조건과 편견까지 모두 들려주는 거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돈을 벌고 생활하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기까진 보통의 삶보다 훨씬 더 분투해야한다. 뭐 이런 얘기들을요.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다 얘기한다는 것. 그래서 저는 산문을 쓸 때 정말 한 줄 한 줄 꾹꾹 눌러 써 내려가요. 이건 저의 분투인 거죠.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특히 산문은 원고 분량에 제한이 있으니까요.
그렇죠. 산문은 할당된 짧은 분량 안에 ‘모든 얘기’를 넣어야 해요. 그 ‘모든 얘기’라는 게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게 아니라 압축한 한 줄 한 줄이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 한 줄도 빠뜨리면 안돼요.
이 과정에서 종종 제 스타일이나 글에 대한 욕심이 튀어나올 때도 있는데요. 그 부분을 억제하고자 최대한 건조하게 쓰는 거예요. 분투를 하는 와중에 자꾸 제 개성이나 제 스타일을 내세우면, 이 싸움이 잘 안 되거든요. 아마 저의 이런 분투가 간혹 독자에게 전해진다면, 가끔 고개를 끄덕여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투가 충분히 느껴지는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끔 튀어나온다는) 작가님의 스타일이 몰입을 방해하기보단 오히려 설득하는 힘인 것 같은데요. 스타일뿐만 아니라 산문에 작가 본인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편인가요?
경계까진 아니지만 조금 부끄러운 면이 있어요. 이게 만약 시라면 제 사적인 얘기들이 재료가 되기도 하고 또 편하게 내지를 수도 있는데요. 그런 무모함을 산문에서 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책에 묶을 100개의 후보 중에 너무 내가 드러나는 것 같은 산문들 몇 편을 걸러냈어요. 그럼에도 이번 책에 묶인 단편 중에 제 개인사를 얘기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특히 아버지 얘기는 저와 아버지 뿐만 아니라 아버지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넣기로 했어요. 어쨌거나 산문에 내가 드러나는 것은 일종의 결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살짝 들어간 2부의 첫 글 <내가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가 참 좋았습니다. 물론 1부의 첫 글 <영혼의 문제>도 좋았고요. 혹시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77편의 수록된 글 중 한 편을 먼저 보여준다면, 어떤 글을 소개하고 싶은가요?
말씀하신 1부의 첫 번째 글인 <영혼의 문제>는 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글이에요. 그리고 2부의 첫 번째 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독자를 먼저 생각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건 두 편의 글인데요. <벌새를 찾아라?>와 <삶이 야구 같기만 하다면> 입니다. 이 두 편의 글은 모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데요. 하나는 벌새, 하나는 홈런이죠. 그런데 그게 모두 착각이에요. 실은 그 새가 벌새가 아니었고, 삶에 역전 홈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죠. 그러니까 일종의 환상인 것인데, 놓치고 싶지 않은 환상, 버릴 수 없는 환상, 그래서 계속 안고 가는 것들이에요. 그게 만약에 희망이라면 희망인 거고요. 제가 영화에서 해피엔딩을 보면 ‘말도 안 돼’ 하고 중얼거리는 스타일인데, 이 정도의 환상은 괜찮겠더라고요. 딱 그 정도는 독자들에게 건넬 수 있을 것 같아요. “희망을 가지세요!”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벌새를 날려드리면서 우리 같이 홈런 한 번 상상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심보선]
최근엔 어떤 글을 쓰고 계신가요?
예술가의 모호한 정체성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전문가이면서 전문가가 아닌, 커리어이면서 커리어가 아니고. 삶과 커리어가 뒤죽박죽 섞인 예술가들이 어떻게 분투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논문을 쓰느라 다른 글은 거의 쓰지 못하고 있는데요. 떠오르는 말들이나 생각들은 메모장에 기록해두고 있어요.

교수로서 살아가는 삶은 시인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나요?
안 좋아요. (웃음) ‘대학은 예술가의 무덤이다’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예술가 정체성도 있지만 또 연구자 정체성도 있으니까요. 만약 창작만 생각하면 시만으로 먹고 사는 건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곳 예술가의 무덤이 무덤으로만 보이지는 않네요. (웃음)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학생들하고 계속해서 대화할 수 있는 게 제게 굉장히 큰 자극을 주고요. 또 비슷한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있다는 점이 좋아요. 둘 모두가 제 동료들이죠. 저는 대학이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값진 자원이 바로 동료라고 생각해요.

이번 책의 추천사로 신형철 평론가의 엄청난 극찬이 있잖아요.
너무 민망해서… (웃음) 사실 형철 씨와 제가 글을 통해 몇 번 교류할 뻔하다가 그친 적이 있는데요. 어찌 보면 이번 추천사가 글로써 저희 둘이 가깝게 만난 케이스인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추천사에서 형철 씨가 표현해준 것들이 많은데,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더 고맙더라고요. 엄밀하고 집요한 글을 쓰는 사람이 제 글에 대해 사랑을 말해주시니까요. 그것이 용기처럼 느껴져서 참 고맙습니다. 물론 그 사랑이 온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거창한 얘기를 해서… 독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게 만들었을까. 참 큰일이다 싶네요. (웃음) 어쨌든,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일 두려운 건 꼰대가 되는 건데요. 제 글이 혹여 꼰대처럼 들릴까봐 걱정이 돼요. 특히 산문은 저자가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서 같이 생각할 거리와 얘깃거리를 던져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저는 이 책이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 진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릴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글을 보고 난 뒤로 나도 모르게 주변을 한 번 살피게 되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고 거기서 나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되는. 그러다 보면 한발 더 나아갈지도 모르고요. 또 작은 줄만 알았던 내 일상이 한 뼘 더 확장되는 걸 느낄지도 몰라요. 제 책이 그런 걸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들어 길에서 마주친 참새를 두고 ‘어쩌면 저것이 벌새는 아닐까?’ 그런 재미난 상상을 하며 그 새를 쫓아갈 수 있는데까지 한 번 쫓아가보는 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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