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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김원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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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으로 2018년 주요 언론 매체와 출판인이 뽑은 '올해의 저자'로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린 김원영 변호사가 10년 전, 20대 때 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가지고 태어나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노력과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희망의 근거'로 광고하면 단번에 눈길이 갈 이력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차가운 성찰과 뜨거운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 그런 장애인으로서의 ''의 성장과 여전한 혼란, 그리고 세상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에 대해서 말이다.
 
『희망 대신 욕망』은 10년 전, 당시 20대였을 때 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개정판입니다.
이 책은 특별히 공부해서 쓴 책이라기보다는 그때까지의 제 삶을 주제로 삼은 책이다 보니 두 번 쓸 수 있는 책은 아니에요. 특히 그 나이 때의 제가 갖고 있던 날카로움이랄까 분노, 그리고 또 어떤 욕망들이 날 것으로 담겨 있어서 많이 부끄럽지만 동시에 애정이 가는 책이죠.
지난해 출간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독자분들께 좀 알려졌는데, 그 책이 가졌던 고민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에 나와 있거든요. 『나는』도 처음 출간될 때 좋아해주신 분들이 있었지만 많이 알려지지 못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개정판을 통해서 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10년 전의 나를 소환하는 것이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거든요(웃음). 다시 읽어보니까 어떤가요?
부끄러운 게 많죠(웃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어요. 저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원고를 읽어봤는데, 그때 가진 것들 중에서 지금은 잃어버려서 아쉬운 모습도 있고, 지금 바뀌었기 때문에 더 좋아진 부분도 있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부끄러워서 고치고 싶은 부분은 많았지만, 그러면 그때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어색하거나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을 바꾸는 정도로만 손을 댔어요.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바뀐 이슈들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았고요.
 
개정판을 내는 작가분들과 인터뷰를 하면, 처음 책을 쓸 때와 사회적 이슈나 감수성이 달라진 부분들이 있어서 고치는 부분이 많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테니 고쳐 쓴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사회적, 물리적 인프라가 좋아진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문제 제기했던 것들, 그러니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구체적인 욕망을 가진 실체로 인식하기 보다는 굉장히 평면적인 희망 서사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의 본질은 정말 바뀌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변화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주석으로만 달아도 충분한 거였죠. 그게 아쉬운 점이에요.
 
제도나 숫자로 보이는 것들은 분명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인식의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부분에 저도 공감을 했어요. 책에서 장애인 친구들 4명과 고깃집에 갔을 때 가게 주인들마다 '여기 왜 왔냐'고 경계했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저도 장애인 4명이 음식점에 있는 모습을 낯설다 생각했으니까요.
지금도 식당에 가면 그런 대우를 받을 때가 종종 있죠. 지금 제가 그런 경계의 시선을 덜 받게 되었다면 그건 아마 제가 수트를 입고 다니기 때문일 거예요. 허름한 옷을 입을 때와 수트를 입을 때, 그렇게 어떤 복장을 하고 있느냐가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있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거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변화는 2001년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역할이 큰 것 같아요. 당시 지하철이나 버스 점거가 이슈가 되기도 했고, '이동'이라는 것이 권리라는 것을 저도 처음 인식하게 되었거든요.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도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 거의 처음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교양있는 근대 시민이라면 장애인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런 전제는 있을 거에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과거에도 평등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성은 남성과 다르니까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이동'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도 사회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는 권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성공한 것이죠.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음을 사회적 이슈로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이동권 운동은 큰 역할을 했고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하셨던 분들은, 사실 장애인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던 분들이 많았다고요. 장애인 이동권 운동 현장에서 지체장애인 박경석 씨가 했던 말 -  "물러서지 맙시다. 지금 여기서 물러서면 또 집구석에서 수십 년씩 처박혀 살아야 합니다" - 은 왜 그분들이 위험한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데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이슈가 될 때 저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는 작은 고물 중고차라도 있었고 굉장히 불편하긴 하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지하철 선로에 몸을 묶고 시위에 나섰던 분들은 대부분 스스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중증 장애인분들이었어요. 이분들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한다 해도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중간에 턱이 있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요. 그분들에게 이 운동은 정말이지 감옥을 부수느냐 마느냐 하는 절박한, 절체절명의 활동이었던 거죠. 저도 이 운동에 굉장히 공감했지만 선로에 내려갈 용기는 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그분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죠.
 
장애인에 대해서 사회가 바라는 어떤 모습들이 있어요. 천사같이 순수한, 혹은 성인처럼 성스러운, 혹은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로요. 작가님은 도움 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쿨한 슈퍼 장애인이 되려고 애썼는데, 그것 역시도 사회가 규정해 놓은 시선이었다고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편견을 깨고 나오니 여전히 또 다른 편견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건데요.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어떤 하나의 국면을 뒤집으면 여전히 내가 또 다른 무언가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걸 또 깼더니 또 다른 무언가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1, 2장에서는 '슈퍼 장애인'이 되려고 했다면 3, 4장에서는 그 국면을 뒤집어 정치적 주체로 각성을 했고, 5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있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지금도 그래요. 제가 이 국면들을 거쳐왔다고 해서 지금이 최종 단계인 것은 아니거든요. 일상에서는 이 모든 국면들이 늘 섞여있어요. 지금도 강연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는 유능한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렇게 유능해 보이려 애쓰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하나 하나 단계를 거치면서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희망이 있지만 현실은 다 섞여 있어요.  
 
'욕망'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키워드인데요. 장애인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여성, 저소득층, 난민 같은 소수자들은 욕망을 갖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기도 해요. 사실 그 욕망이란 것이 엄청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욕망하는 것들인데 말이에요.
그 당시 제가 갖고 있던 가장 큰 문제의식은, 희망서사, 미담의 평면성이었어요. 제 나름대로 복잡하고 독자적인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기사화된 것을 보면 여전히 '미담'의 하나로 소개된다는 거죠. 그런 '미담'이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을 소모하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무용하며 재미도 없고 답답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죠.
사회가 미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사회가 불편해하는 것도 포함하는 어떤 충동이 있어요. 장애인이 춤을 추고 싶어한다, 성적 욕망을 갖는다, 성공하고 싶어한다? 장애인이 그런 욕망을 표출하면, 거친 표현이라서 직접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병신 육갑 하고 있네' 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물론 욕망 하나하나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판단을 할 수는 있어요. 어떤 욕망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고요. 강남에 아파트 20채를 갖고 싶다는 욕망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죠. 장애인이라고 그런 욕망들마저 다 정당화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구체적인 욕망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 그러니까 장애인이 그런 욕망을 갖는 것에 대해서 '니가 뭔데 감히 그런 욕망을 갖느냐, 안전하게 밥 먹고 살면 되는 거지' 그런 인식들을 돌파하고 싶은 거죠. 그 돌파를 위한 키워드가 저에게는 '욕망'이었어요. 장애인도 욕망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다양하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키워드요.
 
장애에 대해서 '극복의 서사'로 보는 시선도 많은데요. 어려움을 극복하여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삶, 그런 인간 승리의 서사요. 작가님도 '장애를 극복하고 노력하여 서울대학교에 가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라는 미담으로 포장될 수 있는 경우잖아요. 그런데 책에서는 지금 작가님의 모습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룬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제가 '증언'이라는 말을 한 것은, 정말이지 제 개인적인 서사는 그 시기 한국 사회와 법제도의 변화, 그리고 장애인 인권 운동의 발전과 함께 간 것이었거든요. 제가 특수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은, 엄청난 차별이 존재하지만 그걸 돌파할 정도로 '슈퍼 장애인'이라서가 아니었어요. 마침 고등학교 진학할 때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흐름이 있었고  그 흐름과 관계된 찬오형이 저와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런 사회적 맥락을 배제할 수 없어요. 만약 제가 5년 빨리 태어났다면, 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금보다 나쁘다기 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선택지가 제한된 삶을 살았을 거에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소득층 중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경제적 지원도 물론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꿈을 크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로 다가왔다고요. 더 큰 세계를 알지 못하고, 또 큰 꿈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음껏 욕망하고 꿈꾸지 못하는 장애인들과 겹쳐지기도 했고요.  
그 아이들은 일단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잘 모르고, 알게 된 후에도 그 직업을 자기 삶의 선택지에서 배제해요. 그리고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이 생각할 때 가능할 것 같은 선택지만 생각하는 거죠. 반면 부유한 아이들, 부모가 유용한 네트워크를 가진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죠. 외교관인 삼촌을 보거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사촌들 얘기를 들으면서 저런 직업도 내 삶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커요.  
 
저소득층 아이들과 장애인 사이에 그런 연결점이 있는 것처럼, 서로 만날 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어떤 공통점이 있으면 서로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개정판 서문』에서, 부유층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장애가 있고 그 장애로 인한 차별에 함께 맞서고자 한다면 아득한 계급적 차이는 희미한 것이 된다고 쓴 것도 비슷한 맥락이네요.  
특정한 개인적 조건과 특성을 가지고 조직화되는 정체성 운동이 강해지면 사회가 분열된다, 그런 우려가 있죠.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런 식으로 갈라지게 된다고요. 분명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있어요. 하지만 한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갖고 있어요. 어느 한 가지 속성만으로 나를 규정할 수 없죠. 좋은 직업을 가진, 장애도 없고 이성애자인 남성이라면 사회적으로 억압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도 세상에 이야기하면 모욕당하거나 부끄러운 경험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 중에는 장애인도 있을 수 있고 여성도 있을 수 있고요. 그 공통의 경험을 통해서 기존의 여성/남성, 장애인/비장애인, 성소수자/이성애자 그런 집단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어떤 것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기존 집단을 가로지르는 선들이 무수히 많이 생기면, 정체성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하더라도 사회가 분열되기 보다는 새롭게 연결되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요.
 
반대로, '장애인'이라고 묶어버린 범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정말 많은 다름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장애인'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묻게 되고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 내에서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더 클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손가락 하나가 없는 장애인은 시각 장애 1급인 장애인, 그리고 특정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 둘 사이에서 어느 쪽과 더 가깝겠어요? 실질적인 신체적 경험으로는 비장애인과 훨씬 더 가깝죠. 하지만 우리가 손가락 하나가 없는 장애인과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묶어서 부르는 순간, 사회가 부여하는 어떤 낙인, 차별의 경험은 굉장히 비슷해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께 연대해서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고요.
 
지난 10년 사이, 장애인 인권은 제도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나아진 부분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많이 나아졌는데 뭘 더 바라냐'는 시선도 분명 있을텐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시선들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고요.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도 사실이에요. 전에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 밖으로 나올 수는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이동하기는 힘든 것처럼요.  
아쉬운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여러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 같아요. 스타트업 창업자  중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분들도 있고, 장애인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활동하는 예술가분들도 있고요.
 
 
작가님도 연극에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연극 배우로도 활동하셨고요.
제가 예술적인 재능이 많아서는 아니고요(웃음). 연극은 어떤 다른 감각, 다른 충격을 줄 수 있거든요. 사회의 법제도로는 마련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주고요. 보통 장애를 가진 신체는 기능적으로 유용하지도 않고 미학적으로도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요. 교양있는 현대인이라면 장애인의 신체를 뚫어져라 바라보지 않고요. 그런데 연극은 무대라는 특정한 세팅을 통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관객은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봐야 하고요. 그런 작업들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예술가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기획하는 걸 좋아해요.
 
출판계에서는 요즘 우울증이나 정신장애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책들이 많아졌는데요.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힘을 얻고요. 장애인 인권 운동을 비롯해 많은 소수자 운동들은, 결국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인데요. 그렇게 감춰진 것을 이야기할 때 어떤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소수자가 더 많이 대변되는 사회가 민주적인 사회이고 우리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히 윤리적으로도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제가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런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에요.
장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장애인의 경험과 서사를 공유하는 것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하면 새로운 경험을 접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열어주고, 우리가 보는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과 이 책 『희망 대신 욕망』을 읽어주시고 좋은 평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들을 읽어보면 책을 읽으며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반성적인 독서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윤리적 부담은 조금 내려놓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제가 쓴 책들은 독자분들에게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으로 전달하는 기능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경험은 이런 것이구나, 그런 것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 몰랐던 삶,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삶의 영역을 탐험한다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장애의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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