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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댓글을 만화로 그려드립니다!『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키크니

  • 2019.04.25
  • 조회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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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진정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음날 있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저자 인스타그램 한 번 들어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올라온 컨텐츠 한 두 개부터 보기 시작하다 저는 점점 한 마리 연어에 빙의되어 컨텐츠를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결국 동이 틀 무렵 첫 컨텐츠까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중간쯤 부터 댓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 댓글들도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죠. 계정주와 구독자들 사이에 오가는 시덥지 않은 농담들과 애매하게 훈훈한 분위기도 묘했고 말입니다. 이 신비하고 재미있는 곳은, (자칭)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 월드입니다.
 
30만에 가까운 팔로워들과 댓글로 소통하며 허를 찌르는 반전과 감동을 담은 한컷 만화를 그리고 있는 키크니와 만났습니다. 어땠냐고요? 무심하게 웃기고 돌아서면 '아하'가 있었습니다.
 
 
SNS에 구독자들이 남긴 주문 댓글들을 한 컷 만화로 그리는 '주문제작 만화'라는 아이디어가 너무 재미있어요. 주문제작 만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주문제작 만화'라는 타이틀은 편집자분이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그런 만화인 줄 몰랐는데 말이죠(웃음).
원래 SNS도 전혀 안 했는데, 낙서라도 해보려고 SNS를 시작했어요. 4컷 일상만화를 조금씩 올렸는데 댓글이 달리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을 9년쯤 했고 올해 10년 차에요. 주로 출판사 관계자 하고만 일을 하다보니 독자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댓글들이 굉장히 신선하고 거기서 좋은 기운을 얻었죠.
이 댓글 가지고 장난을 좀 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제가 댓글을 만들어서 그 댓글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거기에 댓글이 엄청 많이 달리고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시는 거에요. 전에 그리던 일상만화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저도 재미있게 하다보니 갑자기 구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라고요. 한 번 웃겨 보려고 시작했는데, 너무 커지는 바람에 저도 약간 당황하고 있습니다(웃음).
 
전에는 SNS를 아예 안 하셨다고요?
 
저는 싸이월드 이후에는 SNS를 한 적이 없어요(웃음). 인스타그램이 그림을 올리기에는 페이스북보다 좋다고 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요. '인스타그램이 낫다'고 얘기를 들은 것이지 사실 페이스북은 사용을 안 해봐서 진짜 나은지는 잘 모르겠네요.  
SNS를 하지 않은 건, 내가 어떻게 생겼고 오늘 뭘 했고 뭘 먹었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좀 오글거리거든요. 굳이 그걸 밝혀야 하나 싶고요. 하지만 그림을 보여주는 건 다르니까요. 저는 저를 직접 안 보여주지만 그림으로 소통을 하는 것은 재미있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약간 관종처럼 그림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죠. 거의 하루에 하나씩 올리고 있네요(웃음)
 
그런데 SNS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분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 너무 잘 맞는 컨텐츠를 만드셨어요. 앞장에 주문 내용이, 이미지를 넘기면 거기에 대한 그림이 나오는 형식이요. 사실 인스타그램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걸 저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보통 계정에 올라온 이미지들을 쭉 훑고 지나가는데, 작가님 인스타에서는 이미지를 넘길 때 그 뒤에 어떤 반전이 있을지 너무 궁금해서 이미지를 계속 넘기게 되었거든요. 만화책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도 있었어요. 오히려 SNS를 안 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만화를 전공해서, 인스타그램이 사진을 넘겨서 볼 수 있는 방식이라면 넘겼을 때 반전이 있는 만화 형식으로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게 인스타그램 플랫폼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웹툰에도 관심이 많은데, 웹툰은 스크롤을 내리는 방식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컷툰이라고, 넘겨서 보는 형식도 있거든요. 컷툰 같은 형식이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SNS에 연재된 컨텐츠를 책으로 만드는 경우에 SNS에서 봤던 컨텐츠와는 느낌이 좀 다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번에 책으로 엮은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책 자체에서도 인스타그램의 느낌을 잘 살렸더라고요. 책의 크기나 두께, 만듦새, 편집까지도요.
 
편집자님과 함께 고민을 많이 했어요. 페이지를 넘길 때 어떻게 해야 느낌이 잘 살아날까 하고요. 저도 책이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제 그림이 들어간 책은 굉장히 많아요. 100권 넘게 작업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롯이 내 생각이 담긴 글과 그림으로 된 책을 한 번은 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서 책이 나오니까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어제 작가님 인스타그램 들어가서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눌러앉았네요(웃음). 놀랐던 것은, 너무 성실하게 컨텐츠를 올리더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 치고 굉장히 아침형 인간이기도 하고요(인터뷰는 오전 10시에 진행되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서 올린 것이 또 주효했던 한 요인인 것 같은데요.
 
인스타그램은 따로 수익이 있는 구조가 아니니까 작가들도 취미처럼 자유롭게 연재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SNS를 전에 안 하다보니까 몰랐죠. 제가 또 '일정을 맞춰야 한다' 그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인스타그램을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플랫폼에 연재를 한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몇 번, 같은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 올려야겠다, 스스로 다짐을 한거죠.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는 다른 분들보다 컨텐츠 양도 많고 업데이트 시간도 잘 지키고 하니까 유입이 더 많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초기에 팔로워가 많지 않았을 때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혼자 책임감이 생겨서 더 철저하게 컨텐츠를 올렸고요.
 
심지어 이벤트 당첨자까지 너무 성실하게 뽑고 발표하시더라고요. 댓글 이벤트 당첨자 뽑는 일이 진짜 생각보다 엄청 손이 많이 가거든요. 그 댓글들을 다 읽는 것만 해도 일일 것 같은데 말이죠.
 
이벤트 당첨자 뽑고 발표하는게 그림 그리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웃음). 그냥 눈에 띄는 댓글 뽑아서 후딱 해버려야겠다 생각하면 꼭 댓글에 "제 댓글  보신 것 맞죠?" 이런 글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런 댓글을 보면, 맞아, 내가 초심을 잃었어, 그러면서 또 댓글을 다 읽는 거죠.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아서요.  
 
그런데 팔로워들의 댓글도 너무 재밌어서, 이분들도 보통 분들은 아니다 싶더라고요(웃음). 작가님 개인 계정이지만 커뮤니티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구독자분들끼리 서로 댓글을 주고 받기도 하고, 작가님과 구독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도 있고요. 신청 댓글을 달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주는 구조가 팔로워들에게는 같이 참여하고 대화하고 싶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너무 신기해요. 재미있는 댓글에는 좋아요를 많이 누르지만 조금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댓글에는 팔로워분들끼리 서로 댓글을 달아주세요. 그걸 보면서, 나는 그냥 판만 깔아놓으면 알아서들 소통하시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혀 의도한게 아니었어요(웃음).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들인데 보시는 분들이 그걸 크게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저도 어제 댓글 읽다가 거의 밤 샜어요. 댓글이 너무 재밌는 거에요. 구독자분들이 댓글 중에서 재미있었던 것 혹시 있었나요?
 
제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항공사와 함께 항공사 이름으로 3행시를 짓고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에게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댓글이, 누가 장난처럼 쓴, 다른 경쟁 항공사가 좋다는 댓글인 거에요. 그것 때문에 항공사 이벤트 담당자분이 어떻게 해야하냐고 걱정을 엄청 하셨어요. 그렇다고 그 댓글을 삭제하거나 제외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대인배처럼 행동하시라고 했더니 나중에 보니까 담당자분이 진짜 엄청나게 대인배인 것처럼 댓글을 다셨더라고요. 문자로는 그렇게 걱정을 하시더니(웃음). 나중에 담당자분 댓글에도 대인배라고 또 댓글이 엄청 달리고, 당첨되신 분도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고 당황스러워하시고, 아무튼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이런저런 것을 그려주세요" 그런 댓글들에, 또 그려달라는 걸 그대로 그려주지는 않던데요(웃음). 반전을 주거나 살짝 비틀어서 그려주는 것은 의도한 것인가요?
 
애초에 댓글들에 대해서 내 식대로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시작한 거라서  뭔가 진정성 있게 다가가겠다, 그런 포부는 없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거기서 힐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왜 그럴까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 이런 것 같아요. 내 고민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게 있어요.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차라리 저처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편하게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고민에 대해서 저는 아예 뜬금없는 얘기로 받아치니까 그냥 웃어버리게 되거든요. 웃고 나면, 어쩌면 내 고민이 별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이것도 역시 저는 전혀 의도한 건 아니지만요. 오히려 제가 뭘 계획하고 의도하지 않아서 더 편하게 받아주시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고민을 얘기하는 건, 꼭 상대가 그 고민을 해결해주길 바래서는 아니거든요. 그냥 안에 있는 걸 털어놓고 싶은 것 뿐인데 상대가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려고 애쓰는게 더 불편할 때도 있어요. 차라리 그냥 조용히 얘기만 들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겨주는 게 편할 때도 있고요.
 
보통 작가라고 하면 뭔가 큰 얘기를 하고 그걸로 감동을 주고 그래야할 것 같은데 저는 작가라기보다는 SNS 친구 같은 느낌인 거죠. 너무 가깝진 않고 적당히 거리가  있는 친구.  댓글도 스스럼없이 달아주시고 저도 또 편하게 댓글을 달고 하니까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SNS에서 재밌는 컨텐츠를 봤다고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걸 성격적으로 힘들어하거든요. 그런데도 댓글 달아주시는 걸 보면 신기하고 고맙죠.
 
그림들을 보면, 말장난의 비주얼화라는 신장르를 개척하신 것 같던데요(웃음).  
 
아재개그스럽다는 말도 자주 듣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언어나 문학 쪽을 좋아했거든요. 초성 퀴즈 같은 걸 하면 거의 진 적이 없어요. 그래도 저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재미있어서 계속 하다보니까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같고요. 역시 계획은 1도 없었고, 그럴 의도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구독자분들께 감사해요. 제가 모르던 저를 끌어내주신 분들이라서요. 물론 재미도 있고요.
 
여러 주문 댓글 중에서, 반려동물이나 아기, 혹은 사물처럼 말을 못하는 존재들의 속마음을 그려달라는 주문들에 대한 그림들이 재미있었어요. 그런 그림을 주문하시는 분들도 신기하고, 생각도 안 해본 존재들의 속마음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고요.
 
그런 주문 댓글들을 보면서 내가 잘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던 게,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많이 하거든요. 반려동물을 예뻐하며 키우지만, 막상 고양이 입장에서는 집에 갇혀서 사는 걸 좋아할까, 같은 생각이요.
고양이의 마음을 그려달라는 주문에는, '고양이가 나를 좋아하는 모습을 그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있는 거겠지만, 저는 그렇게 그리기 싫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고양이의 도도한 성격을 살려서 그려봤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그러면 휴대폰의 생각, 일회용컵의 심정, 가방의 마음, 치킨의 마음, 아기의 마음도 그려봐야지, 하게 되었죠. 보통 긍정적으로 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마냥 따뜻하게는 아니고 그걸 한번 비틀어서 그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자주 등장하는 키크니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제가 그렇게 생겼거든요. 후드티 입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포인트를 하나 주면 좋겠다 싶어서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어요. 제 주변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은 여성분들이 많고, 저처럼 덩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이런 식으로 장난을 쳤는데, 그림 속에서 제가 종종 등장해서 개그를 하니까 어느 순간 캐릭터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의도한 것도 있어요. 저는 뱃지 같은 굿즈를 만들 때 무조건 제 얼굴 캐릭터로 만들거든요. 귀여운 걸로 만들어달고 해도 무조건 제 얼굴로, 이 캐릭터가 귀여워 보일 때까지 계속 밀어보려고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귀여워 보일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밀고 있는데 이제는 슬슬 귀여워보인다는 말씀들을 해주시네요.
 
미디어에 얼굴 공개를 안 하시는데 비해, 독자들과의 만남은 자주 가지시는데요(웃음).
 
'세상에 절대로 나의 정체를 알려서는 안된다'는 건 아니고, 웹상에서 제 얼굴이 공개되고 그래서 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제 외모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걸 제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제가 올리는 그림에 대해서는 악플이 달려도 괜찮아요. 그림은 제가 평가를 받으려고 올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뭔가 사적인 걸로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지적을 당하고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은 거죠. 그렇다면 안 하는게 낫겠다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분들 중에서 얼굴 공개 안 하시는 분들 많지 않나요? 저만 그러는 건 아닌데….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에서 누군가는 작가님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릴 법도 한데, 정말 신기할 만큼 사진이 없어요.
 
처음 강연을 할 때, 제가 사진이 웹에 돌아다니는 걸 정말 안 좋아한다, 만약 사진을 찍어서 올리신다면 같이 경찰서에 가셔야 한다, 그렇게 좋게 말씀을 드렸어요. (좋게 얘기했다고요?) 웃으면서 얘기했으니까 좋게 얘기한 거죠. 그런데 그 다음에도 항상 잘 지켜주시더라고요. 뒷모습만 찍으면 안되겠냐고 하시거나, 같이 셀카를 찍어도 SNS에 올리지 않으시고요. 진짜 멋있는 분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진짜 잘생기고 그랬으면 아무리 지켜달라고 했어도 어딘가 올렸겠죠.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아니다 싶으니까 그냥 안 올려도 되겠다 싶으셨던 게 아닐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각에서 작가님이 배우 공유를 닮았다고 공크니라고 부르던데요….?) '키크니 실제로 보니까 어땠어?'라고 물으니까 어떤 분이 별로 할 말이 없으셔서 그냥 '훈훈했어'라고 한 게 점점 하정우 닮았다, 이병헌 닮았다, 그러다 결국 공유 닮았다고 변질된 건데, 다 저를 안 보신 분들이 하신 얘기들이고요. 공크니라고 해서 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절대 아닙니다(정색).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을 그린 지는 10년차지만, SNS에 만화를 그리기 전과 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같지만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10년을 했지만 지금도 그림 그리는 걸 진짜 좋아하거든요. 주변에는 직업이니까 그리기 싫어도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저는 그림을 그리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조금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데, 일로 그림을 그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개인 작업으로 그림 그리면서 푸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번아웃이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 온 거죠. 그림도 그렇고 개인적인 것도 그렇고요. 너무 힘들어서 그림을 쉬고 그 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지내고 있었어요. 그때 친한 선배가, 지금 이렇게 있으면 안된다고, 같이 SNS에 낙서라도 올리자고 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림체도 아예 힘을 빼고, 색상도 안 넣고, 그냥 그리고 싶은 걸 그려서 올렸죠. 그러니까 스트레스도 덜 받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니까 내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 피드백도 바로바로 오니까 신세계인 거에요(웃음). 제가 처음 그림을 그리면서, 일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신기함, 행복함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10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면 지금은 1년차 신입의 마음이에요. 뭔가 두근거리고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보통 다른 사람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거라 나의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어요. 하지만 수입이 되는 일이 먼저다 보니까 계속 내 작업은 미루게 되었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번아웃이 와서 자연스럽게 기존에 하던 일을 놓고 내 일을 하게 된 셈인데, 이게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기회를 잡아야죠(웃음).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 때 해보고 싶었던 패키지 디자인이나 광고작업도 해보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인기도 얻었어요. 그렇다고 굳이 인기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걸 또 10년 꾸준히 하다보면 10년 후에는 또 다른 새로운 10년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은 계속 특별히 뭔가를 의도하지는 않으셨다고 하는데, 10년 동안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사람같은 느낌이 있는데요(웃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공동 작업실을 같이 쓰는 작가분들이 그러세요. 팔로워가 많아지고 여기저기 찾는데가 많아지면 사람이 들뜨고 그래야 하는데, 저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강연  요청 오면 강연 하고, 콜라보 제안 오면 작업하고 하는게 너무 신기하다고요.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은 뭔가 하이텐션인 느낌인데, 불안하진 않지만 뭔가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있거든요. 그런데 또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면 좋은 게 안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지금 인기도 다 지나갈 것이고, 거품이 어느 정도 잦아들어서 평균 정도가 되어야 더 부담없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제 바닥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 알거든요.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를 엄청 좋아해달라는 건 아니고요.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제가 사양하고 싶네요(웃음) 엄청 친하지는 않지만 가끔 편하게 안부 묻는 정도의 친함을 유지하면 좋겠어요.
10년을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고, 또 이제 10년을 키크니로 열심히 살다보면 그 다음에는 뭔가 또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10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 꾸준히 하다보면 말이죠.
 
앞으로도 계속 정진해주시기를 바랍니다(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이미지제공_아르테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시/에세이]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키크니 | 아르테(arte)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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